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인간과 역사를 마주한 건축사 이광만 2021.11

2023. 2. 13. 09:26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Architect Lee Kwang Man, facing human and history

 

통영국제음악당(2013)부터 대화를 풀어 나갔다. 경남 통영에는 물적 토대인 음악당 이전에 음악제가 있었다. 음악당 건립은 통영이 배출한 세계적 현대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을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1967년 소위 ‘동백림’ 사건으로 국내로 강제 송환되어 1969년 해외 추방된 윤이상은 살아서는 통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윤이상은 어린 시절 아버지와 밤낚시를 나가 배 위에 앉아 물고기가 헤엄치는 소리나 배에서 배로 이어져 나가는 어부들의 침울한 남도창을 들었다. 수면이 그 울림을 멀리 전해주었고, 바다는 공명판 같았으며 하늘에는 별이 가득했다.(『윤이상, 상처입은 용』, 윤이상·루이제 린저) 

 

통영국제음악당 ⓒ 염승훈

 

경남 통영시는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나 스위스의 루체른 페스티벌을 벤치마킹해 국제음악 휴양 도시를 목표했으나 걸맞은 인프라스트럭처를 갖지 못했다. 통영시는 2004년 세계 최정상의 뉴욕 필하모니를 초청했으나 필하모니는 시설 미비를 이유로 ‘공연 불가’를 알려왔다. ‘시설’은 전용 비행기가 인근에 착륙할 공항을 포함한 공연장, 호텔이었다. 

통영국제음악당은 위치 선정부터 논란이었다. 이광만은 옛 충무관광호텔, 통영시 도남동 1번지 현재의 자리에 섰을 때 겁부터 났다. 윤이상 음악 세계를 그대로 전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건축사로서, 약간의 터치만 있으면 되는 곳이라고 보았다. 

공연장은 세계 최신의 말굽형, 빈야드(포도밭)형 디자인으로 가야 된다는 여론이 비등했으나 음향 전문가 주장대로 직사각형 형태로 풍부한 반사음을 구현하는 슈박스(shoebox)로 결정했다. 평면을 보면 밋밋하다. 음악당의 본질은 음악을 드러내는 풍경이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건축적 형태는 항구를 드나드는 고깃배를 따라다니는 갈매기가 떠 있는 형상을 이입시켰다. 

통영국제음악당은 아시아 대표 음악축제인 ‘통영국제음악제’와 ‘국제음악콩쿠르’를 세계적 음악축제로 발전시키고자 추진한 사업이다. 

음악당은 3만3,058제곱미터 대지 위에 연면적 1만4,618제곱미터, 지상 5층 규모로 전자악기를 사용하지 않는 어쿠스틱 사운드(acoustic sound)를 중심으로 하는 1,300석의 클래식 콘서트홀과 다양한 장르의 공연이 가능한 300석 규모의 블랙박스 공연장으로 구성되었다. 

음악당 재정 자립과 활성화를 고려한 건축 디자인은 음악제 사무국, 예술감독 등 전문가와의 치열한 토론을 통해 현실적이면서도 전략적인 공간 계획으로 나타났다. 메인 홀은 클래식 공연장 쓰임으로 한정했고, 블랙박스 공연장은 대관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공연과 행사 유치를 통해 가변무대-객석시스템의 차별화를 적용하였다. 지역 문화예술단체와 시민들에게 참여 기회를 확대한 공공성도 고려했다. 공연 없는 기간을 감안해 주변 통영을 즐길 수 있는 카페테리아와 휴게 공간을 고려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콘서트헤보우, 오스트리아 빈 무지크 페어라인(Wiener Musikverein), 루체른 KKL 등을 참고했으며 최종적 음향 지표인 잔향 시간, 명료도 등을 고려한 설계에 1년 반이 걸렸다. 

건축사 이광만은 대학에서 온라인으로 ‘건축사로 살아가기’를 강의한다. 인터뷰하면서 그는 종종 강의 노트를 펼쳐든다. 한국은 20세기 초까지도 건축(architecture)이라는 말이 없었다. 1920년대 일본에서부터 ‘건축(建築)’이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했다. 

