북한건축 워치 03북한의 건축행정조직Ⅰ 2021.5

2023. 2. 3. 15:35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North Korean Architecture Watch 03
North Korea's architectural administration organizationⅠ

 

북한은 해방 이후부터 건축을 국가건설의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여 정권 초기 내각에 건축관련 부서를 설치하였으며, 1946년 시행한 보통강 개수공사를 초기 북한정권의 대표적인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2012년 김정은 위원장 집권 후에도 건축(건설)관련 중앙행정부처가 3개에 이르고, 대규모 건설사업을 최우선 국가정책으로 추진하는 등 건축은 북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과거 계획경제에 의하여 추진되었던 북한의 건설사업이 시장영역으로 이전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북한개발을 위하여 북한의 건축행정시스템의 특성을 알아보고, 건축행정 협력방안에 대하여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2013년 건설부분일꾼 강습회(북한방송 캡처). 강습회에서 북한의 건설에 대한 새로운 방침 을 정하였으며, 북한의 최고위층이 대거 참석하였다.
건설부분일꾼 강습회 모습(노동신문 보도 사진)


1. 중앙행정조직 
북한의 권력기관은 당과 국가기관으로 이원화되어 있으며, 당이 국가의 최고 권력기관이다. 국가기관은 선거로 선출되는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무위원회, 사법부의 지도자를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권력의 전면에 등장하는 1980년, 노동당 6차 당대회 이후 당대회를 개최하지 않았다. 1992년 국방위원회를 만들고 1993년 국방위원장이 된 후부터는 실질적으로 당이 아닌 국방위원회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였으나, 명목상의 최고 권력기구는 노동당이었다. 2012년 김정은 위원장이 권력을 승계한 후, 2016년에는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1980년 이후 36년 만에 당대회를 개최하여 권력을 당 중심체제로 바꾸었다.


노동당은 제1비서(김정은), 당대회, 당중앙군사위원회(위원장 김정은), 정치국, 정무국, 검열위원회, 당중앙검사위원회, 전문부서(19개 부서), 도당대표회, 도당위원회로 구성되어 있다. 국내의 정당조직은 정당내부의 문제를 처리하지만, 북한 노동당은 직접 행정부(내각)를 지도하며, 노동당 전문부서는 행정부처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노동당 통일전선부는 남한의 통일부에 해당하는 업무를 하고 있으며, 국제부는 국제외교무대에 직접 등장하기도 한다. 

국가기관은 국무위원회(위원장 김정은), 최고인민회의, 내각, 중앙재판소, 중앙검찰소, 도(직할시, 특별시)인민위원회로 이루어져 있다. 국가기관 중 실질적인 최고 권력기관은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설립한 국무위원회이나, 최고인민회의가 국무위원회 위원장, 위원, 총리, 중앙재판소장을 선거로 선출하고 내각의 장, 중앙검찰소장을 임명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으므로 명목상으로는 최고인민회의가 최고의 권력기관이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의장은 2009년까지는 헌법상 국가원수였으며, 현재도 국가원수인 국무위원장 다음으로 국가 의전서열 2위이다. 

북한내각은 총리(김덕훈)와 8명의 부총리 및 8개 위원회, 31개 성, 1원(국가과학원), 1은행(중앙은행), 2국(내각사무국, 중앙통계국) 등 43개 기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민무력성, 국가보위성, 사회안전성 그리고 국가체육지도위원회는 내각이 아닌 국무위원회에 소속된 기관이다. 

북한의 건축사 중 마원춘 국무위원회 설계실장이 국내에 많이 알려져 있으나, 내각 부총리인 동정호(전 건설건재공업상)가 건설 전문가 중 북한에서 가장 고위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당과 국가기관(政) 외의 외곽기구도 권력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외곽기구는 근로단체(김일성, 김정일주의 청년동맹, 조선직업총동맹 등), 정당-대남(조선천도교청우당, 조선사화민주당 등), 대외(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등), 사회(적십자사 등), 종교(그리스도교연맹, 불교도연맹) 및 학술체육단체(조선건축가동맹, 올림픽위원회)가 있다. 이 외곽단체는 대내적 국민결속 목적을 가진 단체와 국제교류를 고려하여 결성된 단체가 있다. 

