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세종시 커브하우스 2022.1

2023. 2. 15. 09:21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Curved House

여기저기 널브러진 붓질의 스케치, 하나의 프로젝트인 듯하지만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건축 모형들, 심상을 알아차리기 힘든 특이한 그림들과 어디에서도 보지 못할법한 진귀한 작품들이 빼곡히 자리 잡은 곳. KDDH의 사무실이다. 사무소의 BI와 그의 공간에서 엿볼 수 있듯이 남들과는 다른 절대적인 상상력과 재주로 무장한 그를 나와 같은 보편적 사고방식의 사람이 이해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그에게 건축비평을 해달라는 전화를 받았을 때, 건축비평이란 소위 똑똑하고 어려운 말을 잘하는 분들이 해야 하는 거라며 단박에 거절을 했었다. 그의 건축을 비평할 그릇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과연 그의 작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경험적으로나 능력적으로나 자신보다 미숙한 필자에게 비평을 듣고 싶어 하는 김동희 건축사의 속내는 무엇이었을까?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하면서 세종시 커브하우스에 다다랐다. 

 

커브하우스 © 이한울


첫인상
평소 그의 건축이 나와는 반대의 성향을 지녔다는 개인적 편견을 지니고 있던 터라 이번 방문이 큰 기대를 가져다주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대면한 커브하우스의 첫인상은 무척이나 강렬한 것이었다. 그의 실물 건축이 준 첫인상은 의외로 어떠한 ‘완벽함’과도 같았다. 평소 개성이 넘치고 독특한 조형과 색채를 사용하는 그의 언어는 의외로 튀거나 어색함 없이 대지에 잘 묻어나고 있었으며, 마치 오래전부터 자리하고 있던 건축물처럼 주변의 것들과 조화로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비유하자면, 대지가 자신에게 딱 맞는 맞춤복을 입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그것도 아주 감각적인 디자인의 맞춤복 말이다. 다른 용도에 비해 개인적 성향이 묻어나기가 용이한 단독주택은 그만큼 도시에 이타적인 형태와 어휘를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가 커브하우스에 사용한 다양한 곡선의 조형은 건축사의 개인적인 성향의 산물이 아닌, 철저히 이성적인 전략이자 도시적인 사고의 산물이었다. 


직선과 곡선
정면에서 바라보면 매스는 대지의 형상에서 살짝 비켜서 있다. 대지에 순응하지 않는 이 어긋난 배치는 정면이 동향에 치우친 대지의 약점을 극복하고 거주자에게 남향의 채광을 제공하는 지극히 기능적인 전략처럼 보이지만, 대지에 순응했을 때와 달리 내부로 열린 전망을 끌어들이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이뤄낸다. 이 어긋난 매스가 주변과 어긋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건축사는 곡선의 어휘를 사용하여 주변과 훌륭한 조화를 이끌어 내고 있다. 장방형의 대지에는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이 어긋난 매스가 커브하우스의 전체적인 콘셉트가 시작되는 빌미를 제공하고 건축사의 뛰어난 감각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열어주는 격이다. 계획적이지만 완벽하지 않고, 흘러가듯 행동하지만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평상이 오버랩되는 부분이다.

유연한 흐름과 완벽한 균형
건축물의 배면이자 위계상 큰 도로에 면한 부분을 건축사는 곡선의 매스로 대응하고 있다. 대지의 논리를 따르지만 정직하지 않은 형태를 차용함으로써 여지의 공간을 만들어 도시와의 이분법적인 관계를 덜어내고, 지나가는 차량과 거주자와의 관계를 스마트하게 재구성한다. 다소 과도함이 느껴질 수 있을 법한 우측면에서는 감각적이고 역발상적인 필로티를 이용하여 매스를 띄워 가볍게 처리하고 수직 패턴을 적용하여 무거움을 달래는 영민함을 보인다. 대지에 순응하면서 주차장과 마당의 영역을 구분 짓는 단층의 매스는 어색하게 띄워진 매스가 어색하지 않도록 곡선으로 이어주고 있으며, 이 곡선은 마당과 전면도로를 구분 짓는 담장까지 이어진다. 담장과 이어지는 듯 살짝 비켜선 좌측의 작은 창고는 커브하우스를 완성하는 화룡점정이다. 이처럼 장방형의 대지에 앉혀진 건축물이라고 하기가 무색할 만큼 커브하우스의 조형은 상황에 따라 유연하며 공간은 어색함이 없이 연속적으로 흘러간다. 건축물의 모든 면이 정면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각각의 상황마다 유연한 대처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마치 직선의 건축물에서 느낄 법한 묵직한 안정감을 이 자유스러운 건축물이 놀라운 균형 감각을 통해서 구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커브하우스의 이 균형 감각은 완벽에 가까운 매스들의 비례와 관계에서 파생되는 것이며,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관여하는 건축사의 정교함과 집요함에서 비롯된다. 

