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국형 한국 건축정책과 제도, 한국 공공건축의 격 낮춘다 2021.10

2023. 2. 10. 09:25아티클 | Article/에디터스레터 | Editor's Letter

Underdeveloped Korean architectural policies 
and systems lower the class of Korean public architecture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와 자하 하디드.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이하 DDP)는 담당 공무원들에겐 끔찍한 프로젝트였다. 이들에게 동대문 DDP의 건축적 가치를 질문하면 하나같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문화와 기술적 성과인 건축가치를 지닌 건축으로 세계인들에게 주목을 받은, 건물이 아닌 ‘건축’이다.
해외 유수의 문화적 가치지향성 행사나 주체들이 한국에서 행사장으로 선택하는 곳이 DDP다. 세계 패션의 선두주자인 샤넬이나 루이뷔통 같은 브랜드에서부터 세계적인 디자이너나 작가들이 자신들의 전시나 행사를 하고픈 장소로 DDP를 선택한다. 이제는 논란의 여지없이 연간 방문객을 2,000만 명 이상 모으는 최고의 건축으로, 서울을 상징하는 아이콘의 하나가 되었다. 그런 건축이 왜 공무원들에게는 스트레스성 질병을 안겨줄 만큼의 과정을 겪었을까?
이쯤에서 잠시 다른 공공건축 이야기를 해보자. 최근 공공건축 프로젝트 당선이 되어서 서울시 기술심사를 받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공공건축이 어떻게 훼손될 수 있는지 여실히 느끼고 있다. 건축과 건물을 구분하지 못하고, 설계와 시공의 지향성을 구분하지 못하는 후진적 사고로 만들어진 건축정책과 제도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바로 「건설기술 진흥법 시행령」의 ‘[별표 8] 건설공사 등의 벌점관리기준(제87조 제5항 관련)’이 그것이다.
그 내용을 보면, 건축설계와 건설시공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채로 뭉뚱그려서 살벌한 벌점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공공건축은 매력적인 성과물, 즉 완성도 있는 미래의 문화재적 잠재성을 내포하는 건축이다. 이런 건축을 일개 건물로 추락시키는 역할을 이 벌점 관리 기준이 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 가장 어이없는 기준이 바로 ‘공공건축 설계공모’를 통해 당선된 건축사에게 수량 및 공사비가 잘못됐다고 벌점을 주는 규정이다. <건설기술진흥법 시행령 [별표 8] 제5호 다목 5) 가) · 나) · 다) >

 


왜 잘못되었냐고? 완성도 높은 건축을 설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디테일이 부각될 수밖에 없고, 이런 요소들이 쌓이면 공사비는 상승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설계공모를 심사하는 심사위원들 대부분은 국내 건축공사비에 대한 감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눈으로 보이는 ‘건축적 가치’에 집중한다. 
이 최악의 규정이 건축사들을 옥죄고 망나니의 칼날처럼 건축을 훼손해서 건축이 아닌 ‘건물’로 추락시킨다. 실무 공무원들에겐 굳이 완성도 높은 건축일 필요가 없다. 그냥 필요에 맞춘 건물이면 문제없다. 필요 없어지면 해체하고, 예산을 만들어서 다시 저렴하게 건물을 지으면 되기 때문이다. 당장 이 규정을 삭제해야 한다. 더구나 국내 건축사들에게 이 규정은 역차별의 정수다.


2006년에 예상 공사비가 1,593억 원이었던 DDP는 2011년 5,094억 원의 공사비를 들여 진행되었다. 자하 하디드는 벌점을 받지 않았고, DDP는 그의 대표작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들은 무수히 반복된 감사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무 건축직 공무원에게 ‘건축’을 요구할 수 있는가. 그들은 ‘건물’을 만들면 이런 감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대한민국 관료와 정치인들은 이런 사례를 보고서도 문제의식이 없는가?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