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건축 워치 07북한의 건재산업 2021.9

2023. 2. 9. 09:14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North Korean Architecture Watch 07
Building material industry of North Korea

 

1. 2021년 북한의 평양 살림집 5만 세대 건설과  건자재 생산 독려   

2021년 3월,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하여 북한이 국경을 봉쇄한 지 1년 만에 한 국영기업 대표가 중국을 방문하여 건축자재공장을 둘러본 것으로 보도되었다.(北, 국경 봉쇄 1년 만에 中 견학 "건축 자재 보러왔습니다"/ YTN, 2021.03.05) 북한국영기업 대표의 중국방문은 평양 살림집 1만 세대 건설을 위한 건축자재확보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양 1만 세대 건설 독려 포스터. 과거의 포스터는 주로 정치적인 구호 위주였으나 최근 1만 세대 건설과 관련된 선전 선동 포스터는 시공의 질 보장, 사고 방지, 노동자의 생활 보장, 건설자재의 생산, 자재·장비의 운송효율화 등 실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은 2021년 1월에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를 개최(2021.01.05.~12)하고,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하였다. 당대회 후 북한은 건설과 관련하여 ▲평양주택 5만 호, 검덕광산도시 2만 5,000호 건설 ▲순천 시멘트연합기업소를 비롯한 현존 시멘트공장들의 현대적 개건 등 시멘트 증산을 목표로 제시하였다. 그리고 후속으로 열린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2차 전원회의(2021.02)에서 5만 세대 건설을 5년간 매년 1만 세대씩 건설하는 것으로 구체화하였다. 3월 23일에는 김정은 비서가 직접 참석한 가운데 평양살림집 1만 세대 건설착공식이 열렸다. 
이후 북한은 평양 살림집 1만 호 건설과 관련하여 건설자재(시멘트, 철근, 벽돌-블록크- 등)의 국산화와 증산을 독려하는 보도를 대대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와는 달리  북한은 건설자재의 국산화에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해방 후부터 건설자재의 국산화를 추진하였으며 1950년대부터 건설의 과학화, 표준화, 조립식화를 추진하여 대규모 주택공급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경제난으로 건설사업도 급격히 위축되었으며 생산설비의 낙후화, 에너지 부족으로 건설자재는 제대로 생산되지 못하였다. 고난의 행군(1994~1998) 이후인 2000년대에도 건설자재 생산은 정상화되지 못하여, 건설자재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하여야 했다. 김정은 집권 후에 건설자재 국산화를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나, 부분적인 성과만 거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남북건설협력사업 시 골재(모래, 자갈) 외에 북한의 건축자재 사용이 불가능하여 공사비가 상승하고, 공기가 길어지는 등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향후 북한개발과 건설협력사업의 경제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건설자재 산업 발전이 필요하며, 이를 위하여 북한 건설자재 현황 파악을 통한 협력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2. 북한의 건설자재산업  

북한은 1945년 해방 후부터 현재까지 건설을 정권의 중요한 치적으로 삼고 있다. 1946년 착수한 보통강개수공사, 1950년대 전후 평양 복구, 1960년대 살림집 건설, 1980년대 기념비적 건축물 건설사업 등을 업적으로 선전하고 있으며, 김정은 위원장 집권 후에도 평양의 살림집 건설, 위락시설 건설 등을 치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제13차 건축축전(2013.05) 당시 평양도시계획설계연구소원. 건축축전에서는 건축설계만 이 아니라 건설자재, 장비 및 설계소프트웨어 등도 전시된다(북한방송 캡처)


