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천(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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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오딧세이 ⑯ 고시촌이 꾼 꿈이 공간에 남긴 흔적, 그리고 미래 2024.9
City Odyssey ⑯ The traces Gosi Village’s dreams have left in space, and the future 고시촌이 꾼 꿈은 무엇이었을까? 본디 입신양명은 사회나 국가에 이바지한다는 뜻이었겠으나, 세상이 어디 그렇게 한가하기만 하던가? 오래전부터 이미 출세와 영달의 다른 이름으로 변질하였으니…. 등용문이라 했다. 시험을 통과하면 살아생전 부와 권력, 사회적 지위를 누렸고 죽어서까지 명예를 오로지할 수 있었다. 그러니 너도나도 이 관문을 통과하려 모든 걸 걸고 매달릴만한 충분한 명분이 되었다. 이렇듯 등용문을 통과한 동량들은 대체로 초심을 잃었고 특권의식에 사로잡혔다. 최근이 아닌, 뼛속 깊이 내려오는 디엔에이(DNA)다. 특권의식을 넘어 지배의식까지 갖기 일..
2024.09.30 -
도시 오딧세이 ⑮ 그러함에도, 퍼덕이는 꿈을 좇는 청춘의 공간 2024.8
City Odyssey ⑮ Nevertheless, it is a space for youth to follower their fluttering dreams 통행이 뜸해진 노량진역 바깥 계단은, 셀 수 없을 만큼의 발길에 닳고 닳아버린 모습 그대로다. 노량진역은 여전히 바람이 맵차다. 수많은 청춘이 이 계단을 오르내리며 차가운 바람에 움츠러든 어깨를 옷깃으로 여몄을 것이다. 1970년대 끝자락부터 진학에 실패한 청춘들이 내몰리듯 노량진으로 찾아 들었다. 절치부심. 빛나는 청춘의 한때를 희망이란 가느다란 빛을 갈구하며, 이 공간에 자기를 가두고 기댔다. 종로에 있던 입시학원이 옮겨와 진학에 실패한 청춘을 품으면서, 노량진은 학원가로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하지만 풍경이 변했다. 한 시대를 휩쓸고 간 ..
2024.08.31 -
도시 오딧세이 ⑭ 공간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할 갈림길에 선 서울 약령시 2024.7
City Odyssey ⑭ Yangnyeongsi in Seoul is at a crossroads that will determine the sustainability of space. 여기에 서면 기운이 저절로 북돋는다. 지나가기만 해도 보신한다는 우스개가 회자하는 제기동 ‘서울 약령시(藥令市)’에서다. 정릉천 동쪽, 왕산로 북쪽에 남북 약 1킬로미터, 동서 약 200미터에 800여 한약재상과 한의원이 자리한 공간이다. 1995년에 인가받았으나, 이 공간이 쌓아 온 시간은 그보다 훨씬 더 깊다. 근대 도시 태동의 추동력은 단연코 기차역이었다. 인쇄술이 공화정을 앞당긴 기술이라면, 기차역은 도시화를 추동해 낸 시설이다. 인쇄술이 생각과 사상을 모으고 확산시켰다면, 기차역은 사람과 물산을 모으고 더욱..
2024.07.31 -
도시 오딧세이 ⑬ 낡아 해어진 구두처럼 명멸하는 수제화 거리 2024.6
City Odyssey ⑬ A street of handmade shoes disappearing like worn-out shoes 내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는다는 건 참으로 편안한 행복이다. 동남아에서 전래한 ‘원숭이 신발’이라는 우화가 있다. 공짜 신발에 길들여진 원숭이가 결국 맨발로는 걸을 수 없게 되어, 가진 모든 걸 내어주면서 신발을 사 신는 처지로 전락한다는 이야기다. 우화는 제국주의 침략을 비판하기도, 면면히 이어온 풍습이 신문물로 대체되는 현상을 빗대기도 한다. 신발은 만드는 재료에 따라 제각각이다. 풀이나 짚을 엮어 만드는 짚신부터 나무를 깎아 만든 나막신, 가죽신은 물론 쇠로 만든 신발까지 다양하다. 가난한 백성은 짚신을 신었다. 1920년대 혜성처럼 등장한 고무신이 혁명적 변화..
2024.06.30 -
도시 오딧세이 ⑫ 마장동 축산물시장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2024.5
City Odyssey ⑫ Our perspective on Majang Meat Market 모여야 좋아지는 것들이 있다. 사람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다. 좋은 사람들이 모이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지만, 반대의 경우 사회악이 될 개연성이 농후해진다. 도시 공간 또한 그렇다. 모인다는 건 주고받을 게 많다는 것이고, 이는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장시(場市)의 형성이다. 경제학에선 이를 집적이익이나 집적효과라 부르는 모양이다. 도성 밖 청계천 끝자락, 2,000여 축산물 가게가 모여 집적효과를 톡톡히 누리는 공간이 있다. 마장 축산물시장이다. 동쪽으로 흐르던 청계천이 몸을 틀어 중랑천으로 꺾어 드는 곳 남쪽에 마장동이 자리한다. 왕조 시대, 이곳엔 말 사육이 특화되어 있었고, 마을은 여..
2024.05.31 -
도시 오딧세이 ⑩ 아직 남아 있는 쓰임을 애타게 기다리는 공간 2024.3
City Odyssey ⑩ A space that is still anxiously waiting for its remaining uses 동대문을 벗어난 발길이 개천(開川)으로 향한다. 왕비가 청령포로 귀양 가는 왕과 눈물로 이별했다는 영도교(永渡橋)에 이른다. 곧게 흘러온 물이 오간수문을 빠져나와 이곳에서 활처럼 휜다. 아낙들이 모여 소식을 나누었을 빨래터를 지나선, 개천은 점점 품을 넓힌다. 영도교가 청계7가∼8가 한가운데에서 개천을 건넌다. 경상도와 강원도, 함경도로 향하던 길 초입으로, 왕십리 지나 뚝섬과 광나루를 잇대었으니 분명 번잡하였으리라. 다리 건너가 황학동이다. 성동공고 남측 가구 거리가 왕조시대부터 장터였으니, 이곳 역시 물산과 사람들로 넘쳐났으리라. 왕십리 채소밭과 황학동 미나리꽝이..
2024.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