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6. 09:07ㆍ아티클 | Article/에세이 | Essay
‘Stairs’, the vitality of buildings
계단을 생각하면 먼저 우리 시대의 명가수 조용필 님의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 계단, 어딘가에 엽서를 쓰던 그―녀의 고운 손~”으로 시작되는 ‘서울 서울 서울(1991)’의 노랫말이 생각난다.
일반적으로 우체국으로 진입하는 출입구 앞에는 계단이 조성되어 있다. 그 계단은 우편 화물차의 짐 싣는 공간과 차 바닥판의 높이를 맞춘 것으로부터 기인하는데, 화물 트럭 짐칸에서 내리는 우편물을 수평으로 힘 덜 들이고 올리고 내리려 하다 보니 1층 바닥은 도로보다 높아지게 되고 그래서 우체국 앞은 자연스레 계단이 조성되곤 했던 것이다. 그 계단 양측에는 환경미화를 위해 봄에는 사르비아(샐비어), 가을에는 들국화 등 화초류가 화분에 정갈히 담겨 있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베고니아 역시 그 화분류의 한 축을 담당했기에 그 계단에서 작사가는 도시 ‘서울’에 관한 음악적 감흥을 퍼 올렸으리라.
일반적으로 건축물의 사용자가 실내에서 위를 향해 켜켜이 올라갈 때나 아래로 층층이 내려갈 때 쉽게 이용하는 것은 엘리베이터이지만, 그보다도 가장 기본이 되는 원초적 수직 통로는 바로 계단이다. 만약 건축물이 2개 층 이상이 될 때 계단이 없다면 사다리로 오르내릴까? 꿈속에서 계단이 없어 헤매다 깨는 가위눌림을 경험해 본 사람에게 이는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다. 또한 몸이 불편한 사람에게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이렇듯 계단은 2개 층 이상의 공간 연결 매개체로서 정말 소중하다. 그래서 수직통로의 가장 기본이 되는 공간이자 건축물의 수직 축이 되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계단이다. 계단은 단순히 이동하는 피난통로를 뛰어 넘은 건축물의 디자인 요소로서 건축물에 활력을 불어넣는 요소가 될 수 있다.
다락을 오르내리는 계단은 수직 사다리 형태로 풀어 나가거나 원형 계단 형태로 디자인하기도 하지만, 계단은 건축물의 고정체이므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한다. 일전에 대지형태가 앞면이 도로면에서 좁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상대적으로 긴 대지에 상가주택을 설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계단에 대해 참 많은 고민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 건축물은 일반적인 돌음 계단으로 풀기에는 공간 낭비가 심해지는 폭이 협소한 대지였기에, 일자 계단으로 풀어서 해결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일자 계단으로 설계하니 건축물 이용자는 함박웃음으로 만족감을 표시했다.
건축법은 높이가 3미터 이상이면 중간에 계단참을 두어야만 법에 따른 피난 계단으로 인정한다. 그리고 계단실 유효 폭과 계단 높이, 계단 챌판 크기를 법규가 정하고 있다. 그래서 2.6미터의 상가 1개 층마다 참을 겸한 출입 현관을 배치하니, 2층을 오르는 것은 참을 한 번 쉬는 것이고, 3층에 도달하면 마치 다른 건축물의 2층을 오르는 듯한 기분 좋은 착시를 경험하게 해주어서, 3층에 위치한 주택 사용자가 느낌 상 부담이 덜하다고 말한 것이 기억난다. 계단은 단수 계산이나 디딤판 계단에서 착오를 일으키기 쉽기 때문에 도면 좀 그려 본 맞고참은 설계 초년생에게 이렇게 얘기하며 기를 죽이곤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계단 단면도 끊어 봤어?”
그렇듯 계단은 쉽지 않다. 설계를 할 때도 늘 고민을 많이 한다. ‘이 계단을 이용하는 분에게 어떤 감흥을 자아내야 할까’로 시작되는 고민은 공간설계에서 디자인을 한다는 참의미를 원초적으로 각인시켜 준다. 건물 디자인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모두들 쉽게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단언한다. “건물 디자인은 건축물에 활력을 불어 넣는 일이다”, 디자인이 안 된 밋밋한 건축물, 흔히들 기능만을 만족시킨 건축물에 디자인을 한다는 것은 건물에 활기와 생동감을 불어 넣는 일이기 때문이다.
계단은 건강관리로서 우리 몸에 활력을 불어 넣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칼로리 소비를 위해서도, 다리 근력을 기르기 위해서도 계단은 훌륭한 운동 도구이다. 전설의 메이저리거 박찬호 선수는 운동선수였던 시절에 계단을 보면 그냥 지나친 적이 없다고 한다. 계단에서 오리걸음을 하거나 뛰어가거나 해서 근력을 길렀다고 한다. 또 어느 주부는 15층 아파트 계단을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매일 오르내리는 것이 몸 건강관리와 더불어 얼굴 피부를 탱탱하게 유지하고 있는 비결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오늘도 나는 ‘건축물의 활력소’ 뿐만 아니라 ‘건강관리에도 활력소’인 계단을 소중히 생각하며 거리나 건물에서 마주치는 계단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설계자의 의도를 느끼며 건강을 생각하며 걷거나 뛰고 있다.
글. 조정만 Cho, Jeongman (주)무영씨엠 건축사사무소
조정만 (주)무영씨엠 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건축사·작가
건축사이자 문학작가인 조정만은 남원 성원고, 건국대학교 건 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건설경영과정 금호MCA를 이수하였다. 천일건축, 금호그룹 종합설계실, 아키플랜에서 설 계, 감리 실무 경험을 쌓았으며, 건축사를 취득한 후 강원청암 재, 동교주상헌, 고양농경문화박물관 등 다수의 작품을 하고 있 다. 2016년에는 한국수필에 ‘방패연 사랑’과 ‘아버지와 자전거’ 로 등단하였고, 선함재건축을 7년 운영하였으며, 현재는 무영씨 엠건축 대표이사이자, 활발한 에세이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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