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1. 09:16ㆍ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3.1 Building Renovation, designing the value of the future 50 years by reawakening the value of the past 50 years
지난 2월 18일 오후 3.1빌딩 지하 1층 전면 선큰에 위치한 한 매장에서 ‘월간 건축사 삼일빌딩 리모델링 좌담회’가 열렸다. 김중업 건축사가 설계한 3.1빌딩은 1970년 당시 국내에서 가장 높은 31층 규모로 완공된 건축물로 철과 유리로 구성된 입면을 갖고 있다. 그런 3.1빌딩이 50년 만에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거쳐 2020년 11월 23일 준공식을 가졌다. 외관 디자인은 김중업 건축사가 설계한 입면 방식과 커튼월 시스템을 그대로 활용하고, 전면부를 개선해 정면성을 살린 2021년의 3.1빌딩은, 도시적 측면에서도 의미를 갖지만 본연의 특징을 재해석했다는 측면에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축사사무소 원오원아키텍스(이하 원오원아키텍스)와 ㈜정림건축 종합건축사사무소(정림건축)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리모델링 과정의 이야기와 소회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 리노베이션 프로젝트의 시작
홍성용_3.1빌딩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전상우_그전에도 SK D&D(이하 SK디앤디, 3.1빌딩 매입사)와 김종성 선생님이 설계한 <서린빌딩> 리모델링 작업을 하며 서로 신뢰를 쌓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3.1빌딩 프로젝트로 연결됐어요. 2017년도 말 즈음에 정림건축에서 단독으로 진행하다가, 이후 발주처를 통해 원오원아키텍스가 투입된 거죠.
최욱_SK디앤디 측에서 전화를 받았어요. 정림건축에서 먼저 작업을 하고 있는데, 같이 참여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원오원아키텍스에서 작업한 <1964빌딩>을 볼 수 있냐는 질문을 받았고, 그렇게 시작됐어요. 발주처 측에서, <1964빌딩> 정도의 퀄리티를 원하지만 그 정도까진 못 가더라도 근사치로 그런 느낌을 주면 좋겠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저층부 디자인부터 시작하게 됐고, 그러다 전체를 함께 보게 됐죠.
홍성용_사실 협력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 함께 일하시는 과정에서 충돌은 없었나요?
김해진_저희 입장에서 봤을 때 충돌은 없었습니다. 초반에 근현대 건축자산인 3.1빌딩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과 관련해 첫 번째 일단락이 있었는데, 그 가이드라인을 잘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을 잘 정리해 주셨고, 디자인적으로도 어떻게 하면 현대적으로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가이드를 주셨어요. 저희는 그것을 풀어나간 거죠. 잘하시는 걸 잘 해주신 거고, 또 저희가 잘하는 부분은 잘 했기 때문에 합이 잘 맞았다고 생각해요.
홍성용_3.1빌딩은 김중업 선생님이 남긴 작품이라는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의미 부여를 크게 하지 않는 편이잖아요. 어째서 기존의 건물을 헐지 않고 리노베이션 하는 방향으로 진행했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최욱_먼저, 새롭게 지으면 이 용적률을 못 찾아요. 이곳은 일제 강점기가 끝나자마자 우리나라에서 거의 최초로 지역의 도시계획이 정립된 필지예요. 그리고 이 필지, 이 블록 자체가 고층건물이 영원히 못 들어오는 데라 그런 부분에서 한계가 있었어요. 용적률은 사업주 입장에서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또, SK디앤디에서는 김중업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을 갖고 있었어요. SK디앤디와 미국의 벤탈그린오크 두 회사가 발주처인데, 벤탈그린오크도 건축에 대한 이해가 깊어요. 그래서 이 건축물을 잘 보존하면서 필요로 하는 기능을 충족할 수 있느냐가 제일 관건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진정성 있는 리노베이션을 하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진 거죠.
