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2. 09:22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자 註
재생건축
‘도시재생’이라는 용어는 무의미한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도시재생이라는 단어를 지극히 지엽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서다. 도시재생은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아닌 진지한 학문과 연구의 용어이며, 우리 도시가 고민해야 할 정의다.
우리는 그동안 지극히 제한적인 도시재생의 단면만을 언급해왔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도시의 혁신을 다룰 도시재생에 관해 언급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다만 현재는 부정적 이미지로 전달되고 있는 도시재생 전략 중 하나인 ‘다시 쓰고, 고쳐 쓰고, 바꿔 쓰는’ 재활용 건축에 대해서 한번 고민해 보려 한다. 도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은 매우 중요하며, 이를 전략화해야 한다. 인문학적 시각이 강한 사람들은 전략이나 경쟁력이라는 표현을 달가워하지 않지만, 이는 ‘정책’으로 수립되고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도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가? 유엔의 지속가능한 개발과 관련된 정의가 있다. SDG(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라고 하는데, 항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빈곤 탈출, 기아 극복, 건강 확보, 성적 평등성, 맑은 물, 재생에너지, 좋은 일자리와 경제성장, 혁신과 기반, 지속 가능한 도시와 커뮤니티 등 총 17개의 어젠다로 이뤄져 있다.
내용을 보면 한정된 자원의 재활용이 다뤄지고 있다. 지속 가능한 도시나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지속된다는 것은 시간의 축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는 것이다. 쉽게 이해하면 연속된 시간의 관계를 확보하고 유지하라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성장시키라는 것이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우리 삶의 연속적 환경은 결국 도시와 건축이다. 그리고 이는 역사적 흔적이 된다. 자원의 재활용이라는 명제가 있긴 하지만, 재생건축은 이런 시간의 연장선에서 바라보고 이해해야 할 것 같다.
02 Reveal the past, add the present, and infuse new life into the old building
우리 주변의 도시는 활력이 넘친다. 구(원)도심이든 신도심이든 각각의 방식으로 활력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다. 신도심에는 부동산의 논리에 맞춰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고, 나를 알리고자 하는 광고판의 번쩍거림. 도시는 급격하게 변해가고 있다. 구(원)도심 또한 십수 년 전부터 신도심에 빼앗겨버린 화려한 번영을 되찾기 위해 ‘재건축’,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원도심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오랜만의 귀향길에 바뀌어버린 도시에 놀라곤 한다. 도시는 이렇듯 시간이 흐르며 하루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고 있다.
우리가 생각했던 도시에 대해서 한 번쯤 고민해 보는 시간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행 건축법은 도시를 가로의 폭으로 건축물의 규모나 스케일을 정하곤 하였다. 물론 관련 법령이 조금씩 달라짐은 있지만 큰 틀은 변함이 없다.
이곳 도시에서의 삶은 그 어떤 것보다도 부동산으로서의 가치가 중요시되고, 그 부동산의 가치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다. 우리는 도시공간에서 마주하게 되는 획일화된 고층 아파트와 인간적인 모습이 없음을 탓한다. 도시가 토해내는 쓰레기와 공해, 주차난 등은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이런 물리적인 환경을 갖고 있는 도시지만 우리는 도시를 사랑한다.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가끔은 인간적이지 못해 싫다가도 도시로 발길을 돌리는 것은 도시가 주는 불편함 그 이상의 장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을 탓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집에 대한 역사와 기억들이 사라지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필자는 대학원 시절부터 근대건축물들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근대건축물 뿐만 아니라 60, 70년대에 양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 지어진 건축물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건축물의 현장답사나 조사, 실측이라도 할 경우에는 보물놀이라도 하듯 재미있었다.
몇 년 전에 멈춘 듯한 오래된 달력에 새겨진 동그라미는 어떤 날이었을까?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그런 건축물과 소품들을 볼 때마다 집에 대한 역사와 기억들이 사라진다는 것이 맘이 아프기도 했던 것 같다. 광주의 양림동 같은 경우도 그런 이유였다.
졸업논문에 광주 최초의 선교지역이었던 100여 년 전의 근대건축물들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고 그 밖의 건축물들이 유실되고 사라지는 시점을 기억하고 싶었다. 남기고 싶었다. 그렇게 나의 도시와 마을에 대한 과거를 찾고 싶었다.
2007년부터이니 구체적으로 무엇을 한다는 계획도 없었고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합리적인 방법이었는지도 몰랐다. 양림동의 100여 년 전의 선교사 사택과 등록문화재부터 60, 70년대 근대건축물 20여 채를 실측하고 조사하면서 이곳에 대한 애틋함은 혼자만의 느낌이었을까? 한 개, 두 개 정리하다 보니 아카이브를 만들고자 했던 생각도 있었다. 다행히도 몇 개의 건축물들이 없어지기 전에 그렇게 도면화로 정리되어 기록을 남겨두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렇게 사라진 건축물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본다.
