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사진 그리고 건축 2021.5

2023. 2. 3. 16:59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편집자 註

 

건축을 묘사하는 사진은 몇 가지 차이가 있는데, 장르를 나눌 수 있을 정도다. 우선 작가 중심적 사고관으로 건축을 대하는 경우다. 건축을 생각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진은 초점이나 수직, 수평이 중요하지 않다. 관점이 중요하다. 사진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건축을 초상화처럼 바라보는 사진은 철저하게 건축적인 감성을 드러내야 한다. 공간의 깊이와 빛의 대비, 건축에 대한 미묘함 등이 사진에서 읽혀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작품 영역이 탄생한다. 사진작가의 시각에서 묘사되고 해석된, 새로운 창작으로서의 건축 사진이다. 이는 사진으로 건축을 탄생시키는 독립적 영역이다. 마치 초상화 사진으로 사진작가의 작품성과 작가성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에서 건축 사진은 1990년대만 하더라도 미개척 분야였고, 몇몇 작가의 헌신으로 조금씩 개화되었다. 현재는 완전한 독립 영역으로 건축 사진이 확장되고, 인정받고 있다. 건축의 역사에는 여러 가지 건축이 존재한다. 페이퍼 아키텍트(Paper Architect)라는 단어처럼 실제로 지어지지는 않았으나 상상과 스케치로 구현한 블레(Étienne-Louis Boullée)나 1960년대 펑크 건축을 등장시킨 아키그램(Archigram)처럼 실존하지 않는 상상과 사고의 건축도 존재한다. 건축 사진 또한 그런 연장선에서 존재한다.
물론 수십 년 동안 GA 현대건축 시리즈의 발행과 사진촬영을 주도한 유키오 후타가와(Yukio Futagawa)처럼, 생생한 건축공간의 묘사를 평생 시도한 거장도 있다. 본질적으로 체험되는 건축의 특성이 고정된 관점으로 묘사되기에 더욱 집요한 한 컷을 만들어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의 노력은 시간과 계절, 바람과 빛에 의해 만들어지는 순간을 건축적 작품성과 동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1990년대 이후 국내에서 건축 사진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진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늘어나는 숫자만큼 작가주의적 성향이 나눠지고, 해석이 달라지는 사진들이 늘어나고 있다.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 사진작가로 나선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사진으로 해석되는, 사진으로 묘사되는 건축 작품을 모아 다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03 Photographs and architecture 

 

공식적인 사진의 역사는 1839년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로부터 특허를 받은 루이 자끄망데 다게르(Luis Jacques Daguerre)가 ‘파리 성당의 큰 거리’를 찍으면서 시작되었다. 사진의 발전은 모든 게 빠르게 변화했던 19~20세기의 도시와 그 시기를 같이하고 있다. 다게레오 타입(다게르가 개발한 초창기 사진술)보다 10년 빨랐던 니엡스는 한 장의 헬리오그라피를 찍기 위해 8시간의 노출을 주어야 했고, 다게르의 다게레오 타입 카메라로도 사진을 찍는데 10여 분의 노출 시간이 필요했다. 1880년, 코닥사에서 “당신은 찍기만 하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You press the button, We do the rest)”라는 광고 카피와 함께 ‘코닥 걸’이 어깨에 멘 ‘브라우니’ 카메라가 등장하며 비로소 카메라의 휴대성이 높아졌다.

1990년대에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면서 필름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고, 현상과 인화의 과정을 기다릴 필요도 없어졌다. 이제는 카메라가 휴대 전화와 결합돼 마음만 먹으면 언제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사진의 기록은 입학식이나 졸업식, 결혼식과 같은 행사 때 기념사진을 찍는 일처럼 특별한 순간만을 담고 있지 않다. 앨범 속에 끼워 두었다가 생각이 나면 펼쳐보고 싶은 추억을 담은 한 장의 사진도 아니다. 사진은 일상을 기록하는, 없어서는 안 될 세계 공통 언어가 되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사진을 찍는 방식이 바뀌었다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카메라의 셔터가 되었든, 스마트폰의 버튼이 되었든 사진을 찍는 이의 찰나의 결정으로 사진 한 장이 찍힌다는 것이다. 그렇게 촬영된 사진에는 카메라 뒤에서 셔터를 누르는 사람이 무엇을 보고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담겨있다.

경복궁 강녕전, 2016
창덕궁 낙선재, 2016


길지 않은 사진의 역사 속에 건축사진의 촬영 방식도 변해왔다. 2000년도 초만 해도 제대로 된 건축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당연히 대형 카메라와 슬라이드 필름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디지털카메라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후에도 건축사진은 꽤 오랫동안 필름을 스캔받아 디지털로 변환하는 방식을 고수했었다. 그러나 뷰카메라의 대형 필름과 무브먼트만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건축물의 왜곡을 보정하는 일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어느 정도 가능해지고, 기술의 발전으로 이미지 센서도 세밀한 부분의 표현과 대형프린트를 할 수 있게 되면서, 건축사진을 촬영할 때도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게 되었다.

