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대조락 投待釣樂 _기다림을 던져 즐거움을 낚다 2019.3

2022. 12. 15. 09:08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Twodaejorak _ Throw a wait to catch pleasure

 

섬진강 압록교 내 전설의 바위 터에서 오전 장을 보다가 더위에 지쳐 모든 옷 을 벗어 바위에 널어놓고 멱을 감으니 세상 피서 으뜸인 것 중 하나임을 체득했 다. 더불어 일광욕하며 바위에 누워 있으니 하늘은 뭉게구름이 두둥실 떠가고 옥 색의 푸른 물은 주중 업무에 지친 심신을 말끔히 씻어냈다.

 

채비를 수저미끼(spoon)에서 벌레미끼(worm)로 바꾸니 꺽지가 발밑까지 따 라 오더니 물었다. 벌레미끼로 계속 던지니 이번에는 쏘가리가 요동쳤다. 두 마리 를 꿰미에 채우고 나니 이젠 허기가 사정없이 밀려왔다.

 

가슴장화를 폭염 속에 다시 입어야 왔던 길을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기에, 땀을 비 오듯 쏟으며 찬찬히 길 위로 올라오다가, 내려오면서 뱀의 뒷모습을 보았던 곳 에서는 바닥 발 굴림으로 땅 진동을 여러 차례 주고 올라갔다. 16년 낚시시간 동 안 처음으로 뱀을 보았다. 서늘했다. 강둑 녹음이 우거진 것은 주변 산의 녹화가 수십 년 동안 온전히 진행되었기에 가능했다. 온갖 풀씨들이 날아와 강변 둑을 뒤 덮었다. 다리 주변 공사를 했던 인공 콘크리트 블록만이 녹화가 미진행된 유일한 길이었는데 그곳에 뱀이 지나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정도 조과로는 내 전설의 바위 터도 이제 올 곳이 아니 됨을 자각하며 숨이 턱 턱 막히는 것을 감내하고, 강 에서 멱을 감은 시원함을 도로 내놓은 채, 차에 와서 주변 식당을 찾았다.

 

다슬기 해장국으로 허기를 채우고 나니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진다. 점심이 이렇게 맛난 것은 엄청나게 쏟은 땀과 강에서의 멱 감기와 강렬한 햇볕에 일광욕 때문임 을 느낀다. 해장국의 된장국물과 부추, 푸성귀와 다슬기 한 알 한 알이 어우러져 더욱 기막힌 점심이 된 것이다.

 

그늘을 찾아 차 안 의자를 한껏 뒤로 젖힌 오수는 나를 평안으로 인도했다.

 

시계 경종이 울기 전 다짐했던 시각에 낮잠에서 깨어났고 구례 병방마을에 도착하니 오후 세시. 강변 느티나무로 녹음이 우거진 곳은 피서지로 안성맞춤이었 다. 어림잡아 백여 명 정도의 피서객이 평상에서 토요일의 한가한 여름을 보내고 있었다. 바위가 산재한 강에 도착하여 둘러보니 느낌이 좋았다. 그러나 통상 한 낮 조과는 별로였다는 것을 체험하는 순간, 동네 작살 청년이 바위를 죄다 자맥 질하며 뒤지고 있기에 물어보니 대답이 왔다.

 

“꺼억지, 한 마리도 없구만요 잉~”

 

구례 사투리로 그 말을 들은 나는 옷을 벗어 바위에 올려놓고 다시 멱 감기로 들 어갔다. 지난 번 잃어버린 물안경이 필요하다 생각했지만, 그냥 멱 감기를 했 다. 폭염은 강물을 체온에 알맞게 데워 놓았다. 기막힌 오후다. 한 참을 물속에 있 고 둥그런 모자창이 햇볕을 가려주니 더없는 피서요, 취미생활이다. 잠시 후 힘이 나고 다시 몇 번을 던지다가 이동하여 강바닥을 보니 누치 한마리가 숨을 헐떡이 고 있었다. 발로 건드리니 물가로 도망친다. 얼른 다가가 물 밖으로 몰아서 꿰미 에 채워놓고 보니 지난 밤 그물에 걸려 용을 쓰고 빠져 나온 상처가 아가리 주변 에 투성이다. 잡아놓고 몇 번을 더 낚시를 하니 저녁 먹을 시간이다.

