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7. 09:06ㆍ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The world of chairs
얼마 전 『의자의 세계(이유출판, 2021.04)』 출판 기념행사에 사회자로 참여했다. 『의자의 세계』의 두 저자, 글을 쓴 김상규 교수와 그림을 그린 이일하 작가와 대담을 진행했다. 이날 두 저자로부터 의자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의자의 세계』는 현대를 대표하는 의자 59개를 소개하고 있다. 지금도 한 해에 수백 가지 새로운 모델이 탄생할 것이다. 20세기에만 얼마나 많은 모델이 등장했을까? 독일 타센 출판사의 『1000 chairs』에도 빠진 유명 의자가 많다. 1,000개를 고르기도 쉽지 않을 텐데 59개만 선택해야 한다면 정말 곤혹스러운 일이다. 물론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확실한 기준은 있다. 김상규 교수의 말처럼 “소재와 기술 혁신”만큼 확실한 선정 기준은 없을 것이다. 최초의 강철관 의자, 최초의 합판성형 의자, 최초의 플라스틱 의자….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선정에서도 ‘개인적 판단’이 개입된다는 것이다. 전 세계의 모든 리스트들, 예를 들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스포츠 선수’라든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 같은 선정에 늘 논란이 일어나는 것은 개인마다 개별적인 선정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완전무결한 선정이란 있을 수 없다. 오히려 리스트에서는 누구나 수긍할 만한 객관성이 아니라 주관성을 주목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이번 리스트에서 나의 흥미를 끈 것은 에일린 그레이의 ‘서펀트(Serpent)’ 의자다.<사진 2> 이 의자는 이 책에서 처음 봤을 뿐만 아니라 모던하지도 않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번 리스트에 특별히 여성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포함시켰다고 한다. 그레이의 서펀트 의자는 1917년에 생산된 것이다. 1917년은 영국, 프랑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유럽국가가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던 시절이다. 그만큼 남성들이 자신들이 점유하고 있는 영역에서 여성들의 참여를 극도로 경계하던 시절이다. 그 시절 극소수의 여성 디자이너들은 기회를 좀처럼 얻지 못했다.
에일린 그레이, 샬로트 페리앙, 마이안느 브란트 등 아주 극소수의 인물들만이 겨우 이름을 남겼다. 게다가 에일린 그레이는 1878년생으로 1887년생인 르 코르뷔지에보다 9살이나 많다. 그런 시대에 태어난 여성 디자이너가 여성에게 조금도 영역을 내줄 마음이 없었던 20세기 전반기 남성들 사이에서 불리한 경쟁을 했을 것은 뻔하다. 그런 점에서 그녀는 더욱 위대하다. 마치 메이저리그에서 최초의 흑인 선수인 재키 로빈슨이 길지 않은 경력에도 위대한 선수로서 추앙 받는 것처럼 20세기 전반기 여성 디자이너들은 남성과는 다른 기준으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같은 의도로 독일 건축가 릴리 라이히의 ‘LR 120’ 의자도 포함시켰다.<사진 3> 그녀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파트너로서 그 빛에 가려져 덜 알려졌다.
『의자의 세계』는 사진이 아니라 그림으로 구성되었다.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구성할 때 유리한 점은 일관된 톤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자를 그린 이일하 작가는 수채화로 그림을 그렸는데, 내가 가장 궁금한 것은 의자를 보는 시점을 어떻게 결정하느냐다. 구성 요소가 많고 구조가 다채로운 의자는 다른 가구와 달리 보는 방향에 따라 그 고유한 성질을 드러내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다. 45도 정도의 방향으로 약간 위에서 본 것이 설명적이고 무난하지만, 때로는 뜻밖의 시점이 의자의 특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나는 지오 폰티의 ‘슈퍼레제라(Superleggera)’ 의자가 궁금했다.<사진 4> 작가는 낮은 시점으로 이 의자를 그렸다. 낮은 시점으로 보여줄 때는 좌석 밑에 특별한 구조가 있을 때라고 생각했는데, 슈퍼레제라는 그렇게 특별한 구조의 의자가 아니다. 이탈리아어 슈퍼레제라는 ‘초경량’을 뜻한다. 폰티는 지역에서 나오는 아주 가벼운 나무를 이용해 이 의자를 만들었고, 프레임도 최소화해 무게가 불과 1.7킬로그램밖에 나가지 않는다. 이일하 작가는 이 의자의 가벼움을 강조하고자 낮은 앵글로 의자를 포착한 것이다. 마치 막 도약하려는 짐승, 상승하는 기운이 느껴지도록 말이다.
의자들은 특정한 공간 속에 놓였을 때 잘 이해된다. 실내라는 맥락에서 디자인의 적절성이 완전해지기 때문이다. 마치 북유럽 의자는 따듯한 북유럽 인테리어 스타일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바우하우스 의자는 차갑고 미니멀한 공간에서 더욱 어울리는 것처럼 말이다. 『의자의 세계』는 의자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소품으로 그 의자의 특성을 더욱 살리고자 했다. 장 프루베의 ‘스탠다드(Standard)’ 의자의 경우 프루베가 디자인한 캔틸레버 다리를 가진 테이블과 함께 보여주는 식이다.<사진 5> 철제 프레임과 캔틸레버 구조는 프루베의 전매특허다. 반면에 찰스와 레이 임스 부부가 디자인한 DAR과 DSW는 1950년대 초 미국에서 생산된 TV와 배치했다.<사진 6> 1950년대 초의 TV는 아직 가구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않은 고전적인 모습이다. 따라서 이보다 조금 더 앞서 생산된 임스의 의자들이 얼마나 모던한지 그 대비로 더욱 부각된다.
나도 의자에 관한 책을 한 권 써보긴 했지만, 가장 아쉬운 것은 역시 도판이다. 각 의자들을 다 촬영하는 건 비용상 불가능한 일이므로 여기저기에서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면 전체적인 통일성은 기대하기 힘들다. 『의자의 세계』는 병풍 형식의 책이므로 일관된 양식의 그림으로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화합을 이루었다. 의자를 디자인하는 것도 창조적인 일이지만, 그것을 글로 설명하고 그림으로 재현하는 것 역시 창조적인 작업이다.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 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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