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8. 09:04ㆍ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Spacetime
우리는 다음에 만날 약속을 정할 때, 보통 시간과 장소를 함께 언급한다. 장소만 정해서도 만날 수 없고, 시간만 정해서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어느 대중가요처럼, ‘첫 눈 오는 날, 안동역 앞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는 꼴이 되고 만다. 물론 노랫말을 더 들어보 면 그들도 처음부터 약속을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장소와 시간까지 서로 살뜰하게 주고 받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데도 결국 그들은 만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아마 ‘첫눈 오는 날’이 문제였던 것 같 다. 약속장소는 비교적 구체적이었는데, 다소 낭만적인 정취를 자아내려고 그랬는지 약 속시간을 애매모호하게 처리한 것이 그들 비련의 씨앗이었다. ‘첫눈 오는 날’이라는 시간 은 상황에 따라서 상당히 유동적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당초 그들은 몰랐을까? 우리 인간은 이렇게 시간과 공간이란 매개변수에 구속되어 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아 니, 어쩌면 우리들의 일상생활 자체가 시간과 공간을 전제로 수없이 일어났다가 흩어지 는 변화의 산물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공간에 시간이 결합되면, 그것은 그저 단 순한 수평면상에서의 변화가 아니라 아예 차원을 건너뛰는 문제로 전환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흔히 입체공간으로 표현되는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 지만, 분명 우리는 3차원에서 ‘시간이 흘러’ 시공간(spacetime)이 동시에 고려되는 이른바 4차 원의 세계에 존재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의 감각기관이 지금 이 세상을 단지 3차원으로밖 에 인식하지 못하는 한계 때문에, 여전히 모든 것이 한꺼번에 휘황찬란하게 펼쳐져 있는 이 우 주의 온갖 삼라만상을, 시간의 ‘순차적인 흐름’에 맞춰 더듬더듬 파악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나온 시간을 ‘과거’라 하고, 다가올 시간을 ‘미래’라 하며, ‘현재’ 또는 ‘지 금’이라는 말을 수 없이 반복하며 살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3차원 이상을 인 식하지 못하는 우리 인간이 ‘계속 변화하는 세상’을 해석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일종의 환 상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곱씹어 볼수록 혼란스럽기만 하다.
어쨌든 오래전에 이를 간파한 우리 선조들은, 우리의 인식이 닿을 수 있는 한계까지의 모 든 영역을 ‘우주(宇宙)’라는 한 낱말로 규정해놓았다. 처음 우주(宇宙)를 만들 때도 범상 치 않았다. 공간을 의미하는 ‘우(宇)’와 상대적으로 시간을 내포하고 있는 ‘주(宙)’를 조합 하여 아주 큰 ‘집’, 우주(宇宙)를 만든 것이다. 그것은 우주를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시간적 요소까지 결합하여 통찰하곤 했다는 얘기가 된다.
공간을 창출하는 걸 사명으로 여기고 있는 우리 건축사(建築士)의 세계로 돌아와 보면, 시간의 의미는 더욱 자명해진다. 일찍이 이를 간파한 ‘지그프리드 기디온’은 그의 저서 ‘공간, 시간 그리고 건축(space, time and architecture)’에서, 건축에 변화를 전제로 하는 ‘시간’을 부여함으로써 건축을 바라보는 새로운 측면을 제시하기도 했다. 사실 시간의 흐 름에 따라 완성에 가까워지는 본성을 지닌 건축은, 진즉 시간을 포함한 4차원으로 해석하 고 설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동안 우리 건축설계분야는 실제 3차원의 입체공간마저 평면도, 입면도, 단면 도라는 2차원의 세계로 변환해서 도면을 작성하기에 온갖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 결과 도 면을 볼 때마다 우리는 2차원과 3차원을 넘나드는 수고를 감내하면서도, 다들 그것이 당 연한 것으로 여겨온 것 또한 사실이다.
마침 우리 건축설계분야에서도 최근 시스템의 변화로 인하여 3D모델링, 스케치업 (sketchUp), BIM 등이 실용화되면서 3차원의 실제공간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거기에 이제 본격적으로 3D프린팅까지 가세하게 되면 건축의 변화속도는 지 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차피 건축은 우리들의 꿈을 실제공간으로 구현하는, 지난한 작업인 것만은 변 함없을 것 같다. 그러기에 더더욱 건축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만을 대상으로 할 게 아니 라, 이른바 ‘시공간(spacetime)’에서의 맥락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만큼 더 어려워졌다. 그러나 괜히 옛날부터 ‘집(건축)’을 우주(宇宙)라 했으며, 또 천자문 첫머리에서부터 천지 현황(天地玄黃) 우주홍황(宇宙洪荒)이라 일갈했겠는가? 되씹어볼 일이다.
글. 최상철 Choi, Sangcheol •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연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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