# 작업과정에서 내진보강, 방화지구 등 이슈… 현실적 개선이 필요한 부분도
홍성용_프로젝트 진행 과정에 소방이나 기타 설비 등의 측면에서 현행법과 충돌되는 부분들이 있었을 텐데, 관련해서 이러한 것들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든지, 이런 것은 좀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싶은 부분들은 없었나요?
김해진_이번 프로젝트가 전면적 리모델링이기는 합니다만, 크게 봤을 때 저희가 구조적으로 건드린 부분들은 선큰과 계단, 그리고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는 것과 지붕 층에 옥탑 구조물을 올리는 정도가 다입니다. 그리고 에너지 성능적인 부분들의 기준이 서울시에 어느 정도 마련돼 있습니다만, 인허가적으로도 서울시와 종로구에서 가이드라인을 주긴 했습니다. 에너지 같은 경우도 현행법을 맞추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고, 그다음 구조안전에 대한 부분은 법적으로 구조안전진단을 통해 내진설계 보강을 하게 돼있습니다. 저희가 이번에 손을 댄 부분 외에도 기본적으로 전면적인 구조 부분에 대한 보강은 다 했습니다. KBC2016에 나와 있는 구조기준을 만족하는 수준으로 현황조사를 다 했고, 그에 맞는 구조보강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저층부의 기둥도 탄소섬유 보강이 돼있고, 그 기둥뿐만 아니라 31층에서부터 지하 2층까지 모든 기둥이 다 보강돼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구조적으로 약간 특이한 부분을 말씀드리면, 지상 2층까지가 RC 구조로 돼있습니다. 일부 철근 콘크리트로 돼있고 그 위에는 전부 철골구조로 되어있는 상태고요, 거기에 덧대어 여러 곳에 RC 보강을 한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희가 추측하기로는, 내진에 대한 기준이 전혀 없을 때 지어졌지만 설계를 담당하셨던 분께서 그 부분에 대해서 어느 정도 고려를 하신 게 아닌가……. 그래서 저희가 이번에 내진보강을 할 때에도 크게 과하지 않게 공사비도 어느 정도 절감하면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법적으로는 내진보강에 대한 것이 가장 큰 이슈였던 것 같습니다.
전상우_방화지구에 대한 것은 개선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 지역에 방화지구가 생긴 게 옛날 일제 강점기 목조주택이 다닥다닥 붙어있을 때, 불이 한 번 붙으면 다 퍼지기 때문인데, 지금은 그럴 일이 없거든요. 그런데 방화지구라는 점 때문에 법을 준수하기 위해서 전혀 쓸 일 없는 과도한 설비들이 들어가는 부분이 있는 거죠. 그런 것들로 인해, 사실 입면이나 이런 부분에서도 좀 더 나은, 무언가 개선할 수 있는 방법들이 너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방화지구 경계나 이런 부분들은 시대 상황에 맞게 좀 더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해진_2017년도 말에 방화지구에 커튼월 구조를 할 수 없도록 관련 법령이 고시 됐습니다. 커튼월은 3.1빌딩의 상징적 특징인데, 기능적으로 유지·보존이 어려운 상태에서 법에서 어찌할 수 없게끔 방화지구 지정이 되어있어 당시 중요한 이슈였습니다. 저희는 종로구 심의를 통해 어느 정도 풀어나갔던 부분입니다.
