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산업으로의 ‘패러다임 시프트’, 경쟁력 강화에 앞장_이영범 건축공간연구원장 2022.1

2023. 2. 15. 09:22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Paradigm shift’ to the construction industry, 
taking the lead in strengthening competitiveness 

 

‘건축공간연구원(auri)’은 2007년 대통령 지시로 설립된 최초의 건축·도시 분야 정부 출연 연구기관(건축도시공간연구소)으로 출발, 2020년 국무총리실 산하 국토연구원 부설기관에서 독립법인화를 거쳐 ‘건축공간연구원(이하 아우리)’으로 새롭게 출범했다. 우리나라 건축·도시분야 정책 현안과 중장기 비전 수립 연구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런 까닭에 국내 모든 건축, 도시정책 배경에 아우리의 연구활동이 뒷받침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우리는 앞으로 건축 도시공간분야 대표 국책연구기관으로서의 체질 개선과 역할에 대한 중장기 계획을 마련하고, 그에 따른 정책연구 방향 수립 및 연구원 구성원 참여에 기반한 연구관리와 경영체계 모니터링을 지속 실행하겠다는 계획이다. 월간 <건축사>가 지난 2021년 12월 13일 이영범 도시건축공간연구원장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국민 삶 밀착해 연구, 정책·현장연구 균형감 갖고
   조직 유연성 키워 연구의 질 높일 것

홍성용 _ 현재 아우리의 중점 추진 사안이 무엇인가요?

이영범 _ 아우리가 국책연구원으로 출범한지 1년이 지났습니다. 이에 걸맞은 새로운 비전과 역할을 정립하는 것과, 우리 연구원의 연구를 수행함에 있어 정책연구와 현장연구의 두 축의 균형을 맞춰 수행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정책연구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현장의 목소리를 잘 담아내는 것이 필요하나, 이를 실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최근에 우리 연구원에 탄소중립, 고령화 등 다양한 부처의 현안 관련 연구 요구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수행하는 과제 수가 많다 보니, 연구원 개인의 부담이 큰 것도 사실입니다. 연구원 전체 시스템을 세심히 살펴 어떻게 하면 우리 연구원들이 현장의 목소리를 잘 담아 정책연구를 수행할 수 있을지 논의 중에 있습니다. 아울러 연구 수행 과정에서 늘어난 연구과제를 해결하면서도 연구자 개인의 창의성과 자유도를 높여주는 것이 필요한데, 과제의 참여 인원을 효율적으로 투입하는 것 등이 방법이 될 것으로 보고,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시설 공급 넘어선 ‘공간’의 관점에서…
   공간+복지 개념으로 접근
   산학연 연계, 지역 활동가들의 동참 必

홍성용 _ 현장 연결성을 위해 산학연 연구 협력 체계를 강화하면 어떨까 합니다. 아우리가 건축사나 공무원, 대학과 긴밀히 연결돼 함께한다면 실무차원에서의 아웃풋도 깊이 있게 나올 것 같습니다.

이영범 _ 공감합니다. 아우리에서 수행하는 생활SOC 관련 연구와, 국가공공건축지원센터의 업무, 건축자산과 관련된 연구와 사업이 산학연 연구 협력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가 될 것입니다. 국가정책연구기관인 아우리가 공간을 매개로 국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산학연 협력 차원에서 지역대학이나 지역의 건축사분들과의 과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생활SOC를 이전에는 개별 시설물 단위로 접근했다면 이제는 생활권 단위로 기존 것들을 묶거나 연결하고 있습니다. 초기에 다양한 공공시설물을 세웠으나 현장 여건과 맞지 않게 되면서 빈 공간으로 남거나 기능을 못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때문에 공급차원에 그쳐서는 안 되고, 공간과 공간 간의 유기적 운영, 국민들의 다양한 욕구를 공공 공간에서 구현하면서 지역민 삶의 질 문제로 연결하는 공간 복지 개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요새 강조되는 소위 청년 문제도 지역대학에서 청년들이 로컬과 결합되는 식으로, 어느 한 축에서 역할을 해주면 어떨까요? 공간과 시설의 문제도 지역 기반의 공공건축가나 마을건축가들이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 결합될 수 있다면, 정책연구를 했을 때 생겨나는 현장과의 접촉 한계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겁니다. 현장 네트워크에서 나온 이야기를 정책에 반영해달라든지, 혹은 지원체계를 구축해달라는 요구에 아우리는 상위개념의 프레임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각자의 역할을 서로 이해해 최대한 그것들을 활용하는 방식의 협력체계가 바람직합니다. 정책연구가 궁극적으로 현장을 바꾸려면 산학연 협력체계는 필수조건입니다.