북한은 건설을 위한 건자재를 국내에서 조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건설자재 생산은 중요한 국가정책 중 하나이다. 북한 내각에는 건설자재 생산을 담당하는 건설건재공업성이 있으며, 매년 열리는 5.21건축축전에서도 건설자재 전시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각종 보도에서 자주 새로 개발한 건설자재와 공장 등을 소개하면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1990년대부터 경제사정의 악화로 건설자재 생산뿐만 아니라 건설 자체가 위축되었다. 2000년대 들어와서 건설자재 생산시설 현대화를 추진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으며, 김정은 위원장 집권 후에도 건설사업을 위하여 건설자재의 종류와 생산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였으나 한계가 있었으며, 중국산 자재를 대규모로 수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지역은 일제강점기에 시멘트, 제강(철근), 목재공장 등이 운영되고 있었으며, 북한의 건자재산업은 이러한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건자재 공장을 기초로 하여 발전하였다.     
북한지역에는 한반도 석회석의 70%가 매장되어 있어 일제강점기부터 시멘트 산업이 발전하였다. 한반도의 첫 시멘트공장은 일본 최대의 시멘트 회사였던 오노다(小野田) 시멘트 회사가 1919년 12월에 평안남도 동부군 승호리의 경의선 철로변에 세운 것으로, 연간 6만 톤의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공장은 제1차 세계대전 후 일본의 만주 및 중국 시장 진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노다 시멘트에서 한반도에 세운 시멘트공장은 승호리 외에 천내리(1928), 고무산(1936) 시멘트공장 등이 있었으며 한국전쟁 시 상당수가 파괴되었으나, 전후에 복구하여 이들 공장은 현재도 운영되고 있다.
1980년대까지 북한의 시멘트는 중국 시멘트보다 품질이 좋아 많은 양이 중국으로 수출되었다. 그러나 시멘트공장은 제철산업과 유사하게 용융로(킬른)를 가동하기 위하여 많은 에너지가 소요되므로, 1990년대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에너지난과 설비 낙후화로 품질이 저하되고 생산이 급격히 위축되었다. 
2000년대 초반 국내에서 북한의 시멘트 샘플을 분석한 바에 의하면 강도가 기준에 비하여 낮게 나오거나 균일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품질 외에도 철도 및 도로 사정으로 적기에 공급이 어려운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2005년경 평양에서 가까운 상원시멘트공장의 사업권을 북한에서 이동통신사업을 하는 오라스콤(이집트의 이동통신회사)이 확보하였다. 오라스콤은 세계 최대의 시멘트 회사인 라파즈그룹의 투자를 유치하여 시설을 현대화하였다. 상원시멘트공장은 2010년 이후 평양의 대규모 건설사업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2019년 북한의 시멘트 생산량은 560만 톤으로 1988년의 978만 톤의 6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는 최근 북한이 8차 당대회에서 시멘트 생산능력 확장을 강조한 이유이기도 하다.
건축자재 중 시멘트만큼 중요한 재료는 철근이다. 철근을 생산하는 북한의 제철소도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제철소를 기초로 하여 발전하였다. 북한의 제철소 중 가장 오래된 제철소는 황해제철소로, 미쓰비씨(三菱) 중공업에서 1918년 설립한 것이다. 북한 최대 규모의 제철소인 김책제철 연합기업소도 미쓰비씨 중공업과 일본제철이 1936~1942년 공동으로 설립한 청진제철소가 모체이다(북한의 산업, 기업은행, 2015). 북한은 철광석이 풍부하여 제철공업이 발전하였으나, 1980년대 이후 경제난과 에너지난으로 제철산업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1990년대 이후에는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였다. 북한은 2000년대부터 철강산업 재건을 위하여 외화 부족으로 수입이 어려운 코크스(제철의 원료) 대신 무연탄을 이용해 철을 만들어내는 주체철기술 개발을 추진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철강생산 능력은 2010년대 120만 톤 정도였으나, 2019년에는 68만 톤(통계청)으로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1988년의 504만 톤의 13.5%에 불과한 것이다. 
목재는 건설에서 중요한 자재이다. 목재는 가설재, 구조재, 마감재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된다. 특히 북한에서는 가설재 재료가 대부분 목재이며, 주택의 지붕트러스, 천정틀, 창틀 등에도 목재를 사용하고 있다. 북한은 임야면적이 국토에 80%에 달하지만 경제난, 에너지난, 뙈기밭 개발, 산림정책의 실패 등으로 산림이 황폐한 상태이다. 그러나 북한의 수출품목에는 여전히 목재가 포함되어 있다. 김정은 집권 후 산림복구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나, 여전히 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 산림복원은 건설자재 측면이 아닌 북한의 환경, 생태적 복원차원에서도 중요한 부분이며, 남북 협력이 필요한 분야이다. 
남북 건설협력 시 모래와 자갈은 대부분 북한 자재를 사용하였으나, 품질은 좋지 못하였다. 북한은 강모래와 강자갈을 사용하고 있으나 규격이 일정하지 못하고, 이물질도 많아서 국내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래의 채취, 선별과 세척을 위한 설비가 없고 자갈도 규격에 따라 선별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 원인이다. 이에 따라 콘크리트도 품질을 좋지 못하여 기준 강도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PC부재를 생산하는 평천부재공장의 모습(북한방송 캡처)


