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사의 사회공헌 활동, 건축의 공적 역할 확대·강화에 필수”_한영근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 2020.12

2023. 1. 27. 09:11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Necessary for the social responsibility activities of an architect,  and an expansion and strengthening of the public role of a construction"

 

최근 서울시가 쪽방촌 주거환경 업그레이드를 위한 표준 평면을 전국 최초로 발표하고, 이를 쪽방 정비사업 공공주택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한다고 밝혔다. 발표된 표준평면 유형은 ‘주거기본법’에 따른 최저주거기준인 14제곱미터 이상으로, 1인가구를 기본으로 거주자 특성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이번 일로 국내 공공복지 건축이 한 발 더 도약했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지난 11월 27일 표준 평면을 개발한 한영근 건축사(주.아키폴리건축사사무소 대표_프랑스 국가공인 건축사/대통령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를 만나서, 관련 내용과 더불어 공공복지 건축 및 건축사의 사회적 역할에 관한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Q 표준 평면 개발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2014년 아시아 최초로 UIA국제건축사연맹으로부터 주거복지상(Sir,Robert Matthew Prize)을 수상한 ‘영등포 쪽방촌 리모델링 사업’에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사업 추진단 단장으로 5년간 활동하며 쪽방 500여 세대를 직접 리모델링했습니다. 일종의 재능기부 차원이었는데, 이것이 자연스레 이어져 올해 서울시 주택건축본부로부터 ‘쪽방촌 거주자를 위한 맞춤형 평면개발 용역’을 의뢰받게 됐습니다. 용역 기간은 7월부터 10월까지였지만, 실질적으로 지난 5년간 현장에서 얻은 체험이 밑바탕이 됐죠.

한영근 건축사 (주.아키폴리건축사사무소 & 단팥 코리아 대표, 대통령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5·6기 위원, 사.한국건축가협회 연구부회장, 은평구 총괄건축가, UNESCO-UIA 세계건축도시선정위원회 위원)


Q 발표된 표준 평면에 관해 간략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쪽방 거주자의 건강과 생활방식 등을 고려해 세 가지의 맞춤형 주거형태를 만들었습니다. 1인 가구를 기본으로 하되 거주자 특성에 따라 1인실, 다인실, 특성화실로 구분했어요. 15제곱미터 크기의 1인실은 비교적 젊고 건강한 거주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다인실은 45제곱미터 크기로 신체가 건강하지만 심리적 안정감이 결여돼 다른 거주자들과 함께 지내며 관리나 자극을 받을 필요가 있는 거주자를 위한 공간이고, 33제곱미터 크기의 특성화실은 신체적·정신적으로 어려움이 있어 보호자의 도움이 필요한 거주자를 위한 공간입니다.

Q 작업을 하면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부분은 무엇입니까?

영등포 쪽방촌 리모델링 사업 추진단장으로 5년간 활동하다 보니, 쪽방촌 주민들의 특성을 파악하게 됐습니다. 해서 그 특성에 맞게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중점으로 뒀습니다. 나이와 아픈 정도가 다 다른 쪽방 거주자들을 위해 공간이 탄력적으로 구성될 수 있게끔 한 것이 이번 가이드라인의 핵심입니다. 
쪽방 거주자들은 50대 이상의 고연령층이 80% 가량을 차지하고, 대부분 장애를 갖고 있어 사회적 활동이 정상적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모든 공간구성 자체에 추후 사회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기초적이고 일상적인 생활을 습득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자그마한 공간에서부터 작은 공간들이 모여서 한 층을 이루고, 층과 층이 모여 한 건물을 이루는데, 그러한 단계별로 사회적인 접촉을 할 수 있도록 한 거죠. 프라이버시를 확보하면서 다양한 공유·공용공간을 집약적으로 배치해 거주민 간 자연스러운 교류가 이어지게 하고, 다목적실 등의 커뮤니티 시설을 배치해 사회적 역할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등입니다. 거주환경을 정상적으로 되돌리는 공간적 개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공간적 환경이 더욱 중요하니까요. 현재 발표된 표준 평면은 유닛(unit)에 가깝다고 볼 수 있고, 2차적으로 나아가 해당 평면 조합·배치 공간에 관한 세부적인 부분을 준비 중입니다.