마식령스키장을 시찰하는 김정은 위원장과 마원춘 설계실장(노동신문 2013.12.15).


노동당에는 건축 및 건설관련 기구가 없으나, 2013년 뉴스를 통해 마원춘 노동당 재정경리부 부부장이 노동당 재정경리부 설계실장과 국방위원회 설계국장을 맡고 있으며, 노동당 재정경리부 설계실에는 북한 최고의 건축전문가들이 소속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연합뉴스, 2013.07.05). 노동당 재정경리부 설계실의 정확한 업무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김정은의 최측근인 마원춘이 국방위원회 해체 후 신설된 국무위원회의 설계국장을 맡고 있으며 2018년에는 노동당 중앙위 후보위원에 올랐으므로, 마원춘이 실장을 역임한 노동당 재정경리부 설계실은 국가의 건축정책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백두산건축연구원은 노동당 재정경리부 산하기관이기도 하다. 

내각에서는 건설건재공업성, 건설감독성, 도시경영성 및 수도건설위원회가 건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부서이며, 국가계획위원회, 국토환경보호성, 철도성, 육해운성 등도 건설과 관련이 있는 부서들이다.     

국가계획위원회는 북한의 경제계획을 수립하는 기관으로, 북한의 건설계획을 확정하고 그에 따른 자원(예산, 자재, 인력) 등을 배분하는 역할을 한다. 

북한은 1948년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건설업무를 총괄하는 건설성과 도시관리를 담당하는 도시경영성을 설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설성은 ①국토 이용의 효율적 운용을 위한 종합적 계획의 수립, 실시와 관리, 조정 ②도시계획, 건축, 조경 관리 및 도시 재개발에 관한 사무 등을 관장하는 기관이었다. 일부 사업은 국가계획위원회의 업무와 중복될 정도로 광범위한 업무를 담당하였으며, 1998년 건설감독성이 설립되면서 폐지되었다(위키백과). 1957년에는 건설성의 건재분야를 건설건재공업성으로 분리하고, 건설성 산하에 국가건설위원회를 설립하였다.   
국가건설위원회는 건설정책을 수립하는 최고의 기관으로 위원은 내각과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하였다. 건설성과 국가건설위원회는 1998년 국가건설감독성이 설립되면서 대부분의 업무가 국가건설감독성에 이관되면서 해체되었다.  

건설성 장관(상 혹은 부장) 중 남한에 알려진 사람은 박임태, 조철준(1982~ 1994년) 등이다. 박임태는 1967년부터 1982년까지 장기간 건설성 장관을 지냈으며, 1982년부터 1994년까지는 조철준이 장관으로 재직하였다.
조철준은 통일교육원장과 국회의원(비례대표)을 지낸 탈북자 조명철(1994년 탈북)의 아버지이다. 아들이 탈북한 해인 1994년 자리에서 물러났다. 조철준은 러시아에 유학을 가서 건축을 전공하였으며, ‘국가계획위원회청사’와 ‘평양예술극장’ 등을 설계했다.   

 

1958년 노동신문 보도 기사. 김응상은 김정희와 더불어 북한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사이다. 니혼대학교 출신인 김응상은 40대 초반에 국가건설위원장을 지냈다
김정희에 대한 노동신문(2018년 6월) 보도 기사. 김정희는 북한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사이다


국가건설위원회의 역대 위원장으로 알려져 있는 사람은 남일(1960~1966), 김응상(1977~1998) 등이다. 남일은 소련군 출신으로 북한에서 교육상, 외부상 등을 지냈고, 1960년~1966년까지 국가건설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건설과 직접 관련은 없는, 전문 관료이다. 김응상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니혼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였고, 김일성대학 교수, 조선건축가동맹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77년부터 국가건설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국가건설위원회에서 퇴임한 날짜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1990년 재선임 되었으므로 1998년 건설위원회가 폐지될 때까지 20여 년간 재임한 것으로 보이며, 2003년 사망하였다.