 

강둑에 올라오니 여기저기 평상에서 환호성이 터진다. 무척 겸연쩍다. 연예인 환 호성이 이런 것인가? 피서객들이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이대며 연신 찍는다. 세 뼘 길이 누치를 얼른 트렁크에 넣고, 마을을 나와서 점심을 맛있게 먹은 식당에 가서 누치를 선물했다. 다슬기 수제비를 먹고 있으려니 이 식당이 ‘강변 관광화 사업 프로젝트’ 함바식당이란 말을 들었다. 누치를 선물한 것이 같은 건설인에게 맛난 별미를 제공한 것이니 아주 잘된 일이라고 주인아줌마에게 말했다.

 

다슬기 수제비 식사 후 지난 주 네 마리를 잡은 곳으로 갔다. 놀이 배 열 척이 지 나 간 후 물이 안정되기를 기다렸다가 던지니 이윽고 한 뼘이 넘는 쏘가리 녀석 둘이 차례로 올라왔다. 지난주보다 낫다. 이내 어둠이 강물을 적시고, 강변 둑에 있는 가로등이 물을 비추는 것에 기대어 낚시를 했다. 사위는 조용했다. 늘 그렇 지만 무심코 던진 곳에 반응이 왔다.

 

 

챔질을 힘껏 하니 불규칙 우적거림이 전해온다. 걸었다. 쏘가리다. 약간 풀어 놓 았던 얼레(reel) 조임기에서 실이 저항하는 소리가 ‘찌익, 찍’ 들린다. 참으로 오 랜만에 듣는 실 풀리는 소리였다.

 

녀석은 필사적으로 저항하며 몸을 빙 빙 돌리면서 나의 얼레 감기에 발악하며 끌 려왔다. 얼른 강변 육지 풀밭으로 힘껏 들어 옮기니 크기가 두 뼘 반이 넘었다. 쏘 가리 몸통 전체의 표범무늬와 등가시를 바짝 세우고, 금빛 눈 테를 두른 놀란 눈 을 한 녀석을 한참 감상한 후 아가미를 잡고 꿰미에 꿰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차가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나는 속도를 정속주행에 맞추 고 2차로로 운전하며, 강에 대한 상념을 정리해 보았다.

 

비로 내리는 물이 지하수로 저장되었다가 샘을 통해 용출하고, 여러 산과 계곡에 내리는 이슬과 비가 모이면서 물은 중력의 법칙으로 아래로 흐른다. 수만 가지 지천에서 흘러 들어오는 새로운 물은 앞에 흘러가는 물을 밀면서 내려가고, 가다가 수증기로 증발되기도 하고, 강의 중간에서 비가 되어 다시 내리기도 한다. 좋아 하는 강, 풍광이 뛰어나고 고기가 많은 곳에서 나는 낚시를 즐긴다. 그 때면 나도 강의 자연 순리에 한 부분이 된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각에 나는 이 강물을 통해서 마음을 정리한다. 기존의 낡고 오염되어 염증을 불러왔던 여러 가지 싫증의 강물을 흘려보내고 새로운 강 물로 내 마음을 적시게 한다.

 

인생도 지구촌 역사의 거대한 물줄기에 한 방울의 물이 아닐는지. 끊임없이 흐르 는 강물처럼 인간사 역시 도도히 흐르고, 선대가 닦아놓은 물줄기를 따라 후대가 밀고서 흘러간다. 강물을 언뜻 내려다보면 앞도 보이지 않고 뒤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이 여겨지지만, ‘한 방울의 물이 시작되어’ 라는 관점에서 보면 분명 앞뒤가 있 고, 그것이 모여 거대함에 이르는 ‘우리’ 가 비로소 보인다.

 

나의 정신과 생각도 늘 깨어 흐르고 싶다. 자연스레 흐르는 강물처럼..

 

 

 

 

 

 

글·사진. 조정만 Cho, Jeongman (주)무영씨엠 건축사사무소

 

조정만 (주)무영씨엠 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건축사·작가

 

건축사이자 문학작가인 조정만은 건국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건설경영과정(금호MCA)를 이수했 다. 천일건축, 금호그룹 설계팀, 아키플랜에서 설계·감리 실 무 경험을 쌓았고, 2016년 한국수필에 등단했다. 선함재건축을 7년 운영했고, 현재는 (주)무영씨엠 건축사사 무소 대표이사이며, 활발한 에세이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imatect@mooyoungc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