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이 사라진 우리 사회의 흐름…건축도 예외는 아니다 2021.12

2023. 2. 14. 09:16아티클 | Article/에디터스레터 | Editor's Letter

The trend of our society that has lost its essence... 
Architecture is no exception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두 가지 정책은 공무원 등 관료들의 실적과 업적 쌓기에 딱 좋다. 바로 입시 정책과 주택 관련 부동산 정책이다. 전 세계 학계의 이론과 테스트 정책들이 과감히 시도되고, 수도 없이 폐기된다.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이 두 정책은 정치인들과 관료들의 공약 일 순위에서 빠진 적이 없으며, 비판의 대상으로도 일 순위다. 아마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온 모든 아이디어는 한 번씩 다 시도해본 것이 아닐까 싶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본질적인 문제, 핵심을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입시의 핵심은 서열을 정하고 등수를 정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내용을 얼마만큼 이해하느냐를 파악하는 것이고, 이해를 바탕으로 그다음 비로소 학문이나 실무 등에 적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천문학적 돈을 쏟아 부은 수많은 교육과정, 그중에서도 국어와 영어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언어는 논리적으로 글을 잘 쓰고, 말을 잘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표현을 논리적이고 타당하게 사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십수 년 교육과정에서 쏟아 부은 공공이나 사교육의 성과는? 대다수가 에세이든 떠오르는 생각을 적은 글이든 A4용지 10장을 채워 쓰기 힘들어하고, 외국인을 만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그러니 사고 영역인 글의 이해도를 묻는 문해력이 OECD꼴찌다.
27개월간 아이가 해외에서 공교육을 받도록 한 적이 있었다. 영어를 쓰기, 읽기와 말하기, 듣기로 나눠서 하는 수업이었고, 그곳에서도 시험을 봤다. 깜짝 놀란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담당 교사는 점수를 공개하지 않고, 상담을 요청했다. 상담의 핵심에서 아이의 점수는 교육의 결과에 대한 측정 도구일 뿐이었으며, 문장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읽기, 쓰기 수업 강화반을 추천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말하기를 위해서 친구들과의 토론 시간을 늘리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측정 결과에 적합한 처방으로 상담을 마쳤다. 등수나 점수가 중심이 아니다. 사실 이것이 맞는 것 아닐까? 
우리는 이런 본질을 빼놓은 채 입시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점수를 나노 단위로 나누어서 등수화하고, 아이들을 대학 입시로 내몬다. 100점과 99점 사이가 있다면 아마도 소수점까지 나눠서 구분할지도 모른다. 그렇다 보니, 시험 문제도 해당 수업의 본질보다는 실수를 유도하기 위한 함정 파기에 혈안이다. 문장은 배배 꼬이고, 지문은 갈수록 길어진다. 문장 간의 접속사 수정으로 함정을 만들어 아이들이 빠져들기를 기다리는 문제들이 상당수다. 이쯤 되면 이해도는 중요하지 않다. 본질은 빠지고 형식이 기형적으로 과다해진 사회인 셈이다. 우리 사회 전반에 이런 현상이 만연하다.
건축분야에서는 특히 건축사 관련 제도가 그렇다. 법과 행정 체계의 중요성은 기준을 만들고, 이 기준을 이해하며 책임을 지는 전문가를 내세워 관리한다. 건축사라는 법적 지위가 만들어진 이유다. 그런 책임이 있는 자를 선정하기 위한 건축사 시험제도가 있다.
그런데 최근 건축사 시험제도 관련 논의를 보면, 건축사의 역할이자 본질인 건축을 잘 이해하고 설계할 능력 있는 자를 선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마치 입시의 소수점 입학 테스트 기준처럼 건축에 대한 설계 능력과 이해도 비중이 무척 낮다. 더구나 건축사 합격률과 시험 자격으로 논란이 되니 ‘졸업장=건축사’ 동일화 의견이 커지고 있다.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질과 환경 악화를 유도하는 것 같다.
우리와 인구가 비슷한 영국처럼 본인이 설계한 건축 작품을 설명하고 검증받는 ‘대면 발표 시스템’을 왜 도입하지 못하는 것일까? 영국처럼 ‘건축’의 본질을 더 잘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도입할 수는 없을까?
혹 건축사 시험 자격 자체를 무력화시켜, 아예 건축사 시험을 없애고 자격증을 받게 하려는 음모가 있는 것일까? 도대체 알다가도 모르겠다.

 

 

글. 홍성용 Hong, Sungyong 본지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