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의 경제적 가치, 그리고 건축의 공정성 2020.11

2023. 1. 26. 09:18아티클 | Article/에디터스레터 | Editor's Letter

The economic value of an authority, and the fairness of an architecture

 

건축사의 업역은 모호한 부분이 많다. 건축사가 공학적 엔지니어이면서 동시에 예술적 창의적 산물을 다루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적성 검사에서 문과적 기질과 이과적 기질이 5:5로 나온 사람이 하기에 딱 좋은 직업이다. 이런 경계적 특징이 장점이면서 사실 논란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이과적 특성은 정확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과값이 나오는 것이다. 감정이나 주관적 개입보다는 수치와 데이터 등의 명확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 엔지니어적, 즉 이과적 특성이다. 건축은 이런 이과적 결과가 나오는 산물이다. 그런데, 수치와 데이터의 산물로 만들어진 건축의 전 과정은 매우 감성적이고 주관적인 요인들에 좌우된다. 그것이 바로 미적 관점이고, 기능에 대한 해석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 건축은 항상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공정을 이슈로 확대되고 있는 공공건축 설계공모는 논란과 불법의 단골 메뉴이며, 비리의 온상으로 비난과 비판의 대상이 된다. 과연 방법은 없는 것일까?
흔히들 말하는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의 건립과정은 이런 경계적 특징이 논란이 되고, 결과가 만들어지면서 극적인 반전을 일으킨 대표적 사례다. 오늘날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세계적 건축 유산으로 빛을 발하고, 그 가치를 의심받지 않는다. 하지만 요른 웃존의 설계안이 당선되고, 건축이 진행되는 과정 내내 호주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한마디로 난리가 났었다. 증액된 공사비는 정치적 논란의 핵심이 됐고, 선발 과정의 공정성 시비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다. 1957년 국제설계공모에 제출된 요른 웃존의 계획안은 매우 단순한 도식에 가까운 형태였다. 223개의 참가작 중 218번째 참여해 마감 시간을 놓친 계획안으로 유명하다. 당시 운송 형편을 고려해서 마감날짜 훨씬 전에 배송한 증거를 제출해 위반사항이 아님을 입증했다고 한다. 아주 자세한 세부 내용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 세계적 명성이 있던 심사위원 에로 사리넨의 강력한 당선 주장과 맞물려 제출 시간의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38세의 젊은 건축사 요른 웃존의 디자인은 모험적이고 과감해 호주에서 상당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이후 이를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건설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고, 급기야 호주 정부는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게 된다. 정쟁의 대상이 되어버린 건축이었다. 이런 정치적 논쟁에서 요른 웃존은 자의반 타의반 1966년 프로젝트를 떠나게 되고, 호주 정부가 지정한 호주 건축사들이 작업을 마무리하게 된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오늘날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건설공학의 새로운 시도로 인정받고, 미학적 측면에서 에로 사리넨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되었다. 결국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상징이 되었고, 과거 최초 설계자이며 디자인 창조자인 요른 웃존에게 호주 정부가 사과하게 된다. 그때가 1999년 즈음이다. 이후 호주 정부는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증축 및 개축 등의 후속 디자인 일체를 요른 웃존에게 요청한다.
이 과정을 살펴보면 현재 우리 시각으로 보았을 때 논란이 될 만한 공정성 시비의 내용이 한둘이 아니다. 마감기한이 논란이 되는 제출물에 대한 에로 사리넨의 선택과 주장. 요른 웃존이 초기 참여하고 이후 배제된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페라 하우스 건축사로 유일하게 인정받는 요른 웃존. 정부의 건축사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배려. 이런 과정을 보면서 마냥 부럽다는 시각보다는 이런 과정이 충분히 논란이 됨에도 불구하고 결국 인정받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하게 된다. 그것은 전문가의 권위와 전문가에 대한 믿음이다.
오늘날 우리는 ‘권위’라는 단어를 매우 불편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권위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일정한 부문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일정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이나 위신, 또는 그런 사람’을 의미한다. 전문가 집단에서 인정받는 전문성을 사회가 인정하는 것이고, 그렇게 인정받는 권위는 정량적으로 불가능한 결과를 오히려 속도감 있고, 효율적으로 나타나게 한다. 에로 사리넨의 선택을 정량적으로 객관화한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고, 그러는 것은 실제 불가능하다.
이런 과정을 보면 우리 건축계, 나아가 우리 사회가 상실해버린 ‘권위’의 가치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전문집단에 대한 인정으로 확보된 ‘권위’의 생산성과 효율성, 그리고 경제성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