르 코르뷔지에에게서 배운 김중업(1922~1988), 일본 도쿄예대와 도쿄대 출신의 김수근(1931~1986)이 실천적 건축사였다. 일본 와세다대 출신의 정인국(1914~1974)은 대학 건축 교육의 기틀을 다졌다. 미국 하버드대 출신의 김성국(1937~2010)은 국내 현실과 맞지 않았다. 이광만은 대학 4학년 때 미스 반 데어 로에가 학장을 지낸 미국 일리노이공대(ITT) 출신 김종성(1935~ )으로부터 설계를 배웠다. 김종성은 서울 힐튼 호텔 설계를 맡아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김중업으로부터 르 코르뷔지에를, 김수근으로부터 일본 건축을, 김종성으로부터는 미스 반 데어 로에를 받아들였다. 다양한 건축 계보는 한국을 40여 년 만에 대형 건축사사무소만 10여 개에 이르는 수준으로 폭풍 성장시켰다. 

이광만은 학생 군사교육 ‘교련’ 철폐 운동이 벌어진 1971년 대학에 입학했다. 근대건축사인 르 코르뷔지에가 뒤늦게 본격 조명되던 1983년, 정림건축과 일본 유학과 현지 실무를 거친 김자호, 정림건축 이광만, 공간의 이범재가 ‘간삼건축’을 창립했다. 어떤 건축사무실이어야 하느냐를 고민했다. 김수근, 김중업, 김종성 등 스타 건축사 1인 체제를 지양하기로 했다. 파트너십, 건축의 본질 추구, 각자의 한계와 재능을 인정한다는 게 합의 사항이었다. 당시 파트너십 경영체제는 ‘원도시 건축’이 유일했다. 

건축은 사색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대상이라고 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연 로버트 벤투리(1925~2018)와 데니스 스콧 브라운(1931 ~ ) 부부가 스티븐 아이즈너와 공저로 '라스베이거의 교훈. Learing from Las Vegas. 1972)을 출간한다. 건축디자인에 있어 일사불란한 통일성보다는 복잡다단한 모순이, 기하학적 순수성보다는 다혈질의 열정이, 모더니즘의 형식주의보다는 역사성(history)과 버내큘러(vernacular·지역성)를 강조하는 건축의 문맥(contextualism)을 주장했다.

간삼을 론칭시킨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광만은 이 책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근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 건축 현실에 대한 해법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원서 강독을 통해 자신만의 건축론을 단단히 할 수 있었다. 

간삼건축은 신입 직원에게 1년 동안 도면 그리기 등 교육만 시킨다. 1988년부터 15년간 니켄 세케이(Nikken SekkeiI·日建設計·1900~ ), 니혼 세케이(Nihon Sekkei), 도큐 세케이(Tokyo Sekkei·東急設計)에 실무 연수 및 교류 목적으로 직원들을 파견했다. 니켄 세케이와의 제휴는 서울 포스코 센터(1995), 포항 포스코 역사박물관(2003), 포스코E&C 인천 송도 사옥(2010), 포스코 중국 베이징 사옥(2015) 수주로 이어졌다. 

니켄 세케이는 신일본제철(新日本製鐵) 공장들을 설계하였고, 신일본제철과 제휴사인 포스코도 공장 설계를 맡기게 되었다. 니켄 세케이 제휴사인 간삼건축은 포스코센터(1995) 실시 설계를 담당했다. 니켄 세케이는 포스코센터 주변의 트레이드타워(무역회관), 도쿄 롯폰기힐스를 디자인하였다. 간삼건축은 니켄 세케이와 30여 년간 제휴를 잇고 있다. 양사 간 디자인(형태) 설계는 거의 대등한 위치에 와 있으나 고급 기술 자문은 여전히 받고 있다. 

