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재…옛 원형 보존하며 현대적 공간의 사용성 이뤄내다_김지덕,김우영 건축사 2021.10

2023. 2. 10. 09:23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Yooshinjae - House of thoughts and trust
Achieved the usability of modern space while preserving the old prototype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에 위치한 529제곱미터 규모의 2층 사옥 ‘유신재’. 일제강점기 시절 건설된 벽돌(연와조)과 철근콘크리트조, 목조 트러스 지붕 구조의 이 낡은 건물은 준공(1926.06.23)된 지 90년이 훌쩍 넘었으며, 건물주인 ㈜유신이 역삼동으로 사옥을 이전한 후 30여 년간 문서보관소로 사용돼왔다. 그런 이 건물이 지난 4월부터 8월까지의 공사를 거쳐 유신건축(주.유신건축 종합건축사사무소)의 사옥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근 100여 년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건물의 리모델링 설계자는 유신건축의 김지덕 건축사(父)·김우영 건축사(子/ 영국왕립건축사) 父子다. 지난 9월 24일, 유신재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두 부자 건축사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다.

 

홍성용_어떻게 이 건물을 사옥으로 쓸 마음을 갖게 되셨나요?

김지덕_제가 한 50년 건축을 했는데, 하면서 매일 바쁘게만 생활하고 우리 건축사들이 진짜 필요로 하는 공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못 봤어요. 그래서 ㈜유신의 전경수 회장님과 유정규 회장님께 이 건물을 창고로 쓰시지 말고 빌려주십사 청을 했습니다. 우리같이 건축에 뜻이 있는 사람들이 만나면, 옛 건물도 현대에 맞게끔 자유롭게 설계해서 이용할 수 있다고요. 지금은 건축적인 세미나가 있으면 이곳 2층 회의실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주변에도 얘기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필요한 건축적 일도 할 수 있도록 하고요. 그것이 우리가 건축사로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좌)김지덕 건축사 · (우)김우영 건축사


# 오래된 건물의 리모델링
   사회에 공헌하는 새로운 창조의 과정이자 건축사의 책임이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업적

홍성용_유신재가 90년이 넘은 건축물이잖아요. 최근 들어 ‘재생건축’이라는 용어가 각광받으면서 오래된 건물을 보존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트렌드화·소비화되고 있는데, 10년 새에 사회 분위기가 급격히 변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김우영_많은 요소들이 존재하는데, 우선 경제적인 문제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건비도 오르고… 건물을 짓는다는 게 보통 큰일이 아니잖아요. 기존의 건축물을 살려서 적합한 용도로 변화하는 과정이 어떻게 보면 더 수월할 수 있거든요. 하지만 건축물이 갖고 있는 내재된 특성을 잘 살리면 굳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지 않아도 그 자체만으로도 공간의 퀄리티라고나 할까, 그 공간이 갖고 있던 장점을 얻을 수 있는 거죠. 
또 친환경적으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축물의 생애 주기 동안 발생하는 탄소량의 상당 부분이 시공단계에서 야기되는데, 리모델링은 내재된 걸(카본 등) 그대로 두는 행위잖아요. 그 자체가 미래적으로 볼 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저희가 실천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 중 당장에 실천할 수 있는 행위인 것 같아요. 급격한 기후변화 속에서 건축인으로서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도 생각하고요. 마지막으로는 당장 법규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현재 법이 너무 강화됐잖아요. 신축건물을 짓는다는 게 예전과 상황이 많이 다르기에 지어진 건물을 보존하는 게 면적 개념에서도 이득을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김지덕_건축은 사람의 생활에 가장 절박한 세 가지 필수항목 중 하나인데, 우리나라의 근대 건축물은 시대 조류나 요구 사항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해체되고, 대규모 자본이 투입돼야만 하는 신축 건축물을 설계·건축하는 사례가 많이 목격됩니다. 그러나 유럽 여러 나라들은 옛 건물을 해체하기보다 현대 사용 목적에 합당하게 고치고, 지속 가능한 친환경적인 사항들을 보완해 현대적인 공간의 쓰임새에 맞게 리모델링하고 있어요. 옛 건물을 쓰임새 있게 다시 만드는 건축사들 중에 프랑스의 앤 라카톤(Anne Lacaton)과 장 필립 바살(Jean-Philippe Vassal)이 옛 건물을 현대적이고 자유로운 건축공간으로 설계·개조해서 근본은 살리되 기능 위주의 새로운 합리적 공간을 창안해 올해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잖아요. 이전 건물을 철거 방식이 아닌 새로운 공간 개념으로 접근해 만들어내는 것은 경제적·친환경적·사회적 공간을 새롭게 적용해 사회에 공헌하는 새로운 창조의 과정이자 건축사의 책임이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우영 건축사


