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새로운 시대의 리더십 2021.3

2023. 2. 1. 09:19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자 註

 

엘리트라는 말이 오래전에 많이 사용되다가, 최근에는 거의 회자되지 않고 있다. 이 용어는 원래 사회 각 분야의 오피니언 리더이자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는, 심지어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영향력을 갖는 소수의 사람들을 일컫는다. 원래 귀족주의에서 탄생된 개념이다.
엘리트주의자는 인식의 틀을 뛰어넘는 자신만의 비전과 아이디어로 스스로 존재감을 갖는다. 혁신가적 정신을 발휘해 사회 각 분야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겸손이라는 덕목, 그리고 구성원들 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자질이 요구된다. 현시대상을 보면 일부이긴 하지만 스스로 선택받았다는 믿음과 착각, 오만이라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듯한 인상도 받기 때문이다. 
대중의 학습능력이 높아져 지식의 독점화가 가능하지 않게 되면서 우리 사회도 엘리트라는 단어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개인 중심의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보편적인 교육의 평균화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정치권력이 선거를 통해 선택되는 개방적 민주주의 때문인 것 같다.
분명 우월적 엘리트주의에 의해서 공동체, 사회구성원들이 분열되고, 갈라지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공동체에게는 너무나도 큰 해악이 된다. 차별주의적 속성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인데, 그런 점에서 소수의 엘리트주의자들이 갖는 우월감·계급의식은 사라져야 한다.
우리 건축계 역시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2021년 대한건축사협회는 벌써 세 번째 직선제 선거를 치렀다. 온라인 투표제로 1만여 명의 회원들 중 86.01%의 회원이 투표에 참여했다. 개업 또는 등록 건축사 2/3가 가입해 있는 국내 최대 건축사 조직에서 86.01% 투표율, 이중 6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된 직선제 회장은 명실공히 국내 건축사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의원제나 국가가 지정하던 엘리트 중심의 소수 독점이 아닌 다수로부터의 득표를 통해 실질적인 권한을 위임받아 영향력뿐만 아니라 막강한 대표성을 갖는다 할 것이다. 
현대 한국 건축의 위상과 경제적 상황은 급변하는 사회와 정치 변화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우리 건축계가 소수의 엘리트주의에 기반한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집단사고에 꽁꽁 묶여 있는 건 아닌지……. 민주화된 직선제 방식의 다수 중심 체제가 당대에 합리적이면서 나아갈 방향이 아닌지 새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진정한 엘리트로서가 아닌 엘리트 의식에만 사로잡혀 폐쇄적 형식주의자들로 우리 건축사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원하는 리더의 모습은 무엇일까? ‘우리는 다르다’라는 그런 우월의식이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서 함께하는, 사려 깊은 숙의를 통해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엘리트주의자가 아닐까?

 

 


02 Leadership in a New Era

 

의무가입 시대를 앞둔 건축사협회의 과제
건축사협회 의무가입 제도의 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지금까지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하고 합의를 얻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였다면, 이제 의무가입 시대에 어떻게 협회를 운영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그간 해온 만큼의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의무가입으로 회원 수만 늘려 놓고 과거와 같은 체계와 관성대로 협회를 이끌어 간다면 의무가입의 의미는 협회의 규모와 세를 키우기 위한 것으로 폄하되고 회원들의 불신과 방관만 얻게 될 것이다. 

1995년도까지만 해도 7,900명이었던 건축사의 수는 점차 늘어 2019년에는 건축사 23,000명 시대를 맞았다. 늘어난 회원의 수만큼, 아니 사회변화의 폭을 고려하면 그보다 훨씬 더, 회원들의 가치관과 요구도 다양해졌을 것이다. 그런 다양하고 다층적인 요구와 개성들을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가 의무가입 시대를 앞둔 건축사협회의 향후 과제일 것이다.  

