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건축설계의 생산성 도구 BIM, 판타지일까, 구원일까? 2022.1

2023. 2. 15. 09:25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건축담론 Architecture Discussion

 

편집자 註

 

설계의 새로운 도구, BIM
건축사들의 창의적 발상을 좀 더 구체적이고 실증적으로 할 수 있도록 시간과 속도를 압축하는 프로세스 개발이 가속화되고 있다. 산업 현장에서는 이를 이용해 생산성을 한층 높이려 한다.
CAD 시스템은 이미 1990년대부터 우리 건축사들의 작업 환경을 크게 변화시켰다. 그리고 현 21세기에는 인공지능에 가까운 시스템 개발이 매일 전개되고 있다. 평면 도면에서 입체 시뮬레이션으로 설계 전 과정이 동시에 전개될 수 있는 현재, 건축사들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과정이 목표나 목적이 될 수는 없다. BIM은 완성도 높은 건축의 실현과 실천을 위한 도구이다.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도구이지만, 때로는 도구가 목표와 목적을 바꾸기도 한다.
문제는 1인 건축사들, 중소상공인 규모의 건축사들은 이런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다는 점이다. 어떻게 하면 그 속도와 변화를 따라갈 수 있는지, 그리고 새로운 변화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중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그 과실인 생산성 고도화와 경제적 성과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한다.

 


01 Is BIM Fantasy or Redemption for Architects?

 

2차 디지털 혁명 BIM

건축산업에 ‘디지털’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사용된 건 CAD 도입에 의해서였다. CAD 도입은 건축설계뿐만 아니라 인허가, 시공에 이르기까지 건축산업 전반에 엄청난 변혁을 불러왔다. 그것도 극도로 짧은 시간 안에.

이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어느 누구보다 건축사들이 이런 커다란 변화의 과정에서 주역이 되었다는 것이다. 허가권자나 발주처, 또는 시공사에서 요구하기 전에 이미 건축사들이 앞장서서 ‘디지털’을 건축에 도입했고, 앞서 언급한 연관 분야에 도입을 촉구하기까지 했다. CAD 도입으로 건축사들은 이미 스스로 ‘구원’을 경험했다.

국내에서 BIM 논의가 시작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국내 건축사들 중 BIM이 예전 CAD의 ‘구원’과 같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아직까지는 ‘판타지’라고 생각하는 이가 절대다수이며 그 이유는 대체로 아래와 같다.


판타지?


1. 차원(Dimension)의 차이
CAD로 대변되는 2차원 도면 작성의 디지털화는 같은 결과물을 작성하는 ‘도구’만을 바꾸는 것이었다. 연필로 그리던 직선은 그대로 직선이었으며, 문자는 그대로 문자였다. 이 과정에서 제공되는 무한대의 복제, 변형, 저장, 조회 등에 대한 편리성은 기존 아날로그 기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편리했으며, 결과물은 동일하거나 더 명쾌했다.

BIM은 CAD와 ‘도구’만 다른 것이 아닌 ‘차원’도 달라진다. 단순한 도면을 작성하는 것을 넘어서 3차원 정보 기반 모델을 작성하기 때문에 서로 약속된 기호를 선과 문자를 이용해서, 말 그대로 ‘그리는’ 기존 방법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런 차이는 오랜 역사를 가진 2D 기반의 설계기법을 근본부터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2. 학습량의 차이
건축설계에 종사하며 CAD를 10년 이상 사용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사용 중인 CAD 소프트웨어에서 제공되는 기능 중 5% 이상을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만약 10% 이상 사용하고 있다면 활용도가 높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그 기능의 활용도가 크게 떨어진다. 어찌 보면 2D 도면이라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기능이 필요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으며, 오히려 활용 수준이 낮아도 결과물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개개인의 학습 능력 등에 따른 큰 편차가 없이, 필요 수준의 숙련이 쉽게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BIM을 설계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소프트웨어의 광범위한 부분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단순히 직선 두 개를 그려서 벽이라고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벽’ 기능을 이용해서 정확한 형상으로 만들어야 비로소 벽이 되고, ‘바닥’ 기능을 이용해야 바닥이 된다. 간단한 예를 든 것이지만 이 외에도 건축물의 수많은 요소들을 설계하기 위한 각각의 기능들이 제공되며, 그 복잡성 또한 CAD의 그것에 비할 바 아니다. 이런 사유로 인해 숙련 기간이 길어지며, 이는 항상 시간과 싸워야 하는 건축사와 건축설계 종사자들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받아들여진다.

