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를 둘러싼 환경은 괜찮은 것일까? 2021.2

2023. 1. 31. 09:26아티클 | Article/에디터스레터 | Editor's Letter

Is the environment surrounding the architectural history okay? 

 

지상파 방송에서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점차 잦아지고 있다. 다양한 건축 관련 프로그램과 이야기가 대중에게 지금처럼 왕성히 전달된 때가 있었나 싶다. 사실 나는 건축의 대중화를 위한 노력으로 1997년 ‘리빙TV’라는 매체에 반년간 출연하면서 영화와 건축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노력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건축은 건설로 인식되고, 지금도 그렇듯 부동산이나 부실시공 같은 이미지가 우선되었다. 방송 작가나 진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설계를 하는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들이 상대방에게는 놀라움의 대상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이런 반응이 오히려 신기했고, ‘세상이 건축을 정말 모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서점에는 수많은 건축사들과 건축대학 교수들이 펴내는, 비전문적으로 건축을 다루는 서적들이 넘쳐나고 있다.
유현준 교수를 비롯한 몇몇 건축계 인사들은 이미 연예인 수준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교육전문 방송 채널인 EBS에서는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다양한 모양새의 ‘집’들을 소개하고 있다. 다른 상업방송에서는 빈집 찾기를 한다든가, 색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생활하는 건축물을 구경하기도 한다. 아마 여기서 더 나아가면 도시와 건축을 다룰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소득 3만 불 시대 사람들의 태도가 아닌가 싶다.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의·식·주’의 순서대로 대중들의 관심이 이동한 것 같기도 하다. 한동안 옷을 멋있게 입는 법을 알려주는 다양한 채널과 방송들이 넘쳐났었다. 어떻게 옷을 입으면 주목받는지, 촌스럽지 않은지 등등…. 그러다 몇 해 전부터는 온통 ‘먹방’과 음식 이야기로 가득했다. 주방장들이 방송 스타가 되고, 온갖 프로에 초대받아 등장한다. 
이제 드디어 의식주의 순서대로 주, 즉 건축의 시대가 온 것일까? 
여기저기 온통 건축 이야기로 가득하다. 건축의 시대가 온 만큼 우리 건축사들은 행복할까? 왠지 이런 질문에는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19세기 건축사들과 21세기 건축사들은 역량도 다르고, 역할도 다르다. 다만, 19세기 건축사들이 못하는 것 없이 온갖 꿈과 상상을 펼치며 존재했다면, 21세기 건축사들은 왠지 모르게 좁아진 자리에서 몸 둘 바를 모르는 것 같다.
르 코르뷔지에나 루이스 칸은 건축을 다루며 도시를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에는 어느 건축사가 이런 이야기를 할까? 건축사들은 가뭄에 콩 나듯이 도시와 건축 이야기를 드물게  한다. 도시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사회를 관찰하는 시선이 바탕이 돼야 하는데, 아쉽게도 이런 기회와 역할이 주어지지 않는다. 과연 스스로 역할을 축소한 것일까, 아니면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것일까?
도시와 관련한 이야기에서 빠지니 정책에서도 빠질 수밖에 없다. 도시가 너무 크다면 마을이나 동네로 가보자. 마을이나 동네에도 건축사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건축 문외한들이 도시를 휘젓고 다닌다. 우리나라 도시들은 1970년대 이후 모두 판박이다. 사회구조와 산업구조가 수도 없이 변화했는데, 이와 달리 똑같이 만들어진 도시들은 형편없다. 
건축 과정에서도 시공자들이 느닷없이 건축사들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 시공자의 지식과 경험으로 해석하고 협의해야 할 내용조차 건축사에게 밀어 넣고, 요구하고 있다.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사회에서까지 건축사에게 황당한 문제의 책임을 물으려 한다. 공사 현장에서 쓰레기를 태워도 건축사에게 연락이 오고, 공사 현장에서 사람이 넘어져도 건축사에게 따진다. 그러더니 이제는 건축의 질을 이야기하는 제도를 가지고 ‘건축사를 위하는 법’이라고 따지는 정치인도 생겼다.
우리의 상식이 그들에겐 상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외부 환경 탓을 할 텐가? 이젠 좀 더 적극적으로 우리 스스로 소리치고, 외치고, 알려야 할 것 같다. 이젠 능동적인 건축사가 되어야겠다. 그동안 우린 너무 수동적이었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