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카피(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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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염전에서, 태평하다 2023.7
Peaceful at Taepyuong Salt Farm 마음에 스산한 바람이 부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인생을 잘못 살아온 것인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에 햇볕 아래서도 자주 암전을 느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싶을 만큼 부끄럽거나 후회스러운 일들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사는 동안 겪었던 잃어버린 사랑, 배신당한 우정, 보답받지 못 한 정성, 무시당한 마음…. 그 모든 기억이 한데 모여 너는 실패자라고 조롱하는 것 같았다. 승객이 꽉 찬 지하철 안에서 숨 막혀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기도 했고, 한밤에 잠이 깨면 누군가 가까운 사람이 죽어버린 듯한 슬픔이 북받치기도 했다. 벗어나려면 도망쳐야 했다, 잊어야 했다, 위로받고 스스로 위로해야 했다. 우울한 도시를 떠나 내가 찾은 곳은 전라남도 신안의 작은..
2023.07.20 -
코로나가 가고 무엇이 남았을까? 2023.6
COVID-19 is gone and what's left behind?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로운 것이 없나니… 구약성서 전도서의 1장 9절에 나오는 말이란다. 맞는 말이다. 머리를 쥐어짜서 기가 막힌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남이 만든 광고에 있는 아이디어였던 경험이 부지기수다. 광고만큼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라는 말이 들어맞는 영역도 드물 것이다. 광고인들은 아이디어를 내기 전에 거의 습관적으로 지금 인기 있는 방송 프로그램과 연예인, 유행어 등의 트렌드를 조사한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찾기보다 이미 유행하고 있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쪽이 쉽고 빠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벌써 있는 줄 모르고 남과 비슷한 결과물을 만드는 일을..
2023.06.21 -
나는 내일, 무엇을 잊고 무엇을 기억할까? 2023.5
Tomorrow, what will I forget and what will I remember? 구글의 검색창에 ‘잊지 않는 법’이라는 검색어가 뜨자 ‘망각을 피하는 4가지 방법’, ‘잊어버리는 것을 막아주는 7가지 유용한 조언’ 등 다양한 검색 결과가 모니터 화면에 뜬다. 그중 ‘디테일, 즉 세부사항을 반복할 것’이라는 답변이 크게 클로즈업 된다. 이어서 주인공인 할아버지가 스마트 스피커를 통해 아내인 로레타와 자신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 달라고 구글 어시스턴트(Google Assistant)에 요청한다. ‘여기 당신의 사진이 있다’는 자막과 부부의 사진 두 장이 모니터에 나타난다. 그 사진에서 콧수염을 기른 자신의 모습을 본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로레타가 내 콧수염을 싫어했다는 것을 기억해”달..
2023.05.16 -
챗지피티(ChatGPT)야 4월의 광고를 찾아 줘! 2023.4
Hey ChatGPT, find the advertisement for April!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흐른다. 방금 월간 건축사 3월호를 받아 들었다 싶은데 4월호 칼럼의 마감이 벌써 코앞이다. 무엇을 쓸까 고민해도 딱히 떠오르는 좋은 생각이 없다. 완연한 봄, 꽃 피는 계절 4월에 딱 어울리는 광고가 뭐 없을까 여기저기 광고 관련 사이트를 기웃거린다. 눈에 띄는 광고는 별로 없고 ‘챗GPT’에 대한 기사가 많이 보인다. ‘챗GPT’는 오픈에이아이(Open AI)가 2022년 11월 30일 공개한 대화 전문 인공지능 챗봇이다. 공개 단 5일 만에 하루 이용자 100만 명을 돌파했고 출시 두 달 만인 올해 1월에 월 활성사용자(MAU) 1억 명이 되었다. 그리고 2월 13일 기준 유료 이용자가 100..
2023.04.18 -
"맞다, 이런 기분이었지!" 2023.3
“That’s right, this was how it felt!” 친구의 딸이 딸을 낳았다. 엄마가 간지럼을 태우는 손길에 방긋거리는 아기 얼굴을 사진으로 보니 내 입꼬리도 저절로 올라갔다. 아직 말도 못 하는 아기들은 아무 조건 없이 웃는다. 배부르고 기저귀만 보송보송하면 아무 걱정이 없다. 눈 맞추면 웃고 간질이면 웃고 ‘푸’ 하고 볼에 입 바람만 불어줘도 웃는다.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아가의 웃음이 주는 행복을 맛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맞아, 아이 키우는 건 이런 기분이었지!” 비가 내린 적도 없는데 땅이 젖어 있다. 혹시 빗방울이 떨어지나 하늘을 두리번거리고 허공에 손바닥을 펼쳐본다. 비는 아니다. 조금 더 걷다가 깨닫는다. 아, 땅이 녹고 있구나! 그러고 보니 길가의 나무들도 물기를 머금..
2023.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