3. 데이터와 소프트웨어의 차이
CAD 환경에서는 단순히 몇 가지의 레이어들을 사용해 도면을 작성한 뒤 선두께를 지정해 인쇄를 함으로 원하는 도면을 얻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갑자기 도면이 사라진다거나, 또는 선두께가 달라진다거나 하는 당황스러운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데이터에 대한 신뢰성은 매우 높다. 이는 CAD의 기술적 성과라기보다는 이용하는 데이터의 단순성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옳다.

BIM 환경에서 설계를 진행한다고 해도 설계자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2D 도면의 형태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CAD 환경과 달리 소프트웨어의 연산에 의한 3D 모델의 2D 도면화가 이루어진다. 이 과정의 복잡성으로 인해 원하는 형태의 도면을 얻는 것이 상대적으로 어렵게 느껴지며 어떤 경우에는 제공 기능의 미비 또는 알 수 없는 오류로 우회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4. 정보(Information)의 차이
이미 국내에서 30년 정도 사용된 CAD 기반의 데이터는 어디에나 넘쳐나며 새로운 라이브러리를 제작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다. 건축자재 제조사들은 홍보를 위한 CAD 라이브러리를 제공하거나 나아가서 프로젝트 맞춤형 라이브러리를 적극 제공해 준다. 이러한 환경은 CAD 기반의 설계를 더 편리하게 만들고 기술 발전을 촉진시켜왔다.

BIM 환경에서는 말 그대로 ‘정보(Information)’기반의 설계인 만큼 더 정교하고 신뢰성 높은 라이브러리와 설계코드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그 라이브러리의 제작에는 CAD와 비교하여 더 높은 수준의 기술과 긴 시간이 필요하며, 정보 입력에 대한 표준 코드는 아직 불분명하다. 자재 제조사의 대부분은 CAD 기반의 서비스만을 제공하고 있으며, BIM 기반의 라이브러리를 제공하는 업체는 극소수의 국제적인 업체들뿐이다. 설령 위의 모든 것들이 제공된다고 해도, 결국 건축물은 거대한 수공예품과 같아서 언제나 새로운 라이브러리를 필요로 한다. 대형 사무소의 경우 별도의 팀을 만들어 이런 부분에 대응할 수도 있으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형 사무소의 경우 이런 부분에서 대응이 쉽지 않을 수 있다.

5. 도면 표현방법의 고착화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까지 이용되고 있는 CAD 환경은 단순히 도구만을 디지털로 바꾼 것이며 도면의 표현은 제도판 환경에서 해왔던 그것과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 가령 각종 범례와 일람표는 모두 정보(information)이지만 아날로그 형태로 표현해오고 있다.

BIM 환경에서는 모든 정보가 서로 연관을 가지며 객체에 저장되므로 기존 방법보다 더 효과적으로 정리, 표현이 가능하다. 그러나 아직 대부분의 인허가 부서, 발주처 및 시공사에서는 널리 익숙한 기존의 도면 표기 방법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BIM 도구에서 기존 방식의 표현이 대부분 가능하지만 이는 BIM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효율을 저하시키게 되어 BIM 도입의 취지를 거스르게 된다.


구원?


상술한 모든 것들이 건축사가 BIM에 접근하는 것에 대한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음에도 소수의 국내 건축사들은 BIM을 설계도구로 적극적으로 도입, 활용하고 있다. 해외 주요 국가들에서는 그 전환이 더욱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중 한 사람으로서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설계 도구로서의 매력과 장점에 대해서 열거해 본다.

