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받지 못한 자들의 슬픔 2019.5

2022. 12. 20. 10:08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Sorrow of those who are not understood

 

얼마 전, 또 하나의 안타까운 부음이 당도했다. 그저 무탈 하리라고만 애써 믿고 있었는데, 스스로 먼 길을 재촉했다는 비보에 나는 보축(補築) 한쪽이 송두리째 떨어져나간 성벽의 잔재처럼 그만 그 자리에서 고스란히 내려앉고 말았다. 언젠 가는 우리 모두 다 거쳐 가야 할 길목이라지만, 뭇 생명들이 다시 파릇파릇 돋아 나는 이 봄날의 부음에는 자못 더 비감해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인간은 싫든 좋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자아(ego)’를 확인하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한다. 누구나 더 인정받고, 또 더 이해받기 위해서 산다는 얘 기가 될 수도 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더 많은 칭찬을 갈구하 며 살고, 좀 더 자라서는 동료나 친구 그리고 점차 확대되어가는 가족들에게 인정 받기 위해서 한평생을 발버둥 치며 살다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격려할 나이가 되어서도 후배들에게 좀 더 그럴듯한 사람으로 칭송받기 위해서 산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싫든 좋든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자아(ego)’를 확인하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한다. 누구나 더 인정받고, 또 더 이해받기 위해서 산다는 얘 기가 될 수도 있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더 많은 칭찬을 갈구하 며 살고, 좀 더 자라서는 동료나 친구 그리고 점차 확대되어가는 가족들에게 인정 받기 위해서 한평생을 발버둥 치며 살다가, 나중에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격려할 나이가 되어서도 후배들에게 좀 더 그럴듯한 사람으로 칭송받기 위해서 산다는 것이다.

아마 우리 인간이 ‘동굴’이나 ‘움집’이라는 인류최초의 집단주거지에서 바동거리 며 생존하던 저 먼 태곳적에서부터 우리들의 집단무의식 속에 각인되어 온, ‘무리 에서의 이탈’에 대한 시원적인 두려움이 작동되고 있는 탓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우리역사 속에서는, 되레 그 시대와 민중들에게 구차한 이해를 구하 려 하지 않은 채, 제 소신에 따라 초연히 사라진 사례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 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조선역사상 1천 년 이래 최대 사건’이라고 높이 평가한 묘청(妙淸)이 그랬고, 유교적 이상정치를 척박한 조선사회에 구현하려다가 사화 (士禍)로 죽음을 당한 정암 조광조가 그랬으며, 또 해방직후에는 이 땅에 진보정 치의 초석을 놓다가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에 묶여 그만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 죽산 조봉암이 그랬다.

그런데 그렇게 이해받지 못하고 무대에서 사라지는 것이, 비단 우리 역사와 정치 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흔히 꼼빼(competition)라고 불리기도 하는, 우리건 축의 ‘건축설계공모전’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내건 주제를 잘 파악하고 계획 안까지 훌륭했으나, 너무도 앞서나간 빛나는(?) 설계였던 탓에 당선되지 못하고 아깝게 사장(死藏)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 건축설계공모전은 어딜 가나 다들 화려한 모델(model)과 조감도로 넘쳐난다. 그리고 그 완성도 여부가 당락을 좌우하기 때문인지, 너나할 것 없이 겉멋내기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것 같다. 때로는 건축개념이 그럴듯하게 표현된 출품작이라고 할지라도, 우선 돋보이지 않으면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라는 조바심 탓일지도 모른다.

분명 작금의 우리 건축설계공모전이 쭉쭉 뻗은 미인을 뽑는 미스코리아 선발대 회가 아닌 것만은 분명한데도, 우선 그 외양부터 살피고 색상을 감별하기 바쁘다. 어찌 보면, 마치 열병하듯 차례로 줄지어 세워놓고 앞뒤로 돌려가며 훑어보면서 얼마나 덜 부자연스럽게 성형수술을 했는지, 얼마나 고급 의상과 화장품으로 치 장을 했는지, 또 얼마나 준비된 답변을 앵무새처럼 되뇌는지 등의 별 시답지 않은 것에 몰두하다가 결국 그 중 어느 하나를 가려 뽑는 미인선발대회 방식과 흡사하 다고 할 수도 있다.