홍성용_지역지구라는 게 과거의 기준이고, 도시구조도 소위 콤팩트시티로 바뀌고 있어서 지역지구를 없애고 대신 용도 지정만 정확하게 해주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아직 그 입법이라든가 이런 움직임이 없어 건축계에서 그런 얘기들이 제시돼야 할 것 같아요. 지구단위계획이 그걸 대체하는 기능이라고 얘기하지만, 지구단위계획도 건축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시설계에서 주도하다 보니 디테일한 측면에서 놓치는 부분도 있습니다. 실무적으로 그런 부분들이 개선돼야 한다는 데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 3.1빌딩의 정면성 회복… 기존 건축물의 현대적 해석 여지 남겨
홍성용_구조적·시스템적인 부분 외에, 계획적인 측면에서 1969년 당시와 현재 설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최욱_오피스 기능을 갖춘 이 건물의 가장 큰 약점이 층고가 높지 않다는 거죠. 그나마 최대한 얇은 액세스 플로어를 사용해 층고를 확보했고, 천장 같은 경우 설비 문제가 관련된 일부분을 빼고 상당 부분을 노출시켰습니다. 그다음 조명과 스프링클러를 일체화시키는 등 부족한 층고를 메꾸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 현대적인 오피스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끔 저희가 좀 변형시킨 부분이 있어요. 제일 관건이 됐던 건 저층부인데, 예전에는 고가도로가 삼일빌딩을 지나고 있었잖아요. 고가도로가 철거되면서 원래 김중업 선생님이 만들고자 했던 3.1빌딩의 모습이 거꾸로 지금 드러나게 된 거예요. 정면성을 회복한 거죠. 그리고 이전에는 저층부에 큰 유리가 없었습니다. 기존 1층과 2층의 입면이 분리돼 있던 것을, 1층 입면의 유리 커튼월을 기둥 바깥으로 빼고 1, 2층 입면을 연결해 개방성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청계천으로부터 이 건물까지 연결되는, 소위 말해 그라운드 역할을 만들어냈어요.
지하는 원래 굉장히 깜깜했었어요. 그래서 빛을 넣어주기 위해 선큰을 구상했습니다. 사실상 저층부는 손을 많이 댔어요. 그리고 전면 파사드에서 멀리서도 보일 수 있도록 1, 2층 부분의 조명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1, 2층 천장은 광천장을 사용해 밝고 생동감이 느껴지도록 했고요. 상층부랑 하층부를 구분시켜 이 건축물의 그라운드 풍경이 잘 드러나 보이게 했습니다. 이 건축물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 기능이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김중업 선생님의 설계가 좀 더 현대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남기지 않았나 합니다.
홍성용_저도 새로운 재해석은 좀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실 3.1빌딩이 미스(미스 반 데어 로어)의 시그램 빌딩과 비교되는 식의 폄하가 많았죠. 작업하시면서 이건 미스의 아류작이 아닌 김중업 선생님의 해석이라는 시각이 생기셨을 것 같은데, 관련해서 말씀해 주신다면?
최욱_김중업 선생님의 편을 들어서 얘기하자면, 예를 들어 핸드레일 같은 경우도 기본적인 타입이 있잖아요. 비슷한 핸드레일을 어디에나 쓰고 있는데, 그래서 오리지널을 카피했다고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스타일로만 보는 것과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김중업 선생님이 40대 중반에 이 건축물을 설계하셨는데, 당시 일본에서는 지진 때문에 20층 이상의 고층건물이 거의 없었어요. 레퍼런스가 없어 미국에 가신 김중업 선생님이 시그램 빌딩을 보신 거죠. 상황상 3.1빌딩이 시그램 빌딩의 스타일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지만, 저는 김중업 선생님이 미스의 스타일에 앞서 먼저 합리성을 보고 그를 이식해 왔을 거라고 생각해요. 건축물을 의뢰한 곳이 철강회사를 운영하던 삼미그룹이라 철이 주재료로 쓰이고, 거기에 미국의 합리적인 것을 가져오셨죠. 그래서 그 합리성에다가 우리가 새롭게 작업을 할 적에 조금 더 우리 식으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느냐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재료로 많이 쓰이는 철, 유리, 돌은 땅에서 나오는 같은 재료에요, 그런데 이 같은 재료가 어떻게 만날 것이냐에 대한 문제는 너무 중요하잖아요. 기단부랑 유리커튼월, 금속기둥이 어떻게 만날 수 있느냐 하는 건 굉장히 섬세한 문제여서 이 부분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가 저희에게 굉장히 중요한 관건이 됐던 것 같아요. 작업을 하면서 미스의 건물과 다른 몇 가지 디테일에서 김중업 선생님이 다른 식으로 해석을 시도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 부분에서 한국적 해석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거죠. 그런데 급하게 진행되면서 선생님 본인의 생각이 많이 반영이 안 됐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형식의 문제로 끌고 가면 조금 복잡해진다고 봐요.
