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시간의 교차로 위에서 2018.12

2022. 12. 10. 09:06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At the intersection of space and time

 

지금 멕시코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 과달라하라에서 국제도서전이 열리고 있다. 이 도시 의 인구는 150만 명으로 알려져 있지만 주변까지 더하면 500만명 가량이 하나의 도시처 럼 묶여있다. 인구 2,000만 명이 넘는 수도, 멕시코시티보다 훨씬 작은 이 곳에서 스페인 어권 최대의 도서전이 열린다. 아르헨티나, 칠레, 콜럼비아 등 남미 국가들 뿐만 아니라 스페인의 출판사들까지 망라한 도서전의 규모는 놀랍다. 중남미 시장에 관심을 가진 출 판사들과 함께 전시를 위해서 이곳에 왔다.

 

과달라하라에 처음 도착했을때 도시의 첫 인상은 50년 정도 전에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 였다. 1960년대에 지어진 낡고 나즈막한 건물들이 대부분이었고 새로 지은 건물이 거의 없었다. 어느 한 순간에 대단한 열정과 에너지로 건축붐이 일어났는데 짧은 열기가 식어 서 다시는 불붙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50년의 세월은 낙서와 망가진 모서리, 그리고 바랜 빛깔로 남았다. 중남미 특유의 원색 페인트가 가끔 표정을 드러내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가라앉은 느낌을 지우긴 역부족하다. 16세기 부터 시작된 식민의 역사때문에 아주 오래된 건물들이 가뭄에 콩나듯 눈에 띄지만 그것도 도시의 인상을 좌우할 만큼은 아니었다. 물 론, 도시 안에서 식민 이전에 있었던 찬란한 마야-아즈텍 문명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반세기를 버텨 온 이 도시의 건물들은 얼마를 더 버틸까? 짧은 주기로 개발과 재개발을 반복하는 서울에서 온 여행자는 이 도시의 운명이 궁금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찬란한 원색이 서로 다투며 다가와 외관에서 받은 어두운 인상을 바꾼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화가 프리다 칼로의 그림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강렬한 색깔들 을 과감하게 사용한다. 건축물을 이루고 있는 물리적 실체 위에 덧입히는 색깔은 여러가 지 이유로 바꿀 수 없는 현실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 도서전에서 통역을 도와 주는 폴리나가 도쿄와 서울에서 걷던, 잘 포장된 길을 이야기하면서 깨지고 벗겨져 조심 해서 걸어야 하는 이곳의 길에 표시한 아쉬움 같은 것. 아니면, 굳이 한국 음악을 찾아 들 려주며 친절을 베풀던 우버 기사 호세가 이야기한 가족에 대한 사랑 같은 것. 

 

도서전이 열리고 있는 과달라하라 엑스포에 들어선 전시 스탠드들은 훨씬 더 화려하다. 지금 내가 책임을 맡고 있는 서울국제도서전을 비롯해서 전세계의 모든 도서전들은 이틀 이면 뚝딱, 꿈같은 공간들을 만들어낸다. 일주일 정도만 잘 버텨주면 되는 공간이다. 목공 으로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에 무늬와 글자, 그리고 색을 입히는데 관람객의 마음을 갖기 위한 아이디어가 백출한다. 짧은 기간만 버틸 구조물이라 더 화려한 것은 아닐까? 물론, 프랑크푸르트, 베이징, 볼로냐, 과달라하라, 세계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도서전마다 전시 장을 꾸미는 방식은 다르다. 과달라하라는 어느 곳보다 더 많은 장식이 거대한 전시장 천 장에 달려있고 색깔도 눈을 끈다. 예를들어, 여전히 점잖고 전통적인 디자인을 고수하는 베이징과는 확연히 구분이 된다.

 

지난 두해 동안,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도서전을 다니면서 하룻밤새 쌓았다 허무는 전시 장과 그 전시장을 품고 있는 도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고대의 영화를 안고 있는 지 중해 도시들, 지금도 세계의 중심 역할을 하는 서구의 도시들, 확장하는 아시아의 도시들 과 다리를 다쳐 시간이 멈춘 남미의 도시들. 도시들이 품고 있는 건물들과 거기에 묻어있 는 시간의 흔적을 함께 읽어보려고 노력한다. 천년을 견딘, 운좋은 저 녀석은 또 다른 천 년을 견딜 행운을 잡을 수 있을까? 계획한 것보다 오래 서 있는 저 녀석은 언제까지 고단 한 인생들을 품어 줄 수 있을까? 모래성같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전시장을 통해 팔려나간 책들은 누구의 인생을 바꿀 것인가? 공간과 시간의 교차점에 선 구체적인 개인의 삶이 늘 궁금하다.

 

 

 

 

 

 

 

글. 주일우 Joo, Iroo • 과학잡지 에피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