북한은 1950년대부터 전문가들의 상당한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건설과 건설기간 단축을 위하여 건설의 공업화, 표준화를 표방하며 조립식 건축공법을 도입하였다. 조립식 건축은 ①규격화된 블록을 접합하여 연결하는 블록접합방식 ②대형패널 조립방식 ③통방부재조립방식(거실, 침실, 화장실이나 부엌 같은 단위 실을 PC로 만들어 현장에서 쌓거나 결합하는 방식) 등이 있다. 조립식 주택 비중은 1957년 32.4%에서 1962년에는 72.6%로 급증하기도 하였다(조선중앙연감, 1963, p.343). 그러나 통방부재방식은 기중기의 능력, 온돌 설치 문제, 누수 문제 등이 있어 주로 패널 방식이 사용되었다. 북한의 조립식 건축부재 중에는 국내의 스판크리트(프리스트레스를 가한 강선을 이용하여 인장력을 강화한 콘크리트 PC 스라브판으로 중공층이 있는 Hollow Core Slab의 일종)와 유사한 것도 있다. 1980년대까지 조립식 건축물이 상당히 건설되었으나, 김정일 위원장이 건축의 예술성, 다양성을 주장한 이후에는 많이 사용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영화 <시련을 뚫고(1983)>는 1950년대 말 여러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재하 건설상 이 건설의 조립식화와 기계화를 추진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이다. 최재하 건설상은 평창올 림픽에 방문했던 최휘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의 아버지이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북한의 실리카트(실리케이트) 벽돌이 국내에 알려져 관심을 끌었다. 실리카트 벽돌은 모래와 석회를 주원료로 하고, 알루미늄 등 발포제를 첨가하여 만든 일종의 발포경량벽돌로 단열성과 내화성이 우수하고, 무게가 가벼운 특성이 있다. 1987년 안주에 최초로 실리카트 벽돌공장이 세워졌다고 한다. 실리카트벽돌은 특별한 재료가 아니고, 국내의 ALC블록(Autoclaved Lightweight Concrete 블록, 경량기포콘크리트 블록)과 유사한 것으로 흡수율이 높아 외장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실리카트 벽돌공장 현대화와 확장이 추진되었으나, 현재는 많이 사용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해방 후 남포유리공장을 세웠으나 6.25전쟁으로 파괴되어 다시 건설하였으며, 1954년부터 판유리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1960~1970년대 대규모 살림집 건설로 판유리 수요가 늘어나 남포유리공장의 설비를 지속적으로 확장하였으나, 1990년대 이후 시설개수를 하지 못하였으며 2000년대에 설비가 낙후하여 폐쇄를 하였다. 2000년 초반 중국의 지원을 받아 2005년 10월 대안친선유리공장을 준공하였으며, 이는 현재 북한에서 가장 큰 유리공장이다. 대안친선유리공장의 판유리는 2007년경에는 국내에 수입이 되기도 하였다(北유리공장, 절반 南등 해외 수출/ 데일리NK, 2007.07.10.). 대안친선유리공장에서는 페어글라스(복층유리), 강화유리 등도 생산하고 있으나 복층유리는 일부 건물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평양건설기계공장은 승강기(엘리베이터), 기중기 등을 생산하는 공장이다(북한방송 캡처).
평양건설기계공장은 승강기(엘리베이터), 기중기 등을 생산하는 공장이다(북한방송 캡처).


