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몇 개의 고쳐 쓰기 작업 2021.4

2023. 2. 2. 09:23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자 註

 

재생건축
‘도시재생’이라는 용어는 무의미한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도시재생이라는 단어를 지극히 지엽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서다. 도시재생은 정치적 프로파간다가 아닌 진지한 학문과 연구의 용어이며, 우리 도시가 고민해야 할 정의다.
우리는 그동안 지극히 제한적인 도시재생의 단면만을 언급해왔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도시의 혁신을 다룰 도시재생에 관해 언급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다만 현재는 부정적 이미지로 전달되고 있는 도시재생 전략 중 하나인 ‘다시 쓰고, 고쳐 쓰고, 바꿔 쓰는’ 재활용 건축에 대해서 한번 고민해 보려 한다. 도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은 매우 중요하며, 이를 전략화해야 한다. 인문학적 시각이 강한 사람들은 전략이나 경쟁력이라는 표현을 달가워하지 않지만, 이는 ‘정책’으로 수립되고 마련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도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가? 유엔의 지속가능한 개발과 관련된 정의가 있다. SDG(Sustainable Development Goals)라고 하는데, 항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빈곤 탈출, 기아 극복, 건강 확보, 성적 평등성, 맑은 물, 재생에너지, 좋은 일자리와 경제성장, 혁신과 기반, 지속 가능한 도시와 커뮤니티 등 총 17개의 어젠다로 이뤄져 있다.
내용을 보면 한정된 자원의 재활용이 다뤄지고 있다. 지속 가능한 도시나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지속된다는 것은 시간의 축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는 것이다. 쉽게 이해하면 연속된 시간의 관계를 확보하고 유지하라는 것이고, 더 나아가서 성장시키라는 것이다.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우리 삶의 연속적 환경은 결국 도시와 건축이다. 그리고 이는 역사적 흔적이 된다. 자원의 재활용이라는 명제가 있긴 하지만, 재생건축은 이런 시간의 연장선에서 바라보고 이해해야 할 것 같다.

 


01Several remodeling works 

 

앞 세대의 존재 흔적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들의 단초를 끄집어낼 수 있는 안목, 긍정의 힘이다. 장소가 생겨나고 존재해왔던 그 이야기를 공감하고 기억하는 것, 진정성이다. 기억들이 기록들로 각화(刻畵)된 계획 대지. 그것을 우리는 사이트(SITE)라 말한다. 내재한 수많은 시어(詩語)들을 찾아내고 읽어내어 재조합한다.
이성적 구축 논리를 감성으로 서사한다.

고쳐 쓴다는 것, 바꿔 쓰고 덧대 쓰는 것.
기억을 공유한다는 뜻, 본래의 쓰임새를 애정한다는 뜻이다. 
날선 각들은 시간 속에 무뎌지고 윤색된 표면들은 풍우에 순화된다.
시간은, 우리가 만든 모든 인공들을 자연으로 동화시킨다.

오래된 것은 왠지 낯설다. 그래서 새롭다.
보편화된 시대 일상. 치장은 지워지고 감출 허세도 없다. 관용으로 포용된다.

쌓아서 지을 수 있는 높이들의 집들과 전차가 다닐 수 있는 삶의 스피드.
사람보다 오래 산 나무들과 집들이 나를 기억하는 도시.
내가 꿈꾸는 도시.


재생건축, 어딘지 모르게 조금 불편한 어감. 생각해 보면 이유를 알 수 있을 듯하다. 사회적으로 과장되어 있고 형식과 의미를 규정하려 강박하고 있는 듯하다. 고쳐 쓴다는 표현이 편할 수밖에 없는 소이연이다. 상황과 조건이 다를 수밖에 없는 작업 대상들. 모두들 각자의 인격을 가진 장소로서 의인화 된다. 점유방식, 사용방식, 시대마다 가진 고유의 구축정신이 있다. 때론 그 낯섦을 주재료로 활용할 수 있는 당위성을 부여받는다. 행운이다. 기회들을 통해 마주한 나름의 생각들을 작업 경험을 통해 나열해본다.