# 커튼월의 원형 유지와 재생을 위한 노력
홍성용_정림건축에서는 어떤 측면에서 프로젝트에 접근하셨나요?
김해진_저희는 접근 방식 자체가 작품의 디자인 측면보다 건축주의 요구 사항과 건축물의 보존 측면에서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에, 안에 있는 구조와 커튼월 외장을 어떻게 하면 가장 원안에 가깝게, 원안을 해치지 않으면서 현대적으로 기능을 담을 수 있는가에 대한 관심이 가장 컸습니다.
먼저 커튼월은 기본적으로 현장에서 해체할 수 있는 부분을 거의 다 해체해 전수조사(구조검토, 현장조사) 했었어요. 구조검토 결과 구조적인 성능에 있어서 취약한 부분들이 발견됐는데 처짐이 있다든가, 어느 정도 크랙이 가해진 것도 있고, 이미 유리가 틀어짐에 의해서 깨지고 탈락된 부분이 많이 발생했었죠. 하지만 유리를 안에서 교체할 수 있는 수직 H 형강이 매우 이상적이라 그 방식이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스틸이라는 구조를 걷어내면 자재도 심플해지는데 굳이 스틸 구조를 사용하려 했던 건 최욱 대표님도 말씀하셨듯 철이 그때 당시에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가 있어서였어요. 또 앞서 말했듯 안에서 뜯을 수 있어 관리가 유리하다는 점도 이유고요. 그래서 최대한 유지하는 방법으로 보완하려다 보니 디테일에 관한 것도 굉장히 많이 고민하게 됐죠. 바깥쪽으로 나와 있지만 커튼월의 구조재 역할도 하고, 외관을 형성하는 수직적인 패턴을 유지하는 역할도 하는 등 여러 가지 기능을 갖고 있는 데다가 또 3.1빌딩의 상징과도 같은 이 개념 자체를 뒤집어 버리면 3.1빌딩이 아닌 거 같으니까… 최대한 기술적으로 풀어내고, 단열적인 부분을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었죠.
또 원래 지어진 건물에 당시 일본에서 만든 코르텐 스틸이 사용됐는데, 그대로 유지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었어요. 코르텐 스틸에 웨더코팅이라는 코팅재를 썼더라고요. 그런데 시간이 많이 지나다 보니 코팅재가 다 날아가고 얼룩이 많이 진 상태가 됐던 거죠. 그래서 그걸 그대로 반복할 필요는 없다는 것에 대해 건축적으로 서로 공감하고, 공유를 했구요. 그러다 가능한 한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그 이상 성능을 낼 수 있는 자재를 한 번 써보자, 해서 포스코에서 생산하는 포스맥이라는 철강을 선택했고, 거기에 도장도 좀 더 지속성 있는, 하지만 원래 있는 스틸의 느낌은 살릴 수 있는 도장재를 파우더 코팅채로 해서 컨택한 거죠. 그런 부분들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습니다.
안인석_부연 설명을 드리면, 설계파트에서 요구하는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한 소재를 엄청 많이 찾았었어요. 일본에서 현재도 생산은 되지만 사이즈가 맞지 않아 I형강을 컷팅해 써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는데, 비용도 많이 들고 건축에서는 큰 부분이잖아요. 또 당시 플랜지가 6밀리미터인 흑판은 생산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포스코에서 도와준 셈입니다. 도움을 받아 현재 웨브나 플랜지도 6밀리미터인 빌트업을 만든 거예요(포스맥125×60×6×6).
