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 매트릭스 vs 2021 메타버스 2021.9

2023. 2. 9. 09:13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1999 Matrix vs. 2021 Metaverse

 

<매트릭스>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2021년. 정치인의 구호에서, 언론의 사회현상에서, 경제계의 화두에서, 메타버스(Metaverse)가 화제가 되고 있다. 가상화폐 논란도 수년째 계속되고 있다. 건축사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직업을 갖고 있는 입장에서 이런 화두가 어리둥절하다. 메타버스가 뭘까?

메타버스는 확장된 가상 세계라는 개념으로 우리 생활에 점차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 개념이지만, 이미 우리 생활에 스며들어 있다. 내 집 컴퓨터에서 언제든 목적지를 찾을 수 있는 로드뷰도 일종의 메타버스 세계고, 마우스를 클릭해가면서 모델하우스를 이리저리 구경하는 것도 메타버스의 세계다. 증강현실은 좀 더 구체화된 메타버스의 세계로 몇 해 전 스마트폰으로 포켓몬을 잡으러 찾아다니던 것을 기억하면 된다.

과학적으로 생각해 보면 ‘경험’한다는 개념은 뇌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알고리즘의 연결망에서 비롯된 결과다. 만약에 뇌를 속인다면 인간의 생물학적 신체에서 느껴지는 오감으로 기억하는 경험을 가공의 자극과 정보 전달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영화 <토탈 리콜(2012)>이나 <AI(2001)>에서는 장갑이나 의류를 통한 전기 자극과 디지털 헬멧으로 실제 감각 이상의 느낌을 주어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래전 읽은 경제학자의 글에서 이런 가상의 성적 경험으로 사람들의 신체 접촉 빈도수가 줄어들게 되어 성병이나 임신, 출산의 과정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하는 것을 보았다. 

과학의 발달이 인간의 생물학적 자극과 본능의 방향을 바꿔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상상력은 인공지능의 독립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전제까지 하게 되고, 소설가나 만화가가 아닌 과학자들이 이런 위험을 경고하기도 한다. 문득 이 경고의 끝은 어디인가 상상해 보니, 20년 전 우리에게 충격을 주었던 영화 <매트릭스(1999)>가 결코 불가능한 상황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든다. 

당시 여러 잡지에 영화 관련 글들을 게재했는데, 막연하게 언젠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영화를 감상했던 당시 글을 보면 영화 자체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

<토탈 리콜> 스틸컷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주)
<토탈 리콜> 스틸컷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주)