2012년 김정은 위원장 집권 후 북한은 건설자재 국산화, 다양화, 품질 향상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으며 시멘트 첨가제, 창호재, 도기, 타일, 도료(페인트), 도로포장재(보도블럭 등), 벽지, 콘크리트 배관재(흄관), PVC 파이프, 전선, 기와, 벽돌, 방수재, 가구 등의 생산성과에 대하여 많은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승강기 생산공장(평양건설기계공장)에 대한 보도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북한의 건설수요를 충족할 정도의 생산량과 품질이 미치지 못하여 중국의 자재에 많이 의존하고 있으며, 김정은 위원장이 강력하게 추진한 원산갈마지구와 평양종합병원의 준공이 지연되는 것도 자재확보의 어려움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21년 평양 1만 세대 살림집 착공 후에는 북한의 다른 모든 건설 사업을 보류하고 건설자재 생산역량을 살림집 건설자재 생산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 남북건설협력과 북한의 건설자재산업

1990년 이후 ▲경수로지원사업(KEDO),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등 개발사업 ▲평양류경정주영체육관, 금강산이산가족면회소, 개성종합지원센터, 평양과기대 등 대규모 건설사업 ▲종교시설(봉수교회, 신계사), 의료시설(어린이어깨동무어린이병원, 평양라이온스안과병원, 락랑섬김인민병원 등) 등 많은 남북건설협력사업이 이루어졌다. 이들의 건설을 위한 시멘트, 철근, 마감자재 등 대부분의 건설자재는 남한산(일부는 중국산)이 사용되었으며, 심지어 골재(모래)도 일부는 남한산을 사용하였다. 이에 따라 남한에서 공사하는 것에 비하여 공사비가 높아지고, 공기가 늘어나는 등 많은 문제점이 있었다.         
2010년 이후 남북관계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2018년 평창올림픽, 남북 및 북미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남북관계 개선으로 남북건설협력사업이 재개되는 경우 북한의 인프라 개선, 경제특구개발 등 지금까지의 건설협력사업보다 훨씬 큰 규모의 건설사업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되며, 건설협력사업을 경제적,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북한산 건설자재사용의 확대가 필수적이다. 
그리고 건설용 모래, 석재 등 환경문제로 국내에서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재를 북한에서 반입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된다. 이미 2004~2007년에 북한 해주 앞바다의 모래가 국내로 반입되었으며, 한때 북한산 모래의 반입량이 수도권 건설용 모래 수요의 50%에 달하기도 하였다. 또한 수도권에서 가까운 장풍에서 생산된 석재는 중국에 비하여 운송비용이 절감되는 이점도 있었다.     
그러나 북한의 건설자재 생산 시스템을 개선하거나 구축하는 것은 여러 어려움이 있다. 시멘트, 철근 등을 북한에서 생산하면 원자재가 풍부하고 인건비가 저렴하며 각종 규제 및 민원이 적은 장점이 있지만, 전력 및 도로 등 인프라가 부족하고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하므로 조기 추진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초기에는 소규모 투자로 생산시스템 구축이 가능하고, 인력소요가 많으며, 북한 내 수요만이 아니라 국내 수요도 있어 안정적 생산이 가능한 분야부터 시작하여 점차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벽돌, 블록, 점토벽돌, 기와, 위생도기, 타일 및 가구 등은 인력이 많이 소요되고, 비교적 적은 투자로 시작이 가능한 사업들이다. 

 

 


  글. 변상욱 Byun, Sangwook

대한건축사협회 남북교류협력위원회 위원·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도라산출입사무소장·건축사·시공기술사

 

 

변상욱 건축사·건축시공기술사

1999년부터 현대아산에서 근무하면서 금강산관광지역 건 축물과 평양체육관 등 건설사업관리업무를 수행했으며, 2004년부터 2016년까지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서 근 무하면서 개성공업지구 종합지원센터, 기술교육센터 등 건 설사업관리와 공장건축 인허가업무를 담당하였다.

 

gut1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