더해서 매트한 질감을 주는 파우더 코팅은 세계적으로도, 국내에서도 많이 쓰이면서 내구성이 어느 정도는 검증됐었어요. 거기에 발주처에서도 기존 건물이 50년을 견뎠으니, 우리도 이에 대한 도장의 내구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하셔서 3.1빌딩에 대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본사에서 직접 전담해 찾아가며 코팅재를 더 개발시켰어요. 매트한 느낌을 살리기 위한 샘플 테스트를 현장에서 진행하면서 어느 정도 접점을 찾은 거죠. 국내 도장에 대한 내구성 개런티는 10년이 최대였는데, 협의 끝에 개런티를 15년으로 해서 지금의 마감을 한 케이스입니다.
# 기술력 등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김중업 선생님의 노력과 그로부터 50년 후에 다시 풀어내는 이야기
홍성용_문득 든 생각인데, 3.1빌딩의 나이가 50대가 됐잖아요. 혹 당시 김중업 선생님의 사무소에서 함께한 스텝이 현역에 있다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해진_저희가 예전에 인터뷰 차 김중업건축박물관에 갔다가 선생님의 아드님을 만났는데, 설계 당시에 어려웠던 점을 이야기해 주시더라고요. 앞서 낮은 층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기준층 층고가 3.3미터가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거든요. 기술력으로 할 수 있는 높이를 정한 거예요. 그리고 제가 이유를 감히 말씀드릴 순 없지만 무조건 31층에 맞춰야 하는, 반드시 31에 멈춰야 하는, 3.1이라는 숫자가 되어야만 하는 상징적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층수에 따른 층고가 3.3미터로 유지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고 그 부분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다……. 층고가 낮아 그걸 기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신 게, 아까 보셨던 것처럼 공조실로부터 나오는 덕트를 보에 관통시켜, 3.3미터지만 2.3미터로 천장고를 확보하신 거죠. 기술적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들이 들어가 있는 거죠.
최욱_비용 문제도 굉장히 컸을 거 같아요. 미스의 건물은 기둥이 거의 커튼월에 붙어 있어서 내부 공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는데, 이 건물은 표면에서 보면 기둥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건축물 공간의 로스가 심합니다. 아마 구조적이나 비용적인 문제들이 다 있었을 거거든요. 그래서 아마 김중업 선생님이 당시 기술력 등 제한적인 한계에서 나름대로 엄청나게 이 건축물을 그래도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들려고 노력하신 게 아닌가 합니다.
홍성용_어떻게 보면 업계의 50년 선배가 작업하신 건데, 후배로서 50년 만에 프로젝트에 임하며 느끼셨던 점이 있나요?
최욱_설계하는 사람들은 다들 같은 입장일 것 같은데, 기존 김중업 선생님의 과업들이 제대로 보존이 안 되어 있어요. 선생님의 생각을 좀 존중해서 건축물에 반영시켰으면 좋을 텐데, 일반 커튼월로 되어버리고 이런 경우가 꽤 있는데… 정림건축과 원오원아키텍스의 공통적인 소망은, 삼일빌딩이 갖고 있는 상징성을 고려했을 때 이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원래적인 가치가 제대로 지켜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김중업 선생님이 당초 의도했던 건물의 정면성을 되찾고, 도시에 남아있는 50년 전의 헤리티지를 지키는 것들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들이 아니었나 생각하거든요.
김해진_그 부분에서는 정말 다들 충분히 공감하고 작업했던 것 같아요. 다만 각자의 역할이 달랐던 거지, 그런 공감대가 굉장히 잘 형성됐기에 지금의 3.1빌딩이 완성된 거고, 그 부분에서는 저희 설계자뿐만 아니라 건축주가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그 가치를 알고서 픽업에서 완성단계까지의 책임을 저희에게 다 맡기신 거거든요. 설계, 감리, 또 콘셉트에서 마감 작업까지. 전 과정에 모두 함께 동참해 주셔서 이만큼의 퀄리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고, 또 이걸 단순히 기록한다는 측면이 아니라 시대가 이렇게 바뀌어서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나갔다 하는 내용들이 잘 남겨졌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희가 김중업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볼 수가 없잖아요. 그 세대가 지났기에 주변 분들에게도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거든요. 50년이 지났지만, 이제부터라도 한 50년 후까지는 우리가 잘 기록을 해서 남은 세대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욱_이 건물의 또 다른 동참자는 일반 대중입니다. 3.1빌딩의 커튼월이 벗겨졌을 적에 SNS에서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변할까 하고. 근데 점점 이 건물이 완성이 되면서 사람들이 안심하고, 응원하고… 그런 상황들도 되게 중요하죠.
