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이유 VS 수원 화성 2019.4

2022. 12. 17. 15:38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The Palace of Versailles vs Suwon Hwaseong

 

광화문 광장이 건축계의 뜨거운 이슈가 되었고, 정치적 관심에 따라 논쟁의 중심 이 되었다. 건축계도 정치적 관심에 따라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금 아쉽 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계는 전문가 집단이기 때문에 본인들의 정치적 성향보 다는 건축적인 시각과 내용으로 논쟁을 했으면 어떨까 하는..

그런데 정말 건축은 정치와 관련이 없을까? 실상 그렇지 않다. 건축은 정치의 가장 첨예한 표현이고 권력의 중심 도구로 활용된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하다. <넷플릭스 Netflex>에서 상영 중인 프랑스 미니시리즈 ‘베르사이유’는 건축이라는 배경이 어떻게 통치권력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이용되었는지 세밀하게 보여준다. 절대 권력자로 알려진 루이 14세는 사실 불안한 왕위자였다. 어려서부터 암살의 위협은 성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으로 성장하게 했고, 누구도 믿지 않게 되었다. 한 국가를 운영해야 하는 엄청난 스트레스는 끝없는 능력에 대한 도전과 의심, 그리고 생존의 위협 속에 살게 했다.

 

그의 권력에 가장 도전하는 것은 일반 국민이 아니라 권력을 공유하고 있는 귀족 집단이었다. 귀족들은 왕을 세우기도 하지만, 제거하기도 한다. 왕은 상징이고, 그들은 집단이다. 소위 말하는 기득권이다.

이들 기득권의 타협과 공감은 왕과 교묘한 긴장관계에서 운영된다. 귀족들과 타 협은 일반 국민들에게는 처절한 궁핍과 압박으로 나타난다. 그렇다고 왕이 국민 들과 타협해서 진행하면 귀족들이 들고 일어선다. 귀족들, 즉 기득 권력층에게 명 분을 제공하는 순간 왕은 처형되고 만다. 이런 권력의 긴장관계는 동서양이 동일 하고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사실 선거로 뽑는 대통령이라고 하지만, 어느 사회의 기득권력층과 타협하지 않 으면 끝없는 정치적 공격으로 흔들리고 만다. 그리고 이들 기득권력층의 오피니언 확산은 대중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안타깝게도 대중들은 이들의 발언에 영향을 받게 된다. 그래도 지금은 각종 정보 노출이 대중화 되어 있어서 과거와 다르다.

 

 

루이 14세의 베르사이유 이야기로 돌아가면, 파리가 아닌 외곽도시 베르사이유 에 거대한 궁전을 건축하는 이유는 기득권력층인 귀족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명분으로 활용한 것이다. 파리의 귀족들은 자신들이 만들고, 조직해 놓은 파리에 서 일하라고 압박하지만 루이14세는 응하지 않는다.

이즈음에서 공간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흥미롭게 넷플릭스 에 동시에 상영하고 있는 영화 중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대한 ‘더 크라운 The Crown’이 있다. 이 영화에서도 동일한 장면이 나온다. 본인들이 살고 싶어 하는 궁과 영국 의회와 왕실이 요구하는 버킹검 궁전. 여왕의 거처를 가지고 격 렬한 대립을 하는데, 결국 의회의 압력으로 거처를 옮긴다. 왕의 거처인 궁은 단 지 집이 아니라 국가 권력의 조직이기 때문이다. 단지 건물이 아니라 그 공간이 지배하는 정치의 흐름과 의사 결정이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 수많은 정치가들이 만나고 이야기 하면서 도출되는 생각의 시너지들은 새로운 정책도 만들고, 새로 운 전략도 세우게 한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기득권력자들은 끝없는 이해관계를 모색하고 성문화 한다. 기득권력자들의 공간은 단지 지붕과 기둥과 벽이 있는 물 성이 아니라 그들의 의사 결정을 진행하는 유도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 거는 어떠한가?

