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천(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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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오딧세이 ⑬ 낡아 해어진 구두처럼 명멸하는 수제화 거리 2024.6
City Odyssey ⑬ A street of handmade shoes disappearing like worn-out shoes 내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는다는 건 참으로 편안한 행복이다. 동남아에서 전래한 ‘원숭이 신발’이라는 우화가 있다. 공짜 신발에 길들여진 원숭이가 결국 맨발로는 걸을 수 없게 되어, 가진 모든 걸 내어주면서 신발을 사 신는 처지로 전락한다는 이야기다. 우화는 제국주의 침략을 비판하기도, 면면히 이어온 풍습이 신문물로 대체되는 현상을 빗대기도 한다. 신발은 만드는 재료에 따라 제각각이다. 풀이나 짚을 엮어 만드는 짚신부터 나무를 깎아 만든 나막신, 가죽신은 물론 쇠로 만든 신발까지 다양하다. 가난한 백성은 짚신을 신었다. 1920년대 혜성처럼 등장한 고무신이 혁명적 변화..
2024.06.30 -
도시 오딧세이 ⑫ 마장동 축산물시장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2024.5
City Odyssey ⑫ Our perspective on Majang Meat Market 모여야 좋아지는 것들이 있다. 사람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좋은 사람들이 모이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반대의 경우 사회악이 될 개연성이 농후해진다. 도시 공간 또한 그렇다. 모인다는 건 주고받을 게 많다는 것이고, 이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장시(場市)의 형성이다. 경제학에선 이를 집적이익이나 집적효과라 부르는 모양이다. 도성 밖 청계천 끝자락, 2,000여 축산물 가게가 모여 집적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공간이 있다. 마장 축산물시장이다. 동쪽으로 흐르던 청계천이 몸을 틀어 중랑천으로 꺾어 드는 곳 남쪽에 마장동이 자리한다. 왕조 시대, 이곳엔 말 사육이 특화되어 있었고, 마을은 여..
2024.05.31 -
도시 오딧세이 ⑩ 아직 남아 있는 쓰임을 애타게 기다리는 공간 2024.3
City Odyssey ⑩ A space that is still anxiously waiting for its remaining uses 동대문을 벗어난 발길이 개천(開川)으로 향한다. 왕비가 청령포로 귀양 가는 왕과 눈물로 이별했다는 영도교(永渡橋)에 이른다. 곧게 흘러온 물이 오간수문을 빠져나와 이곳에서 활처럼 휜다. 아낙들이 모여 소식을 나누었을 빨래터를 지나선, 개천은 점점 품을 넓힌다. 영도교가 청계7가∼8가 한가운데에서 개천을 건넌다. 경상도와 강원도, 함경도로 향하던 길 초입으로, 왕십리 지나 뚝섬과 광나루를 잇대었으니 분명 번잡하였으리라. 다리 건너가 황학동이다. 성동공고 남측 가구 거리가 왕조시대부터 장터였으니, 이곳 역시 물산과 사람들로 넘쳐났으리라. 왕십리 채소밭과 황학동 미나리꽝이..
2024.03.31 -
도시 오딧세이 ⑨ 어떤 힘으로 공간을 지켜내야 할까? 2024.2
City Odyssey ⑨ What power should we have to protect the space? 동네는 낙산 언덕배기에 기댔다. 다닥다닥 어깨 겨누어 앉은 집들이 평화로워, 오히려 맵시 있어 보인다. 구불구불 골목은 가파르다 못해 숫제 등산을 방불한다. 아슬아슬 주차된 차바퀴엔 예외 없이 벽돌이 괴이고, 걷기에도 버거운 가파른 길을 오토바이는 빨리도 오른다. 골목은 온통 소리로 그득하다. 소형차와 오토바이, 삼발이가 쉴 새 없이 골목 구석구석을 누빈다. 이곳을 동대문 패션타운과 연결하는 실핏줄 같은 존재들이다. 여기저기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는 마치 재깍거리는 시계 같다. 하지만 이곳엔 빨갛고 노란 꽃들이 가득 필 꽃밭이 없다. 오히려 소금 땀 비지땀 연신 흘려야, 다가오는 계절을 온전히 ..
2024.03.08 -
도시 오딧세이 ⑧ 지키고 가꿔야 할 골목 문화는? 2024.1
City Odyssey ⑧ What is the alley culture to keep and grow? 불과 얼마 전이 먼 옛날처럼 까마득하다. 추분이 지난 2022년 어느 날, 골목에 들어 ‘힙(hip)’하다는 걸 실감하기까지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어스름이 깔리자 골목은 빈자리를 찾기 힘들 만큼 사람들로 넘쳐났다. 이곳의 상징인 노가리에 생맥주를 즐기려는 발길은 그렇게 늦은 시간까지 끊이지 않았다. 젊은이는 물론 중장년의 회사원들, 나이 지긋한 분들까지 모든 연령층이 골목을 메우고 있었다. 지금은 아득해진 ‘을지로 노가리 골목’의 지난 풍경이다. 골목은 임차인이 일방적으로 쫓김을 당한 갈등 공간이기도 했다. 맨 처음 자리 잡아 골목을 키워낸 ‘을지OB베어’가 임차권 갈등으로 폐업하며 사라졌..
2024.01.31 -
도시 오딧세이 ⑦ 을지로 골목은 인쇄산업의 미래다 2023.12
City Odyssey ⑦ Euljiro Alley is the future of the printing industry 을지로엔 ‘인쇄 골목’으로 통칭하는 공간이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개조한 오토바이에 짐을 싣고 다니며 통통거리는 삼발이 소리가 종횡무진 구불구불 좁은 골목을 휩쓴다. 물건을 실어 나르는 소형 트럭도 분주하다. 한눈에도 엄청난 무게감이 느껴지는 종이 더미를 힘센 지게차가 이리저리 들어 나른다. 왜(몸빼)바지 입은 식당 아주머니가 늦은 식사를 머리에 이고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기도 한다. 뭔가를 찍어내느라 숨 가쁘게 돌아가는 규칙적인 기계 소리에선, 묘한 리듬감마저 느껴진다. 그러함에도 굳게 닫힌 문에, 텅 비어 적막이 감도는 낡고 오래된 작업장이 몇 걸음마다 하나씩이다. 폐업했을까? 을지..
2023.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