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 타다오의 분노 2021.3

2023. 2. 1. 09:22아티클 | Article/에디터스레터 | Editor's Letter

Tadao Ando's Anger

 

2000년대 중반 안도 타다오를 취재했던 한 교수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평소 거칠고, 엄격하기로 유명한 안도 타다오가 직원들을 교수와 기자 앞에 세우고, 출신 대학을 언급하면서 그들이 일본 건축을 망치는 패거리 문화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실례인 일본 문화에서 유학파나 도쿄대를 운운하며 흥분한 안도 타다오. 그리고 그는 비행기가 일본의 땅을 박차고 이륙하는 순간 “이래저래 답답한 일본의 줄 세우기 문화와 패거리 문화에서 해방감을 느낀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취재한 교수는 이 말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고 했다. 자칫 들어보면 안도 타다오가 일본을 싫어하는 건가 싶기도 하지만, 실제 그는 가장 일본적인 건축을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의 분노는 어떤 연유에서일까?
문득 오래전 책에서 읽은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안도 타다오는 1990년대 세계 무역 박람회의 일본관을 설계한 적이 있는데, 당시 일본 고위 관료가 안도 타다오의 출신을 묻고는 짜증을 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990년의 안도 타다오는 이미 세계적인 스타 아키텍트(Starchitect)였다. 아르마니나 베네통 등 글로벌 기업들, 디자이너들로부터 설계 의뢰를 받을 정도였고, 일본 정부도 안도 타다오를 국가 브랜드 홍보에 앞세울 정도로 이미 세계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안도 타다오에 대한 고정 관념, 주류 사회의 질투가 존재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결국 안도 타다오의 분노는 이런 편협함과 우월감을 가진 집단에 대한 것임을 유추해볼 수 있다. 흔히 이런 우월감은 소위 주류라는 조직에서 종종 나타난다. 어느 사회, 어느 분야, 어느 조직에나 존재하는 1% 집단, 다시 말해 엘리트 집단에서 훨씬 강하게 나타난다. 동전의 양면처럼, 조직 내 동질감을 키우고 사회를 지탱하고 끌고 간다는 사명감을 갖게 하는 반면, 지나칠 경우 끼리끼리 문화, 자신들만 최고라는 배타성으로 인해 조직 간에 벽을 만들고, 대중과의 괴리를 불러온다.
안도 타다오는 편견이 없는 엘리트로부터 주목받으면서 세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자생적 일본 모더니스트로 유명한 토고 무라노나 일본 건축의 2세대 리더였던 단게 겐조라는 인물이 안도 타다오를 주목하고 주변을 설득했다고 알려져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안도 타다오는 가난한 집 쌍둥이로 태어나 학력은 고졸이 전부인 복서 출신이다. 오로지 타고난 감각과 노력만으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인생을 걸고 싶은 일인 ‘건축’에 매달렸다. 철저히 비주류였던 것이다. 그는 셀 수 없는 도전과 그로 인한 실패를 맛봤다. 그런 까닭에 연전연패라는 책을 썼을 정도다. 어느 순간 이런 비주류 노력파를 일본의 엘리트 리더들이 인정해 준 것이다. 하지만 그가 성공하기까지 겪었을 갖은 수모와 감정적 소모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우리 사회 역시 일본 못지않은 군집 사회고, 집단 사회로서 소위 학력이나 유학 등을 통한 엘리트 의식이 존재한다. 어쩌면 일본보다 견고한 엘리트 의식으로 똘똘 뭉쳐 있을지 모르며, 필요 이상으로 권위적인 면도 있다. 그러다 보니 학력 세탁이라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기도 한다. 기득권 입장에선 보상심리로 우월감에 도취한 나머지 자신들을 선민(選民)으로 여기며, 스스로의 흠결에는 너그러운 면도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시대착오적이며 비합리적인 행태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주변을 둘러보자. 세계 1등 기업들이 속출하고, IT 분야에서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강국이다. 우리말로 부른 노래가 세계 최대 대중음악 시장에서 인정받고, 심지어 빌보드차트에서 1위를 한다. 일본 만화의 그림자였던 대한민국 만화는 시장을 휩쓸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미술 분야는 세계적 작가들이 속출했다. 클래식 분야는 말할 것도 없다.
이젠 우리 건축이 그래야 하지 않을까? ‘진짜 엘리트’는 열린 시각을 가진 사람이다. 개인의 능력도 좋아야 하지만, 자신의 기준만 옳다는 믿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 이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풀어나가고, 균형을 잡아주는 이가 진짜 엘리트다. 일본의 토고 무라노나 단게 겐조, 그리고 치열함으로 무장한 안도 타다오를 보노라면 장기적인 안목으로 공동체의 균형을 잡아주고 방향을 잡아 미래를 그려내는 ‘진짜 엘리트’가 필요하다는 점을 새삼 절감한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