1990년대 초까지도 한국은 호텔, 백화점조차도 설계할 능력이 없었다. 일본 회사가 기본 설계를 맡고 실시 설계를 한국이 배웠다. 핵심은 산업의 이동에 따른 신업태에 대한 이해 및 공간 구성 경험이 없어서였다. 중국은 동일한 흐름으로 우리와 일정한 격차를 보여준다. 일본에서 구조, 안전성 등 현대건축의 본질을 배운 한국 건축계는 2000년대부터는 건축 설계를 수출하고 있다. 

 

포스코역사관 ⓒ 염승훈

포스코 역사관(2003)은 타원형의 박물관이다. 이광만은 철이 갖고 있는 물성을 최대한 활용했다. 자동차에 주로 쓰이는 냉연강판, 아연강판, 건설 현장에서 쓰이는 H빔 등 다양한 철을 사용(cladding)했다. 철은 보다 가볍고 얇은 건축물을 만들 수 있는 수단이다. 재료와 구조의 물리적 경량화는 시각적으로도 건물을 무게가 없는 추상적 오브제처럼 보이게 만든다. 철은 건축물을 만드는 재료이자, 다른 한편으론 비물질화된 건물을 만들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대형 프로젝트는 설계 인력만 100~200명이 참여한다. 구현된 건물이 특정 건축사의 작품일 수는 없다. 프로젝트는 직책만 남아 있다. 2000년 초까지 간삼건축은 대부분 집단으로 작업한 작품에 대해 의도적으로 책임 건축사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으나 이후 교육적 차원에서 이름을 명기한다. 

1997년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이 발의되면서 산업으로서 건축 설계가 정의되며 범위가 정해진다. 기획(planing), 설계(design), 건설관리(CM), 시설관리(FM) 등 4개 분야다. 이 법과 관련해 2005년부터 대학 건축학부 학제가 바뀐다. 건축대학이 5년제, 학부 비전공자는 건축 대학원 3년 과정이 골격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국가로서 해외 대학과의 교과과정 상호 인증을 받기 위해서였다.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은 건축 설계 업무 영역 확장을 위해 한국건축가협회장 재임(2012년 6월~2014년 2월) 시절 확립되었다. 지금도 여전히 건축이라고 하면 설계(design)만 얘기한다. 

“표준에 눌려서 창의가 사라져서는 안된다. 기술을 범용화시켜야 더 나은 표준을 만드는 게 아닌가.” 자신의 세대는 표준을 벗어나면 안된다고 배웠다. 표준을 규제로 이해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옛날식 신군사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건축사사무소는 도제(徒弟) 방식을 따르는 아틀리에, 서비스산업 규모를 갖춘 대형 사무소로 구분된다. 이광만은 대형 사무소 경영자 출신의 건축사다. 건축단체는 크게 건축사협회, 건축가협회, 건축학회로 구분된다. 대한건축사협회는 건축사 자격증을 가진 건축사 단체, 한국건축가협회는 대체로 건축 설계 업무를 사업으로 이어가는 건축인들을 말한다. 

 

보헌빌딩 ⓒ 염승훈

 

보헌빌딩(2005)은 서울 북촌 한옥 지구와 경복궁, 창덕궁 등 역사적 건축물이 밀집한 장소에 위치해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의 갈등과 고민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주변 경관과 자연스럽게 연결하기 위해 재료와 색채를 고려했고, 공간 조직을 위해 전통 건축에서 드러나는 중정(中庭) 형식을 도입했다. 이중의 공간적 두께로 표현해 도시 안에 사적 침묵 공간을 이끌어내려고 했다. 
형태만으로 한옥을 흉내 내는 것은 지역 정서를 해칠 우려가 있기에 조심했다. 업무 시설 기능을 충족하면서도 전통 한옥의 공간 배치 원칙에 따른 평면 구성을 통해 사용자들의 친숙도를 높였다. 보헌빌딩은 한옥 특유의 절제되고 자연적인 질감의 전통 재료와 나지막이 둘러친 건물 주변의 기와 담장을 통해 북촌마을과 자연스럽게 융화된다. 