 


# 주거, 주택정책 측면 아닌 ‘주거문화’ 개념으로
   여러 문제 한 번에 들여다봐야

홍성용 _ 건축법, 주택법 등이 부동산 정책과 엮여 법 적용이 애매해지는 문제가 생겨나고 있는데, 생활형숙박시설이 대표적입니다. 법 적용이 일관성 없이 오락가락해 교통정리가 필요해 보이는데요. 그러려면 이론과 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영범 _ 말씀하신 내용은 소위 ‘땜질’식 정책 수립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임기응변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장기적인 관점과 통합적인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주택정책과 관련된 연구는 국토연구원이, 경제정책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세제 관련해서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담당하고 있는데요. 아우리에서는 주택 문제를 ‘주거문화’에 좀 더 집중해 접근해 보려고 합니다. 
주택을 부동산 가치(가격)로만 인식하는 문화에서 벗어나 국민 모두가 주택을 통해 최소한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주거문화라는 관점에서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거문화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생활권, 즉 커뮤니티에 대한 문제 등은 단순히 주택 차원에서 공급하는 게 아니라 주택과 더불어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공급돼야 하는지에 대한 것이겠죠. 예를 들면 청년들이 슬리퍼를 신고 집 근처 동네를 편히 돌아다닐 수 있는 소위 슬세권, 이런 부분은 단순히 집의 문제가 아니라 동네나 마을에서 어떻게 생활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또 직장 출퇴근 문제, 내가 어울리고 싶은 커뮤니티가 잘 되어있는 동네…. 이런 관점에서 이제는 주거문화라는 관점과 연동해 주택정책을 좀 더 포괄적으로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 산재된 주택 관련 법 문제 해결 위해
   법령 개정과 부처 간 칸막이 해소 필요…유연함 갖춰야

이영범 _ 인구변화 추계를 보면 합계출산율이 갈수록 최저치를 기록하고, 2021년 연간 출생아 수도 26만 명 선으로 예측되는 상황입니다. 향후 30~50년을 들여다봤을 때 인구가 천만 명 이상 줄어들 거라는 연구결과가 나옵니다. 그럼에도 아파트 가격이 치솟는 상황인데요. 한편으로는 인구가 줄어들고, 도심의 학교는 학령인구 부족으로 인해 폐교 위기를 맞고, 지방 도시는 빈집이 늘어나며 소멸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국토 전반에서 소멸과 쇠퇴로 인한 유휴공간이 자꾸 늘어나는 가운데 어느 한쪽에서는 집값이 올라간다고 “공급물량을 계속 늘려야 한다”, “재건축 허가를 안 해줘서 생겨나는 문제다”라고 얘기하는 등 정말 기울어진 운동장 형태가 많습니다. 공간을 너무 정해진 기능(용도)에 맞춰 공급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 보다는 유휴화된 공간들을 단순 주거용도가 아닌 복합용도로 리노베이션하는 식으로 유연하게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전히 공급 주도 방식으로 문제를 단편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법령 개정과 이를 운영할 수 있도록 부처 간 칸막이 해소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건설산업→건축산업 틀로 전환하고 경쟁력 강화 위해 노력
   건축산업 통계 확보 준비 중…
   건축산업 규정과 패러다임 전환 위한 목소리 낼 것

홍성용 _ 최근 4차 산업혁명, 즉 슈퍼 생산성 시대로 접어들면서 소위 제조업 고용시장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박인석 국가건축정책위원장님의 저서(건축이 바꾼다)에서 건축은 그 시장을 유지시켜줄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내용에 공감합니다. 특히 소규모 건축물은 건축산업의 현실적인 변화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단순히 건축하는 사람의 시각뿐만 아니라 전체 시장구조나 인구산업 측면에서 연구가 돼야 하지 않을까요?

이영범 _ 지난달 국건위와 정책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핵심의제는 건축산업에 대한 것입니다. 그동안 건설산업기본법, 건설기술진흥법에 따른 건설산업 중심의 패러다임이 유지돼 왔던 게 사실입니다. 통계로 보면 건설산업은 현재 토목이 약 30%, 건축이 70% 정도입니다.
소규모건축물의 시공·감리를 다 포함하면 건축산업의 연간 전체 매출규모는 우리나라 반도체·석유화학·자동차 산업을 합친 것과 거의 맞먹습니다. 그런데 국가정책과 모든 산업의 표준이 여전히 토목중심의 건설산업 틀에 맞춰져, 이를 어떻게 건축산업의 틀로 전환하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위기관리나 방안 마련을 위해 건축산업의 통계를 명확하게 가질 필요를 느낍니다. 건축산업 관련 용어, 해외 산업체계는 어떤 식으로 분류되는지, 또 그 산업체계에 따른 건축산업 내의 설계시장, 그 속에서 나머지 소위 엔지니어링에 해당되는 부분에서의 이해관계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의 문제들에 관심을 갖고 현재 국건위와 함께 산업통계 체계를 마련 중입니다. 국건위와 긴밀히 협력해 큰 틀에서의 건축산업 전체 파이에 대한 규정과 패러다임 시프트가 필요하다는 정책적 목소리를 내려 합니다.
산업인력 부분은 아우리가 다루지 않지만, 소규모 공공건축물의 품질관리 측면에서 보면 산업기술 인력, 이른바 어떻게 양질의 노동력을 확보해 현장에 배치하고 계속 재교육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도 관건입니다. 현재 해외 노동자의 의존도가 높은 상황인데, 관련 연구는 없는 형편입니다. 소규모건축물과 관련된 정책 로드맵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 효과적인 설계+운영 방식 위한 계약제도, 발주제도 연구…
   기존 규정·법령에 얽매이지 말고 장애물 넘기 위해 노력해야