김응상은 국내에 많이 알려진 북한 건축사 김정희만큼 북한에서 인정받는 건축사이다. 북한에서 『주체건축역사의 갈피를 더듬어』라는 개인회고록을 출판하였고, 김일성 장의위원회 위원, 오진우 장의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2003년 사망 시 조선중앙통신에 보도되기도 하였다. 2013년 조선중앙통신은 김응상을 김정희와 더불어 주체건축의 건설영웅으로 보도하기도 하였다(연합뉴스 2013.12.16.). 

국가건설감독성은 1998년 국가건축위원회와 건설성(건설부)의 일부 업무를 통합하여 출범하였다. 국가건설감독성은 배달준이 1998년부터 2011년까지 장기간 맡았고, 2011년부터 2013년까지 2년간 김석준이 후임을 맡은 후 2013년부터 현재(2020)까지 권성호가 맡고 있다. 배달준은 1936년생으로 체코의 브라티슬라바 대학(브라타슬라바:현재 슬로바카아공화국 수도)을 졸업하였으며, 평양도시계획설계사업소에서 근무하였다. 국가건설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고, 1998년 건설감독성의 초대 장관이 되었다. 2000년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조선건축가동맹 위원장을 겸임하기도 하였다. 국가건설감독성은 국가건설위원회를 이어받은 조직이므로 북한 내각에서 건설정책을 총괄하는 조직이다.  

건설감독성산하에는 건설설계정보센터, 국가설계지도국, 건설기술지도위원회, 조선건축가동맹 등이 소속되어 있다. 

건설건재공업성은 건설(건축, 토목)자재 산업을 관장하는 기관으로 1957년 건설성에서 분리되어 건재공업성으로 출범하였다. 건설자재의 자체적 확보와 건설산업의 과학화가 업무의 목표이다. 1998년 건설성(건설부)이 폐지되면서 일부업무를 가져와 건설건재공업성이 되었다.  

건설건재공업성 장관(상)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장 최휘의 아버지인 최재하이다. 최재하는 수풍발전소를 재생하고 한국전쟁 후 평양시 주택공급에도 많은 공을 세웠으며, 영화 <고압선(1975, 조선예술영화촬영소)>으로 북한주민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로 1956년부터 사망한 해인 1958년까지 건설건재상을 지냈다(일요신문. 2018.2.2. [추적] 평창올림픽 방남 가능성 높은 북한 체육계 수장 ‘최휘’는 누구? 북한 유명 건설 영웅 최재하의 장남...김정은 집권 초기 선전선동 큰 역할).

국가건설위원장을 장기간 맡았던 김응상은 1965년 건설건재공업상을 지내기도 하였다. 1998년부터는 2005년까지는 조윤희가 맡았다. 조윤희는 1994년 정무원(현 내각) 건설부장이 되었으며, 1998년 건설부(건설성)와 건재공업부가 통합되어 건설건재공업성으로 출범하면서 2005년 사망 시까지 장관을 지냈다. 2005년 조선중앙통신은 조윤회의 사망을 보도하기도 하였다(데일리NK, 2005.01.12). 2005년부터 2017년까지 12년간, 동정호가 건설건재공업상으로 재직하였으며, 2017년 부총리로 선출되었다.

건설건재공업성은 과학기술국, 품질량정국 등이 있으며, 건재총국과 건자재기업소 등(대안친선유리공장, 순천시멘트 연합기업소 등)의 산하기관이 있다. 

<다음 호에 계속>

 

 

글. 변상욱 Byun, Sangwook

대한건축사협회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위원·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도라산출입사무소장·건축사·시공기술사

 

 

 

변상욱 건축사·건축시공기술사

1999년부터 현대아산에서 근무하면서 금강산관광지역 건축물과 평양체육관 등 건설사업관리업무를 수행했으며, 2004년부터 2016년까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서 근무하면서 개성공업지구 종합지원센터, 기술교육센터 등 건설사업관리와 공장건축 인허가업무를 담당하였다.

 

gut1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