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 시선의 권력을 말하다 2021.11

2023. 2. 13. 09:06아티클 | Article/디자인스토리 | Design Story

Squid Game, talking about the Power of a Point View

 

<오징어 게임>의 게임 진행요원들을 보면서 영화 <스타워즈> 시리즈의 스톰트루퍼가 떠올랐다. 그들의 공통점은 제복을 입고 있고,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오징어 게임>의 진행요원들이 마스크를 쓴 이유는 아무도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자신의 정보를 감추는 사람들은 두 가지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권력자이고, 또 하나는 악당이다. 그런데 그 둘은 하나로 통합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권력자는 곧 악당이 된다는 뜻이다. 얼굴 가리기, 목소리만 나오기(그 목소리조차 변조된 경우가 많다), 똑같은 제복으로 개별적인 특징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등은 모두 권력의 속성이자 동시에 악당의 속성이다. 

자신의 정체를 가리는 것이 왜 권력과 악당의 속성이 될까? 그것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 허버트 조지 웰스의 SF소설 <투명인간>이다. 1897년에 발표된 이 소설은 1933년에 할리우드에서 영화화되었다. 비슷한 맥락의 영화로 2000년에 개봉한 <할로우 맨>도 있다. 이 영화들에서 주인공은 과학자로서 순수한 학문적 열정으로 투명인간이 된다. 하지만 투명인간이 되고 누구도 자신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나쁜 짓을 할 계획을 꾸미고 결국 악당이 된다. 익명성에 기대 악플을 다는 심리와 똑같다. 이름과 얼굴을 노출시킨 채 악플을 달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자기가 하는 짓을 누군가 보고 있다는 의식은 그를 악으로부터 보호한다. 그와 반대로 아무도 자신을 볼 수 없다는 의식은 악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오징어 게임>의 게임 진행요원들 ⓒ 넷플릭스


자신을 숨길 수 있는 능력은 권력의 속성이다. 회사에서 사장과 중역들은 일반 사원들이 접근할 수 없는 방을 소유한다. 그 안에서 뭘 하는지 알 수 없다. 반면에 평직원들은 개방된 공간에 자신을 노출시키고 감시당한다. 권력이란 “나는 남을 볼 수 있지만, 남들에게 나는 보이지 않는” 능력이다. 평직원들의 재정상태를 ‘유리지갑’으로 비유하는 것은 그들이 권력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리처럼 투명하게 모든 수입과 지출이 노출된다. 반면에 부자들의 수입과 지출은 철저하게 가려져 있다. 부자들의 재정상태는 ‘돌지갑’에 비유해야 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투명하다’는 것은 힘없는 사람의 속성이다. 따라서 <투명인간>의 원제 ‘The Invisible Man’은 <보이지 않는 사람>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맞는지도 모르겠다. 투명함은 정직한 사람, 대체로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선의 비대칭성은 영화에서 더욱 효과적으로 악당과 그들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오징어 게임>의 요원들은 마스크로 얼굴을 감추고, 약자인 게임 참가자들은 얼굴을 노출시킨다. <스타워즈> 속 ‘악의 화신’ 다스베이더는 한 번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스베이더의 마스크를 디자인한 사람은 컨셉추얼 디자이너 랄프 맥쿼리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창조자인 조지 루카스는 처음부터 다스베이더의 얼굴에 마스크를 씌울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평소 좋아했던 사무라이 투구를 쓰는 정도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 다스베이더에게 호흡기를 달아 마스크를 씌운다는 발상은 랄프 맥쿼리에게서 나왔다. <스타워즈>에서 다스베이더는 제국군의 비행선에서 공화국군의 비행선으로 침투하는 장면에서 처음 등장한다. 맥쿼리는 우주 공간을 가로지르기 위한 호흡장치가 필요하다고 여겼고, 호흡기가 부착된 투구 디자인을 루카스에게 제안했다. 랄프 맥쿼리의 콘셉트 스케치 속 다스베이더는 강력한 악당의 포스를 내뿜었다. 조지 루카스의 승인으로 SF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캐릭터가 탄생하게 되었다.

