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9. 09:15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Term@ Architecture 09
Tool
architectural terms 건축용어
우리나라 건축용어 중에는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어원을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연재에서는 필자가 이해하기 어려웠거나 호기심이 크게 생겼던 표현들을 소개하고, 그 어원과 출처를 추적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독자들과 함께 보다 적절한 표현은 무엇일지 고민하는 계기를 갖고자 합니다.
김홍도의 ‘기와이기(집 짓기)’ 그림을 보다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동네에 버려진 나무로 팽이, 총, 활과 화살, 아이스하키 채, 모형 배 등을 만들면서 아버지의 창고에서 여러 도구들을 몰래 꺼내 사용했고,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하며 건설 현장에서 다양한 도구와 장비를 어깨너머로 보아 왔다. 최근까지도 일련의 파빌리온을 손수 만들면서 필요한 도구와 장비를 갖추고 직접 사용해온 터라 도구와 장비에 대해서는 나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김홍도의 그림 속 대패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것이어서 충격이 더 컸다. 생김새뿐만이 아니라 목수의 자세와 대패의 방향도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달랐다. 18세기 조선 풍속도 속의 이 대패는 무엇이고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대패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대패를 밖으로 밀며 대패질을 하는 종류와 안으로 당기며 대패질을 하는 종류로 구분되었다. 밖으로 미는 대패는 서양과 중국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사용했다. 안으로 당기는 대패는 주로 일본의 목수들이 사용했다고 한다. 무엇이 좋다 나쁘다는 평가보다는 각각의 특징이 있으니 그 목적에 맞춰서 사용하면 될 일이다. 도구가 다르니 다듬어진 목재의 표면도 달랐을 것이다. 질감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차이도 있었다. 19세기까지 우리 건축에서는 모두 밖으로 미는 대패를 사용했는데, 전통건축을 계승했다는 목수들은 모두 일본식 대패를 사용하며 당기고 있다. 문제는 전통 목수 체험 행사나 국립민속박물관의 한옥 체험 프로그램에도 당기는 방법의 일본식 대패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목수가 필요한 상황에 맞춰 도구를 선택하는 것은 괜찮지만, 전통 체험에서 당기는 대패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건축 도구에 대한 우리의 무지가 드러나는 부끄러운 순간이다. 이순신 관련 드라마와 영화에서 거북선을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데, 연기자들은 어김없이 당기는 일본식 대패를 들고 있다. 전문가의 무지가 일반인들에게 영향을 준 것 같아 더 속상하다.
20세기에 들어 건축 도구와 장비는 이전의 것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된 것이 대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건축 도구를 상실하고 새로운 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새로운 도구와 새로운 용어를 사용하면서 큰 혼란을 겪었다는 점이다. 이 혼란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사회와 기술의 변화로 옛 도구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을 수 있지만, 최소한 이 도구가 어떤 도구이고 어떤 기능으로 어떤 가공을 할 수 있는지는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서양식 도구의 영어식 이름을 일본식 발음으로 사용하면서 국적불명의 용어가 생겼다. 대표적인 사례로 ‘빠루’를 들 수 있다. 철거현장에서 많이 사용되는 ‘빠루’는 지렛대의 원리가 적용되어 작은 힘으로 못을 뽑거나 단단하게 고정된 재료를 뜯어내는데 요긴하게 사용된다. ‘빠루’는 왜 ‘빠루’일까? 이 도구의 영문 이름은 ‘crow-bar’이다. 못 머리를 걸어 넘길 수 있도록 갈라진 끝부분의 모양이 까마귀 발처럼 생겼고, 지렛대처럼 긴 bar 형태이니 ‘crow-bar’라고 부르는데 고개가 끄덕여진다. 일본의 어느 회사가 이 ‘crow-bar’를 판매하면서 bar의 일본식 발음인 ‘빠루(バール)’를 제품명에 붙였다고 한다. ‘crow-bar’가 ‘빠루’가 된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는 ‘crow-bar’를 지칭하는 ‘배척’이라는 용어가 있다. 너무 어려운 한자어다. 최근에는 노루발 모양과 닮았다고 하여 ‘노루발못뽑이’라고 부르고 있다.
영어 단어를 일본식으로 발음하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것은 ‘빠루’ 외에도 ‘하이바’, ‘도란스’, ‘바께쓰’, ‘빼빠’ 등이 있다. ‘하이바’는 영어단어인 fiber(섬유질)를 일본식 발음으로 부른 것이다. 금속재 안전모에서 fiber(섬유질)을 사용한 플라스틱 안전모를 사용하면서 생긴 말이다. fiber(섬유질)는 안전모 이외에도 사용되므로 ‘하이바’라는 용어보다는 ‘안전모’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빼빠’는 연마에 사용하는 도구로 재료의 거친 면을 곱게 만들 때 사용한다. 금강사나 유리가루, 규석 등을 종이나 면포에 입혀서 만드는데, 영어 표현으로는 ‘sand paper’다. ‘sand paper’에서 ‘paper’를 일본식 발음으로 사용한 것이 ‘빼빠’로 굳어졌다. 영어를 일본식 발음으로 사용하던 이런 용어들은 많이 순화되고 있지만, 아직도 폭넓게 사용되고 있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crow-bar’, ‘빠루’, ‘배척’ 그리고 ‘노루발못뽑이’. 앞으로 어떤 용어가 널리 사용될지 알려면 수십 년은 더 지켜봐야겠다. 그러면서 전문가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포클레인’은 건축공사 현장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장비다. 우리말로는 ‘굴삭기’다. 간단한 토목공사에서부터 철거공사에도 사용되고 상황에 따라 재료의 운반도 가능하며 심지어 콘크리트 타설에 사용하기도 한다.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도 ‘포클레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정도로 친숙하고 널리 사용되는 대중적인 용어다. 하지만, ‘포클레인(poclain)’은 장비 이름이 아니고 1927년 설립된 프랑스의 건설장비 제조업체 이름이다. 두산(doosan)이나 볼보(volvo)에서 생산한 굴삭기에 제작사의 이름이 적혀있는 것처럼 poclain 사에서 생산한 굴삭기에도 커다랗게 poclain이라고 적혀있다. 누군가 그 모습을 보고 이 장비를 ‘포클레인’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던 것이다. 굴삭기를 지칭하는 영어단어는 back hoe와 excavator가 있다. 땅을 파고 흙을 옮기는 기능은 같지만, 기능과 장비의 모습은 완전히 다르다. ‘포클레인’이라고 부르는 장비를 영어로 back hoe(백호우)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back hoe는 기능은 비슷하지만, 모습은 전혀 다르다. 굴삭기를 영어로 부르고 싶다면 back hoe가 아니라 excavator라고 해야 한다.
