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한국 건축의 엘리트주의(Elitism)와 엘리트주의자(Elitist) 2021.3

2023. 2. 1. 09:20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자 註

 

엘리트라는 말이 오래전에 많이 사용되다가, 최근에는 거의 회자되지 않고 있다. 이 용어는 원래 사회 각 분야의 오피니언 리더이자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는, 심지어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영향력을 갖는 소수의 사람들을 일컫는다. 원래 귀족주의에서 탄생된 개념이다.
엘리트주의자는 인식의 틀을 뛰어넘는 자신만의 비전과 아이디어로 스스로 존재감을 갖는다. 혁신가적 정신을 발휘해 사회 각 분야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겸손이라는 덕목, 그리고 구성원들 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자질이 요구된다. 현시대상을 보면 일부이긴 하지만 스스로 선택받았다는 믿음과 착각, 오만이라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듯한 인상도 받기 때문이다. 
대중의 학습능력이 높아져 지식의 독점화가 가능하지 않게 되면서 우리 사회도 엘리트라는 단어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개인 중심의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보편적인 교육의 평균화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정치권력이 선거를 통해 선택되는 개방적 민주주의 때문인 것 같다.
분명 우월적 엘리트주의에 의해서 공동체, 사회구성원들이 분열되고, 갈라지는 것은 중장기적으로 공동체에게는 너무나도 큰 해악이 된다. 차별주의적 속성에 근간을 두고 있기 때문인데, 그런 점에서 소수의 엘리트주의자들이 갖는 우월감·계급의식은 사라져야 한다.
우리 건축계 역시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2021년 대한건축사협회는 벌써 세 번째 직선제 선거를 치렀다. 온라인 투표제로 1만여 명의 회원들 중 86.01%의 회원이 투표에 참여했다. 개업 또는 등록 건축사 2/3가 가입해 있는 국내 최대 건축사 조직에서 86.01% 투표율, 이중 6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된 직선제 회장은 명실공히 국내 건축사를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의원제나 국가가 지정하던 엘리트 중심의 소수 독점이 아닌 다수로부터의 득표를 통해 실질적인 권한을 위임받아 영향력뿐만 아니라 막강한 대표성을 갖는다 할 것이다. 
현대 한국 건축의 위상과 경제적 상황은 급변하는 사회와 정치 변화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우리 건축계가 소수의 엘리트주의에 기반한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집단사고에 꽁꽁 묶여 있는 건 아닌지……. 민주화된 직선제 방식의 다수 중심 체제가 당대에 합리적이면서 나아갈 방향이 아닌지 새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나아가 진정한 엘리트로서가 아닌 엘리트 의식에만 사로잡혀 폐쇄적 형식주의자들로 우리 건축사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원하는 리더의 모습은 무엇일까? ‘우리는 다르다’라는 그런 우월의식이 아니라 국민의 입장에서 함께하는, 사려 깊은 숙의를 통해 공공의 문제를 해결하는 엘리트주의자가 아닐까?

 

 


01 Elitist and Elitism in Korean Architecture

 

한국 건축 엘리트주의에 대한 자료를 찾다 보니 2019년에 황태주 교수가 기고한 ‘우리 건축의 엘리트주의와 엘리트를 생각한다’란 글을 발견하였다. 우리 건축계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생각과 이를 통해 여론을 주도할 수 있는 건축 엘리트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함께 그는 두 가지 현상을 주목했다. 하나는 우리 시대 대부분의 건축사들은 생활건축 설계물량의 축소에 따른 당장의 현실에 메어 있어서 큰 방향의 건축 정책이나 지향점에 대한 공감이 부족하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소위 건축계의 엘리트들은 서로 간의 의견과 관심이 상이해서 정치인이나 관료 등 비 건축 전문가들에게 건축정책의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 시험제도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 ‘시험 응시자격’