 

 

분명 작금의 우리 건축설계공모전이 쭉쭉 뻗은 미인을 뽑는 미스코리아 선발대 회가 아닌 것만은 분명한데도, 우선 그 외양부터 살피고 색상을 감별하기 바쁘다. 어찌 보면, 마치 열병하듯 차례로 줄지어 세워놓고 앞뒤로 돌려가며 훑어보면서 얼마나 덜 부자연스럽게 성형수술을 했는지, 얼마나 고급 의상과 화장품으로 치 장을 했는지, 또 얼마나 준비된 답변을 앵무새처럼 되뇌는지 등의 별 시답지 않은 것에 몰두하다가 결국 그 중 어느 하나를 가려 뽑는 미인선발대회 방식과 흡사하 다고 할 수도 있다.

단 하나의 당선작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꼴등이나 이등이나 별 구분 없이 모두 다 그 무대에서 내려와야만 한다. 신춘문예처럼 낙선 작품집이 발행되지도 않고 또 먼 훗날, 끝내 이루지 못했지만 그래도 의미 있는 미완의 혁명으로 기록되지도 않는다. 안타깝지만 당선되지 못한 설계안은, 어느 시인의 시어(詩語)처럼 ‘폴란 드 망명정부의 지폐’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신세로 전락되고 마는 것이다.

어디 건축설계공모전에서만 그러하랴! 다른 사람들의 거주공간을 손끝 하나로 좌지우지하게 되는 건축설계의 특성상, 다양한 협의와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는 것은 불가결한 일이지만, 그 진정성을 이해받지 못하거나 무지한 건축주를 이해 시키지 못하게 되면, 한때 설계자를 가슴 뛰게 만들었던 설계안조차 누군가의 지 저분한 배설물처럼 흔적 없이 치워져야만 한다. 그게 배척당한 자들이 오롯이 감 내해야 할 숙명인 셈이다.

그렇다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설사 채택되지 못한 설계안일지라도 당선작의 ‘하 자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시대의 시류에 적극적으로 편승하지 못했거나 좀 더 치열한 전투태세를 갖추지 못했을 뿐, 우리 시대를 너무 앞서나간 이상주의자들의 작품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우리역사가 지금 여기까지 굴러올 수 있었던 것만 해도, 당시 한때나마 승 자로 포효했을 김부식과 유자광, 이승만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 대척점에서 나름 대로 소신을 지키려다가 그만 자의반(自意半) 타의반(他意半)으로 사라져야 했 던 묘청(妙淸)과 정암(靜菴), 그리고 죽산(竹山)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한때 타 인에게 이해받지 못했을지라도, 그들에 의해서 우리역사가 이만큼 진보되어 온 것이라고 믿고 싶다.

꽃향기 짙어지는 올 봄, 또다시 수많은 유토피아를 꿈꾸다 그만큼 더 자주 고개를 떨어뜨리기도 해야 할 숙명을 지닌, 우리 건축사 여러분들의 건투를 빈다.

 

 

 

 

 

 

글. 최상철 Choi Sangcheol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최상철 건축사사무소 연백당 · 건축사

 

건축사 최상철은 전북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 을 마치고, 현재「건축사사무소 연백당」대표건축사로 활동하 고 있다. 그 동안의 건축설계과정에서 현대건축의 병리현상에 주목하고, 산 따라 물 따라 다니며 체득한 풍수지리 등의 「자 연사상」을 건축에 대입해가는 방식으로 우리의 소중한 삶터들 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건축」에 담겨있는 우리의 생 각과 마음을 알기 쉬운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저서로는 「내 가 살던 집 그곳에서 만난 사랑」「전주한옥마을」 등이 있다.

 

ybdcsc@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