그로부터 광주의 양림동은 젊은 층의 감성을 자극하는 뉴트로 감성의 골목길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늘어난 빈집과 빈집에서 나온 생활용품들. 이 모든 것이 근대화와 함께 했을 텐데, 쓰레기로 치부됨이 안타까운 지역주민들은 골목 구석구석을 폐품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지자체의 다양한 지원프로그램과 외부 사람들의 입출입이 잦았고 어느덧 지역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필자 또한 2013년부터는 토요문화학교를 진행하면서 가족 프로그램으로 지역의 도시와 마을, 건축을 답사하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되었는데 이곳 양림동 일대도 그중의 하나였다. (2016년부터는 지역의 건축사, 교수들과 건축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아마 이즈음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낙후된 지역을 되살리는 데 재건축, 재개발이 답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역주민이 이곳의 가치를 새삼스럽게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그래서 선교사 사택의 철거를 막고 지역에 관심을 갖게 된 시기였다.
최근 각 지자체마다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도심을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업의 근본적인 취지는 정주환경을 확대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이제껏 구도심의 활성화로 인해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삶을 떠나게 된 사례들이 많았다.
원도심은 택지개발지구와는 달리 필지 하나하나가 참 제각각이다. 그 제각각의 땅에 담장이며, 필요에 의해 살면서 만들어진 각각의 공간들이 만들어지고 사용되고 있다. 이런 공간들도 보면 내 것에 대한 강한 애착에서 나온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고 그 당연함으로 인해 담장의 높이나 경계등 그리고 자투리 공간의 다양한 활용 등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한동안 트렌드로 자리 잡았던 땅콩주택이나 공유오피스, 건축법에서도 규정되어 있는 건축협정이라는 법령이 아직까지 자리 잡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도시에 물리적인 편안함보다 인간적인 삶을 불어넣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故 신영복 선생님이 강연 중 이런 얘기를 하셨다. “윗집에 개구진 아이가 쿵쿵거리며 뛰어다니기에 뭐라 하고 싶은 맘이었지만 사회적 지위와 체면 땜에 참고 또 참고……. 그러던 어느 날 놀이터에서 그 개구진 아이를 발견하고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제법 친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나니, 그렇게 아이와 관계를 맺고 나니 위층에서 뛰는 소리가 예전처럼 밉지 않았다고 한다. 관계란 그런 것이다”라고.
담장 허물고, 포켓공간 만들고, 그곳에서 새롭게 이야깃거리 만드는 쉴 곳 생기니 사람들 찾아와
도시재생 또한 그런 것이라 생각된다. 관계를 맺는 것. 약간의 불편함 속에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 그러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것. 그러면 민원이 사라진다. 양림동 공예특화거리조성사업도 그러했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보다 필지 각각의 담장을 허물고 포켓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새롭게 소통하고 이야깃거리를 만들 수 있게 공간을 확보한 것 밖에 없다. 지역주민들이 얘기했던 요소요소를 찾으려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제 아파트값은 오르기를 바라면서 집값이 비싸다고 하고 집값이 안정이 안 된다고 하는 이유는 어불성설이다. 어두컴컴한 아파트 복도에서 만나게 되는 이웃집 사람을 보고 놀라며 집이, 도시가 개인적이니 이기적이니 대화가 없다고들 한다. 아파트 층간 소음으로 인한 다툼은 이제는 낯선 풍경도 아니다.
택지개발지구가 생기면 구도심에서의 인구가 신도심으로 옮겨가게 되고 그에 따라 구도심은 활력을 잃고 쇠퇴해 가는 것이 이치인 것 같다. 그렇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원래 도시는 그런 것이다. 쇠퇴해가고 슬럼화 되어가는 도시의 극복을 위해 재개발을 통해 다시 사람들이 유입되고 다시 활력을 되찾고 있다.
다만 구도심의 마을에 새로 쌓는 성이 아닌 역사와 흔적과 기록을 갖게 하는 재생건축이 되었으면 한다. 과거를 드러내고 현재를 덧붙이고, 그래서 옛 건축물에 숨을 불어 넣을 수 있었으면 한다. 수년 전부터 건축사의 업역들이 확대되고 있다. 건축물관리법에 따른 점검, 해체감리 그 밖에도 ‘도시재생 뉴딜사업’에서의 건축사의 역할이 그것이다. 하지만 많은 건축사들이 이러한 업무를 주저하고 있다. 물론 예상외로 많은 공사비가 들어가고 그렇다고 대가는 적으면서 오랜 시간과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기에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타 업체들이 딱 대가만큼의 일만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 따라 보이는 성과는 미미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필자는 건축사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참여를 했으면 한다. 일단 시작해서 한 건 두 건 시작해서 열정과 사명감이 묻어있는 도시재생 과제가 해결된다면 분명 이곳에도 밝은 전망이 있으리라.
도시재생! 누가 만드는 것이 아니다. 한 명 두 명 걷다 보면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글. 박종호 Park, Jongho 유민 건축사사무소 <전라남도건축사회>
박종호 유민 건축사사무소·건축사
조선대학교 건축공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광주에서 실무를 익히고 2008년부터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조선대학교, 전남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양림동건축투어 해설사 및 꿈다락토요문화학교 튜터, ‘건축문화사랑’ 편집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작품으로 광역치매센터, 곡성치매안심센터, 장흥성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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