# ‘유신재’, 건축유산의 복원에 초점
   개인적 욕심 내려놓고  95년의 개조·변화 흔적 그대로 살렸다

홍성용_어떤 태도로 이 건물의 리모델링 설계에 임하셨는지 좀 더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우영_이 건물(유신재)은 건물주(주.유신)가 역삼동으로 사옥을 이전하신 후에 거의 30년 가까이 문서보관소로만 사용한 건물입니다. 그 와중에 개발사업이나 부지 매각을 통한 이윤을 추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전혀 그러지 않으신 점이 남다르게 다가오더라고요. 이 건물의 역사성이 그 분들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설계에 착수했을 때 어떤 개인적 성향을 부여해서 건물을 새롭게 변신시키겠다는 욕심은 처음부터 내려놨고, 건물의 역사성이 퇴색되지 않도록 (건축 유산의)복원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허물어져가는 부분도 많고 건물의 하자가 많으니까, 그런 것들을 보수·복원해서 건물이 역할을 충분히 하게 된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판단했습니다. 건축물이 내포하고 있는 존엄성을 회복하고 이를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 설계자로서의 예의라고 생각했고, 공사 과정에서도 과거의 건축적 언어, 시공법과 재료, 수십 년에 걸쳐 이루어진 개조나 변화의 흔적들을 애써 지우거나 감추지 않았습니다. 이것들은 이 공간의 성격과 분위기를 결정하는 요소이자 이 건물의 아이덴티티이기도 합니다. 건물 외벽에 문패를 제외한 옥외간판을 설치하지 않은 이유도 마찬가지고요.

홍성용_작업 진행 과정을 간략히 설명 부탁드립니다. 

김지덕_안이고 바깥이고 막 현대화시킨 것이 아니고, 본래의 내부 모습을 살려 역사적 맥락의 시각적 시인성을 해치지 않으면서 지나온 세월의 흔적을 불편함 없이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처음 김우영 건축사에게 작업을 해보라고 했을 때 무척 좋아하는 거예요. 김 건축사가 영국에서 학교를 나와 공부를 해서 좀 전에 언급한 것 같은 Architect 스피릿을 알고 있으니까… 옛것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현대화해서 사용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하기 위해 김 건축사가 고민을 많이 했죠. 비가 새던 기와는 철거 후 징크소재 지붕을 설치하고, 폭삭 무너져가던 지붕재도 다시 보강하고요. 트러스 위 지붕판재의 상부는 단열재로 보완해 단열 효과를 높였습니다. 목조 출입문과 창문은 알루미늄으로 교체 시공하고 냉난방, 통신, 소방시설 모두 새로운 요구 조건에 맞게 신설했습니다.
즉 평범한 기술로 건축사의 미적 개념을 적용해 신·구의 조화로운 감각을 살리되 원형은 보존하고 현대적 공간의 사용성을 이뤄낸 거죠. 실용적인 아름다움과 환경적인 책임,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옛 감수성과 역사성을 느끼고 존중할 수 있도록 겸손한 접근방식을 취하여 오래됐지만 여전히 현대적인 건축물로 재탄생됐다고 생각합니다.