건물 중심 진입로로 형성된 열린 축은 건물에 들어선 이의 시선을 자연스레 유도하고, 오르막 지형에 따른 단의 차이는 지하 1층으로 들어서기에 용이하다. 3층 발코니와 옥상에서 북촌마을 경관을 조망하도록 했다. 지하 3층~지상 3층, 대지 1,203제곱미터(364평), 건축면적 721제곱미터(218평), 연면적 3,987제곱미터(1,206평)다. 

타워호텔을 반얀트리크럽앤스파(2010)로 변경하는 리모델링은 결코 쉽지 않았다. 1969년 건설된 타워호텔은 2006년까지 객실, 수영장 등이 운영되다가 문을 닫았다. 관련 법규상 남산에 건물을 새로 짓거나 증축, 재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뼈대는 그대로 두면서 새것처럼 만들어야 했다. 당대의 부실한 시공으로 인해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관청은 도면이 남아 있는 김수근이 설립한 건축사사무소 ‘공간’에서 서명을 받아오라고 했다. 이광만은 그대로 놔두어서는 명품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졌다. 현대 건축문화유산이어야 할 김중업의 제주대 본관(1966)은 조잡한 시공으로 해체되지 않았나. 타워호텔이 김수근 건축사의 기념비적 작품이기에 외관을 그대로 두고 내부 공사를 진행해 많은 시간이 걸렸다. 

 

골프존 대전 사옥 ⓒ 이광만


스크린골프는 노래방, 찜질방처럼 한국 현대문화가 낳은 산물이다. 골프존 대전 사옥(2014)은 실내에 연습장과 경기장을 넣어야 했다. 전 세계 어떤 건축물도 표준으로 삼을 만한 것이 없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건물을 설계해야 했다. 건축주는 자연을 형상화해달라고 했다. 골퍼들이 산지와 구릉을 오르내리며 접하는 산과 암반 등 자연 경관과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 디자인된 골프공의 오톨도톨한 표면을 모티프로 삼았다. 엑스포 과학공원 등 지역의 컨텍스트를 고려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혼과 열정을 다해 성장시킨 기업의 소유 지배구조에서 벗어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일이다. 간삼 건축 창립 때 파트너들은 65세 은퇴를 약속했다. 10년마다 세대 교체가 있었고, 30여 년이 지나면서 파트너십이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창립 멤버인 이범재가 가장 먼저 떠났고, 한국은행 본점(1987) 프로젝트 진행을 위해 영입된 원정수, 지순 부부 건축사, 김자호, 이광만 순으로 간삼을 떠났다. 이광만은 3분의 1에 해당하는 전체 지분을 내놓았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타워호텔) ⓒ (주)간삼건축 종합건축사사무소

 

회사 규모가 커지면 주식시장에 상장해 자금을 용이하게 조달할 수 있으나 주주들 간섭 때문에 창의력을 생명으로 하는 건축회사의 정체성이 흔들린다. 제휴사 니켄세케이가 100년 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경영 비결을 수용하기로 했다. 
간삼은 오랫동안 가장 입사하고 싶은 설계 사무소 1위가 되었다. 타 장르의 전문가들을 불러서 사회와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이광만이 만든 문화 매거진 ‘G스타일’은 ‘G포럼’으로 발전한다. 이광만은 모교 홍익대 총동문회장을 지냈다. 직원 600명, 연매출 800억 원 규모의 대형 건축사사무소 회장 직함을 가졌기에 주변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다. 

삶이나 주택이나 설계의 원리는 같다. 집을 통해 삶의 방식이 바뀐다. 행복한 삶은 자신이 중심이 돼야 하는 게 주택 설계의 기본 방향이다. 집을 짓는 것도 치유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광만은 간삼건축 은퇴 후 서울 퇴계로6가와 5가 사이 30여 년 된 붉은 6층 벽돌 건물을 인수해 2년간이나 리모델링했다. 이광만은 청소년기를 서울 제기동과 신설동에서 보냈다. 장충동에도 살았다. 부친은 도심지로 출근하면서 ‘문안 갔다 온다’는 말씀을 했다. ‘문안 건축’ 간판을 달았다. 건물은 역사이고, 축적된 시간이 오롯이 담긴다. 사옥이 지역의 문화 시설로 기능했으면 하는 바람을 목표로 했다. 1층은 후배가 경영하는 다양한 종류의 인화지 필름 가게이며, 별도의 출입문을 낸 지하는 카페다. ‘건축사로 살아가기’ 강의에는 ‘자기가 건축주 되기’가 있다. 

