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오딧세이(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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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오딧세이 ⑱ 디지털 산업단지에서 다시 던지는 질문 2024.11
City Odyssey ⑱ Questions raised again in the digital industrial complex 상전벽해인 공간이 젊다 못해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 예전엔 ‘한국수출산업단지’였고, 지하철은 가리봉역과 구로공단역이었다. 그러던 곳 이름이 디지털 산업단지라는 긴 꼬리표를 달았다. 최첨단의 끝없는 확장성이라는 디지털의 생명력을 장착한 것이다. 그럼에도 모태는 아날로그일 수밖에 없다. 아날로그 생명력은 이어짐의 연속이자 흐름이다. 옛 공단이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바뀌었을망정 이곳에서 옛 아날로그 감성을 찾아내 다시 읽어 보고 싶어진 이유다. 1964년부터 수출을 기치로 내걸고 조성된 공단은 당시로선 놀랄만한 규모였다. 높은 굴뚝에 엉성한 공장에서 기계처럼 일해야 했던 노동..
2024.11.30 -
도시 오딧세이 ⑰ 공간의 생명력을 품은 문래동 철공소와 창작촌 2024.10
City Odyssey ⑰ Mullae-dong Ironworks and Mullae Art Village that contain spatial vitality 수십 년 만에 다시 찾은 문래동은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모의했다던 군부대는 공원으로 변했고, 널따랗던 방적공장 자리엔 숲을 이룬 아파트가 키재기하고 있다. 문익점이 가져온 목화씨가 처음 싹 틔워 목화마을이기도 한 문래동 한가운데, 그럼에도 옛날을 기억하듯 변치 않은 공간이 자리한다. 도림천과 철도, 그리고 아파트 숲에 갇혀 섬처럼 둥둥 떠 있는 공간이 백여 년 쌓아 온 시간의 층위를 시퍼런 용접 불꽃으로 단단히 동여매고 있다. 가난했던 젊은 시절, 이곳 철공소에서 스쳐 가듯 맡아 보았던 용접봉 타는 냄새는 여전했다. 소리가 ..
2024.10.31 -
도시 오딧세이 ⑯ 고시촌이 꾼 꿈이 공간에 남긴 흔적, 그리고 미래 2024.9
City Odyssey ⑯ The traces Gosi Village’s dreams have left in space, and the future 고시촌이 꾼 꿈은 무엇이었을까? 본디 입신양명은 사회나 국가에 이바지한다는 뜻이었겠으나, 세상이 어디 그렇게 한가하기만 하던가? 오래전부터 이미 출세와 영달의 다른 이름으로 변질하였으니…. 등용문이라 했다. 시험을 통과하면 살아생전 부와 권력, 사회적 지위를 누렸고 죽어서까지 명예를 오로지할 수 있었다. 그러니 너도나도 이 관문을 통과하려 모든 걸 걸고 매달릴만한 충분한 명분이 되었다. 이렇듯 등용문을 통과한 동량들은 대체로 초심을 잃었고 특권의식에 사로잡혔다. 최근이 아닌, 뼛속 깊이 내려오는 디엔에이(DNA)다. 특권의식을 넘어 지배의식까지 갖기 일..
2024.09.30 -
도시 오딧세이 ⑮ 그러함에도, 퍼덕이는 꿈을 좇는 청춘의 공간 2024.8
City Odyssey ⑮ Nevertheless, it is a space for youth to follower their fluttering dreams 통행이 뜸해진 노량진역 바깥 계단은, 셀 수 없을 만큼의 발길에 닳고 닳아버린 모습 그대로다. 노량진역은 여전히 바람이 맵차다. 수많은 청춘이 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차가운 바람에 움츠러든 어깨를 옷깃으로 여몄을 것이다. 1970년대 끝자락부터 진학에 실패한 청춘들이 내몰리듯 노량진으로 찾아 들었다. 절치부심. 빛나는 청춘의 한때를 희망이란 가느다란 빛을 갈구하며, 이 공간에 자기를 가두고 기댔다. 종로에 있던 입시학원이 옮겨와 진학에 실패한 청춘을 품으면서, 노량진은 학원가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하지만 풍경이 변했다. 한 시대를 휩쓸고 간 ..
2024.08.31 -
도시 오딧세이 ⑭ 공간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할 갈림길에 선 서울 약령시 2024.7
City Odyssey ⑭ Yangnyeongsi in Seoul is at a crossroads that will determine the sustainability of space. 여기에 서면 기운이 저절로 북돋는다. 지나가기만 해도 보신한다는 우스개가 회자하는 제기동 ‘서울 약령시(藥令市)’에서다. 정릉천 동쪽, 왕산로 북쪽에 남북 약 1킬로미터, 동서 약 200미터에 800여 한약재상과 한의원이 자리한 공간이다. 1995년에 인가받았으나, 이 공간이 쌓아 온 시간은 그보다 훨씬 더 깊다. 근대 도시 태동의 추동력은 단연코 기차역이었다. 인쇄술이 공화정을 앞당긴 기술이라면, 기차역은 도시화를 추동해 낸 시설이다. 인쇄술이 생각과 사상을 모으고 확산시켰다면, 기차역은 사람과 물산을 모으고 더욱..
2024.07.31 -
도시 오딧세이 ⑬ 낡아 해어진 구두처럼 명멸하는 수제화 거리 2024.6
City Odyssey ⑬ A street of handmade shoes disappearing like worn-out shoes 내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는다는 건 참으로 편안한 행복이다. 동남아에서 전래한 ‘원숭이 신발’이라는 우화가 있다. 공짜 신발에 길들여진 원숭이가 결국 맨발로는 걸을 수 없게 되어, 가진 모든 걸 내어주면서 신발을 사 신는 처지로 전락한다는 이야기다. 우화는 제국주의 침략을 비판하기도, 면면히 이어온 풍습이 신문물로 대체되는 현상을 빗대기도 한다. 신발은 만드는 재료에 따라 제각각이다. 풀이나 짚을 엮어 만드는 짚신부터 나무를 깎아 만든 나막신, 가죽신은 물론 쇠로 만든 신발까지 다양하다. 가난한 백성은 짚신을 신었다. 1920년대 혜성처럼 등장한 고무신이 혁명적 변화..
2024.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