이즈음에서 공간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흥미롭게 넷플릭스 에 동시에 상영하고 있는 영화 중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대한 ‘더 크라운 The Crown’이 있다. 이 영화에서도 동일한 장면이 나온다. 본인들이 살고 싶어 하는 궁과 영국 의회와 왕실이 요구하는 버킹검 궁전. 여왕의 거처를 가지고 격 렬한 대립을 하는데, 결국 의회의 압력으로 거처를 옮긴다. 왕의 거처인 궁은 단 지 집이 아니라 국가 권력의 조직이기 때문이다. 단지 건물이 아니라 그 공간이 지배하는 정치의 흐름과 의사 결정이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 수많은 정치가들이 만나고 이야기 하면서 도출되는 생각의 시너지들은 새로운 정책도 만들고, 새로 운 전략도 세우게 한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기득권력자들은 끝없는 이해관계를 모색하고 성문화 한다. 기득권력자들의 공간은 단지 지붕과 기둥과 벽이 있는 물 성이 아니라 그들의 의사 결정을 진행하는 유도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과 거는 어떠한가?

정조대왕은 어떤가? 조선시대는 두 번의 반란을 통해 왕을 바꾼 경력이 있는 귀족 국가다. 의회로 발전하지 못했지만, 왕이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절대 권력자가 아닌 끝없이 견제를 받는 위치다. 명분이 없으면 입각한 양반들에 의해 휘둘리는 자리다. 더구나 그의 아버지는 기득권력층을 이용하려는 영조의 정치에 희생양이 되었 다. 이를 본 정조는 당연히 새롭게 권력구조의 판을 짜려고 했던 것이고, 정약용 을 시켜서 수원으로 왕의 거처와 집무처를 옮기려 한 것이다. 왕의 집무처가 옮 겨가면 기존의 권력 구조는 깨질 수밖에 없고, 한마디로 왕의 결재를 받기가 어려 워지는 것이다. 왕과 동행하는 것은 항복하는 것과 같은 것이고, 그들의 영향력 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왕의 거처인 궁을 옮기고 새로 건축한다는 것은 건물 몇 개가 생기는 개념이 아 닌 것이다. 정조대왕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오히려 정치적 결정의 중요한 명분이된 것이고, 효라는 철학을 정치 개념으로 삼고 있던 조선에서는 더 할 나위 없는 주제였다. 만약 정조대황이 성공해서 수원으로 궁을 이동시키고 집무를 했다면 우리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정조대왕의 모험은 성공하지 못했고, 그가 독살당했다라는 이야기의 타당성은 그래서 있다.

 

 

하지만 태양왕으로 일컫는 루이 14세는 성공했다. 그가 베르사이유에 남을 명분 은 끝없는 건축행위였고, 건축행위의 연장에서는 정원을 만드는 시도도 있었다. 왜냐면 건축보다 정원 만들기가 돈이 덜 들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루이14세는 끊임없는 건축 스케치를 귀족들에게 보여주는데, 실제 자료를 보면 50년간 건축을 하게 된다. 이 시간에 대한 시선은 여러 가지가 되지만, 적어도 절대 왕권을 만들고 유지하는 정치적 전략이라고 생각된다. 실제 설계는 르보 LE Veau가 했고, 조경은 르노트르 Le Notre가 진행했다. 내부 인 테리어는 샤를르 르 브륑 Charie Le Brun이 담당했다. 그렇지만 우리도 경험 많은 건물주들을 만나면 스케치까지 해오는 경우가 있어서 내심 생소한 풍경은 아니다. 발레를 좋아해서 춤을 직접 추고, 패션을 좋아해서 수시로 패션쇼를 열었 다는 내용을 보면 루이14세의 사치를 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전략은 귀족 을 통제하고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건축이 단지 건물이 아닌 다양한 인문학적 이야기들이 담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측면이다. 하나의 건물이 건축으로 진행되는 과정이나 내용에서 해석 되고 보여지는 숨은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정조대왕의 수원 화 성 행궁을 다루는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https://www.netflix.com/kr/title/80099753

 https://www.imdb.com/title/tt3830558/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 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 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ncslab@ncsarchitec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