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경쟁, 그리고 생존을 위한 협상력 2021.5

2023. 2. 3. 17:33아티클 | Article/에디터스레터 | Editor's Letter

Fairness, competition, and negotiation for survival 

 

처절하게도, 건축사들이 내건 구호는 ‘생존’이다. 이번 대한건축사협회장 선거의 구호였다.
처음 들었을 때, 굳이 그런 표현을 사용해야 할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내면으로는 온전히 공감하며 동의할 수밖에 없는 단어였다. 경제적 부분에서 본다면 나는 생존보다 건축이라는 일 자체에 더욱 무게 중심이 쏠려 있다. 그래서 생존이라는 단어가 확 와닿진 않았지만, 생각을 거듭하면서 ‘생존’은 건축을 하는 건축사라는 직업에 대한 표현으로 이해되었다. 맞다, 현재 우리 ‘건축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벼랑 끝에 있다.
대한민국에서 국가로부터 자격이 공인된 ‘건축사’는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 중이다. 오죽하면 일부 회원들의 명함에 “건축사는 국가로부터…”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을까? 건축사는 그냥 건축사인데 말이다. 의사를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의료인이라고 하거나, 변호사를 국가로부터 인정받는 법률가라고 설명하지 않는데 유독 ‘건축사’를 이렇게 설명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병폐와 관습, 제도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점 등이 이유였을 수도 있고, 불법과 부정 등 좋지 않은 이면의 폐해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한 번 이미지화되고 고착된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영원히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니다. 노력하면 된다.
그런 노력의 첫 번째는 공정함이다. ‘공정’은 건축계뿐만 아니라 2021년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사회적 화두다. 공정이란, 사전적 의미로 공평하고 이치에 맞는 올바름이다. 그렇다면 공평은 무엇인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평등하게 대한다는 말이다. 이치에 맞는 올바름은 어떤 일을 마땅히 해야 할 당위적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건축은 ‘경쟁’ 속에서 이루어진다. 공정은 과정을 말하는 것으로, 경쟁이라는 단어와 맞지 않는다.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납득하고 이해할 만한 경쟁이어야 하는 것이다. 경쟁의 결과는, 공정한 결과가 아니라 경쟁을 통해 선택되는 과정이 공정한 기준 아래서 ‘전문적 권위’로 판단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도 된다. 
건축에서 공정은 결과가 아니라 바탕인 셈이다. 공정한 바탕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건축계의 첫 번째 과제이고, 건축계의 중심에 있는 건축사는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할, 그리고 그 결실의 축복을 받을 핵심 집단이다. 문제는 건축사들이 매번, 수십 년째 이런 공정한 바탕에 대한 회의를 느낀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경쟁의 치열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나 묵인하고 침묵하는 ‘경쟁’의 뒷면에서 벌어지는 ‘불공정’한 바탕에 분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이 수십 년째 누적되면서 건축사는 오해에서 비롯된 왜곡된 이미지를 갖게 됐다. 오해의 바탕에는 억울한 부분도 많다. 실제 조달청이 주관하는 설계공모의 경우 비건축사가 심사위원의 100%를 차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공정한 대상으로 지목된 건축사들에 대한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더 처절하고 치열하게 현실을 극복해나가야 한다. 그 첫걸음은 건축사들의 앞에 놓인 게임을 공정한 바탕에서 잘 해내는 것이다. 바로 ‘설계공모’로 치러지는 각종 건축 경쟁 말이다.
최근 한 설계공모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이성관 원로 건축사로부터 감동을 받았다. 참여작을 보며 완성까지의 고생과 노력을 높이 사고, 심사 과정에서 작품들 하나하나의 분석과 토론을 주도했다. 나를 비롯한 다른 심사위원들이 지칠 정도의 질문과 집요한 토론으로 이성관 건축사를 비롯한 모든 심사위원들의 판단이 조금씩 수정되었고, 당선작이 확정되었다. 참여한 모든 심사위원들은 박수로 심사를 마무리하며 좋은 작품이 당당하게 당선되었다고 자평했다.
이처럼 공정한 바탕에서 제대로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건축사들이 더 적극적인 발언, 적극적인 참여를 해야 한다. 이러한 당당함은 생존을 고민하는 건축사의 최고 협상력이다. 그래야 더 이상 처절하게 생존권을 언급하지 않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건축사의 품위와 도덕적인 사회적 지위도 보장받을 수 있다. 
건축사는 그냥 건축사여야 한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