Q 결국 건축 측면에서의 공공복지 일환으로 보입니다. 공공복지 건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건축이 공공성을 가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문화라고 합니다. 그 문화들이 예술성의 가치를 가지면 우리는 소위 ‘건축문화 예술의 완성’이라 얘기하죠. 
건축의 기능적인 면과 시각적·미학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공공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접촉이 일어나는 부분의 만족도를 제공해야 하는 거죠. 좋은 공공건축물은 좋은 커뮤니티를 만들고, 좋은 커뮤니티들이 모여 좋은 동네를 만듭니다. 그게 모여 좋은 도시, 좋은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공공건축물은 매우 중요해요. 전에는 보건소, 우체국, 경찰서, 주민센터 등 해당 기능들만 갖고 있었지만, 지금은 주민자치센터 등으로 명칭이 바뀌었죠. 동사무소가 행정업무 공간 외에도 주민들의 복지 공간, 커뮤니티 장소 등으로 쓰이는 거예요. 마을의 중심이 되는 장소가 공공복지 건축의 우수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Q 공공복지 건축을 끌어올리기 위해 건축사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요?


서슴없이 나서서 사회에 봉사하는 자세가 핵심이 아닐까요. 
건축사는 가장 공공적이어야 할 직업 중 하나입니다. 사회에 대한 건축인의 봉사나 헌신 등에 관해 언급하자면, 우리나라는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외국에 비해서는 잘 되지 않는 편이죠. 프랑스 파리에서 20년간 건축실무를 하다 2005년 귀국해서 지금까지 건축사사무소를 운영 중인 저는 오랜 해외 경험으로 그런 면에서 조금 깨어 있었던 편입니다. 프랑스에서의 경험을 예로 들자면, 그쪽은 우리와 사회구조 자체가 달라서 누군가의 봉사로 이뤄진다기보다도 모든 사람들한테 그런 것을 서로 요구하고 배려하는 구조입니다. 양국의 경험으로 인해, 더 잘하고 못함이 아니라 다른 방향에서 사회적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장점을 갖게 됐습니다. 
직업군에 대한 존중은 그 사회에 얼마만큼의 역할과 봉사를 하고 책임을 졌느냐로 평가받습니다. 쪽방촌 관련 사업에 참여했던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그런 면에서는 건축사에 대한 대접이 부족한 작금 상황에서 건축사들의 타파 액션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사회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만한 대우와 보상을 할 만한 준비가 돼있어요. 기존 용역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가 있으나,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가치를 어디에 두고 일을 해나가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기존 건축정책에서 부족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기획 부분이 부족합니다. 소위 말해 프로그래밍 단계인데, 기획부분이 잘 검증되면 실행단계로 넘어가는 겁니다. 그러나 국내에서 기본계획은 존재하지만, 설계에서 가창 첫 단계라 할 수 있는 기획부분에 대한 예산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장 2년여 전까지만 해도 그랬죠. 
초기에 기획부분에서 수많은 검토를 하고, 사업취지 등을 정확히 정해놓으면 다음 단계에서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단적으로 설계공모라 하면 같은 패턴, 같은 얘기의 공모제안서만 있었어요. 앞서 제대로 건립취지에 맞게 세부적으로 공모제안서를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설계를 완벽히 실행하기 전에 시행단계로 넘어가는 등 절차에 의해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부분이 현장에서 시간과 돈으로 메꿔지는 식이에요. 그러나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저는 선진국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하고 싶은데요. 아무튼, 유럽 등에서는 기획 후 검증이 되지 않으면 다음단계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사업계획 후 검증 전 설계를 시작합니다. 그런 것들이 누적되며 실제적으로 시행단계에서 오차와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 거죠. 빨리빨리 정신으로 인해 바쁘지만, 결국은 기획의 차이로 치밀함과 안전성이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파이팅은 넘치지만 본질적인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국내와 프랑스에서의 경험을 들자면, 결론적으로 완료되기까지 시간적으로 큰 차이는 없었습니다.

Q 건축 행정 절차 중 입찰 시스템이 건축의 전문성이나 미학적 완성도를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많은데, 대안이 있을까요?