 


과거의 질서가 통용되지 않는 뉴노멀 시대 도래
필자가 건축에 입문한 1990년대는 엘리트가 사회 각 분야를 선도하는 시대였다. 전문가의 숫자가 적은 건축계에서는 그런 현상이 더욱 강했던 것 같다. 현대 건축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부족했기에 선진 교육을 받은 소수의 전문가들이 학계와 건축문화 전반을 선도했고, 엘리트 건축사들의 디자인 철학이 마치 규범과 같이 받아들여졌다. 주요 건축단체들도 일부 학벌과 경력을 가진 그룹의 주도하에 운영되었다.

21세기에 접어든 지 20년, 정치·경제·문화 등 어느 곳 할 것 없이 많은 변화가 있었고 소수의 엘리트가 사회 전체를 선도하는 시대는 저물었다. 국민들의 교육, 지식수준의 상승과 평준화로 엘리트를 구분 짓는 경계가 희미해지기도 했지만, 절대적인 진리나 가치관이 작동하기 어려운 다변화와 불확실의 시대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과거의 이상이 현재의 이상이 아니고 과거의 질서가 이제는 통용되지 않는 ‘New normal(뉴노멀)’ 시대이다. 

실제로 우리는 LTE급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과거에 소중했던 가치가 지금은 다르게 평가되고, 과거에 우상이 되었던 디자인이 지금은 퇴색해버린 예를 흔하게 경험했다. 현재는 수시로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쏟아지고 또 실시간으로 대중들이 비평과 평가를 하면서 집단지성이 새로운 기술과 질서와 가치를 만들어가는 시대이다. 많은 분야에서, 전문가들조차 향후에 나타날 상황을 판단하거나 예견하기가 쉽지 않다.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
변화와 혼돈의 시대에 도태되지 않고 성장과 발전을 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건축설계를 하는 입장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개방적 태도와 유연함일 것이다. 지금까지 알고 있고 옳다고 믿었던 것에만 의존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시대에 맞게 변화하고 발전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20세기를 풍미했던 건축사들 중에 여전히 새로운 건축 작품을 선보이는 건축사들이 있다. 작품만 보아서는 같은 사람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과거의 작품과 전혀 다른 디자인으로 21세기에도 건재함을 보여준다. 
1963년부터 Galician Center of Contemporary Art, Santiago de Compostela 등 콘크리트와 석재를 사용한 모더니즘 건축으로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사 중의 한 사람인 Alvaro Sizar(알바루 시자)는 2020년에 곡선 형태의 검정색 메탈로 만든 Huamao Museum of Art Education을 선보였다. 1994년 국내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하는 전쟁기념관을 설계했던 이성관 건축사는 2017년에 전혀 다른 이미지와 공간을 갖는 여주박물관을 디자인했다. 

이렇게 세기를 넘어 활발히 건축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디자인관을 고집하지 않으며 가지고 있던 지식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시대상을 받아들이고 새롭게 창조하려는 노력과 의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창조적인 변화의 뒤에는 또 다른 비결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특출한 자신의 능력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른 세대와 교류하고 젊은 후배들과의 적극적인 협업을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지속적 발전을 위한 유연함 갖춰야…
‘개방적 태도와 유연함’의 필요성은 설계와 개인의 성장에서뿐만 아니라 어떤 조직이나 집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소수에 의해 주도되는 폐쇄적인 집단은 보수적이고 한정된 시야를 가질 수밖에 없다. 민주적이고 개방된 조직이 변화에 민감하고 범용될 수 있는 좋은 기준을 만들 수 있고, 유연한 태도와 의사결정이 가능한 조직이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우리 협회도 개방적이고 유연한 자세를 겸비하고, 전체 건축사회원과 범건축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성장을 위해 나아가기를 바란다.

 

 

 

글. 이기향 Lee, Gihyang 건축사사무소 한 아키텍트 <서울특별시건축사회>

 

 

 

이기향 건축사사무소 한 아키텍트·건축사·독일 건축사

대한건축사협회 미래전략단 위원 역임. 국민대학교 건축대학 겸임교수.

 

 

 

 

gihyang@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