 

잠사박물관

 
잠사박물관 1988
도로보다 낮은 기존 공장부지는 철길에서 강변으로 흐르는 땅들의 높이와 관계를 수용하고  영역들을 매개한다. 80년대 말에 가동을 멈춘 우리 산업시대의 마지막 잠사공장. 아신역에서 부터 남한강변까지 하나의 영역으로 만들어 준다. 땅들은 높아지고, 주변 맥락을 조절할 새로운 바닥판들이 결합된다. 지붕이 소거되면서 외부공간이 내부공간이 되고 내부공간이 외부공간이 된다. 벽을 기준으로 안과 밖이 전도되는 역공간이 형성된다. 새로운 질서는 기존의 질서를 밟아가면서, 인식의 옷들을 뒤집어 입는다. 기억을 읽어 내는 것, 바라보는 눈의 애정에 의한 것, 장소는 시간을 담아두게 되고 시간은 기억으로 저장된다. 벽으로부터, 벽들로부터, 벽들의 사이에서, 벽들의 안과 밖에서, 벽 속의 우물로부터 60년대의 복고적 향수를 길어 올린다. 시간 속에서 중첩되며 이루어져 왔던 기존의 배치 질서를 새로운 질서의 구축 재료로 용융시킨다. 

 


강변연가 1999
집들은 나무보다 빨리 자라고 도시는 숲보다 빨리 커진다. 기억할 과거를 잃어 가는 땅, 사람보다 오래 산 나무를 찾기 힘든 땅, 우리가 정주할 풍경의 무게를 잃어버렸다. 우리의 강토가 기품을 잃어버렸다. 시간의 무게를 가늠할 것들을 찾기 힘들다. 
팔당댐은 이제 양평읍이라는 소도시가 끌어안아야 할 숙명이 되어 버렸다. 먹는 물, 보는 물, 그리고 넘치는 물. 갈등의 모든 것이 팔당댐을 원인으로 하게 되겠지만, 이제는 달리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넘치는 물로 인한 강변의 제방은 강변으로 향하는 모든 길을 닫아 버렸다. 관계를 끊어 버렸다. 시가지보다 높아진 제방은 그보다 더 높은 철길과 평행하다. 도시는 그 사이에 끼워져 몸부림을 치고 있다. 철길은 철길대로 일정하게 달려야 할 높이가 있고, 제방은 나름대로 근거를 가져야 할 일정 높이를 거부하진 못하였을 것이다. 도시보다 높은 두 개의 수평 레벨 사이에서 땅들은 자기 모습과 레벨을 가지기 위해서 혼돈하고 있다. 관계를 회복하고, 끊어진 길들을 강으로 다시 연결할 지혜를 찾아야 한다. 이 도시가 부를 강변연가이다.

강변연가

 

선정릉 2006
경계에 대한 가장 초보적인 인식은 경계선이라고 하는 선형성일 것이다. 주변에서 늘 보는 철망이나 담장이 그것이다. 여기서 영역을 자기중심적으로 인식하게 되면, 경계는 중심에서 가장 멀리 방치되어지는 marginal한 주변 요소로 전락된다. 스스로 자폐 된다.
역사 공간으로서의 선정릉, 도심공원으로서의 선정릉은 우리 도시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듯이, 소극적 방어 형태의 철망으로 둘러쳐져 있다. 지형이 다르고 주변 상황이 다르다. 도시 감성의 내면적 복합성을 다양하게 엮어내야 하는 절실한 요구를 표정 없이 묵살한 채 철망으로 태연하다. 안도 우습고 바깥도 우스꽝스럽다. 스스로 존재를 비하하고 있다.
경계 구조는 시공간적 단절 영역이 아니라 반응하며 생장하는 유기적 영역이다. 역사 공간과 도시 영역이 상호 자기 기능을 하지 못하고 이미 死 공간화된 영역들, 그 불합리한 틈새의 불연속면을 주목한다. 장소의 변형과 창조를 통해 역사 공간으로서, 도심공원으로서의 선정릉이 가진 잠재력을 친숙한 몇 가지의 상상력으로 건축화 시켜본다. 영역화 시켜본다.