입찰의 선정 기준이 최저가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미학적인 완성도나 전문성을 따지기 이전에 선정 기준이 다른 거죠. 전문성과 미학적 완성도가 뒷받침되면 다 비싸야 한다는 논리를 주장하는 건 아니지만, 입찰에 있어서 가격이 선정 기준에 우선되는 것은 배제돼야 합니다. 조달청뿐 아니라 LH 등 입찰 공공건축물에 관해 가격선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을 배제시키도록 한 것도 국가건축정책위원회(국건위)의 업적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돌아가서, 궁극적으로는 입찰제도의 문제라기보다 직업군이 갖고 있는 한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건축사는 일의 시작에 있어 수동적인 입장이에요. 누군가의 오더, 요구에 의해 일이 시작되니까. 또 규모검토나 기획설계(기획업무) 요구 등을 받는데, 건축사 입장에서는 기획설계에 모든 아이디어가 들어가게 됩니다. 그것을 기획설계란 명칭 하에 당연스레 요구하는 일이 발생하죠.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모조리 등록해 서로 체킹되게끔 해서 과당경쟁 내지는 수주경쟁을 배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도적으로 마련돼야 합니다. 시장의 가격과 전문성을 컨트롤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기회에 대한 보장이 가능하게끔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 대한건축사협회가 조금 더 나서서 중요한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Q 앞서 국건위 성과를 언급하셨는데, 드물게 국건위 위원을 연임하신 것으로 압니다. 

5기(2018~2020)를 마치고 6기(2020.04~)로 연임돼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책의 연속선상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봅니다. 소신 있는 건축사로서 합리적인 의견을 개진하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저는 20여 년간의 재불 건축사로서 해외경험은 많지만 한국사회에 대한 경험은 남들보다 적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름대로 귀국 후 짧은 시간 안에 했던 건축 일들이 평가를 받았구나 하고 느껴져 뿌듯합니다. 5년간 했던 영등포 쪽방촌 리모델링 사업에 대한 사회봉사 활동도 참작된 것 같고, 2017 UIA 세계건축대회 개최와 그 이후 성과확산에 대한 노력, 공로에 대한 평가 등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당시 한국건축가협회 국제위원장을 맡으면서 유치위원으로 활동했고, 조직위원회 대외협력위원장으로 10여 년간 한국건축계를 대표해 해외에 참석하며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보람차고 생경한 경험이었죠. 현재도 UNESCO-UIA 세계건축도시선정위원회 8인 중에 한 명으로 국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위원회는 교수를 포함한 여러 부류의 구성원들로 이뤄져 있고, 실무건축사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나름대로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건축 인허가 과정에 36여 가지의 평가, 승인, 허가, 인증과 심의절차 등을 거치게 되는데, 간소화 노력을 진행 중이고 법안 진행 성과도 났습니다.
저는 국건위원 외에도 다양한 위치에서의 경험을 갖고 있는데요. 건축정책위원회 위원부터 교수, 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설 프로세스에서 끝 쪽에 있다 할 수 있는 건축자재회사(단팥코리아) 경영자 등…. 스스로 장점을 꼽자면 건축정책을 다룰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낮은 곳까지를 남들보다 포괄적인 시선으로 꿰뚫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건축의 최종 소비자는 국민입니다.
결국 건축의 공공성을 인정받아야 민간대가도 제정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건축사)끼리 대가를 올려달라고 국토부나 기재부에 아무리 얘기한들 무슨 소용입니까. 결국 우리 행위의 가치를 이 사회가 인정해서 저건 올려줘야 한다고 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야 합니다. 건축의 최종 소비자는 결국 국민이 아닙니까. 최종 소비자들의 건축에 대한 인식과 의식이 높아질 때 건축의 가치평가도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들(국민들)이 건축을 사랑하게끔 가치를 일깨우는 일을 우리 스스로 해야 합니다. 사회에 대한 봉사, 의무, 책임 등이죠. 사회공헌이나 사회적 역할이 건축의 공적 역할을 부각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돈을 받고 하는 일과, 사회에 봉사 또는 공헌하는 일에 대한 결과치의 평가는 대단히 다르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건축사협회도 좀 더 능동적으로 오픈되어 사회를 더욱 포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했으면 합니다. 

 


글 육혜민 기자 · 사진 장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