강경중학교 어린이 도서관(2018)은 중목 구조로 지었다. 결구 방법 등 구조 형식을 일본에서 빌려왔다. 일본 재료를 써도 우리 형식으로 만들었다. 목구조 건축에 있어 반석(盤石)에 기초를 놓는 방법은 일본이 한국에서 배워갔다. 
강경중학교는 논산의 작은 읍에 위치해 묵묵한 형태와 색상을 계획하여 동네의 조용한 배경이 되기를 바랐다. 내외부 모두 목재를 사용하여 마감함으로써 시간과 함께 점점 더 주변에 친숙해져갈 것을 기대한다. 

이광만 건축사는 ‘서구의 건축을 베끼다 만’ 세대라고 자조한다. 지금은 소화해서 우리 것으로 만드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본다. 선배들은 건축을 형태로만 받아들였다. 우리에게 건축을 가르친 일본도 애초 그렇게 받아들였다. 건축의 기본인 구조, 안정성 등을 먼저 수용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이광만 작품의 특징은 비일상을 포함하는 ‘일상(vernacular)의 건축’이다. ‘골목길 탐방’ 과목은 예전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았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찰해서 건축적 결론을 만든다. BTS의 노래가 그런거 아닌가. 건축 작품을 보면서 건축사는 당대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을까를 짚어본다. 일상의 건축은 자신이 살고 있는 풍속(風俗)을 기반으로 한다. 변혁기 풍속은 기존의 가치와 새로운 가치가 갈등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진짜 좋은 건축은 도예가가 일생을 통해 몇 점 만들지 못하는 달 항아리와 같은 것이다. 혼이 들어간 작품은 작가 평생의 노력 끝에 이루어진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와 협업해서 만들어내는 게 진정한 건축이다. 특정 한 사람의 아이디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람의 능력과 시스템과 프로세스가 결합해야 한다. 건축은 삶이 녹아 있고, 투쟁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광만은 단독주택의 산업화에 관심이 많다. 일본 건축은 분업체제 구축으로 산업이 되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주택은 고쳐서 쓸 수 있다. 일본에서 모듈화된 목재를 들여와 일본 목수들에게 시공을 시켰으나 도량형 기준이 우리와 달라 현실과 맞지 않았다. 우리가 설계하고 목재, 창호, 욕조 등을 들여와 보기도 했다. 

우리 주택 문화는 바닥에 온돌을 깐 좌식이다. 신축 목조 주택은 대부분 2~3층이다. 층마다 온돌을 깔면 하중, 공정 추가, 열에너지에 대한 과다한 투자 등 문제가 발생한다. 1997년 이후 수년간 지속된 IMF 경제 체제에서 목재 수출국인 미국은 우리에게 아파트보다는 단독주택을 장려하였다. 우리 사회는 주택은 ‘세를 준다’는 고정관념이 강했다. 공무원은 ‘국민주택’ 규모 등 아파트처럼 크기로 규제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한국은 산지(山地)가 많아 가옥으로 주택이 적합함에도 목구조는 화재에 약하다는 선입견이 깔려 있다. 주택의 산업화가 가능하려면 유럽처럼 설계와 시공이 일관돼야 한다. 