홍성용 _ 마지막으로 공공건축 분야에 대한 질문입니다. 공공건축의 유지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은데, 사전 기획이 잘 되지 않는 측면과도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개선을 통해 유지관리가 잘 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합니다. 또 하나, 업무를 하다 보니 지금처럼 관에서 직발주하는 시스템의 개선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설계가 끝나고 심의가 계속되면서 착공이 1년 이상 지연되다 보니 물가 상승으로 공사비를 맞출 수 없는 일이 생기고, 그걸 해결하려는 과정에 문제의 소지가 생기기도 하고요. 절차대로 하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효율이 떨어지는 일이 많이 발생하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영범 _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또는 공공기관에서 설계를 발주하기에 앞서 건축기획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 연구원에 국가공공건축지원센터가 설치되고, 공공건축지원센터를 통해 설계공모 이전에 공공건축 사전 검토를 받도록 해 공공건축 건립의 효율성이 많이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짓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짓고 나서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해당 공공건축물의 생애주기를 고려하여 어떻게 지어져야 하는지 사전에 기획해야 하는 것이죠. 
다음 단계로는 공공건축 조성을 기획하고 설계를 발주하는 단계에서부터 설계자와 운영자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서울시의 노들섬 사례가 그랬고, 아우리에서 진행 중인 군산시 시민문화회관 재생 관련 프로젝트도 ‘어떻게 하면 설계와 운영을 함께 고민할 수 있을까?’ 하는 데서 시작됐습니다. 현재 계약·발주 제도들이 이런 것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다 보니 진행 과정에서 벽에 부딪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설계와 운영이 결합된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을지 설계 초기의 계약·발주제도에 대해 더 고민하고 있습니다.
위탁방식도 장기 운영 식으로 운영자가 보조금 없이 전적으로 자신들의 공간을 이용해서 수익을 내고 비용을 감당할 수 있게끔 하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그러려면 누군가가 자세히 들여다보고 가능한 방법을 찾아내 설득하고, 하나하나 풀어내 협의하는 여러 행정의 장애물을 거쳐야 합니다. 그런데 이 장애물들을 누군가가 쉽사리 건너려고 하지 않는 거죠. 기존의 규정이나 법령에만 얽매여 비판하기보다는 행정과 운영자 각자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산학연이 각각의 역할을 통해 연구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것처럼 각각의 주체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 건축계, 변화와 혁신을 향한 하나된 목소리 내야…
   “사회적 관심 갖고 삶의 공간복지 향상에 기여해 달라”

홍성용 _ 건축사 또는 건축계에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

이영범 _ 먼저 건축계 전체의 목소리를 묶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대한건축사협회, 한국건축가협회, 새건축사협의회가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공통의 현안에 큰 공감대를 형성해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요. 또, 끊임없이 변화와 혁신을 향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현장에서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기에, 제도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관심을 갖고 참여해 역할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각 지자체에서 총괄건축가나 공공건축가 제도를 도입하면서 건축사분들이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공건축, 지역의 소규모 재생, 마을단위로 밀착해 공간을 바꿔나가는 등 여러 작업에 기여해 변화되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것들을 묶어서 제도적으로 매력적인 하나의 전문영역, 일자리가 되게끔 만들어주는 것이 아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건축사분들도 단순히 건물이나 시설 차원이 아니라, 공간 측면 또는 공간과 지역사회라는 관점에서 어떻게 하면 지역 주민 삶의 공간 복지를 좀 더 향상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지, 건축의 역할이 과연 어디에 있고, 그 역할을 위해 행정 관계를 어떤 식으로 새롭게 구축해야 하는지 관심을 갖고 역할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우리도 오픈마인드로 논의와 협력을 지속할 것이며, 정책연구를 통한 법제도 개선과 더불어 건축도시 성장의 주춧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대담 홍성용 편집국장
글 육혜민 기자 · 사진 장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