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네 종족들 2021.7

2023. 2. 7. 09:26아티클 | Article/에디터스레터 | Editor's Letter

Gulliver's Travels, Four Races

 

걸리버 여행기를 동화로 알고 있다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저자 조너선 스위프트는 감옥에 갈 각오를 하고 이 책을 출판했다. 풍자의 신랄함은 출판사가 몰래 수정할 정도였다.
스위프트가 바라본 18세기 영국은 문제가 많은 나라였고, 비판의 대상이었다. 걸리버 여행기는 본인이 소속된 사회 전체를 유머와 냉소적 비유로 날카롭게 풍자하는 책이었다. 물론 그의 우화에 나오는 가공의 나라들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아이들의 동화로 착각하기도 한다. 아둔한 사람들은 흔히들 숨겨진 은유와 위장된 본질, 핵심을 모른 채 이 이야기를 인용하곤 한다. 그것이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하지만.
갑자기 우리 사회에 대한 언론의 중계를 보면서 걸리버의 세계가 떠올랐다. 걸리버의 나라를 보면 딱히 18세기 영국만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순된 존재와 사회를 떠올리게 한다. 사람 사는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는 시대를 막론하고 여전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거인국과 소인국만 알지만, 그의 책에서는 상상의 나라를 네 곳이나 방문한다.
첫 번째로 방문한 소인국 ‘릴리퍼트’에 사는 이들의 평균 키는 약 15센티미터다. 이들은 순진하고 겁이 많지만, 명분 없는 것에 집착하고 은근히 욕망 덩어리들이다.
두 번째로 도착한 곳은 국민들의 키가 약 30미터에 이르는 거인국 ‘브로브딩낙’이다. 이곳에서 걸리버는 인격체가 아닌 장난감 취급을 받으며 돈벌이 대상이 된다.
세 번째로 도착한 나라는 하늘을 나는 ‘라퓨타’라는 세상이다. 이곳은 발달한 과학으로 지상을 통치하는 왕족의 세계다. 무용한 지식으로 남성우월주의 사회를 구성하는 이들은 폭력적으로 지상을 통치하고 다스린다. 스위프트의 풍자 백미는 라퓨타라는 명칭에 있다. 지적 허영으로 가득하며 전혀 실용적이지 않은 허상과 명분을 내세우는 고등생명체가 사는 나라 이름이, 스페인어로는 ‘창녀’를 지칭한다. 당시 영국 계급의 정점에 있던 귀족과 왕족에 대한 신랄한 풍자다.
네 번째로 배가 난파되어 도착한 곳은 인간을 지배하는 말들의 세계다. 후이늠으로 불리는 말들은 인간을 야후라고 부르며 짐승처럼 다루고 있었다.
외향은 말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이들은 계급이 없는 평등사회이자 욕심을 채우기 위한 전쟁이 없는 이상적 사회를 구축하고 있다. 후이늠의 세계를 이상적인 유토피아적 세상으로 그린 걸리버는 하필이면 왜 그 대상을 인간이 아닌 말의 모습으로 표현했을까? 또 어째서 인간을 가축처럼 욕망과 욕구의 존재로 묘사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문득 우리 건축계가 중첩되는 건 왜일까? 엘리트라는 허영과 지적 오만함에 위선적으로 떠들어대며 나선 이들도 있고, 우물 안이 좋다고 바깥은 모른다는 우물 안 개구리도 있다. 그런가 하면 돈에 대한 욕망과 생존이라는 핑계로 법과 규칙을 무시하는 위반자들도 많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묵묵히 법과 규칙 아래에서 조용히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는 순진한 건축사들이 가장 많다. 우리는 이렇게 조용히 법과 규칙을 준수하면서 책임을 부담하는 대다수 건축사를 위해야 한다. 비록 관료들이, 정치인들이, 건축사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칼자루를 휘둘러도 참고 설득해야 한다. 어쩌랴, 그들의 공부가 부족함을 탓하기엔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힘이 너무 센 사람들이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