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지구…표준화된 건축법. 이젠 지역별로 전문화해야 할 시점이다 2021.4

2023. 2. 2. 09:25아티클 | Article/에디터스레터 | Editor's Letter

Region·District…Standardized Building Act. 
Now is the time to specialize by region. 

 

건축은 매우 복잡하면서도 독특한 분야다. 법과 제도, 관습과 문화적 바탕, 창의적 자의식의 발로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면서 현실화되기 때문이다. 이런 복합적 속성 때문에 사람마다 건축을 보는 시선과 각자의 주장이 다르다.
나는 항상 건축을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더듬는 것’으로 비유한다. 만지는 부위에 따라 대상이 달리 판단되는데 넓은 귀는 새의 날개 같고, 커다란 상아는 뿔 달린 사슴 같고, 기다란 코는 뱀 같고, 넓은 뱃가죽은 돼지처럼 느껴진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기술로 보면 공학의 첨단이고, 완성된 규모를 보면 건설 시공의 성과다. 실험적인 재료나 외모는 첨단 재료공학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결과물들은 제도와 법 안에서 만들어진다. 
건축법의 바탕을 보면, 관계 때문에 만들어지는 것들이 많다. 이웃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일조권 제한이 있고, 이웃한 대지 소유자와의 관계 때문에 적당히 간격이 떨어져야 한다. 모두가 사용하는 공용 보행로나 도로 때문에 건물은 밀려나야 한다. 이리저리 봐도, 건축과 관련한 대부분의 법은 도시와 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내부도 마찬가지다. 불이 나서 피난할 곳이 없자 피난 탈출구와 발코니 등과 관련한 법이 등장했다. 1970년대 초반, 남대문 앞에 있던 도쿄호텔에 불이 나서 피난한 사람들이 돌음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사망하자 피난계단은 계단참을 두도록 하는 법이 만들어졌다. 
법 이전에 건축을 계획하는 단계에서 건축사는 의뢰인의 다양한 요구에 반응하며 건축물의 형태를 다듬고 만든다. 그리고 본인의 감성과 논리를 혼합해 법과 기술, 대화와 타협, 협상을 통해서 디자인을 만들어낸다. 수많은 요구 조건들을 채워나가며 퍼즐 하듯 창작하는 건축은 완전한 주문 제작(Order Made)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사회가 커지고 복잡해지면서 산업의 도구와 생산의 결과물로 바라보는 건축이 많아졌고, 건축이 준주문제작 방식으로 탄생하고 있다. 그러면서 부수적인 부분들이 부각되고 사회적 이슈화되고 있다. 또 시공 시의 사고나 화재, 사회적 트렌드 등이 건축을 흔들고 있다. 그리고 법이 만들어진다.
이는 잘못된 흐름이 아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 뭘까?
우리 속담에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이 있다. 효율적이지 못하고 비용의 낭비가 커진다는 말이다. 안전과 환경, 이웃과의 관계는 분명히 중요하다. 건축은 이런 모든 것을 담아야 한다. 문제는 백 원짜리를 만들기 위해 천 원을 쓰는 어리석은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는 고도화되고 다양해지는데, 모든 상황에 단순한 표준을 요구하는 법과 제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늘고 있다. 각종 심의, 각종 법과 절차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안전과 환경, 각종 민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 이런 방법밖에 없을까? 지역마다 각기 다른 다양한 배경이 있는데, 전국을 똑같이 만드는 현재의 건축 관련 제도와 법은 과연 유용한가?
우리는 이미 이를 보완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지구단위계획으로 개별적 디자인의 가이드라인을 만들 수 있다. 특별건축구역이라는 제도도 있다. 입체적으로 지역별 건축 가이드라인의 제도화가 가능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살펴보면 건축적으로 허술한 부분이 너무 많다.
건축사는 전문가이다. 도시와 건축에 대한 최고의 전문가다. 그래서 상상해 본다.
적어도 도시지역의 지역, 지구를 없애자. 과연 2021년에 전용주거지역, 일반주거지역, 준주거지역 등의 지역 구분이 타당한가? 사회적 상황에도 어울리지 않는 20세기 족쇄다. 없애야 한다.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건축법과 각종 도시와 관련된 건축법 규정도 최소화하고, 대신 모든 지역을 세분화해서 지역별 지구단위계획의 건축적 시뮬레이션을 만들어보자. 이를 ‘입체적 지구단위계획 지침’으로 해서 우리나라 전 지역의 지형과 문화적 배경에 어울리는 건축과 도시를 만들도록 하자. 그리고 이를 건축사가 주도해야 한다.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