“녹색의 글씨로 낙수(落水)하는 초반의 장면은 <공각기동대>를 본 사람이라면 쉽게 오버랩 된다. 더구나 고층건물에서 다이빙하듯 뛰어내리는 장면에 이르면 이미지 카피로 인한 식상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가 하면 장자의 호접몽처럼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로 전개되어, 현실의 모호함을 배경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이는 <토탈 리콜>이나 <12 몽키즈> 속 현실과 비현실의 애매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과 유사한 설정이기도 하다. 다만 이 영화들이 좀 더 심리적이고 정신 분열적인 상황으로 연출하고 있다면, 매트릭스는 의식만으로 존재하는 세계와 현실에서 기계에 의해 조정되는 이분법으로 나뉜다. 이런 생각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 초시간적이고, 초 공간적인 관계가 가능한 현재의 상황에서 이해할 수 있는 설정이기도 하다. 의식만의 세계에서 엮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들. 큰 줄기는 메시아적 주인공이 악(영화에서는 굳이 이것을 악이라 칭하지 않았지만, 제거해야할 기계의 존재가 그다지 매력적인 천사의 모습으로 표현되지 않는다.)의 세계를 구원한다는 전형적인 권선징악의 구조를 기본으로 한다. 다만 주인공의 메시아적 이름-네오-에서부터 다양하게 등장하는 인물들의 작명은 관객들로 하여금 지적인 토론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주인공 네오(neo)는 새로움, 신기원을 이룬다는 그리스어(neos)로 해석된다. 모피어스(morpheu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꿈의 신이며, 그리스어로 ‘morphnos’가 의미하는 어둠처럼 주인공들의 복장이 검정인 것을 해석하고 있다. 또한 네오와 상대역인 트리니티(trinity)는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뜻하며, 동시에 삼위일체는 기독교에서 하나님에 대한 의미임과 동시에 네오는 메시아로서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등장한다. 더구나, 리로리드에서 등장하는 지하 인간세계인 시온(zion)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땅’으로서 예루살렘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이는 이집트로부터 출애굽을 행한 이스라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리로리드에 나온 시온의 장면이 중동적인 시각적 장치를 보여주는 것을 보면, 마치 찰톤 헤스톤 주연의 <십계>의 한 장면이 오버랩 되기도 한다. 고딕의 어두움, 구원에 대한 이미지들과 기계에 대한 인간의 회복력을 보여주는 르네상스적 관점을 드러내기까지 이 영화는 수많은 생각과 이미지를 드러내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지적 욕구와 스스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학습의 한계를 답답하게 느낀 <베를린 천사의 시> 이후로 두 번째가 아닌가 싶은 영화다. 더구나 작가주의적 심도 깊은 영화와 상업영화 사이의 교묘한 줄타기는 이 영화의 최대 장점이기도 하다. 보는 이에 따라 각기 다른 양상으로 이해되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20년이 지나 다시 영화를 생각하면서 당시의 글을 펼쳐보았다.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가상성’은 이제 현실화되어 경제적 활동 영역의 한 가운데 있다. 이런 가상 사회에서 구분되고 정의되는 시간의 개념은 그 의미가 약해진다. 장소에 대한 변별성 역시 마찬가지다.

골프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실내 골프장인 ‘골프존’을 가보자. 그곳에서는 세계 유수의 골프장을 선택할 수 있다. 또 실제의 장소처럼 느끼게 하기 위한 보조적인 물리적 장치들이 수반된다. 처음엔 어색하지만, 이내 몰입하게 되고 현장의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 느낌을 받는다. 온라인 쇼핑몰은 모니터에 나열된 상품을 구매하던 패턴에서 가상세계화된 나의 아바타를 위한 각종 쇼핑을 유도하고 있다. 모니터 안의 이미지에 인격체를 부여해서 현실의 돈을 지불하면서 생활감을 경험하고 있다.

모니터 안에서 펼쳐지는 활동 폭과 범위가 넓어질수록, 모든 분야가 통합되고 공유된 하나의 집합 공간이 필요해진다. 물론 이런 교집합도 0과 1로 만들어진 인식의 바탕일 뿐이다. 뇌로 인식되는 하나의 영역, 하나의 세계가 바로 메타버스의 세계, 즉 각종 인터넷 정보 세계인 것이다.

사람들은 그 안에서 쇼핑하고, 게임을 하고, 대화를 한다. 인식의 몰입은 중독성이 동반되는데, 전 세계인이 동시에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아마도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가상의 세계에 몰입될 것이다. 물리적 과학과 상업화의 성과는 가상 세계의 몰입도를 더욱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발달할 가능성이 높다. 몰입을 위한 도구로 개발되고 개선될 것일 텐데, 이런 과정에서 건축은 어떻게 진행될까?

영화 <매트릭스>에서 말하고자 한 이야기의 결말이 뭔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일종의 미래에 대한 상상에 기반한 중계방송 같은 전개를 보면 현재 진행 중인 과학 발달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런 두려움은 현실의 것과 차원이 다르다. 물론 매트릭스의 가상세계에서는 현실과 동일한, 부동산 투기며 도박, 사기, 매춘 등 각종 범죄가 가능하다. 그러나 간단히 말해서 이런 범죄는 플러그를 빼버리면 그만이다. 매트릭스에서도 이런 위험 상황에서 플러그를 빼버리는 것으로 벗어나려 한다. 물론 인간의 신체는 뇌로부터 통제를 받기 때문에 극도의 상황이 되면 몸 자체가 영향을 받아 위험하게 되기도 한다. 매트릭스의 두려움은 바로 이런 지점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철학자들이 말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통제하는 어떤 거대한 권력. 그것이 자본의 권력이든, 정치적 권력이든…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목표가 없는 맹목적이면서 강력한 권력일지도 모른다.

