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울타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상생할 수 있도록…” 건축계 새로운 이정표 만드는데 최선_석정훈 회장

2023. 1. 31. 09:20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For everyone in the fence of architecture to coexist…”
 Setting a new milestone in the architectural world 

 

지난 1월 15일, 석정훈 건축사(주.태건축설계 건축사사무소)가 60.04%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대한건축사협회 제33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협회 직선제 도입 3회 만에 탄생한 첫 연임 회장이다. 1월 19일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장을 직접 만나 연임의 의미와 더불어 추진 정책, 협회 운영방안에 관해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Q 먼저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직선제 최초의 연임 회장이 되셨는데,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협회가 추진하고 있는 여러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는 회원의 뜻이 반영된 것 같습니다.
협회의 숙원인 의무가입도 딱 중간 단계에 와있고, 회원들의 최대 관심사인 건축사 자격시험과 관련한 여러 문제, 그다음 우리가 알고 있지만 아직까지 고쳐지지 않은 내부의 잘못된 관행들을 이번에 깔끔히 마무리하라는 회원들의 요구였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난 3년의 임기보다 훨씬 큰 부담을 느낀다고나 할까요. 지난 선거와 이번 선거 모두 60% 이상의 지지를 받은 것이 오히려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Q 그간 총력을 기울여 추진해온 협회 의무가입 ‘건축사법 개정안’ 법안심사가 곧 시작됩니다.

의무가입은 마무리되리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의무가입을 통해 어떤 목표를 구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데, 추진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의무가입이 마치 우리 협회에 국한된 일인 양 비치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유관 단체와의 협의, 설득 과정이 많이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건축계 문제가 지난 몇 년간이 아니라 오랜 기간 뿌리 깊게 누적된 것이기 때문에 서로 간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의무가입을 달성되고 난 후에 우리 협회가 제도를 어떻게 정착시키느냐입니다. 그에 따라 건축계가 하나로 화합하는 대통합의 계기를 만들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의무가입제를 안착시켜 협회뿐만 아니라 현업에 있는 건축사, 건축사보, 공부하는 학생들, 그리고 건축의 울타리에 있는 모든 이들이 상생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석정훈 대한건축사협회 회장


Q 그렇다면 협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협회와 유관 단체들은 모두 각기 건축계에 기여하는 역할이 있다고 봅니다. 서로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도와주고 지원하는 분위기가 돼야 건축계 전체가 발전합니다.
어떤 공동체나 집단이든 위계나 역할이 있는데, 건축계는 서로의 역할이 불분명해 각각 이 일, 저 일을 하다 보니 서로 간 갈등을 유발하는 구조입니다. 시너지가 나기보다 도리어 마찰 혹은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불러오는 문제가 생깁니다. 의무가입을 통해 다른 단체를 지원하고, 각 단체가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더 잘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주는 게 협회가 할 일입니다.
건축사 대통합 시대를 여는 것, 이를 실현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를 3년 임기 안에 해결하는 것이 연임 회장으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의무가입 추진 의의를 궁금해하는 분들이 아직도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관심 있고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부분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나 동료의 상황을 헤아리기 쉽지 않습니다. 건축사라는 직업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선진국에 진입하면서 지속적으로 업무량은 감소하고 이에 반비례해 일을 해낼 사람들은 늘어나는 구조를 갖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건축사 중에서 사회인으로서의 어떤 역할이나 기능과 관련해 최소한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회원들이 상당수 있는데도, 그런 점이 크게 와닿지 않는 거죠. 일부 소위 말하는 엘리트 집단, 능력 있고 일 제대로 하고 대접받는 건축사 입장에서는 다른 측면을 바라보기가 힘든 겁니다.
우리가 다 같이 건축사 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기반이 돼야 그 위에서 우리가 사회적 역할도 하고, 문화적 측면에서 기여도 하고, 사회적 인식과 역사관도 갖고 노력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의무가입은 우리가 건축사로서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보다 충실히 수행하고, 그에 합당한 평가와 전문가로서 신뢰·가치를 인정받는 것에 목적을 둡니다.

 

지난 1월 14~1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석정훈 회장이 제33대 대한건축사협회 회장으로 당선됐다.


Q 의무가입 실현 후 추진해야 할 보완책으로는 무엇이 있는지요?

