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6. 09:10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Term@Architecture 06
Plastic
architectural terms 건축용어
우리나라 건축용어 중에는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어원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연재에서는 필자가 이해하기 어려웠거나 호기심이 크게 생겼던 표현들을 소개하고, 그 어원과 출처를 추적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과 함께 보다 적절한 표현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계기를 갖고자 합니다.
지금에 와서 플라스틱 없는 건축물을 상상하기가 어려울 정도지만, 플라스틱이 탄생한 것은 불과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19세기 중반 당구공의 재료인 코끼리의 이빨, 즉 상아를 대체할 재료를 찾으려던 노력이 오늘날 플라스틱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19세기의 플라스틱은 천연원료로 가공되었으나, 1907년 벨기에 태생의 미국인 레오 베이클랜드(Leo Hendrik Baekeland) 가 페놀과 포름알데히드를 이용해 천연원료를 사용하지 않은 최초의 합성수지를 발명한 것이 플라스틱의 시작이었다. 1922년 플라스틱이 수천 개의 분자 사슬, 즉 고분자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독일의 화학자 헤르만 슈타우딩거(Hermann Staudinger)에 의해 밝혀지면서 플라스틱은 다양한 형태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플라스틱은 쉽게 원하는 모양으로 가공할 수 있다는 의미의 그리스어 플라스티코스(plastikos)에서 유래했다. 원료의 의미라기보다는 가공성을 뜻한다. 플라스틱의 재료적 이름은 합성수지(合成樹脂)다. 수지(樹脂)는 나무의 진액이나 호박처럼 나무의 진액이 굳은 것을 말한다. 소나무의 진인 송진이 대표적인 천연수지이다. 영문으로는 레진(resin)이다. 치과에서 치아 모양을 성형하는 재료인 레진(resin)도 같은 레진(resin)이다. 말랑말랑한 상태에서 형태를 가공하고 굳혀서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재료의 총칭이라고 할 수 있다. 플라스틱은 천연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합성한 재료로 만든 수지(樹脂), 즉 레진(resin)이므로 합성수지라고 한다.
건축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은 어떤 것이 있을까?
PVC는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플라스틱 중 하나이다. PVC는 폴리염화비닐(Polyvinyl Chloride)의 약자인데, 플라스틱 종류 중에는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생산되는 종류이다. 건축물에서는 배수관으로 PVC 파이프를 사용하고, 창틀도 PVC 창틀을 사용하는 예가 많다. 부식되지 않고, 열을 전달하지 않으며 가격까지 저렴하니 빠르게 확산 적용되어 지금은 대체할 재료가 없을 정도다. PVC는 막(membrane) 형태로 제작되어 막구조물이나 공기를 넣은 건축물(pneumatic architecture)의 재료로도 사용된다.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에서 선보인 fuji pavilion은 대표적인 PVC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1996년부터 2003년까지 여의도에 설치된 ‘중소기업 협동조합중앙회 여의도 종합전시장'을 들 수 있다. 독특한 외관 때문에 굼벵이관이라는 별명이 붙었었고, 인상적인 랜드마크였다. 지금의 서울국제금융센터(IFC) 자리다. 뮌헨 월드컵 경기장이나 베이징 올림픽 수영경기장에서 사용된 pneumatic structure에서는 PVC보다 향상된 ETFE(Ethylene tetrafluoroetylene)가 사용되며, PVC를 대체하였지만, 현재까지도 많은 막(membrace) 구조물이 PVC로 제작된다. 막구조물을 보고 무조건 ETFE 구조라고 아는 체하는 불상사는 없어야겠다.
아크릴(acrylic)은 아크릴산(acrylic acid) 또는 아크릴수지를 일컫는 보통명사다. 주로 판형태로 가공하여 사용되는데, 1930년부터 사용화된 역사가 오래된 플라스틱 중 하나이다. 투명성이 높아 유리를 대신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2차 세계대전 시기부터 항공기와 잠수함에 널리 사용되었다. 아크릴을 사용한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1972년에 완성된 뮌헨 올림픽 스타디움일 것이다. 독일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귄터 베니쉬와 플라이 오토가 설계한 이 건축물은 아크릴(PLEXIGLASⓇ) 판과 케이블로 구성된 투명한 지붕으로 무려 74,000㎡를 덮었다. 1972년 당시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혁신적인 디자인이다. 바닷속 풍경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아쿠아리움의 투명한 창은 엄청난 수압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작은 어항은 유리로 만들 수 있지만, 아쿠아리움의 창은 유리로 만들지 않는다. 창의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대형 아쿠아리움은 수십 센티미터 두께의 아크릴이 사용된다. 아쿠아리움에 간다면 당신과 바다 사이에는 두꺼운 아크릴이 있는 셈이다.
폴리카보네이트(polycarbonate)는 1953년 독일 바이엘 사가 처음 개발한 플라스틱이다. 경찰이나 군인들이 방패로 사용할 정도로 내충격성이 높은데, 유리의 250배 정도라고 한다. 이 폴리카보네이트는 이름이나 용어가 잘못 사용되는 대표적인 플라스틱 중 하나이다. ‘방탄 플라스틱’은 내충격성을 과장한 표현이다. ‘깨지지 않는 아크릴’이라는 표현은 잘 깨지는 아크릴을 대체해서 판매하려는 목적이 왜곡된 것이다. 폴리카보네이트라는 재료명을 모르고, ‘렉산’이나 ‘단파론’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사용인 것이다. ‘렉산(Lexan™)’은 미국의 GE Plastic에서 폴리카보네이트 제품에 붙인 일종의 제품명이다. ‘단파론(danpalon®)’은 이스라엘의 Danpal 사가 생산하는 복층구조의 폴리카보네이트 패널 제품이고, 비복층 폴리카보네이트 제품군은 ‘단팔(danpal®)’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재료명은 폴리카보네이트이고, 회사에 따라 제품명으로 각각 ‘렉산(lexan™)’이나 ‘단파론(danpalon®)’ 등이 있는 것이다. 제품명을 재료명처럼 사용하는 것은 지양해야겠다.
