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건축 05콘크리트 2021.5

2023. 2. 3. 15:54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Term@Architecture 04
Concrete

 

architectural terms 건축용어
우리나라 건축용어 중에는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어원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연재에서는 필자가 이해하기 어려웠거나 호기심이 크게 생겼던 표현들을 소개하고, 그 어원과 출처를 추적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과 함께 보다 적절한 표현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계기를 갖고자 합니다.

콘크리트
19세기에 Portland Cement 개발과 철근콘크리트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금과 같은 콘크리트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명실상부하게 건축재료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건축재료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마천루가 만들어지고, 인간의 감각으로 상상하기 힘든 속도와 규모의 개발이 이어지면서 콘크리트는 비인간적인 20세기를 상징하는 대상이 되었다. 흔히 ‘회색빛 콘크리트 덩어리’라는 표현으로 인간성이 상실된 도시와 건축의 어두운 모습을 전달한다. 필자가 태어난 1976년, 반포아파트 단지의 사진은 과연 그렇다. 콘크리트는 도시의 삭막함을 대표하는 재료로서 하나의 클리셰(cliche;진부한 표현이나 상투적인 말)로 정착되었다. 그렇게 말 못 하는 콘크리트는 악역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콘크리트는 정말 나쁘고, 삭막하고 몹쓸 재료일까? 콘크리트의 어원을 찾아보면, ‘함께’, ‘같이’라는 의미의 ‘con-’과 ‘되게 하다’라는 의미의 ‘crescere’가 복합된 라틴어 ‘concretus’에서 유래한 말이다. 함께 어울린다. 섞어서 만든다는 정도의 의미다. 콘크리트가 어쩌다 미운털이 박혔는지 안타깝다.

1976년 반포아파트 ⓒ 국가기록원
역암
마이산

콘크리트의 역사
콘크리트는 자갈과 모래 그리고 접착제 역할을 하는 시멘트가 복합된 재료이다. 자연에서는 역암(礫巖, conglomerate)이 콘크리트와 유사하다. 퇴적층에 쌓인 자갈과 모래가 뒤섞여 굳은 암석을 역암(礫巖)이라고 하는데, 크기가 2mm 이상의 자갈인 역礫이 있고, 자갈 사이의 틈새가 모래 또는 진흙으로 메워져 구성된다. 자갈의 모양이 둥근 것은 원력암, 모난 것은 각력암이라고 한다. 역암礫巖을 관찰하면 인간이 만든 콘크리트와 모양이 흡사하다. 전라북도 진안군의 마이산은 말의 귀를 닮은 독특한 모습의 산이다. 가까이 다가가면, 크고 작은 자갈이 모래와 함께 뒤섞인 채로 굳은 모습을 볼 수 있다. 거인족이나 거대한 외계인이 콘크리트를 만들고 숲속에 버려 잔해 같다. 마이산은 진안 분지에 생성된 퇴적층의 자갈과 모래가 섞이고 굳어서 만들어진 천연 콘크리트 덩어리다. 자연은 인간보다 먼저 콘크리트를 만들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그리고 로마에서도 이미 콘크리트가 널리 사용되었다. 누구나 좋아하는 로마의 판테온 신전은 고대의 콘크리트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직경 43m가 넘는 이 거대한 돔 건축물은 골재와 모래 그리고 회반죽을 버무려 만든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약 2000년 전의 건축물이다. 철근 콘크리트는 아니지만, 돔의 외부에 금속으로 step ring을 여러 개 설치하여 인장력을 보완하는 수준 높은 구조 디자인도 보여준다. 마이산과 판테온 신전은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감상하면서 콘크리트는 왜 그렇게 미워할까? 콘크리트를 나쁘게 만든 사람과 잘못 사용한 사람에게 미움의 화살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판테온
판테온


신데렐라와 신더 콘크리트
판테온 신전에 사용된 콘크리트는 골재로 화산석을 사용했다. 벽과 돔의 두께가 상당히 두꺼웠던 판테온 신전의 자중을 줄이기 위해 무거운 골재가 아닌 가벼운 화산재와 화산석을 사용한 것이다. 현재의 재료명으로는 경량골재 콘크리트라고 할 수 있겠다. 제주도에서는 골재로 현무암을 사용한다. 현무암을 사용한 콘크리트는 무거워 보이지만, 들어보면 생각보다 가볍다. 비단 제주도의 건축물이 아니어도, 건축물에서 일정 두께로 콘크리트를 타설하여 누름 기능을 해야 하는 부분에는 경량 콘크리트를 사용한다. 옛 건축도면에서 경량 콘크리트를 사용해야 하는 부분에 신더 콘크리트라고 표기된 것을 본 적이 있다. 신더(cinder)는 석탄이나 나무가 연소하고 남은 찌꺼기, 즉 재를 의미한다. 신데렐라(cinderella)는 벽난로의 재를 치우는 일 때문에 여기저기 거뭇거뭇하게 재가 묻은 모습을 호칭으로 부르고, 동화 제목으로 사용한 것이다. 신데렐라는 ‘재투성이’나 ‘숯검댕이’ 정도의 이름인 것이다. 신더(cinder) 콘크리트는 신데렐라가 뒤집어쓴 바로 그 재를 섞은 콘크리트다. 20세기 도시에는 도시 안팎으로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화력발전소가 많았다. 서울의 당인리 발전소도 그런 화력발전소다. 화력발전소에서는 발전을 하는 동안 꾸준히 재(cinder)가 나온다. 이 재(cinder)를 골재로 사용하면, 판테온에 사용했던 콘크리트나 제주도에서 사용하는 콘크리트처럼 무게가 가벼운 경량 콘크리트가 되는데, 바로 신더(cinder) 콘크리트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경량 콘크리트가 사용되어야 할 부분에 신더 콘크리트를 명기하는 경우가 있다면 사용을 지양하고 바로잡아야 한다. 신더(cinder)를 구하기도 어렵고, 신더(cinder) 콘크리트를 만들지도 않는다. 신더 콘크리트 적용을 계획하고 표기하는 것은 눈이 오는 날 도로에 연탄재를 뿌려야 한다고 매뉴얼을 만드는 것과 같다.     

