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3. 17:12ㆍ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편집자 註
건축을 묘사하는 사진은 몇 가지 차이가 있는데, 장르를 나눌 수 있을 정도다. 우선 작가 중심적 사고관으로 건축을 대하는 경우다. 건축을 생각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진은 초점이나 수직, 수평이 중요하지 않다. 관점이 중요하다. 사진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반면에 건축을 초상화처럼 바라보는 사진은 철저하게 건축적인 감성을 드러내야 한다. 공간의 깊이와 빛의 대비, 건축에 대한 미묘함 등이 사진에서 읽혀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작품 영역이 탄생한다. 사진작가의 시각에서 묘사되고 해석된, 새로운 창작으로서의 건축 사진이다. 이는 사진으로 건축을 탄생시키는 독립적 영역이다. 마치 초상화 사진으로 사진작가의 작품성과 작가성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에서 건축 사진은 1990년대만 하더라도 미개척 분야였고, 몇몇 작가의 헌신으로 조금씩 개화되었다. 현재는 완전한 독립 영역으로 건축 사진이 확장되고, 인정받고 있다. 건축의 역사에는 여러 가지 건축이 존재한다. 페이퍼 아키텍트(Paper Architect)라는 단어처럼 실제로 지어지지는 않았으나 상상과 스케치로 구현한 블레(Étienne-Louis Boullée)나 1960년대 펑크 건축을 등장시킨 아키그램(Archigram)처럼 실존하지 않는 상상과 사고의 건축도 존재한다. 건축 사진 또한 그런 연장선에서 존재한다.
물론 수십 년 동안 GA 현대건축 시리즈의 발행과 사진촬영을 주도한 유키오 후타가와(Yukio Futagawa)처럼, 생생한 건축공간의 묘사를 평생 시도한 거장도 있다. 본질적으로 체험되는 건축의 특성이 고정된 관점으로 묘사되기에 더욱 집요한 한 컷을 만들어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의 노력은 시간과 계절, 바람과 빛에 의해 만들어지는 순간을 건축적 작품성과 동일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1990년대 이후 국내에서 건축 사진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진작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늘어나는 숫자만큼 작가주의적 성향이 나눠지고, 해석이 달라지는 사진들이 늘어나고 있다.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 사진작가로 나선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사진으로 해석되는, 사진으로 묘사되는 건축 작품을 모아 다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02 Hidden moment in architectural photographs
디지털 사진의 시대로 바뀐 지 오래다. 디지털카메라나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릴 수 있다. 거추장스러운 삼각대 없이도 가볍게 실내공간을 촬영하고, 다양한 각도로 수많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매체도 다양화되어 건축사들이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하지 않고 직접 본인의 작업을 소개할 수도 있다. 사진은 이제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찍을 수 있고 보여줄 수 있게 됐다. 사진가들의 설자리가 줄어드는 듯했다.
2006년경부터 디지털 장비가 점차 좋아지면서 대형 뷰(view)카메라에 대형 필름을 고수하던 우리 건축사진가들도 대부분 디지털로 전환했다. 건축사진가들은 디지털에 적응하고, 필름 카메라 시절에 아쉬웠던 부분들을 보완해 가며 디지털의 장점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필름을 사용하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실제 촬영에 소요되는 시간과 노력은 거의 같다. 삼각대도 그대로다. 다만 작업을 마치고 현상소에 가지 않을 뿐, 모두 각자의 작업실에서 후반작업을 하고 있다.
건축물을 멋진 사진의 대상으로만이 아닌 설계자의 의도가 드러나고 건축의 본질이 빛날 수 있게 공간에 집중하는 건축사진가의 노력은 한결같다. 그래서인지, 근래 들어 전문건축사진의 수요가 오히려 늘어나서, 서울·경기에 집중되던 과거와 달리 사진의뢰가 지역의 소규모 건축사사무소에 이르기까지 점차 확대되고, 건축사진을 필요로 하는 수요층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건축사진
건축사진은 하나의 건물에서부터 도시에 이르기까지 건축물을 대상으로 촬영한 사진을 말한다. 건축사진을 업으로 하는 전문건축사진가는 주로 건축디자인을 전달하는 목적으로 사진을 촬영한다. 예술을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대개 건축사사무소, 건설회사, 건축자재회사 등 건축 관련 업체로부터 상업적인 의뢰를 받는다.
사진촬영에 앞서
우선, 처음으로 사진 작업을 함께 하는 경우 저작권 협의를 시작한다. 요즘은 저작권 문제로 인해 민감한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사전에 상세한 저작권 및 이용조건을 설명하고 확인한다.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시작점은 서로의 권리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된다.
셔터를 누르기에 앞서, 건축물에 대한 이해가 가장 우선이다. 먼저 사진촬영 대상 건축물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눈다. 건축물의 개요와 도면 등 기본 자료를 받고, 설계 개념, 의도, 준공에 이르기까지의 에피소드를 듣거나 배치도, 평면도, 투시도 등을 보면서 설계 과정에서 상상했던 장면을 설명 듣고 촬영하게 될 뷰(view)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몇 달, 몇 년을 공들인 결과물을 잘 찍어달라는 한 마디로 의뢰하기보다는, 건축사진가와 파트너로서 공간을 공감하고 애정을 가져야 좋은 건축사진이 나올 수 있다.