1. 종합적인 계획 검토
일반적으로 건축설계에서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면적’이다. 물론 CAD 환경에서도 면적을 얻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BIM에서는 그 검토가 완벽하게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면적을 비롯한 모든 입력은 데이터가 되고 저장되며 조회된다. 이런 부분은 건축계획에 필요한 시간을 크게 단축해 주고 같은 시간 내에 더 다양한 접근을 가능하게 해준다. 또한 단순하게 ‘평면도’를 스케치하는 것이 아니라 3차원 모델로 계획을 하므로 평면뿐만 아니라 입면, 단면까지도 종합적으로 실시간 검토가 가능하다.

2. 시각화
건축설계에 있어서 소위 ‘프레젠테이션’이라는 시각화 작업은 언제나 중요한 업무이다. 실제 건축물로 만들어지기 전 정확한 정보 전달과 평가를 위해서 시각화, 특히 3차원 시각화는 매우 중요하다. 기존 실물 모형 제작이나 단순 3차원 모델링을 통한 작업은 도면을 다루는 설계 작업과는 별개로 이루어져 왔다. BIM 환경에서는 건축설계 자체가 3차원 공간에서 이루어지므로 기존 방법에 비해 훨씬 쉽고 빠르게 3차원 시각화가 가능하다. 더욱 큰 장점은 시각화와 도면화가 하나의 소프트웨어, 하나의 모델로 동시에 가능하기 때문에 설계도면과의 동시성이 보장되는 시각화가 가능하다. 이는 수많은 수정 단계를 거칠 때마다 효율을 크게 높여준다.

3. 설계품질
여기서 이야기하는 설계품질은 건축물의 ‘작품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설계도서가 실제 시공하는 데 있어서 얼마나 좋은 안내서가 되느냐에 대한 것이다. 기존의 2D 캐드 기반의 설계기법은 대부분의 도면들이 서로 연관 지어지지 못한 채로 만들어지므로 수많은 오류 발생을 피하기 어려우며, 복잡한 형상의 표현에 제약이 따르게 된다.

BIM 환경에서는 모든 데이터가 서로 연관 지어져 있어 적은 노력으로도 설계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으며 3차원 모델을 기반으로 하므로 아무리 복잡한 형상이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이 가능하다. 이런 부분을 통해 더욱 창의성 있는 건축물이 탄생할 수 있음은 국내외의 여러 사례에서 이미 증명된 바 있다.

4. 데이터의 확장성
BIM으로 만들어진 데이터는 설계뿐 아니라 시공, 유지관리 등 다양한 관련 분야에서 활용이 가능하다. 그 확장성의 한계를 감히 예측하기 어렵지만, 어느 시점에는 2차원 도면이 아닌 3차원 설계 정보만으로 시공이 이루어질 수 있으리라는 것 정도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건축사의 선택


사실 ‘구원’이라는 말 자체가 그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판타지’일 뿐이다. 다만 ‘구원’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노력으로는 얻을 수 없는 수동적인 개념이지만, 건축사들에게 있어서 BIM에 의한 ‘구원’은 당사자의 행동에 따라 적용되는 능동적인 것이다. 물론 그것은 종교에서 필요한 ‘기도’나 ‘믿음’과 같은 것이 아니라 ‘투자’나 ‘학습’과 같은 보다 실체적인 것이다.

앞으로 더 많은 건축사들이 BIM에 적극성을 가지기를 기대하며, 이를 통해 대한건축사협회가 더욱 경쟁력 있는 전문가 집단으로 대한민국 건축산업을 주도해 나가길 희망한다.

 

 

글. 김현우 Kim, Hyunwoo 아이넥스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사

 

 

김현우 아이넥스건축사사무소 대표, 대한건축사협회 BIM친환경위원회 위원

김현우는 명지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도 시계획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BIM 기술 블로그인 ‘Enjoy Revit’을 통해 BIM 관련 기술에 대 해 국내외 전문가들과 소통해오고 있으며, ‘San Francisco Museum of Mordern Art’, ‘Apple Park’ 등의 해외 프로젝 트와 여러 국내 프로젝트에 BIM 전문가로 참여하는 등 BIM과 관련된 다양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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