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감옥 2019.1

2022. 12. 12. 10:18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Another prison

 

 

2018년 12월 11일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윤동주의 시에 의한 4 개의 노래(이영 조 작곡)’가 공연됐다. 베이스 전승현 교수가 노래하고, 김정열 지휘로 대전챔버오 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공연이였다.

 

같은해 9월 어느 토요일, 서울에 갔었다. 상명대학교에서 볼 일을 보고, 안국동까 지 걸어서 넘어왔다. 자하문을 지나자 마자 오른편에 윤동주 문학관이 눈에 들어 왔다.

 

문학관은 3개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전시실은 시인과 관련된 기록물들 이 전시되어 있는 평범한 전시관이다. 제2전시관은 위로는 하늘이 열려있지만 사 방이 높은 벽으로 막혀 있다. 청운수도 가압장과 물탱크를 개조해서 만든 것이라 고 한다. 뒤쪽은 제3전시관이다. 천정까지 막혀있다. 밖으로 난 구멍으로 빛이 들 고 있었다. 한때 물이 들던 곳으로 빛이 흘러들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왤까? 그건 아마도 빛 때문이다. 1944년 콘크리트 나 벽돌로 만든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힌 윤동주 시인으로서는 쇠창살로 드는 그 빛이 비록 반사 빛이라 해도 맑은 샘물과 같았을 것이다.

그렇다. 빛이 내게는 공간이며 시간이다. 그곳이 어디든 햇살이 들면 따듯해지고 아늑해지고 넉넉해지고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종이 위에 찍어놓은 볼펜 똥이 꿈 틀거리고, 먼지들이 반딧불이처럼 날아다니며 춤을 춘다. 모퉁이와 구석은 햇빛을 나눠가져, 저마다의 몫을 만지작거리며 자랑스러워한다.

더불어 나는 전깃불을 사랑한다. 커피가 카페에서 제 맛을 내는 까닭은 그 전깃불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러 개의 전등 불빛이 겹쳐 그림자를 지우고, 평면을 입체로 만들고, 공간을 각자 다르게 물들이고, 조그만 공간을 넓히기도 하고, 얕은 공간을 깊게도 한다.

나는 빛 아래서 먼저 쓰고, 그리고, 느낀다. 빛은 생각을 바래게 만들기도 하지만, 축축한 생각을 포송포송 마르게 하기도 한다.

내게 다시 빛은 공간이다. 생명이다. 나는 이 빛이 깃든 공간을 잠속까지 무덤까지 가지고 가고 싶다. 잠든 젊은 시인에게 당일배송 택배로 보내고 싶다. 빛은 죽지 않는다. 하여 공간은 죽지 않는다. 넓어지거나 좁아질 뿐이다. 빛을 액화시킬 수 있다면, 그 빛물을 내 눈물에 내 피에 넣고 싶다. 나는 누군가에게 다가갈 때 푸른 빛이다. 또 멀어질 때는 붉은 빛이다. 나는 나무 밑에 있을 때, 푸른 그림자 안에, 푸른 공간 속에 있다.

특히 오전 열 시나 오후 네 시의 햇빛은 내가 머무는 곳을 색다른 공간으로 변화시 키곤 한다. 연하지도 진하지도 않은 공간을 만든다. 곧 절정에 이르거나 곧 사그라 지는 것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공간이다. 그곳이 사무실이어도 좋고, 길모퉁이 어도 좋고, 화장실이어도 좋고, 달리는 차 안이어도 좋다.

나는 햇살이 묻은 공기를 들숨으로 마시며, 산소와 더불어 빛이 실핏줄을 타고 몸 속 구석구석 퍼지는 것을, 세포에 이르러 마침내 광합성 작용을 하는 모습을 상상 하곤 한다. 어쩌면 나는 한 포기 잡초인지도 모른다.

 

윤동주 시인은 해방을 6개월 남기고 1945년 2월 16일 감옥에서 죽었다. 사망원 인이 매일 밤 놓던 주사 때문이라고 한다. 나의 어린 의사는 약물 대신에 바닷물 을 주사했다고, 그러다 마침내 패혈증으로 사망했다고 일러준다. 나는 새롭게 만 들어진(?) 그의 감옥 안에서 빛을 본다. 물 대신 어둠을 가득 담은 감옥 안으로 새 어드는 빛을 본다. 감옥에 갇히기 전 발표한 「서시」에는 두 번, 「별 헤는 밤」에는 열두 번 별이 나온다. 아니 뜬다. 그는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시 ‘별 헤는 밤’ 중)”이라고 노래한다. 나는 의사 면허를 빌려 주사 액으로 바닷물 대신 빛물을 넣는다.

 

슈베르트와 윤동주를 담아내는 낮고 굵은 목소리가 나로 하여금 듣는 내내 ‘나는 젊은 적이 있었던가? 나는 젊음을 그냥 지나친 건 아닌가?’라는 생각에 사로잡히 게 한다. 그들은 젊은 채 영원히 살며 거듭 살아나지만, 제대로 젊어보지 못한 나 는 젊음을 건너뛰어 허리가 굽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 숙여 내 마음 속에 떠도는 희미한 별빛의 소리를 듣는다.

 

 

글. 김순선 Kim, Soon Sun 시인

 

 

김순선 시인

 

김순선(金淳銑)은 1997년 계간 [21세기 문학]에 시로 데 뷔하였고,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다. 국가과학기술인력개발원 (KIRD), 대전대학교 인문영재교육원에서 과학과 예술 분야에 서 강연 및 교수활동을 하고 있다. 제20회 서울 강남미술대전 (2018) 대상 수상을 하였으며, 지의류를 주제로 6번의 개인전 을 열었다.

 

kimss@et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