이런 시각에서 2021년에 바라보는 영화 매트릭스는 사뭇 위협적이고 소름 돋는 디스토피아 영화의 정점 같은 느낌이다. 참고로 매트릭스를 설명해 주는 만화영화 매트릭스를 보면 영화의 이해도가 훨씬 높아진다. 반면에 후속편 몇 개는 아쉽다. <매트릭스3 : 레볼루션>은 그냥 상업영화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아무튼, 각종 첨단 정보화 도구 개발과 생활화된 지금 <매트릭스>를 다시 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자, 그렇다면 이런 메타버스의 시대에 건축은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단순하게는 상업적 활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가상체험형 모델 하우스가 있다. 가상체험형 모델 하우스는 평면에서 벗어나 이제 마우스를 따라 이동하는 입체적 시뮬레이션까지 가능하다. 한발 더 나아가 주택 모델하우스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를 입체로 구현한 도시공간 시뮬레이션도 현실화되어 있다.

여기에 연구되는 프로그램은 사람들의 이동량도 포함시켜서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 이동량의 추측을 통해 특정 도시 공간에서의 건축이용량도 파악할 수 있고, 빅데이터를 가공하면 상업적 프로그램 개발도 가능해진다. 한마디로 기획접근의 유용성이 현실화 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건축 시뮬레이션을 통해 공사비를 절감하고 변화에도 대응할 수 있다. 이미 현실화된 BIM 여러 경우의 수 중 하나다. 건축 설계 역시 증감현실과 각종 3D도구 개발로 점차 대중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건축의 좌표, 더 나아가 건축적 창조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더 중요한 것은 18세기 산업혁명 당시 등장했던 두려움의 반작용인 러다이트 운동이 21세기 메타버스의 시대에 필요한가 하는 점이다. 일자리를 뺏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것이다. 18세기 노동자들의 반발은 충분히 이유가 있었고, 시대 변화로 이들이 학습된 제조업의 노동자로 재편성되면서 러다이트 운동은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의 한복판에 있는 메타버스의 시대에서 경제적 약자들은 대응할 힘이 없다. 왜냐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더 이상 이들 노동자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식과 판단의 기능이 점차 가능해지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의 각종 노동의 힘과 가치는 위축되고 있다. 육체적 노동은 점차 개발되는 인간화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다. 각종 생산 역시 마찬가지다. 심지어 기획하고 창조한다는 지극히 인간적 사고 분야까지도 모순과 실수를 학습하는 인공지능으로 대체가 가능하다고 하는 세상이다.

 

<토탈 리콜> 포스터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주)


메타버스의 시대. 건축사들은 어떻게 될까? 앞으로 10년 뒤 세상이 또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면서도 약간 두렵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 본지 편집국장

홍성용은 건축사(KIRA), 건축공학 박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건축의 크로스오버를 오래 전부터 주장했다. 국내 최초의 영화 와 건축을 해석하는 <영화속 건축이야기, 1999> 을 시작으로 여행기, 마케팅을 연구했다. 건축사로 최초의 경영서적인 <스 페이스 마케팅 2007>을 삼성경제연구소를 통해 출간하였고, 도시경쟁력 연구인 <스페이스 마케팅 시티, 2009>, 그리고 2016년 <하트마크>를 출판했다. 신사동 임하룡씨 주택, 근생 멜론 등 다수의 건축작품과 인테리어 작품들이 있다.

 

ncslab@ncsarchitec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