 

김지덕 건축사


김우영_트러스 자체 상태는 굉장히 양호하다고 판단했는데, 그와 결부된 장선과 판재에 누수로 인한 피해가 있었기에 그 부분을 전면 보완했고요. 1층은 외벽 두께가 40센티미터가 넘는데 벽의 축열성능(Thermal Storage Capacity)을 믿어보기로 했어요. 구조체를 뚫고 냉기 또는 온기가 오고 가는 데 있어서 상당한 시간이 걸리니까. 사실 처음 이 건물에 들어와 본 것이 여름이었는데, 좀 시원한 느낌이 있더라고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벽쪽 단열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기존의 구조체 자체를 신뢰한 거죠. 지붕은 워낙 열기가 세니까… 저희가 업무공간으로 상주해야 하기에 지붕 단열재는 상당한 보강을 거쳤습니다. 다만 수도계량기에서 화장실 밑으로 들어오는 배관은 저희가 건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상당히 많은 부분을 들어내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그래서 미세하게 녹이 섞인 물이 나오기도 해요. 몇 십 년이 지난 배관이 묻혀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그런 부분은 이제 저희가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고 진행한 거죠. 정수기도 급수관과 직접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물통을 얹어 사용하는 시스템을 활용하는 이유가 그런 거거든요.
김지덕_해놓고 보니 굉장히 좋습니다. 화장실도 90년대 벽돌집처럼 벽돌을 툭툭 쑤셔 넣었는데, 전연 새로운 맛입니다. 옛것도 느낄 수 있고요. 모든 부분이 마찬가지입니다. 이 동네 사람들이 비교적 거주기간이 긴 편인데, 지나가며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그로테스크한 건물을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게 고쳐놨냐며 마당 한편에 꽃 화분을 놓고 가기도 했습니다.

홍성용_건물은 철골로 된 건가요?

김지덕_벽은 연와조고, 기둥과 보, 슬라브는 철근 콘크리트로 된 하이브리드 건축물입니다. 앞쪽이 오리지널이고요, 저 뒤쪽 공간은 ㈜유신에서 쓸 때 한 번 증축을 한 공간인데 1970년대쯤 증축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실측과정에 특히 공들여 건물 스터디… 
   필요한 건 ‘공간’이지, 특정한 ‘용도’ 아냐 
   오리지널 건물의 물성 덮는 행위 지양

홍성용_진행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우영_도면이 없어서 실측 기간이 상당히 오래 걸렸습니다. 시공사에 스케치와 구두로만 전달할 수 없다보니 실측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라 시간을 많이 들였습니다. 처음 이 공간에 왔을 때는 천정재도 있었고 굉장히 꽉 찬 공간이었는데, 2단계로 나눠 철거했습니다. 실측 후 1차로 실내부분 철거를 한 후에 막혀서 볼 수 없던 천정 같은 부분을 진행했고, 그 다음 2차 철거를 진행했어요. 그렇게 나눠서 진행하면서 건물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도 벌고, 정확한 스터디를 할 수 있게끔 한 거죠. 사실 이런 건물의 작업은 정성이 중요한 것 같아요. 현장조사를 많이 했고, 그렇지 않으면 파악하기가 힘들죠. 95년 된 건물의 안과 밖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해해서 뭔가 하려는 자체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는 거거든요.
또 건물의 바닥을 자세히 보시면 평활도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가구배치를 할 때도 기존 저희가 알고 있는 가구 시스템을 놨을 때 적응이 안 되는 거죠. 저 쪽에 있는 테이블도 오른쪽 다리를 상당히 올려서 배치했거든요. 한 쪽이 8~9센티미터 정도 높으니 레벨을 맞추게 되면 거의 새로운 바닥을 갖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기존의 오리지널 건물이 갖고 있던 재료의 성질을 덮어버리는 행위가 되는 거죠. 그 자체가 부담스러웠기에 그런 행위를 배제했습니다. 말씀드렸듯 처음부터 원칙이 복원·보존에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질문들이 떠오르면 그 기준으로 판단하는 거예요. ‘아! 이건 이런 관점에서 좋지 않겠다’ 하고요.