플라스틱의 다양성 때문에 구분하기 어려웠을까? 우리의 무관심 때문이었을까? 스티로폴이나 스티로폼은 오래도록 잘못 사용되고 혼란만 일으킨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BASF 사는 1951년 폴리스티렌(polyStyrene)을 발포시켜 작은 알갱이(bead)로 만들고, 이 알갱이를 다시 압축해서 큰 덩어리로 제작하여 비드(bead) 법 단열재를 생산했다. ‘스티로폴(Styropor®)’은 BASF 사가 국제적으로 등록한 제품명이다. ‘스티로폼(Styroform™)’은 미국 회사인 DuPont 사의 비드(bead)법 단열재 제품명이다. 비드(bead)는 구슬이나 염주를 뜻하는데, ‘구슬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속담의 구슬이 바로 bead다. 구슬로 액세서리를 만드는 비즈공예의 비즈(beads)와 비드법 단열재의 비드(bead)가 같은 단어인 점이 흥미롭다. 비드법 단열재와 구분되는 압출법 단열재인 ‘아이소핑크'나 ‘골드폼' 등도 발포폴리스티렌(Expanded PolyStyrene)을 재료로 한다. 비드법 단열재와 재료는 같다. 비드 형태로 가공하는 중간 과정 없이 전체를 압출해서 생산하므로 제작방법이 다르다. 일반인이라면 모르겠지만, 전문가라면 정확한 용어로 구분해야겠다.
인조대리석은 스티로폼보다 더 심각하다. 주방에서 싱크대 상판으로 주로 사용하는 인조대리석은 창턱이나 욕실의 문턱 등 물을 사용하거나 물이 묻을 수 있는 곳에 많이 적용하는 재료다. 대리석 무늬를 닮은 것도 있지만, 화강암이나 사암과 같은 다른 석재의 무늬를 더 닮은 것 같은데, 왜 인조대리석이라고 부를까? 인조대리석은 대리석을 인공적으로 만든 것을 인조대리석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대리석 조각을 몰탈과 섞고 굳힌 뒤 갈아낸 테라죠를 인조대리석이라고 한다면 이해가 된다. 대리석이나 화강석 같은 석재의 무늬를 모방한 재료는 타일이나 필름, 페인트 등 다양하다. 우리가 인조대리석이라고 부르는 주방 상판의 성분을 살펴보면 여러 색깔의 아크릴 조각을 혼합하여 다양한 석재 무늬를 모방했다. 재료는 아크릴 계열의 플라스틱이다. 그러니 석재를 모방한 타일 등의 재료와 구분하여 ‘아크릴계 인조석’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인조대리석’이라고 지칭하는 것보다 적절하겠다. 국내에서는 엘지(LG)가 하이막스(Hi-Macs)라는 브랜드명을 사용하고 있는데, 하이막스(Hi-Macs) 홈페이지의 제품 설명에는 아크릴 계열이라는 설명을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의 듀폰(Dupon)은 코리안(Corian)이라는 제품명을 사용한다. 가격이 높은 Corian을 고급 재료라며 특별하고 새로운 재료처럼 설명하는 상황을 종종 접한다. 크기가 크거나, 유선형의 독특한 형태로 제작하려면 가공과정에서 난이도가 높으니 가격이 높을 수 있으나, 재료
는 주방에서 싱크대 상판으로 널리 사용하는 아크릴 계열 합성고분자 화합물, 즉 플라스틱이다.
실크벽지에서는 눈을 씻고 들여다봐도 실크(silk)를 찾을 수 없다. 합지벽지가 바탕 종이 위에 무늬가 인쇄된 종이를 붙인 것이라면, 우리가 흔히 실크벽지라고 지칭하는 벽지는 바탕 종이 위에 PVC로 질감과 무늬층을 만든 벽지다. 바탕이 되는 백상지의 전면에 벽지 무늬를 인쇄한다. 그리고 졸(sol)상태로 만든 폴리염화비닐(PVC)을 도포하고, 입체무늬를 프레스(press)로 눌러서 마무리 한다. 벽지를 취급하는 업체에 물어봐도 폴리염화비닐 벽지를 언제부터 실크벽지로 부르게 되었는지 답해주지 못했다. 그저 실크처럼 부드럽고 매끈해서 실크벽지라고 부르는 것 같다는 추측성 답변 뿐이었다. 아연 도금된 철판에 페인트를 칠한 ‘리얼징크’는 그래도 아연 성분이 약간이라도 있는데, 실크벽지에는 실크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다. 왜 폴리염화비닐 벽지를 실크벽지라고 부르고 있는지 궁금하고, 앞으로 바로 잡히길 바라는 마음이다.
스티로폼이나 렉산처럼 제품명이 재료명으로 잘못 사용되거나 인조대리석이나 실크벽지처럼 잘못된 표현이 널리 퍼진 용어를 바로잡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새로운 재료를 개발하거나 도입할 때 적절한 용어와 이름을 사용하는 인식이 필요하겠다.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해서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선배가 될까 싶어 오늘도 조심스럽다.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 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 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젊은건축가상(2016, 문화체육관광부), 경기도건축문화상 특별상(2017, POP하우스), 충남건축상 최우수상(2017, 서 산동문849),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본상(2018, 양평시옷 (ㅅ)집), 서울시건축상(2019, 얇디얇은집), 한국리모델링건 축대전 특선(2020, 제이슨함갤러리)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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