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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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감옥 2019.1
Another prison 2018년 12월 11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윤동주의 시에 의한 4 개의 노래(이영 조 작곡)’가 공연됐다. 베이스 전승현 교수가 노래하고, 김정열 지휘로 대전챔버오 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공연이였다. 같은해 9월 어느 토요일, 서울에 갔었다. 상명대학교에서 볼 일을 보고, 안국동까 지 걸어서 넘어왔다. 자하문을 지나자 마자 오른편에 윤동주 문학관이 눈에 들어 왔다. 문학관은 3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전시실은 시인과 관련된 기록물들 이 전시되어 있는 평범한 전시관이다. 제2전시관은 위로는 하늘이 열려있지만 사 방이 높은 벽으로 막혀 있다. 청운수도 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서 만든 것이라 고 한다. 뒤쪽은 제3전시관이다. 천정까지 막혀있다. 밖으로 난 구멍으로 빛이 들 고..
2022.12.12 -
수재민 주택 2018.08
Shelter for the flood victims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수재민 주택’에서 살았다. 서울 변두리 은평구(당시에는 서 대문구) 응암동 244-2번지가 우리 집 주소였다. 사실 이 집은 고모부의 소유였다. 고모부 는 고맙게도 이 수재민 주택을 무상으로 우리에게 빌려주셨다. ’수재민 주택’이 무엇을 의 미하는지도 모르는 채 나를 포함한 형제 5남매가 거기서 컸다. 할머니가 우리와 함께 사 셔서 모두 여덟 식구였다. 집은 넓지 않았고 허름했으나 터는 꽤 넓었다. 한 100평? 남동향으로 자리잡은 블럭벽돌 건물의 정면에는 툇마루가 있었다. 어느날 새벽에 깨어 그 툇마루에 앉아 해가 뜨는 걸 바 라봤다. 붉은 기운의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는데 공기는 시원했다. 마당에는 우물이 있었 고 우물..
2022.12.06 -
사랑방과 동굴벽화 2018.07
Sarangbang and Cave painting 곰방대 쩐 내와 땀 냄새가 진동하고 천장에는 쥐오줌 얼룩이 번져가는 방. 윗목에 볏가마 가 쌓여있고 시절에 따라 수확한 곡식이 먼저 들어와 며칠씩 묵어가는 곳, 행랑채 대문에 딸린 방이기도 하고 광이기도 하던 곳, 문이 집 안과 집 밖으로도 나 있어 대문을 통하지 않고도 곧바로 외부로 이어지는 방. 마음먹기에 따라 방주인이 가족의 일원이 되기도 하 고 때로는 슬쩍 뒤로 빠져도 되는 그런 자유로운 방, 집안으로 난 문을 열면 앞마당이고 바로 안채인데 나는 열일곱 살 되던 해까지 안방에서 5인 남녀 가족공동체 일원으로 온갖 불편한 진실들을 다 끌어안고 뒹굴다가 사랑방으로 독립했다. 방주인이었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여름은 무덥고 겨울이면 밖의 ..
2022.12.05 -
공간과 장소 지하 벙커의 작은 창 2018.06
A Small Window in an Underground Bunker 우리를 보호해주기로 한 반군조직의 차량에 갈아탔다. 트렁크에는 온갖 총기류가 그득했 고, 운전석의 좌우에는 소총이 놓여있어 언제든 빼어들 수 있었다. 글로브박스에는 수류 탄이 들어있는데 차가 움직일 때마다 굴러다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잠시라도 지체하 면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이라서 계속 다급하게 움직여야 했다. 구호 활동을 위해 시리아에 들어왔던 두 명의 이탈리아 여성들이 바로 어제 납치됐다고 했다. 대규모의 교전이 벌어지고 보호세력은 대부분 사살된 후, 외국인만 납치해 간다고 했다. 내전 중인 시리아에 들어오는 외국인은 IS에 가담하기 위해 오는 이들이 대다수이 고, 그밖의 소수는 사회활동가 아니면 미디어 쪽 사람들이다...
2022.12.02 -
바람과 함께 사는 집 2018.02
A House in the Wind 아파트를 버리고 작더라도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기를 꿈꾸었다. 담장을 넘어온 햇빛이 아장아장 마당을 지나 툇마루를 올라와 처마 속으로 사라지는, 그런 어렸을 적 살던 주택 집 풍경이 나이가 들면서 너무 그리웠다. 햇빛이 아깝다며 바구니에 담은 갖은 나물들을 지붕 위에 올려놓던 할머니는 아마도 환한 햇빛을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이 아까웠으리라. 굴뚝이 있고 다락방이 있던 집. 다락방에 엎드려 소공자, 소공녀, 보물섬,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읽다가 다락방 창문으로 보이는 초저녁 별. 저녁밥 짓는 냄새, 전봇대 긴 그림자처럼 골목으로 성큼성큼 돌아오던 아버지. 장독대가 있던 집. 장독대에 놓인 항아리에 장을 가지러 올라갔다가 지붕 위에 핀 쑥부쟁이를 보고 돌아가신 할아버..
2022.11.09 -
해줄 말이 없을 테니까 2018.01
It will be nothing to say 나는 오랫동안 공간에 대해 생각했다. 패션 매거진 에디터로 일하면서 전 세계의 좋은 공간을 많이 보러 다녔다. 허름한 공장이 멋진 미술관으로 바뀐 마법을 꽤 여러 번 보았는데, 그때마다 ‘공간’을 구체적 장소라기보다는 어떤 개념으로 인식하게 됐다. 공간에 대해 갖게 된 인식을 시로 써보기도 했는데, 읽는 사람마다 난해하다고 해서 요즘은 안 쓴다. 예를 들어 나는 ‘우성’이라는 내 이름을 어떤 공간으로 두고, ‘우성’이 안에서 ‘우성’이가 증식하는 모습을 썼다. 나는 ‘우성’이들이 모두 다른 ‘우성’이가 되기를 바랐는데, 그걸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다. 그저 동일한 ‘우성’이가 여럿 있다, 정도의 표현만이 가능했다. 아무튼 다들 어렵다고 하니까… 더 쓸 필요를..
2022.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