한국 건축의 근간을 형성하는 건축사를 선발하는 시험제도를 보더라도 건축정책에 대한 건축사들의 무관심과 상이한 의견으로 현재 우리는 공감하지 못하는 시험 시스템을 갖게 되었다. 연 2회 실시되는 시험 횟수와 이로 인해 증가하는 합격자 수에 가려져 이미 자격을 취득한 건축사들에게는 관심이 덜한 사항이겠지만, 현재의 시험제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건축사시험을 응시할 수 있는 자격에 대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건축사 자격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다음 세 가지 요건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 먼저 건축사 예비시험에 합격한 상태에서 건축사 예비시험 응시자격 취득일 이후 5년 이상(인증 5년제 건축학과 졸업자는 4년 이상) 건축에 관한 실무경력이 있어야 하며, 2019년까지 예비시험에 합격한 자에 한하여 2026년까지 자격시험 응시 기회가 주어진다. 두 번째는 건축사 실무수련 신고 후 시험 전일까지 실무수련 완료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하는데 인증 5년제 건축학과 또는 건축학 대학원 이수자는 실무수련 3년 이상, 비 인증 5년제 건축학과 또는 건축학 대학원 이수자는 실무수련을 4년 이상 받아야 한다. 세 번째는 외국 건축사 면허나 자격을 취득한 경우 통틀어 5년 이상 건축에 관한 실무경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요건 중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학력에 따라 건축사 자격시험에 대한 응시자격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특정 학제 졸업생에게만 응시를 허용하는 건축사 자격제도 시행은 해외나 타 분야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배타적인 규정으로 기존 제도 및 기성 건축사와의 형평성 측면에서 어긋나는 제도’라는 대한건축학회 4년제 건축교육위원회의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28개 4년제 건축 관련 학과, 79개 4년제 건축공학과, 37개 전문대학교, 39개 전문고등학교 등에서 배출된 학생들은 건축사가 되기 위한 기회가 사라지게 되었다. “사회는 권력을 가진 소수 엘리트와 가지지 못한 일반 대중으로 구별된다”라고 엘리트를 정의하는 말처럼 건축사가 될 수 있는 기회는 우리 사회에서 학력 엘리트만이 부여받을 수 있게 되었다. 대학을 입학하는 순간에 누군가는 졸업 후 3년, 졸업 후 4년이 지나면 시험을 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시험 볼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학력에 따라 응시 기회 차별하는 지금의 ‘건축사 자격시험’은 공정한가

표트르 펠릭스 그지바치는 그의 저서 ‘뉴 엘리트’에서 “앞으로는 세계적 문제의 해결이 인류의 진보를 견인할 것이다. 당연히 그를 위한 배움이 필요해진다. 유명 대학 졸업이나 대기업 사원이라는 자격은 더욱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그것을 얻기 위한 배움도 역시 급격하게 가치를 잃어가게 될 것이다”라고, 지금 시대에 필요한 것은 기존 올드 엘리트에게 중요했던 학력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엘리트의 기준도 변하고 있는데, 2002년에 건축학과 5년제 개편과 2011년 건축사법 개정에 따른 지금의 건축사 시험제도가 공정한가에 대한 의문을 가져본다.

2020년 건축사 자격시험 합격자 수는 2,298명이다. 평균 합격자 수보다 많았던 2019년 1,090명과 비교해도 111%가 증가한 수치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수치는 건축사 예비시험 합격자 수다. 2016년 771명에서 2017년 1,294명, 2018년 2,617명으로 계속 늘어났고, 2019년에는 2차례 시험을 통해 1차 2,502명, 2차 3,942명이 예비시험에 합격해 그 수가 증가했다. 4년 동안 1만 명이 넘는 건축사 예비시험 합격 인원은 2026년까지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지 못하면 그 자격이 상실된다. 시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는데 건축사사무소에 근무하기보다 더 늦기 전에 자격시험을 통과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러한 간절함이 건축사 자격시험에 대한 높은 합격률로 이어지고 최근의 건축사 자격시험 부정이라는 문제를 야기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렇게 합격자 수가 늘어난 건축사 자격시험 제도 하에서 시험에 응시하는 사람들은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건축사 자격시험을 응시하려면 5년제 건축대학 중 인증받은 학교를 졸업하도록 시험제도가 변경되었다. 학력에 차이가 있다고 해도 사무소 근속연수에 따라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던 ‘기회의 사다리’가 사라지고, 엘리트 건축사보만 시험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법을 만들 당시에는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인가.