내부로 이어지는 유연함과 정교함
건축사는 대지의 가장 깊은 곳까지 거주자를 끌어들여 집의 출입을 허락하고, 내부로 들어서서 되돌아가야만 탁 트인 마당이 스며든 거실에 이를 수 있게 한다. 거실에 이르면 다락층까지 오픈된 대형공간을 마주하게 되는데, 아마도 건축사는 이 곡선의 복층 공간에 많은 의도를 숨겨놓았을 것이다. 외부에서 이어지는 곡선의 유연함은 이 오픈공간을 통해 각 층으로 연속되고, 외부와 조화되는 조형과 색감은 내·외부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오픈공간부터 벽을 관통해 가면서까지 다락방으로 이어지는 외부 지붕의 형상, 곡선의 복도를 통해 보이는 2층 각 실의 입구들, 지붕이 닿는 모든 실의 오픈 천장, 외부의 것과 동일한 난간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집 안 구석구석에 건축사의 의도와 정교함이 묻어난다. 외부에서 느꼈던 유연하지만 균형 있는 심상은 내부에서도 동일하게 전달되고 있으며, 오픈 공간에 뚫린 아기자기한 작은 창들만이 이 집의 내·외부가 나뉘어 있음을 속삭여 주는 듯하다. 이는 건축사가 거주자에게 선물하는 철저히 의도된 공간의 경험이자 건축적 산책일 것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 아주 작은 부분 하나하나까지 허투루 넘기지 않는 건축사의 집요함과 정교함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그러한 태도는 거주자에게 안정된 심상을 제공하기에 충분한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는 건축사가 집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덕목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르 코르뷔지에의 작은 주택을 방문하였을 당시 필자가 느꼈었던 엄마의 뱃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따스함을, 김동희 건축사의 커브하우스에서 다시금 경험하게 되었다.


유연함에 담긴 진심의 건축
커브하우스가 가진 외형적 유연함은 언뜻 보기에는 개성, 독특함 등의 피상적인 단어들로 표현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커브하우스는 철저한 완벽이 주는 안정감과 더불어 그 속에 담긴 유연함이 주는 따뜻한 감성의 건축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심상을 만들어 내는 건축사의 정교한 능력과 태도는 보통을 넘어선 그의 재주와 노력에 기인하는 것임을 발견하는 기회였다. 인간 김동희에 대한 나의 가벼운 편견도 그의 작업을 접하면서 조용히 사라졌다. 그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로 도시와 거주자를 이해하고 있었고, 치밀한 전략과 적극적인 세심함으로 그만의 유연함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유연함 속에는 사람과 집과 도시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과 배려심이 담겨있었다. 
건축에 있어 솔직하고 대담한 그의 태도가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고, 감각적이고 정교한 그의 노력이 아름다운 건축을 완성 시키는 것이다. 이는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글. 정효빈 Jung, Hyobin (주)HB건축사사무소·건축사

 

 

 

정효빈 (주)HB건축사사무소 · 건축사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유현준건축사 사무소, (주)SDPartners건축사사무소 등 국내 여러 건축사사무 소에서 실무를 쌓았다. 2013년 HB건축을 개소하고, 건축의 여 러 속성간의 관계 맺음에 주목하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UIA International Competition Asia 1st Prize, 경기도 건축상, 충청남도 건축상 특별상, 한국건축문화대상 최우수상을 수상하 였으며, 현재 서울시 마을건축가, 경상북도 공공건축가, 서울시 교육청 꿈담건축가, SH공사 청신호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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