공장에서 콘크리트를 반죽하는 Ready-Mixed-Concrete(RMC)는 1903년 독일에서 세계 최초로 특허를 받았다. 미국에서는 1913년 볼티모어에 처음으로 센트럴 믹스(central mix) 방식의 플랜트가 만들어졌다. 초창기 RMC는 플랜트에서 반죽된 콘크리트를 덤프트럭으로 운반해서 품질이 불량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운반 중에도 콘크리트를 계속 섞어주는 트럭믹서가 1926년에 발명되면서 품질이 좋아지고, 공장들이 늘어나면서 확산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1949년부터 사용되었고, 우리나라는 1965년 쌍용양회공업의 서빙고 공장이 최초다. 운반 과정에서 계속 반죽을 해주는 트럭을 우리는 레미콘 트럭이라고 부르는데, 레미콘(re-mi-con)은 일본의 한 업체가 Ready-Mixed-Concrete(RMC)를 줄여서 사용하면서 등장한 말이다. 레미콘 트럭은 truck mixer 또는 agitating truck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도구 이름 중 특이한 것이 있다. ‘타카’는 목공 작업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도구다. 못이나 쇄기처럼 재료를 고정하기 위한 작은 금속의 고정용 핀을 ‘스테이플(staple)’이라고 하는데, staple을 채우고 필요한 곳에 고정시키는 도구를 ‘스테이플러(stapler)’라고 한다. 사무용품으로 종이를 묶는 ‘스테이플러(stapler)’와 이름이 같다. 스테이플의 크기와 용처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 결국 같은 도구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적절한 용어로 ‘호치키스(ホチキス,hochikisu)’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아직도 있다. 호치키스는 초창기 스테이플러 제품인 hotchkiss를 보고, 일본에서 스테이플러를 호치키스라고 부르던 것이 우리말에도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묶거나 고정하려는 대상에 따라 스테이플(staple)의 종류가 달라지고, 스테이플(staple)의 규격에 따라 스테이플러(stapler)가 달라진다. 건축 현장에서는 압축기(컴프레서 compressor)를 스테이플러(stapler)에 연결하여 강한 압력으로 큰 스테이플(staple)을 단단한 재료에 고정하는 스테이플러(stapler)를 사용한다. 이 스테이플러(stapler)를 우리는 ‘타카’라고 부른다. 영어로는 압축공기를 불어넣는다고 해서 pneumatic stapler 또는 air stapler gun이라고 한다. 그런데, 타카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기원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필자가 추측한 어원은 이렇다. 현장에 있으면 이 스테이플러(stapler)를 사용할 때 나는 소리가 마치 ‘타카∼ 타카∼’처럼 들린다. 작동될 때 나는 소리 즉 의성어를 도구의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본래 명칭인 ‘뉴메틱 스테이플러’나 ‘에어 스테이플러 건’이라고 하는 것보다 직관적이고 분명한 이름이 아닐까? 이런 관점에서 ‘타카’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름이다.
건축 도구와 장비는 재료와 구법에 따라 참으로 다양하다. 하나의 건축물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재료만큼이나 다양한 도구와 장비가 사용되고 있다. 도구와 장비는 건물이 완성되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들이지만, 건축 관련 전문가라면 일반 사용자와 달리 도구와 장비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빠루’나 ‘포클레인’처럼 잘못 사용되어 널리 퍼진 용어를 바로잡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새로운 재료를 개발하거나 도입할 때 적절한 용어와 이름을 사용하는 인식이 필요하겠다.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해서 후배들에게 부끄러운 선배가 될까 싶어 오늘도 조심스럽다.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 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 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젊은건축가상(2016, 문화체육관광부), 경기도건축문화상 특별상(2017, POP하우스), 충남건축상 최우수상(2017, 서 산동문849),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본상(2018, 양평시옷 (ㅅ)집), 서울시건축상(2019, 얇디얇은집), 한국리모델링건 축대전 특선(2020, 제이슨함갤러리)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이다.
'아티클 | Article > 연재 | Seri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세기 퓨쳐리스트 도시 브라질리아의 혁명가 2021.10 (0) | 2023.02.10 |
---|---|
2021년도 미국건축사협회(AIA) 콘퍼런스‘건물 효율화’ 참관기 2021.10 (0) | 2023.02.10 |
북한건축 워치 07북한의 건재산업 2021.9 (0) | 2023.02.09 |
1999 매트릭스 vs 2021 메타버스 2021.9 (0) | 2023.02.09 |
UIA 2021 리우세계건축대회 참관기 2021.9 (0) | 2023.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