성북동 집(2018) 터인 직사각형 대지는 옛 간송미술관의 땅이었던 곳을 일부 주택 필지로 분할하면서 생겨났다. 뒤로는 간송미술관의 숲이, 앞으로는 서울 성곽이 펼쳐 보이는 곳으로 옆으로는 비슷하게 생긴 대지가 이어져 있다. 모두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이곳만의 독특한 가로(街路)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전면은 차고 겸 상가로, 안쪽으로 마당과 주택이 배치돼 있었다. 동네만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면서 기능적인 볼륨을 배치하기 위해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앞뒤로 펼쳐진 풍경을 가로막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여 거리를 다니는 행인에게든 안쪽에 생활하는 거주자이든 기분 좋은 거리 풍경을 제공하고자 했다. 주택과 상가를 결합할 때 ‘저층 상가-상층 주택’이라는 수직적 배치 고정 관념을 ‘전면 상가-후면 주택’ 개념으로 전환해 기능을 수평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사이사이 길과 마당을 확보하고 빛과 바람이 드나드는 공간을 만들었다. 전면 상가와 통로를 지나 안쪽 마당을 거쳐 집으로 들어가도록 동선을 계획하고, 집 안에서 오픈된 영역인 주방과 프라이빗한 거실 및 침실 영역을 구분함으로써 복합 기능의 건축물이지만 각 구성 요소가 위계를 가지도록 했다. 

한국 현대건축은 역사가 짧다. 도시에도 자연은 머문다. 수풀이 우거져 덤불이 되는 대지를 관찰하지 않았고, 토목과 건축은 따로 놀아 과학적이지 않았다. 조경(造景)은 아예 머릿속에 없었다. 건축적 고민은 세대를 초월해 지속적으로 가야 세계적 수준에 이르게 된다. 

"여전히 건축 평면이 권력으로 작용한다. 독일 식당은 주방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도록 건축 표준이 정해져 있다. 손님이 아닌 식당 노동자가 손님 테이블 옆 창밖 풍경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대형 건물에 근무하는 청소부의 휴게실은 전기 및 기계 시설이 있는 지하실이다. 1층 프레시룸 곁이어야 한다." 

이광만은 우리 건축은 아직도 근대, 개화기 수준의 담론에 머물러 있다고 본다. 인간이 중심이 된 건축관을 정립하는 데 기여하는 걸 자신의 임무로 본다. 

서울 자곡동 류이재 주택은 목구조 노출이 장점인 중목구조(重木構造·heavy timber structure)로 지어졌다. 집은 남향이고, 동선은 짧고 공간은 크며 공사비는 적게 들어야 한다는 건축주의 고정관념을 삶의 가치 개념으로 전환시켜야 했다. 

외관 디자인은 수직 요소를 기본으로 가능한 모든 디자인을 덜어냄으로써 간결하게 표현하였다. 중목구조는 건물 형태와 모양에서부터 접근하지 않고 구체적인 공법이나 재료에 접근해 바로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외벽과 지붕의 표면 재료는 금속 패널인 컬러 갈바륨 강판을 적용했다. 집짓기 과정을 통해 건축사와 건축주는 인생의 의미를 나누는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아파트가 곧 부동산인 하이에나 자본주의 시대에는 무리에 속해 있어서는 안된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는 삶의 가치와 방식을 바꾸어 무리를 벗어나야 숨을 쉴 수 있다. 건축주든 건축사든 삶은 예측 불허이다. 한 지붕 아래 공간을 나누는 가족은 시간의 변화에 따라 축복이 될 수도 굴레가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걸 건축사가 예측해 공간 설계를 할 수 없다. 

주택은 가족 구성원의 변화에 따른 인간의 오욕칠정을 담아내면서도 인간의 자존을 지켜내는 곳이어야 한다. 

 

 

 

 

글. 심정택 Shim Jung Taik 칼럼니스트

 

심정택  칼럼니스트

심정택은 쌍용자동차, 삼성자동차 등 자동차회사 기획 부서에서 근무했고 홍보 대행사를 경영했다. 이후 상업 갤러리를 경영하면서 50여 회의 초대전, 국내외 3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3년차 미술 현장 전문가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칼럼을 써왔고, 최근에는 미술 및 건축 칼럼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저서로는 ‘삼성의몰락’, ‘현대자동차를 말한다’, ‘이건희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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