다음으로 촬영 시기에 대해 협의한다. 건축물이 완성될 즈음, 설계 단계에서 상상했던 이미지와 현장이 일치하는지 비교한다. 현장의 여러 변수에 의해 이미지가 잘 부합되거나, 그렇지 못한 경우가 생긴다. 건축사의 의도된 공간이 본질적으로 변형, 훼손되기 전에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무조건 준공 전 또는 준공 직후라든지 어떤 시기가 가장 좋다기보다는, 많은 변수를 고려할 수 있는 건축물의 통제 역량(건축물 출입, 창문 개폐, 야간 조명 점등, 주차차량 이동, 현장 정리 등)과 섭외(촬영 허가, 임대세대의 협조 등)에 관계된 요소들이 촬영 시기에 큰 영향을 미친다.
최근 어느 지식산업센터 촬영의 경우 건축사는 건물 앞 조경의 녹음이 풍부한 사진을 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겨울에 심어진 나무들은 가지만 앙상했고, 온전히 자리 잡고 녹음이 풍부해지려면 2년은 걸릴 듯했다. 또한 대다수의 지식산업센터는 사용자가 들어오면 통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커튼월 내부의 현란한 시트광고라든지, 짐이 잔뜩 쌓여있기도 하고, 로비에는 각종 광고배너가 즐비하다. 이 또한 사용자의 모습으로 담고자 한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이런 경우 건물을 통제할 수 있는 준공 직후에 1차 촬영을 하고, 건축사가 원했던 조경과 어우러지는 장면은 2년 후쯤 2차 촬영을 하기로 했다. 사용자를 통제하기 힘든 임대건물에서, 원하는 이미지를 얻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다.
반대로 도심 대로변의 오피스 빌딩은 가로수에 가려져 있다. 풍성한 잎 덕분에 입면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다. 의도한 입면에 가로수가 들어가야 한다면 모를까, 입면에 변동 사항이 없다면 늦가을까지 타이밍을 기다려 촬영하는 것도 방법이 된다.
대형 백화점이나 쇼핑몰은 또 다르다. 이미 사용이 시작된 후에 촬영해야 상업시설의 느낌이 난다. 또 내·외부의 공간과 설치물도 대부분 정리되어 있다. 이런 경우 고객들이 적당히 있는 이른 오전 시간에 내부공간이 주로 촬영되고, 배치된 향(向)에 따라 내·외부를 오가며 야경까지 작업이 이루어진다.
주택의 경우도 상황은 제각각이다. 공간과 어울리는 가구가 세팅된 상황에서 클라이언트가 모델도 되어주는 촬영이 되면 좋겠지만(클라이언트에게 어떤 가구를 들여올지 건축사에게 사전 문의할 것을 부탁한다), 그렇지 않은 상황이라면 입주 전에 촬영한다. 시기를 놓치는 경우, 건축사사무소 직원들이 동원되어 가구를 옮겨가며 촬영하는 경우도 있다.
공동주택이 겨울에 준공되었다고 연락이 오는 경우,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제외하고 촬영 일정을 다음 해로 연기할 것을 제안한다. 일단 태양의 고도가 낮아 그림자 간섭이 심하고, 조경은 메말라 있으며, 연못 같은 수(水)공간에는 물이 없다. 다음 해 5월이나 되어야 태양의 고도가 높아지고, 조경도 푸르르며, 수공간에도 물이 담기기 시작한다. 삭막한 계절의 주거공간보다는 빛과 녹음이 어우러지는 주거공간의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이 공동주택 설계자의 바람이 아닐까 싶다.
가끔은 의도하여 건축물의 초기모습부터 변화된 모습을 담는 작업도 있다. 탄화 동판 1,500장이 외장에 붙여진 지역 구도심의 작은 근린생활시설인데, 두들긴 동판에 열을 가해 산화속도를 달리하여 시간에 따른 동판의 색변화를 드러내는 것이 건축사의 의도였다. 이 작업은 2년 전에 시작했지만, 외부전경 촬영은 아직 진행 중이다.
“몇 시에 건물을 찍으면 좋은가요?”, “언제 건물을 찍으면 좋은가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건축물을 촬영하는 정해진 시간은 없다. 나의 시간에 맞추어 건축사진을 찍을 수 없다. 일반 관광이나 답사처럼 정해진 경로나 여유시간에 맞춰 건축물에 도착하면 역광의 입면이나 빛이 없는 공간을 접할 수 있기에, 내 시간에 맞추기보다 건축물이 가진 환경에 맞는 시기와 순간에 맞추어 움직여야 한다.
공간은 시간이 적층되어 만들어진다고 본다. 설계의 시간, 시공의 시간, 땅의 시간, 빛의 시간… 수많은 순간이 층층이 쌓여 공간이 된다.
건축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건축사에게는 준공된 건축프로젝트의 정리 작업이 되고, 건축사진가에게는 건축의 숨겨진 순간을 담는 새로운 시작이 된다.
글. 윤준환 Yoon, Joonhwan 건축사진가
윤준환 건축사진가·Urban Record 대표
동아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도시건축사진공모전 (2001) 대상 수상, 한국건축사진가회 주최 워크숍(2001)을 거쳐 건축사진가로 활동 중이다. 대형 건축사사무소부터 지역의 아틀리에까지 많은 건축사들과 소통하며 다양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부산광역시와 변화하는 도시와 건축을 기록하는 ‘부산도시기록(2009~2010)’, 미군기지였던 캠프하야리아 시민공원 조성과정(2011~2014)의 기록 작업을 했다. 또 스페인 바르셀로나시청과 가우디 연구재단의 도움으로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건축물 13개를 촬영, 부산국제건축문화제 특별전 ‘가우디와 바르셀로나를 걷다(2013)’, 예술의 전당 ‘안토니 가우디전(2015)’에서 전시한 바 있다. 현재 건축사진스튜디오 ‘Urban Record’의 대표이자 한국건축사진가회 회장으로, 월간 전속 건축사진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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