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6. 09:25ㆍ아티클 | Article/에디터스레터 | Editor's Letter
Snobbish Architect
고령의 베테랑 배우 윤여정 씨가 각종 국제 영화제 수상으로 화제다. 그녀의 재치 있는 인터뷰는 국내·외에서 주목받았다. 특히 얼마 전 영국 아카데미영화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그녀가 했던 유머러스한 발언으로 고약한 단어 하나가 회자되었다.
위선적이고 거만한 사람들을 비꼬는 말로 ‘Snobbish’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교양 있는 척하지만 뒤에서는 자신들의 잇속만 차리고 호박씨 까는 위선과 속물을 일컫는다. 그녀는 영국 아카데미영화제의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자리에서 그런 단어를 대놓고 사용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자리, 어떤 상황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듣는 이의 감정적 반응이 달라진다. 윤여정 배우의 노련함은 듣는 이들이 뜨끔할 만한 말을 쓰면서도 사람들을 유쾌하게 만들었다.
인터넷을 검색하다 발견한 그녀의 유쾌한 인터뷰는 새삼 우리 건축계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그녀가 언급한 Snobbish England people 대신에 Snobbish Architect라는 단어가 새삼 떠올랐다.
어떤 분야나 그렇겠지만 우리 건축계는 참 독특한 곳이다. 다른 산업과 비교해 봤을 때 경제성, 생산성이 상당히 낮은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기죽지 않는다. 학력도 낮지 않다. 오히려 학력 인플레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석·박사 학위자가 정말 많다. 유학도 많이 간다. 전 세계 유명 건축 대학에는 한국인이 없는 경우가 없다고 한다. 한국인이 없는 건축대학은 정말 인정받지 못하는 대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데, 많은 건축계 인사들이 사석에서 만나는 모임을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다. 뒷말도 많고.
그거야 누군들 안 그러랴? 서양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해당 소재가 수많은 풍자 소설과 영화에 그렇게 많이 다뤄지는 것이다. 문득 월간 건축사 ‘영화 속 건축 이야기’ 코너에서 한 번 다뤘던 영화 <아키텍트(The Architect)>가 떠오른다. 이 영화 속 건축사는 전형적 가식과 위선, 지적 허영심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일부러 찾은 듯한 고상하고 어려운 단어들을 구사하면서 클라이언트에게 환상과 낭만을 강요한다. 자신의 꿈을 클라이언트를 통해 성취하려는 욕망 그 자체인 이기적 인물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인물을 금방 만날 수 있다. 알고 있는 한 젊은 건축사가 자신이 일했던 직전 회사 대표 건축사를 언급하면서 ‘도련님 건축사(가)’라는 표현을 썼는데, 뉘앙스가 딱 Snobbish Architect였다.
하지만 이런 위선은 생각에 따라서 쉽게 벗어던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인정에 대한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는 그대로의 상황과 자신을 받아들이면 된다. 그건 비단 건축사(가)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이들에게 해당된다.
고령의 베테랑 배우 윤여정 씨는 영국 아카데미영화상에 연이어서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수상식장에서의 발언과 이후의 발언에서 자신의 감정과 상황을 모두 솔직하게 드러냈다. 열심히 일한 엄마가 받은 보상이라는 말, 먹고살기 위해서 연기를 했다는 그녀의 솔직함은 75세 노배우의 팬덤(fandom)을 구축하는 공감과 감동을 주었다.
나는 요즘 생존형 건축사라는 말이 너무 좋다. 껍데기로 꾸미지 말자. 모두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나 르 코르뷔지에가 될 필요가 없다. 옆 사람이 김중업이 되든, 김수근이 되든 축하해 주고 응원하자. 질투하지 말자. 그저 스스로 건축하는 자체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자. 그런 건축사가 되자.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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