홍성용_다른 프로젝트와 비교했을 때 다르게 느꼈던 점이 있나요?
김우영_아주 오래된 건물을 건드리는 입장에서, 이런 경험이 거의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외형적인 부분보단 일단 하자가 좀 없었으면… 하고 바랐고, 오랜 세월을 버틴 건물이라 저는 건물이 굉장히 튼튼할 줄 알았어요. 사실 이것저것 건드려보니 굉장히 여리고 섬세하더라고요. 어떻게 이 오랜 세월을 버텨왔나 싶을 정도로, 지붕이 허물어져있는 모습 등을 봤을 때는 ‘아, (건물이)진짜 오래 버텼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과감한 접근보다 최대한 있는 그대로를 보존하려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생긴 것 같아요. 이 건물을 나의 어떤 억지스러운 주장에 의해 변화를 시키는 건 옳은 태도가 아닐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홍성용_불편하거나 기술적으로 완벽하지 않더라도 안고 가겠다는 그런…….

김우영_그렇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90년 이상 된 건물을 쓰려 하면서 현대건물의 기준을 대입하는 태도는 무리가 있다고 보거든요. 설계자들은 용도를 기준으로 설계를 하잖아요. 그 용도에 맞춰서 모든 공간이 짜이고……. 그런데 공간이 용도에 국한되어 쓰인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환경 변화에 제약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거죠. 코로나라는 국면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레 그런 고민들을 했던 것 같아요. 최근 해외에서도 다들 얘기하는 게 그런 거잖아요. ‘코로나 시대에 어떤 설계를 할 것인가.’

홍성용_저 역시 건축법에서 정의하는 용도가 이렇게 디테일할 필요가 있을까 회의를 갖고 있습니다. 너무 디테일하게 용도를 구분해버리니까 시대나 상황이 바뀌었을 때, 지금만 봐도 당장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수용 불가가 되는 경우가 있잖아요.
김우영_그렇죠. 용도에 갇히는 거죠. 어떻게 보면 근본적으로 공간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그게 한 시대의 용도에 갇혀서 방향을 잃을 수도 있고요. 요즘 보면 코로나19로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는 경우가 많고, 그 용도가 아니면 쓸 수 없는 공간도 많고요. 실질적으로 저희가 필요한 공간은 다변화 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필요한 건 공간이지, 어떤 특정한 용도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 건물이 가장 아름다워 보일 수 있도록… 원 설계자의 의도 드러내

홍성용_외형적으로 보이는 입면에 대한 고민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김우영_보기엔 단순해 보이지만, 창호 타입을 결정하는 것도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나름 주어진 한계 내에 예쁜 패턴 등을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던 게, 고민하다 보니 그게 의미 없다는 판단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최초에 있었던 스타일인 새시 윈도우(오르내리창), 거기에 준해서 새롭게 창호를 제작하는 게 낫겠다 결심하고 아주 쉽게 틀을 잡았죠. 대신 그전에 뭔가 해보려고 허비한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했을 때 건물과 어울리느냐 하는 건 또 별개의 문제거든요. 원 설계자의 의도가 드러나는 게 이 건물이 가장 아름다워 보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홍성용_작업기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김지덕_작년 9월 말에 시작했습니다. 처음 답사는 지난 해 9월에 시작했고, 공사는 올 4월에 들어가서 5개월 만에 완료됐습니다. 120일이 소요됐으니 실제적으로 4개월이네요. 더 빨리 완료될 수 있었는데, 비가 많이 와서 지붕 때문에 오래 걸렸죠.

김우영_사실 시공사 측에서는 3개월을 예상했었어요. 중간중간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생기면서 그 하자를 잡기 위해 파고 들어가면 다른 문제가 연관되고, 같이 보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그러다 보니 한 달이 더 소요된 거죠.

 


# ‘건축만큼 좋은 직업은 없다’, 같은 생각을 지닌 두 부자의 동업

홍성용_이야기를 좀 벗어나서, 두 분이 부자지간이면서 함께 일을 하고 계시잖아요. 서로의 관계는 어떠세요? 같이 작업하는 게 편하신가요?