부산북항 제5부두 싸이로, 2015

건축사진을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하게 되면서 달라진 점은 촬영과 동시에 현상, 인화, 스캔 과정 없이 바로 사진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대형 카메라를 사용하면 장비의 무게 때문에 삼각대 없이는 촬영이 불가능했고, 이동에 제약이 있어 활동적인 사진을 찍기 어려웠다. 게다가 거꾸로 보이는 세상에서 구도를 잡고 셔터를 누르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휴대용 카메라로 구도를 잡고 촬영할 때와 달리, 사진을 찍기 위해서 준비하는 시간은 대상을 보는 방법에 영향을 미친다. 건축사진은 사진이 가지고 있는 관찰과 기록성을 근간으로 하여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조형성과 재료의 특성을 담아낸다. 카메라 장비의 속성이 디지털로 변하게 되면서, 기존의 건축 사진이 가지고 있는 문법에서 자유로워졌다. 또한 기존의 인쇄매체 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에서 건축사진을 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cityscape #04, 2004
disappear-영도다리와 하야리아부대, 2011

사진은 그 어떤 매체보다 현재를 가장 잘 포착할 수 있는 매체지만, 카메라라는 기계적 장치를 통해 완성된다는 이유로 ‘기록으로서의 사진’과 ‘예술로서의 사진’은 끊임없이 논쟁거리가 되었다. 사진에서 기록과 예술의 영역을 딱 잘라서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건축사진도 이런 논쟁에서 예외가 아니다.

Anotherframe-화명동#01, 2008


40여 년에 걸쳐 파리와 그 주변을 1만 여장이 넘는 사진으로 남긴 으젠느 앗제(Eugene Atget) 덕분에 대규모의 도시 계획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파리 시가지 모습의 변화를 사진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사진가 자신은 그 사진들이 “예술가들을 위한 자료(Documents pour Artistes)”이고, “내 사진은 단순한 도큐먼트이다”라고 말했다. 으젠느 앗제는 사진을 주제와 시기별로 나누고 일련번호를 매겨가며 분류하였지만, 우리는 이것을 단순한 자료사진으로 보지 않는다. 도큐먼트로의 사진이 예술사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파리를 단순히 기록한 것에 그치지 않고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이 담겨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서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건축사진도 ‘기록으로의 건축사진’과 ‘예술로서의 건축사진’을 명확하게 나눌 수 없다. 사진은 현장에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공간적·시간적 제약 때문에 건축물의 조형성을 느끼고, 공간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매체이다. 그래서 건축사에게 건축사진은 기록으로서의 의미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건축사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66년 종합예술지 <공간>의 창간 이후 <건축문화>를 비롯한 건축잡지들이 발행되기 시작했다. 잡지에서 건축물을 소개하는 방법은 일정한 레이아웃을 가지고 있다. 언제나 빠질 수 없는 것은 전경사진이다. 내부와 외부, 원경과 근경, 건축 구조와 재료의 디테일을 찍은 한 장 한 장의 사진은 단편적일지라도 건축공간의 전체를 한눈에 그려볼 수 있다. 배치도와 입면도, 단면도와 같은 도면이나 건축사의 설계 개요가 사진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것들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사진은 도면에서 느낄 수 없는 공간적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건축물이 주변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보여주기도 한다. 건축사진에서 사진은 건축물의 기능과 형태를 표현하는 것이 중심이 되지만, 건축사진의 객관적 기록에는 사진가의 주관적인 해석이 빠질 수 없다. 건축사진 역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다.


시간의 흔적이 엮이고 엮여 사진이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을 사진으로 찍어 간직할 수 있다. 건축도 마찬가지이다. 건축물이 처음 완공되어 아직 페인트 냄새가 가시지 않은 순간부터, 새 가구를 공간에 배치하고 시간이 지나 터를 잡기까지 그 공간의 모습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낡아가는 건축물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맛을 더해가기도 하고, 측은해 보이기도 한다.

건축은 그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1990년 독일의 베허 부부의 산업용 건축사진을 시작으로 유형학적 사진들이 건축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건축 공간이나 유사성을 가진 형태를 통해 그 시대의 보편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반대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가족이 살던 반지하나 옥탑방, 서로 다른 가족이 살고 있지만 천편일률적 양상을 보이는 아파트와 같은 주거 형태는 건축사진에서 각기 다른 공간의 얼굴을 드러내기도 하고, 시적 상황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건축사진은 아카이브 사진의 형식을 같이한다. 낱장 사진의 모음이 아니라 각각의 사진들의 관계를 통해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개별 건축물의 전체나 부분을 단순히 촬영하여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문화적 가치를 기록하고 모으는 작업이다. 도시를 지속적으로 기록하는 과정은 건축을 기록하는 일이자 시대와 문화를 기록하는 일이다.

건축사와 건축 사진가는, 건축을 객관적으로 기록하려 애쓰고 건축의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부여하는 동반자라고 할 수 있다. 서로의 자리에서 대상을 바라본다. 건축사는 자신이 상상하는 건축적 공간을 사진에서 찾으려고 하고, 사진가는 건축사가 생각하는 곳보다 더 극적인 장면들을 만나고 싶어 한다. 따라서 건축사진을 촬영하기 전에는 사람과 사람, 공간과 사람이 다양한 방식으로 만날 필요가 있다. 건축사와 사진가가 건축 공사 과정과 사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함께하고,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기록에 대한 합일점을 찾기도 하고, 서로 보지 못했던 새로운 이미지를 만나기도 하면서 건축과 사진이 만났으면 한다.

 

 

 

 

글. 이인미 Lee, Inmi 사진가

 

 

이인미  사진가·비온후 공동대표 

대학에서는 건축을, 대학원에서는 영상학을 전공하였다. 사진으로 건축과 도시를 만나는 작업을 해왔다. 요즘은 기록으로서의 사진 아카이브와 다양한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골목길에서 작은 책방과 전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Another frame(2009, 심여화랑)’ 등 7번의 개인전과 ‘site-seeing(2018, 부산시립미술관)’, ‘집을 말하다(2011, 클레이아크건축도자미술관)’, ‘decentered(2009, 아르코미술관’ 등 다수의 기획전과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또 『기억하는 도시, 부산』, 『한국건축개념사전』, 『김봉렬의 한국건축이야기』 등 다수의 출판에 참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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