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건축 이야기(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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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지지 않은 건축 2025.4
Unbuilt Architecture 11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한 지 만 11년이 되었다. 멋모르고 서른 중반에 개소한 게 엊그제 일 같다. 원고를 쓸 기회가 생겨서, 11년이란 시간도 세어 본 듯하다. 돌이켜 보니, 망하지 않은 게, 아니 살아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내 마음대로 설계하고 싶어서, 월급은 많이 받았지만 시키는 대로 일만 하던 대형 건축사사무소를 그만둔걸, 종종 후회했다. 2 동기와 함께 둘이서 개소했다. 온갖 시행착오도, 첫 번째 설계공모 당선도 그 친구와 함께했다. 소중한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에게 고맙다. 그런데 그리 오래 함께하지는 못했다. 정말 내 마음대로 설계하려면, 혼자 하는 게 마음이 편했고 덜 미안했기 때문이다. 3 그동안 공공건축물 설계공모에서 3번 당선되었다. 그..
2025.04.30 -
건축의 또 다른 이름, 사색 2025.1
Meditation, another name of architecture 긍정의 힘 아무리 세상을 살아보아도 만족이란 있을 수 없다. 버틸 수 있는 것과 버릴 수 있는 것들을 철저하게 구분하면서 저마다 삶이 준 무게를 지탱하며 살아간다.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 건축을 하는 내게도 무수히 반복되면서 지루한 시간을 채워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선택을 하고 결정을 하며 결코 끝나지 않을 시간을 또 다른 나와 같은 사람들처럼 지극히 평범하게 보내고 있다. 어차피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고 피할 수도 없다. 예전부터 그랬듯이 이유와 변명은 스스로에게 절대로 위안을 주지 못하기에,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쓸모 있는 일을 마쳐내야 한다. 아무리 내가 모를 보이지 않는 지혜들이 ..
2025.01.31 -
나는 길을 잘 가고 있나? 2024.12
Am I on the right path? 오늘도 아침에 사무실에 출근해서 습관적으로 컴퓨터를 켜놓고 습관적으로 계획해야 할 대지 위에 옐로우페이퍼를 펼쳐놓고 스케치를 해본다. 계획은 잘 풀리지 않고 머리는 복잡하다. 이번 달은 또 어떻게 월급을 맞춰야 할까. 어떻게 해야 직원들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 설계비는 어떻게 해야 잘 받을 수 있을까. 건축심의를 앞둔 프로젝트는 어떻게 해야 심의를 통과할 수 있을까. 안 좋은 경기는 언제부터 풀리게 될까. 이런저런 생각에 집중은 되지 않고 다시 집중하기 위해 차를 한잔 마시며 생각해 본다. 나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건축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나의 길을 잘 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느..
2024.12.31 -
건축사 생존기 2024.11
A Record of surviving as a korean architect 2020년, 우연한 기회로 아무런 배경도 인맥도 없이 호기롭게 건축사사무소를 개설했다. 그동안 다양한 용도와 규모의 수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경험치를 쌓아왔다. 늘 해오던 설계업무는 익숙했고, 편집과 3D도 가능한데다 손도 빨랐기에 어떤 일이 주어지든 문제없이 수행할 자신도 있었다. 때마침 개업 즈음에 개인 건축주와의 계약 건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회사 업무가 아닌 온전히 나의 프로젝트를 한다는 사실과 내 힘으로 뭔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에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었으나, 곧 문제에 부딪혔다. 설계비로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전혀 감이 없었다. 주변에 조언도 얻어보고 ‘첫 프로젝트이니 돈을 남기려 욕심내서는 안 된다’ ..
2024.11.30 -
완결되지 않는 평면과 열려있는 건축 2024.5
Incomplete floor plan and open architecture 서촌 인근의 한옥 리모델링 일을 맡은 지 벌써 두 달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평면 계획은 진행 중이다. 의뢰인의 요구사항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방안을 짜보았지만 딱히 이렇다 할 대답을 찾을 수 없었다. 가장 큰 난관은 건축주가 원하는 바에 고정된 방향성이나 구체적인 형태가 없다는 것이었다. 건축물을 사용하게 될 인원도 확정되어 있지 않고, 건축물의 용도 또한 모호한 상황이었다. 자녀 한 분과 건축주까지 둘이서 거주하는 공간이지만, 추후 부모님 한 분과 함께 살 수도 있는 가능성을 고려해야 했다. 또 가족의 작업 공간과 주택이 공존하면서도 독립적으로 작동해야 하는 부분, 앞으로 이 공간이 거주지에서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될 수도..
2024.05.31 -
나의 첫 번째 건축주 2024.4
My first client 나의 첫 번째 건축주는 대학에서 함께 건축을 공부한 동기였다. 대학교 1학년 1학기 설계스튜디오를 함께 들었던 친구는, 졸업 후 스타트업에서 일하며 공간을 콘텐츠로 거래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고 다른 친구 둘과 함께 독립해 관련 회사를 차렸다. 그 무렵은 숙박 공유 서비스인 에어비앤비가 한국에 진출하고, 공유 오피스 등 새로운 공간 비즈니스가 곳곳에서 태동하던 시기였다. 친구는 서울 곳곳에서 파티룸 대관을 메인 비즈니스로 운영하던 중, 흩어진 공간을 한 데 모아 운영 효율을 올리고자 했다. 그렇게 찾은 통임대 건물의 위치는 이태원. 친구는 “예전부터 공간을 너한테 맡겨보고 싶었어”라며, 졸업한 지 5년 만에 문득 전화를 걸어왔다. 당시 나는 4년간의 실무수련을 마치고 한..
2024.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