건축사 고유업무 또는 우리가 가진 전문적 지식의 가치를 헐값으로 떨어뜨리는 일. 이를 우리 스스로가 관행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대가 없이 기획업무 또는 설계 상담을 해주는 것, 우리가 이를 제도적으로 바로잡지 않으면 막 건축사가 돼서 부푼 꿈을 안고 건축사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크나큰 좌절을 안겨주게 됩니다. 올바르게 살아가고 싶어도 따라주지 않는 현실에 고립되고, 또 도태되지 않기 위해 시류를 따라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2011년 무렵 지역건축사회장을 맡으면서 이 문제를 바로잡고자 ‘기획설계등록제’를 시도했습니다. 궁극적으로 회원들의 부담만 가중시키고 도리어 협회 회원이 아닌 건축사에 일감을 넘겨주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하나 되지 않고는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한다’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우리 스스로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의무가입이 반드시 되어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건축사로서의 최소의 기본은 갖추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Q 건축사의 업무 대가와 관련하여 공공부문은 어느 정도 정상화됐으나 민간 대가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현실적인 대가에 관한 협회 차원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민간대가 제정에 앞서 먼저 건축사의 업무에 대한 정의를 올바르게 정립하는 게 우선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국민의 안전·삶과 직결된 일이기에 공공의 영역에 해당하는데, 안타깝게 우리 스스로도 공인이라는 인식이 부족하고 사회에서도 우리를 공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전문가로 보지 않고 있죠.
가령 의사의 경우 누군가가 수술을 받기 위해 여러 의사에게 견적을 받아 비교하여 진료 또는 수술을 받고 있나요? 공적인 일을 담당한다면 그에 필요한 적정한 시간과 대가가 수반돼야 하는데,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설계 대가는 30년 전과 비슷하지만, 실제 업무량은 그때보다 족히 2~3배, 그 이상 늘어났기에 이대로 가다간 부실 설계, 부실 공사가 불 보듯 뻔하고, 그러다 보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부담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건축사의 업무에 대한 공적 가치를 인정받고, 그에 대한 합당한 대가와 시간은 어떻게 되는지 우리가 제시하고 그에 대한 기준을 만들어야 하겠죠. 우리가 조금만 더 노력해서 제대로 된 통계나 사례를 만들어 협의하고 설득해나간다면 민간대가 제정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 수많은 건축 관련 법들이 제·개정되고 있는데, 현장과 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법을 만들 때 전문가들이 개입되지 않고, 개입되더라도 소수에 그치다 보니 놓치는 부분도 많은 것 같습니다.

현업에 있는 전문가 단체의 의견 청취 과정이 없다는 것은 어찌 보면 현재 우리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고, 이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정부에서는 사건·사고가 생길 때마다 서둘러 대책을 만들다 보니 계속 새로운 법을 만들게 되고, 당장의 해결에만 몰두해 법도 누더기가 돼버립니다. 지금처럼 소수 개인의 의견을 수렴해 법이 만들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협회 조직을 완전히 개편해 법안 제·개정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시스템을 갖추게 하고, 국토부와는 정례적으로 우리 현안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 계획입니다. 협회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해서 본 협회를 법제도 개선에 집중하는 조직으로 바꾸려고 합니다.

 


Q 건축사시험 횟수가 연 2회로 변경되고, 작년 서울의 건축허가 수보다 건축사 수가 많아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시험과 관련해 지역에 있는 회원들은 심각한 사무소 인력난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는 예비건축사들이 꿈꾸는 건축사에 대한 비전과도 연결됩니다. 지금 많은 건축사들이 자괴감을 갖는 것은 건축사로서 가져야 할 자부심에 크나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 대해 협회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뼈아프게 생각합니다.
5년제 대학을 나와 3년의 실무수련을 거쳐 건축사 자격을 취득했을 때, 과연 그 정도의 경력으로 전문성을 갖춰 건축사로서의 업무가 가능할까 하는 부분에서 의문이 있습니다. 5년제 건축학과 학생 취업률이 20% 미만에 불과한데, 5년제 대학 도입 취지가 무색한 셈입니다. 그리고 4년제 건축학과에 입학하는 학생 중 졸업 후 자격시험 응시조건에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입학하는 학생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건축사시험 응시 기회는 확대돼야 하며, 시험에 합격한다고 해서 사무소를 꼭 개소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회 다양한 곳에서 여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대안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동시에 건축사가 사무소를 개업하는 것은 지금보다 훨씬 엄격한 절차와 기준을 거쳐야만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현재의 과목별 합격제가 건축사시험의 수준을 낮추는 원인 중 하나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물론 수험생 입장에서는 협회 정책이 불편할 수 있겠지만, 건축사가 가져야 하는 고도의 전문성 측면에서 보면 시험제도는 마땅히 개편돼야 합니다. 협회는 학계 등과 논의해 제도 개선을 추진해 시험제도를 개편할 것입니다.

 


Q 마지막으로 회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의무가입만이 우리가 사회로부터 공적인 역할을 하는 공인으로서의 대접을 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의무가입을 처음 추진할 때 외부에서 반대 의견이 컸었고, 여러 염려하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제도를 잘 정착시켜 건축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되며, 이 자리에서 다 말할 순 없지만 새로운 임기 동안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습니다.
건축사의 대통합·화합의 장을 열고,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협회의 사명에 최선을 다하여 회원들의 기대에 부응토록 하겠습니다.

 

대담 홍성용 편집국장 · 글 육혜민 기자 · 사진 장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