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천(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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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오딧세이 ⑦ 을지로 골목은 인쇄산업의 미래다 2023.12
City Odyssey ⑦ Euljiro Alley is the future of the printing industry 을지로엔 ‘인쇄 골목’으로 통칭하는 공간이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개조한 오토바이에 짐을 싣고 다니며 통통거리는 삼발이 소리가 종횡무진 구불구불 좁은 골목을 휩쓴다. 물건을 실어 나르는 소형 트럭도 분주하다. 한눈에도 엄청난 무게감이 느껴지는 종이 더미를 힘센 지게차가 이리저리 들어 나른다. 왜(몸빼)바지 입은 식당 아주머니가 늦은 식사를 머리에 이고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기도 한다. 뭔가를 찍어내느라 숨 가쁘게 돌아가는 규칙적인 기계 소리에선, 묘한 리듬감마저 느껴진다. 그러함에도 굳게 닫힌 문에, 텅 비어 적막이 감도는 낡고 오래된 작업장이 몇 걸음마다 하나씩이다. 폐업했을까? 을지..
2023.12.30 -
도시 오딧세이 ⑥ 위협받고 있는 서울 도심의 생산 생태계 2023.11
City Odyssey ⑥ Endangered ecosystems in downtown Seoul 태엽을 감지 않은 시계는 그 시침에서 멈춰버린다. 도시공간도 마찬가지다. 살아남으려면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을 지속해 가꿔나가야 한다. 하지만 멈춰버린 시계 같은 공간이 종로에 또 하나 생겼다. 세운상가 북동쪽 끝 ‘예지동 시계골목’이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제4구역인 이곳은 태엽 끊긴 시계처럼, 그 삶을 다했다. 그 많던 점포는 어디론가 흩어지고, 무자비한 철거에 수십 년 쌓인 시공간이 송두리째 지워졌다. 그 자리에 들어설, 계단식 모양의 건물 조감도가 공개되었다. 옥상정원으로 도시녹지를 늘이겠다는 구상에도 불구하고,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건물일 뿐이다. 완공 후엔 업종 및 기능별 젠트리피케이션에 ..
2023.11.30 -
도시 오딧세이 ⑤ 위기에 직면한 서울의 첫 주상복합 건물군 2023.10
City Odyssey ⑤ Seoul's first residential-commercial complex facing a crisis 서울 도심 한가운데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차단벽 같은 거대 건물군이 있다. 8개 건물을 통칭하는 ‘세운상가’다. 이중 현대상가는 녹지 축 조성계획에 따라 2009년 헐렸다. 낡고 쇠락해 이제 노년에 접어든 이 집들을 희롱이라도 하듯, 세운상가 주변은 온통 공사판이다. 쿵쾅거리는 공사 소음에 ‘역시 서울!’이라는 자조적 현실을 깨닫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거대한 소음에, 이곳 역시 아득한 시공간으로 파묻혀 사라지는 중임을 실감한다. 그러함에도 이곳엔 아직 소리가 살아있다. 상인들의 외침과 오밀조밀한 작업장이 만들어 내는 소리다. 소리가 살아있다 함은, 공간..
2023.10.31 -
도시 오딧세이 ④ 독립운동가이자 선구자적 도시개발자, 정세권이 지켜낸 공간 2023.9
City Odyssey ④ _ An independence fighter and a pioneering urban developer, A space preserved by Se-Kwon Jung 종로 한복판에서 기묘한 풍경이 연출 중이다. 짧은 거리를 두고, 서로 다른 두 공간이 외따로 떨어져 공존하고 있다. 완충지대는 물론 점이지대도 없다. 마치 다가와 있는 것과 다가오고 있는 것의 차이처럼, 두 곳은 전혀 다른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같은 공간 안에 있으면서, 서로 알 필요 없다는 듯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다. 무척 생경한 공존 방식이다. 지하철 5호선 종로3가역을 중심으로, 불과 2∼300미터 거리를 두고 연출되는 풍경이다. 탑골공원 주변이 노년 전유 공간이라면, 익선동은 청년 전유 공간이다. 지하..
2023.09.14 -
도시 오딧세이 ③ 소외된 도시의 뒷방, 노년 전유 공간을 찾아서 2023.8
City Odyssey ③ With looking for a space exclusively for the elderly where is the alienated back room of a city 이곳에 서면 지나버린 세월이 날 것으로 전해져 온다. 허허로운 일상을 보내는 노년이 점유한 공간은 마치 뒷물에 밀려 하구에 다다른 강물처럼 보인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이 풍경 속 주인공은 분명 우리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시간이 만들어 낼 필연이기 때문이다. 이들 노년이 소비하는 도시공간은 다소 이채롭다. 시간을 거슬러, 어느 한 시점에 멈춰버린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래된 흑백사진처럼, 한 세대 전 모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어서다. 도시에서 지대(地代)는 통상 소비행태 또는 구매력에 따라 결정된..
2023.08.17 -
도시 오딧세이 ② 쪽방촌, 정작 사람은 오지 않아요 2023.7
City Odyssey ② It's a dosshouse where no one comes 한낮인데도 골목이 적막하기만 하다. 잠들어 있는 공간인가 여겨질 정도여서, 발걸음은 물론 카메라 들이대기조차 조심스럽다. 의자에 앉은 지긋한 나이의 아주머니 표정이 무겁다. 골목 끝에 모여 앉은 몇몇 역시 마찬가지다. 이곳에 들어서면 차가운 시선이 먼저 날아온다. 낯선 존재에 대한 경계 반응이다. 돈의동 쪽방촌 첫인상이다. 이곳은 대체로 불결하다. 욕설과 다툼, 때론 술판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곳을 도심 속 외딴섬으로 여기곤 한다. 나와는 다른, 못 배우고 가난하며 게으른 인생 막장에 다다른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취급한다. 그러면서 이 공간을 생경한 눈으로 바라본다. 더럽고 비참하며 처량하지만, 가급 찾아선..
2023.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