제주도 현무암 콘크리트
신더 콘크리트


투명 콘크리트 vs 리트라콘(LiTraCon)
건축재료로서 유리에 관한 논문에 열중하던 2000년대 초반 ‘투명 콘크리트’라는 제목의 언론 보도에 당황했던 적이 있다. 복합 재료인 콘크리트가 투명할 수 없는데, ‘투명’이라는 극단적 표현을 사용한 것이 못마땅하고 속상했던 기억이다. 헝가리의 건축학도였던 Aron Losonzi는 학생 시절 제안했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졸업 후 유리섬유를 시멘트 모르타르와 복합한 블록 형태의 건축재료인 LiTraCon을 출시했다. 유리섬유를 통해 빛이 투과되고, 반대쪽의 사물이 실루엣으로 보이는 정도의 투시성이 확보된다. 어디에도 투명(transparency)을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국내 언론은 ‘투명 콘크리트’라는 제목으로 도배를 했고, 리트라콘(LiTraCon)이라는 고유명사는 소개되지도 못했다. LiTraCon의 이름이 Light-Transmitting-Concrete의 줄임말임을 확인해 주었다면 좀 나았을 것이다. 건축계획이나 시공에 적용하기 위한 재료적 특성은 설명되지 않았고, 이미지만 소비되었다. 어쩌면 우리 건축계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리트라콘 ⓒ 準建築人手札網站(www.flickr.com/photos/eager/15144196843)


노출 콘크리트
콘크리트면을 그대로 내부 또는 외부의 마감으로 처리하는 경우 쉽게 노출 콘크리트라고 칭한다. 노출 콘크리트라는 용어로 간단한 실험을 해보자. 각자 마음속으로 노출 콘크리트의 모습을 떠올려보자. 안도 다다오의 미끈한 콘크리트를 생각할 수도 있고, 르 코르뷔지에의 롱샹성당이나 라뚜렛 수도원의 거친 나무 무늬 콘크리트를 떠올릴 수도 있다. 폴 루돌프의 세로로 홈이 새겨진 콘크리트(fluted concrete)는 어떤가? 산을 깎아 만든 아파트 단지의 눈살 찌푸려지는 바위 무늬 콘크리트 옹벽이 떠올랐을지도 모르겠다. 노출 콘크리트라는 같은 단어를 보고 모두 다른 모습의 콘크리트를 생각한다. 적절한 용어라 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실험으로 다른 재료명에 「노출」을 붙여보자. 노출 철판, 노출 나무, 노출 유리. 모두 어색하다. 왜 어색할까? 모든 마감재는 시선에 노출된다. 그래서 노출이라는 설명이 무의미하고, 붙이면 어색하다. 입면도에 표기된 마감 재료들은 모두 노출되는 재료들이다. 그래서 입면도에 ‘콘크리트’라고만 표기하면, 외장재로 콘크리트를 사용한다는 의미가 된다. 어떤 거푸집을 사용하여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표기하는 것이 적절하다. ‘송판 무늬 콘크리트’라고 표기되었다면 이해가 잘 된다. 송판의 크기와 패턴이 함께 설명된다면 시공사의 입장에서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어떤 무늬인지 정하기 전이라면, 현장에서 타설하는 콘크리트인지, 공장에서 제작하는 프리케스트(pre-cast) 콘크리트인지를 구분해 주는 것이 좋겠다. 콘크리트는 고대의 건축부터 외장재로도 사용된 재료이니, 마감재로 의도하고 계획했다면 굳이 노출이라는 사족을 붙일 이유가 없다. 어린이대공원 꿈마루가 만들어지던 1970년대에도 콘크리트에 사용할 골재의 종류와 거푸집 형상 그리고 표면처리 방법을 제시했을 것이다. 단순히 노출 콘크리트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안도 다다오의 작품 사진을 보여주는 태도는 지양해야겠다.

철판 거푸집 콘크리트
나무널 거푸집 콘크리트
세로 줄무늬(fluted) 콘크리트
돌 무늬 콘크리트
어린이대공원 꿈마루(세로 줄무늬 콘크리트)

콘크리트를 나쁘고 해로운 재료라고 생각하는 대중의 인식을 고치거나 투명 콘크리트와 노출 콘크리트처럼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 널리 퍼진 상황을 바로잡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새로운 재료를 개발하거나 도입할 때 적절한 용어와 이름을 사용하는 인식이 필요하겠다.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해서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선배가 될까 싶어 오늘도 조심스럽다.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 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 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젊은건축가상(2016, 문화체육관광부), 경기도건축문화상 특별상(2017, POP하우스), 충남건축상 최우수상(2017, 서 산동문849),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본상(2018, 양평시옷 (ㅅ)집), 서울시건축상(2019, 얇디얇은집), 한국리모델링건 축대전 특선(2020, 제이슨함갤러리)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이다.

 

shin@anlstudi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