 


국가가 나서 건축사의 ‘역량 있고 없음을 구분’…제도의 공정성은 지켜지고 있나

더욱이 건축사의 수가 늘어나다 보니 공공건축가, 마을건축가, 역량 있는 건축사 등 다양한 구분이 생겨나고 있다. 법적 책임과 권한을 부여한 건축사가 공공 건축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다시 ‘건축가’가 되어야 한다. 한국건축가협회에서 건축가 정회원을 인증하기 위해 만든 기준에 ‘건축사’ 자격이 없으며, 건축 인허가에 대한 권한이 없는 가운데 건축사 위에 ‘공공건축가’와 ‘마을건축가’가 생겨났다. 역량 있는 건축사 또한 공모전에 참여하여 당선된 건축사에게 역량이 있음을 국가가 인정하고 있다. 국가가 건축사 중의 엘리트를 선발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역량이 부족한 건축사를 뽑고 또 역량이 있는 건축사를 구분한다.

건축사 자격시험은 이와 같은 능력을 이미 검증하고 선발하는 것인데, 국가에서 선발한 건축사에게 지방자치단체의 공모전 결과에 따라 역량이 부여된다. 공모전 심사가 끝나고 나면 잡음이 생기기도 한다. 제도의 공정성이 지켜지고 있는 것인가? 실제적으로 건축설계 분야는 매우 다양하고 공모전에 참여하는 건축사도 제한적일 수 있다. 다양한 분야에 숨은 능력자가 많은데 공공이라는 이유로 ‘역량 있는’이라는 엘리트 수식어가 붙는다. 얼핏 잘못 생각한다면 건축사 자격시험이 건축사의 역량이 아닌 건축 인허가를 수행할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자격을 확인하는 것이란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시험이나 공모전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받게 될 때 느끼는 감정은 ‘억울함’이다. 어떠한 자격을 취득하기 위한 조건은 필요하지만 너무 높다 보면 디딤돌이 아닌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건축에 대한 문제와 관련하여 하나의 기준에 따라 인원을 선발하면 세상과 구분된 엘리트를 만들게 된다. 전체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인정되어야 하며 문제 및 변화에 대한 대처 능력이 필요하다. 경쟁 ‘Competition’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나가서 찾다’는 ‘peto’와 ‘함께’라는 의미의 접두어 ‘com’이 결합된 단어로 시핸 박사는 “경쟁은 서로를 더 확장해 주고, 서로를 더 북돋워준다. 경쟁에서는 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결국 모두에게 돌아가는 상승 작용이 일어난다. 그 덕분에 모두가 승리자가 된다”고 말했다.

 


자격시험, 다양한 인재 선발이 가능토록 해야

정책의 일관성도 중요하지만 사회는 트렌드에 따라 매우 빠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매년 발행되는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와 같이 변화에 대한 순발력 있는 대응이 필요하다. 미국 항공 우주국 NASA조차 변화에 대응키 위해 일론 머스크의 민간 기업인 스페이스 X와 협력하여 발사 로켓 재사용이라는 기술을 개발하여 비용의 90%를 절감했다고 한다. 이를 고려한다면 대한건축사협회는 의무가입을 통해 국민을 위한 건축정책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며, 건축사 자격시험 또한 억울함이 없도록 다양한 인재 선발이 가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설계 능력을 갖춘 건축사가 필요하다.

‘건축사’만으로도 신뢰할 수 있는 전문성이 요구되며 전체 건축사들이 공감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건축사사무소에 대한 생각은 오픈 플랫폼이다. 각자가 가진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면 누구나 엘리트가 될 수 있는 곳, 하나의 기준이 아닌 다양한 기준이 적용될 수 있는 곳, 우리의 정보를 타인이 공유할 수 있는 곳을 지향해야 한다.

 

 

 

 

글. 정창호 Chung, Changho (주)에코 건축사사무소 <서울특별시건축사회>

 

정창호 (주)에코 건축사사무소·건축사

건축사 정창호는 한양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주)우일종합건축사사무소와 (주)성림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쌓았다. 2010년 (주)에코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였으며, 신사동 빌딩으로 리모델링 협회 우수상, 남양주 및 한국도로공사 공공디자인 우수상을 수상하였고 성동 아이사랑 공모전에 당선 되었다. 현재 국토 안전 관리원에서 건축물관리법 강사를 역임하 고 있으며, 경상북도 캄보디아 문화교류센터, 유원지식산업센터, 신한디엠 리모델링 등 도시·사회 관련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eco303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