선정릉

 


경기고 옹벽주변 2010
도시계획에 의해 형성되는 인공대지의 불연속면을 단지 어색하거나 불합리한 구조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와 프로그램을 만드는 생산적인 도구로 인식한다. 도심의 끊어진 길들, 관계 회복을 통한 가로공원을 조성한다. 옹벽 내부를 공간화하여 흙덩어리를 공간으로 치환한다. 틈을 공간화하여 장소를 회복한다.
옹벽으로 단절된 보행로와 차도가 아랫길을 통하여 가로 친화적 높이를 가지면서 내부 공간은 프로그램화되고 인도를 가진 도시 가로 구조로 전환된다. 통학로와 보행로가 결합이 되어 가로 광장이 되고 그 하부에 내부 공간이 형성된다. 은행나무 길, 학교 가는 길, 도시적 감성으로 복원된다. 기존의 지형 질서에 순응되면서 지형 위에 표출된 동선 궤적의 선형적 결합. 대상 부지의 형상을 구축한다. 극단적 긴장감으로 선형성의 미학을 내포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2018
1층 외벽들을 한 켜 물러 세우며 외부 회랑으로 전환시킨다. 기존의 시설 군들을 하나로 통합한다. 외벽은 바깥 켜의 외피로 남는다. 안 켜는 외벽이 자유로워지기 위한 켜이자 수장 영역을 형성하기 위한 구조로 강화시킨다. 안 켜는 점점 단단해지고 바깥 켜는 점점 가벼워진다. 도시의 기억과 역사의 함축, 외피는 또 다른 세월을 담아내며 풍화되어 간다. 담장 밖으로 소통하지 못하였던 낯섦, 익숙지 않은 새로움이다. 낯설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다. 시대가 가진 고유의 구축정신, 기둥으로 표현되는 엄정한 구조열 공간이 가진 한계가 다른 장소가 가질 수 없는 강건함이다. 보존을 얼마만큼 하는가. 무엇을 보존하는가. 이에 대한 선택이 우선하는 것은 아니다. 쓸 만큼 쓰고 자연스럽게 남겨지는 과정, 그 결과로 이해되어야 한다.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공간적 기능이 창의적으로 해석되고 합리적으로 반영되는 디자인 과정의 최종 성과물이다. 표피에 대한 문제는 더욱 아니다. 새롭게 바꾼다거나, 반대로 고집스럽게 남기려는 시도 또한 형태에 대한 집착과 다름 아니다. 보존한다는 것. 사용하고 관리하는 것이다.

 


문화비축기지 2017
하나의 장소, 하나의 공간이 시대와 사건을 연결한다. 40년, 그리 길지도 않다. 이끼가 돋아있고 오동나무 거목이 뚫고 나와 공생하는 콘크리트 구조물. 녹슬어가는 탱크와 주변 시설물. 높은 옹벽과 좁은 통로, 깊은 틈새와 구덩이. 구조물의 중량감과 그 물성들의 거칠음. 시간은 인간이 만든 모든 인공물들을 자연으로 동화시킨다. 사연이 있었기에 수긍이 가고, 감춰져 있던 것들이 밖으로 드러나니 뜻밖이다. 구덩이 속에 용도 폐기된 채 산화되어가던 기름 탱크가 문화시설로, 저장 기능에서 생성 기능으로, 단순 구조물이 복합 건축물로 전환되는 과정. 감동은 예측 못할 반전과 격한 공감의 동반을 필수요건으로 한다.

 

문화비축기지


장소가 만들어지던 그 시대 그 상황을 재현해낸다. 문화비축기지 구축과정은 발굴 과정이 필연적으로 동반된다. 묻혀있던 구축 과정의 발굴을 통해 새로이 들어서야 할 계획의 방향이 정당화된다. 찾아냄이 시작이며 나타나게 함이 종결이다. 문화비축기지 구축 과정은 석유비축기지 구축 과정의 역순의 과정으로 진행된다. 

 

 

 

글. 허서구 Huh, Seogoo 허서구 건축사사무소

 

 

허서구 허서구 건축사사무소·건축사

한양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the Berlage institute에서 수학하였다. 한양대학교 건축학부교수, 원도시건축의 대표를 역임하였고 현재 허서구 건축사무소의 대표로 재직 중이다. 한솔집,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 문화비축기지 등의 작품이 있으며, 한국건축가협회상, 한국건축문화대상, 서울시건축상 등을 수상하였다.

 

seogoo4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