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6. 09:06ㆍ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Jean Prouve's Architecture & Furniture
어느 시대에나 가구는 건축의 축소판이었다. 고딕 시대의 가구를 보자.<사진 1> 의자는 고딕 건축처럼 등받이가 높다랗다. 등받이 프레임을 마치 첨탑처럼 뾰족하게 꾸민다. 건축은 당대 모든 조형 언어의 기초가 된다. 특히 캐비닛은 건축처럼 수직적인 가구라는 점에서 건축의 축소판으로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캐비닛은 벽에 붙이므로 드러나지 않는 뒷면을 제외한 모든 곳을 장식할 수 있다.<사진 2> 장식할 수 있는 면적이 많다는 것은 자랑할 만한 오브제로서 아주 적절하다는 뜻이다. 귀족 사회에서 가구란 옷만큼이나 큰 자랑과 자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니 캐비닛을 주문하는 사람은 기능보다 표면 장식에 더 집착했던 것이다. 이런 캐비닛의 중요성 때문에 유럽에서는 가구 장인을 ‘캐비닛 메이커’라고 불렀다.
20세기에 들어와 건축가들은 캐비닛이 아니라 의자로 자신의 건축 언어를 표현하고자 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캐비닛은 그 형태가 제한적이다. 박스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모더니스트들은 장식을 멀리하고 순수형태를 숭상하므로 과거 장식으로 빛이 났던 캐비닛은 그 역할이 축소되었다. 반면에 의자는 조형적인 제약이 캐비닛보다 훨씬 적다. 조형적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20세기 의자는 대단히 다채롭게 디자인되었다. 의자는 재료 적용에 대해서도 관용도가 크다. 의자는 나무와 금속은 물론 천이나 가죽, 끈, 털, 나아가 종이처럼 가볍고 약한 재료, 심지어는 항공우주산업에 쓰이는 탄소섬유까지 수용할 수 없는 재료가 없다고 할 정도로 재료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가구다.
여기에 또 하나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의자는 건축만큼이나 중력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하는 가구라는 점이다. 기둥과 같은 다리가 하중을 견뎌야 하는 가구로 테이블과 책상도 있지만, 의자는 테이블과 책상 위에 올려놓는 것보다 더 무거운 사람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지구 중력을 고려하는 과정에서 의자의 다양한 구조가 탄생하고, 그것이 디자인의 특징을 이룬다. 물론 관습적으로 다리 4개를 적당히 붙이는 것에 만족하는 의자들도 많지만, 모던 건축가들은 무엇보다 다리와 프레임을 어떻게 구조화할 것인가에 많은 열정을 쏟아왔다. 그것이 개성을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의자의 구조는 또한 재료의 영향을 받는다. 캔틸레버 같은 구조는 강철관이라는 재료를 도입함으로써 가능해졌다.
이처럼 가구, 특히 의자는 건축의 축소판처럼 여겨져 웬만큼 유명한 모던 건축가라면 모두 자신의 서명처럼 의자 하나쯤은 디자인했다. 건축과 의자의 호응도가 대단히 높은 대표적인 사례로 장 프루베의 작품을 들 수 있다. 지난 5월 11일부터 6월 11일까지 갤러리 L.993에서 열리고 있는 ‘장 프루베, 더 하우스’ 전시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장에는 한국에서는 결코 보지 못할 것 같았던 ‘디마운터블 하우스(Demountable House)’, 즉 ‘해체할 수 있는 집’이 전시되었다.<사진 3> 이 집은 장 푸르베 건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마도 그의 건축 철학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일 것이다. 해체할 수 있는 집은 임시 주택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1944년, 전쟁의 혼란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정부가 마련한 프로젝트다. 이것을 위임받은 장 푸르베는 운송이 쉽고, 빠르게 조립하고 해체할 수 있는 주택을 설계했다. 이 집의 핵심은 역시 중앙에 있는 강력한 기둥이다.<사진 4> 이 기둥이 집 전체의 하중을 받고 있는 실질적인 구조다. 이 기둥에서 보가 뻗어 나오고, 그 보에서 마치 한옥의 서까래처럼 철제 프레임이 뻗어 나온다. 그 사이사이에 가벼운 나무를 끼워 집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집을 짓기 때문에 집을 잃은 사람들에게 신속하게 보금자리를 마련해줄 수 있었다.
물론 오늘날에는 빠르게 짓는 조립식 주택의 솔루션이 다양하게 개발되어 있지만, 본격적인 조립식 주택의 발전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장 프루베의 해체할 수 있는 집은 당시로서는 대단히 독창적인 아이디어인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는 프루베가 디자인에 접근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는 무엇보다 경제성을 고려해 산업적인 해결 방법을 찾았다. 경제성과 실용성을 갖추고자 간결하고 튼튼한 구조라는 해법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가구를 디자인할 때도 똑같이 적용된다. 대표적인 것이 이번 전시에 출품된 ‘스탠다드 체어(Standard Chair)’다. 이름도 평범하기 그지없는 ‘표준 의자’다.<사진 5> 이 의자는 하중을 많이 받는 뒷다리 프레임을 삼각형 구조로 튼튼하게 만들었다. 재료는 단 두 가지, 프레임을 이루는 강철, 그리고 좌석과 등받이를 구성하는 가볍고 저렴한 합판이다. 이 의자 또한 나사를 이용해 해체, 조립이 가능한 버전으로 ‘디마운터블 체어(Demountable Chair)’가 있다. 이 의자는 해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운반할 때 큰 장점을 갖는다. ‘조립과 해체’의 성질은 이동의 효율성을 낳는다.<사진 6>
이처럼 장 프루베에게 가구는 건축의 문제와 다르지 않다. 테이블에서도 그것이 발견된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인 카페테리아 512 테이블은 여러모로 ‘해체할 수 있는 집’의 축소판 같다. 삼각형 구조의 다리가 상판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 그렇다. 밑부분에서는 두 개의 다리지만 상판에서는 하나의 점으로 만난다. 이에 따라 상판은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가볍고 자유롭다. 프루베는 이처럼 캔틸레버 구조의 의자와 테이블을 많이 디자인했다. 구조적으로 안정되어 있으면서 날렵하고 가볍고 상승하는 듯하다. 프루베는 모든 대상에 실용적으로 접근함으로써 개성과 아름다움, 견고함에 이르고 있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 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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