김지덕_(서로)맘에 안 들어요(웃음). 김우영 건축사가 런던의 상당히 좋은 건축사사무소에 근무 중이었는데, 제가 런던에 세 번을 갔습니다. 본인은 어떻게 느낄지 모르지만…. 나는 이제 나이가 많이 들어 지쳤고, 젊을 때처럼 활동하지 못하겠으니 인수를 해줬으면 하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프로젝트를 몇 개 진행해 보더니 도로 영국으로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김우영 건축사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김우영_장단점이 있는데, 아버지기도 하지만 대선배시니까. 지나가면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 도움이 되는 것들이 많아요. 제가 직접 경험한 것들이 아니니까. 성향은… 서로 다르다 보니까 좀 부딪치는 면들이 있죠(웃음). 근데 모든 게 좋을 수는 없으니까요. 사실 제게 그런 것들이 별로 큰 문제점으로 다가오진 않고요. 

홍성용_사실은 조금 부럽습니다. 건축사들이 자조적으로 자식에게는 건축을 시키지 않는다는 우스갯소리가 많은데도, 의외로 그런 분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우영 건축사님이)건축을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했어요.

김우영_자연스럽게 건축을 선택하게 되더라고요. 저도 아버지와 생각이 좀 비슷한데요. 건축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예요. 근데 이제 우리나라에 와서 겪어보니까 가끔 고통으로 다가올 때도 있더라고요. 설계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제가 믿는 좋은 건축물을 설계하는 데 불필요한 과정들이 그것인데요. 특히 관 프로젝트 같은 경우 예를 들면 서류나 여러 가지 납품해야 하는 것들, 시의원에게 발표를 해야 하는 등의 조직체계 속 보여주기 식의 문화. 예산도 건축안을 보고 스터디를 통해 잡히는 게 아니고, 굉장히 빠른 스터디나 과거의 샘플을 통해 측정한 금액에 맞춰야 하는 상황이니까, 그런 것도 핸들링 할 수 없는 세계 내에서 쥐어짜서 만들어내는 과정이잖아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행위는 아니니까 그런 것들이 쌓여서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거죠.
홍성용_행위나 프로세스의 문제가 아니라 그 프로세스에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분들의 태도가 문제인 것 같아요. 관료들이나 정치인들이 자기가 발주자가 돼서 건축사들에게 자기의 요구사항을 전달한다는 거죠. 본인이 디자이너가 돼서…….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김우영_심적인 부분에서도 관 프로젝트와 민간 프로젝트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관 프로젝트는 공무원들이 주도해서, 어떻게 보면 저희는 철저한 서비스 업무를 하는 거죠. 주어진 기간 안에 원하는 스펙을 갖춘 도면을 만드는…그런데 그런 행위들이 건물의 생명력과는 상관이 없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은 진행하면서 저희도 시간이 날 때마다 와서 관심이 있는 부분을 들춰보고, 몰랐던 하자가 드러나면 일단 주변 공사를 중단시키고 좀 더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거죠. 민간 프로젝트에선 심적인 부담이 덜해 이런 자율성 있는 행위가 가능하니까요.

 


# ‘나’를 건축물에 맞추는 과정… 욕심을 내려놓는 법 배웠다

홍성용_만약 다음에 다시 이런 프로젝트를 하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시나요?

김우영_그런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왜냐면 경험이 중요하잖아요. 사실 설계라는 게 경험이 없으면 시행착오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데, 모든 건물은 똑같지 않으니까 각기 다른 도전, 챌린지를 주죠. 그런데 이번 작업을 통해 유사한 사례를 만나면 이 경험을 토대로 좀 더 발전된 생각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홍성용_마지막으로, 이 프로젝트를 하시면서 건축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신 게 있나요?

김우영_개인적으로 디자인적 욕심이 많다면 많은 사람인데, 이렇게 오래된 건물 자체가 없잖아요. 이런 건물을 만났다는 자체로 복을 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업을 하면서 개인적인 성향을 좀 배제해도 충분히 좋은 건축물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굳이 어떤 스타일이나 특별한 개념에 빠져서 그 용도를 수용하기 위한 공간을 만드는 행위보다, 대지를 좀 더 관찰하거나 관계성, 역사성에 중점을 둔 공간을 만드는 게 오히려 미래에 더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들어내는 좋은 발판이 된다고 봅니다. 저는 이번 작업에서 그런 걸 배운 것 같아요. 저를 건축물에 맞추는… 때론 욕심을 부리는 것이 건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요.

 

 


대담 홍성용 편집국장
글 육혜민 기자 · 사진 장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