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30. 09:24ㆍ아티클 | Article/에디터스레터 | Editor's Letter
약 3년 동안 편집국장으로 활동하며 1980년대 대학시절 투덜거렸던 건축계에 대한 비판의 바탕이 여전하다는 점에서 놀랐고, 우리나라에서 건축의 자리가 아직도 미흡하다는 것이 아쉬웠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는 건축이 노동과 제조를 기반으로 하는 생산 경제와 완전히 다른 산업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건설은 본질적으로 노동과 제조 기반의 생산 경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에 반해 건축은 철저한 지식 기반의 경험에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고도의 지식산업이다.
역사 속에서 건축은 사상이나 철학, 사유에서 출발해 형태적으로 구현한 시각적 결과물이다. 역사책을 넘기지 않더라도 르 코르뷔지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등 현대건축 개척자들의 행위를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그렇게 발상의 시작부터, 시공자들에게 자신들의 디자인 구현을 요구하고 진행했던 것이다. 당연히 공사비에 관여하지도 않았으며, 결과물이 그들의 생각대로 만들어지기를 원하고, 요구했다.
경영의 창시자 피터 드러커는 ‘미래의 랜드마크(The Landmarks of Tomorrow, 1957)’라는 책에서 지식을 바탕으로 경제적 활동을 하며 고도의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경제 분야가 확장될 것을 예견했다. 또한 지식 기반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일컬어 지식근로자(Knowledge Worker)라고 명명했다. 이들은 하루 생산량 기준으로 성과물을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학습을 통한 지식을 바탕으로 생산성과 창의성을 더해 경제적 성과를 만들어 낸다. 지식근로자의 경제적 활동은 생계를 위한 사고(Think for a living)의 결과로 만들어진다.
1957년에 발표한 지식근로자라는 단어가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이 1990년대이고, 2000년에 들어서 성과관리나 지식경제 같은 개념과 함께 확산되었다. IT 벤처 기업들의 붐과도 맞물린다. 이런 이야기를 건축 잡지에서 하는 이유는, 건축사들이 전형적인 지식 기반 경제활동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변호사나 의사처럼 건축사를 전문가라고 이야기한다. 피터 드러커의 책에서도 변호사 등을 언급하며 지식근로자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건축사에 대한 우리나라의 경제적 보상 과정은 변호사나 의사와는 완전히 다른 체계에 있다. 흔히들 우리가 말하는 노임단가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건축사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피터 드러커의 지식근로자라는 개념을 인용하면 건축사는 전형적인 지식근로자다. 건축사는 일정기간 전문 교육을 받고, 실무과정을 거쳐서 국가시험을 통해 자격증을 받은 후 자기 이름으로 결과물을 책임지는 일을 한다. 근육을 쓰는 육체노동이 아니라, 학습과 경험에 기반을 두고 생각·판단하면서 건축을 창조한다.
그런데, 이에 대한 보상기준이나 경제적 대가의 출발이 되는 건축사의 시간당 기준, 즉 노임단가는 우리나라 어떤 자료나 기준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기준이 없다 보니 엔지니어링 노임단가를 준용해 대가산정을 하는 실정이다.
때문에 2021년은 건축이 지식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원년이 되기를 희망한다. 시장조사를 통한 통계 방식의 노임단가 기준 산정 방식이 아닌, 지식 기반 노임 기준 마련의 첫걸음이 되는 해 말이다. 당연히 건축사뿐만 아니라 건축사보 역시 이에 해당된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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