홍성용_그렇죠. 63빌딩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3.1빌딩이 이 도시의 상징이었고, 63빌딩이 지어진 후에도 상징성 면에서 3.1빌딩을 못 따라갔으니까요. 그런 면에서는, 저도 사실 지나가면서 ‘또 망가지는 거 아냐?’하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최욱_미스의 시그램 빌딩이 미국에 지어질 적에는 미국의 재즈 기타리스트들이 기타를 들고 다니고 여자들은 예쁜 옷을 입고 다닐 때였지만, 3.1빌딩이 지어질 때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직 지게도 지고 다니던 상황이었기에 이 건축물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 더욱 중요한 것 같아요.
전상우_ 2021년에 본 신의 한 수는 3.1 고가도로가 철거돼 땅의 가치가 배가된 부분인 것 같아요. 그 부분의 맥을 원오원아키텍스에서 처음에 굉장히 잘 짚어주셨고, 그 부분이 저층부에 잘 표출되면서 3.1빌딩의 이미지가 크게 변화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가도로가 있고 주차장이 앞에 있던 환경과, 청계천과 연결을 시도한 지금의 환경은 비교할 수 없는, 그런 부분인 것 같아요.
최욱_저는 1972년도에 아버지랑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3.1빌딩을 처음 봤는데, 건물이 무지 작게 보였어요. 일단 전면을 볼 수가 없었고요, 고가도로에서 차창을 통해 보면 3.1빌딩의 크기가 30%는 잘려 보여요. 그때는 저게 왜 높을까 생각했는데, 지금 정면성이 개방되고 나니 굉장히 높게 보이는 거죠. 지금 이 건물이 제대로 된 거지요. 그러니까 사실은 그냥 단순한 빌딩 리노베이션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도시적 측면에서의 프로젝트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쉬운 타협은 없었다… 서로의 공감대 형성으로 이뤄낸 결과
홍성용_마무리하면서, 두 회사가 거의 2~3년 동안 프로젝트를 함께 하셨는데 소회를 말씀해 주신다면?
최욱_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어느 쪽이나 이기적일 수가 있어요. 그런데 타협점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자기 주장을 내세울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뭐랄까… 일을 진행하면서 우리는 쉽게 타협하진 않았잖아요, 그렇죠? 그랬기 때문에 결과를 잘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림건축에서도 그런 부분을 수용해 줬고, 리드도 해줬고, 큰 틀에서 잘 정리해 주셨기 때문에 잘 끝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떠올려보면 우리가 중간지점에서는 난관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지금 생각해 보면 결국 잘 된 것 같고, 서로가 굉장히 배려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때로는 쉽게 타협을 하지 않은 것이 장점이었다고 생각하고요. 지금 보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상우_시작이 좋았던 것 같아요. 사실 처음에 정림건축 혼자 진행하려다 원오원아키텍스와 같이 하게 됐는데, 사무소의 규모를 따지기 전에 함께 건축을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원오원이 들어오셔서 콘셉트를 주시고, 그 콘셉트의 공감대가 형성되니까 자연스럽게 같이 건축을 할 수 있었고, 보시는 것과 같이 주변 환경뿐 아니라 최적의 건물이 잘 유지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큽니다. 어떻게 보면 정림건축은 큰 근육을 쓰는 데고, 원오원은 작은 근육을 쓰는 덴데, 큰 근육과 작은 근육이 잘 조화를 이루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글 육혜민 기자 · 사진 장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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