 

1977년작 <스타워즈>의 제국군 군인들인 스톰트루퍼(Stormtrooper) ⓒ 월트디즈니
랄프 맥쿼리가 디자인한 다이베이더 컨셉추얼 드로잉 ⓒ 월트디즈니


마스크를 쓴 얼굴에는 정보가 없다. 그의 표정을 알 수 없으므로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흔히 밤은 공포스러운 시간인데, 빛의 부족으로 앞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으면 뭔가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예측 불가능성은 위험한 상태다. 반면에 대상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많을수록 불안이 사라지고 안정이 찾아온다. 스스로 예측하여 대상에 대한 적절한 반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낮은 대상에 대한 정보를 밝혀주는 시간이므로 두려움이 줄어든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생존율과 관계되어 있다. 결국 정보 부족에 따른 예측 불가능성은 나의 생존을 위협한다. 따라서 밤 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정보의 부족’이야말로 공포의 근원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스크 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 뒤에 감춰진 얼굴의 정보를 읽을 수 없다는 것이 공포스러운 것이다.

마스크로 인해 어떠한 표정도 노출시키지 않는 존재란 두려움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런 공포의 캐릭터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할로윈>의 살인마 마이클,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악당 베인,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의 독재자 임모탄 조. <배트맨>의 조커 역시도 화장이라는 일종의 마스크를 쓴 셈이다. 어쨌든 그들은 모두 자신의 속셈을 숨기는 능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권력자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6 - 제다이의 귀환>에서 다스베이더는 처음으로 마스크를 벗는다. 다스베이더에게 마스크는 호흡장치이므로 그것을 벗는 순간 사망에 이른다. 하지만 자신이 걸어온 길을 속죄하고자 아들 앞에서 마스크를 벗기로 결심한다. 마스크를 벗고 드디어 늙은 남자의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 관객은 그동안 다스베이더에게 느꼈던 증오의 감정이 수그러들고 연민의 감정이 살아나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얼굴에는 표정과 인상이 있고, 그것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그렇게 변화하는 존재, 그 변화를 속절없이 남들에게 드러내는 존재는 나약하고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에서도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드러내는 요원들이 등장한다. 그렇게 마스크를 벗을 때마다 그 요원이 한없이 초라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장 역할을 하는 프런트맨 역시 막바지에 얼굴을 드러내고 변조되지 않은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그때에도 관객은 그에 대해서 좀 더 인간적인 느낌을 갖게 된다. 최근 <오징어 게임>의 열풍으로 이 드라마에 대한 갖가지 해석이 쏟아진다. 내가 이 시리즈를 보면서 느낀 것은 오늘날의 사회가 점점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가상 공간에서 그것은 더욱 명백해진다.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더욱더 자신을 숨긴 채, 얼굴을 서로 마주하지 않은 채 살아가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서로의 정체를 아는 것이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는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자꾸 마스크로, 익명으로, 아바타로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고 싶어하는 것 같다. <오징어 게임>의 요원들처럼, 투명인간처럼 말이다. 

 

1983년작 <스타 워즈 에피소드 6 - 제다이의 귀환>에서 다스베이더가 마스크를 벗어 얼 굴을 드러내고 있다. ⓒ 월트디즈니

 

 

글. 김신 Kim, Shin 디자인 칼럼니스트

 

김신 디자인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부터 2011년까 지 월간 <디자인>에서 기자와 편집장을 지냈다. 대림미술관 부관장을 지냈으며, 2014년부터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여러 미디어에 디자인 글을 기고하고 디자인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 <고마워 디자인>, <당신이 앉은 그 의자의 비밀>, <쇼핑 소년의 탄생>이 있다. 

 

kshin20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