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커튼콜 2022.2

2023. 2. 16. 09:21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Curtain Call Apartments

 

커튼콜에 대한 비평글 요청을 받고, 가장 먼저 집이 놓인 땅의 조건을 체크했다. 늘 그렇듯 건축설계는 의뢰인의 땅으로부터 출발한다. 일반주거지역의 땅, 크기는 약 231제곱미터(70평), 허용 건축면적은 대략 132제곱미터(40평), 허용 연면적은 대략 330제곱미터(100평). 지구단위구역 내 상가주택 부지, 건폐율 60%에 용적률 150%, 인접 도로 폭 규정으로 일조권 사선제한은 받지 않는다. 사선으로 잘린 면 없이 집 형태를 반듯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커튼콜 파사드의 강렬한 비례를 만들어준 뿌리는 건축법 예외 조항이었을 것이다. 도면을 안 본 상태에서 땅부터 살핀 것은 설계자가 설계를 시작했을 시점의 마음을 읽어보기 위함이었다. 설계를 업으로 하는 동료로서 ‘내가 땅의 설계자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가정으로부터 집을 들여다보기 위한 나름의 접근법이다. 그 가정과 실제 투닷의 설계 과정 사이를 들여다보면 결과물로서의 커튼콜, 그것만의 특징과 설계자의 고민이 어디에 닿아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이다. 집을 만들어가는 본질은 복잡한 주변 맥락과 그것에 대한 이해라 생각한다. 땅의 맥락과 설계자의 맥락, 건축주의 맥락(가령 돈이나 욕망 같은)이 만나는 접점에서 하나의 집이 만들어진다. 커튼콜도 그 과정의 산물일 것으로 봤다.

다가구주택은 임대를 목적으로 한다. 세대 수가 아니라 누가 살 것인가를 기준으로 주택을 분류하면 같은 주택이라도 성격의 차이가 명확하다. 가령 건축주 본인이 살 집은 단독주택, 건축주가 의뢰하지만 직접 살지 않는 주택은 다가구 주택이다. 그 차이를 더 들여다보면 개인의 사사로운 욕망이 개입되는 단독주택에 비해 다가구 주택은 사사로움보단 보편적 이해관계들, 경향성을 띠지 않고 경제성을 담보하는 일반적인 욕망에 더 근거한다. 간단히 말해 대중 누구에게나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집, 주변 동네의 비슷한 임대용 주택에 비해 임대료나 선호도에서 경쟁력 있는 집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남의 돈 쓰며 그럴듯한 언어유희로 아트한번 하고 끝낼 일이 아니라면, 빠듯한 땅 231제곱미터(70평)에 어떻게 집을 앉히고 어떻게 쌓아올려 아낌없는 용적과 만족스러운 사이즈를 확보하는가의 문제는 건축주의 주머니 사정을 공감하는 설계자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기본 태도일 것이다. 투닷은 반듯한 사각 땅에 대지 안의 공지 이격거리를 확보한 후 전면도로에 볼륨을 바싹 붙이는 배치를 택했고, 후면으로는 아늑한 사이즈의 후정을 확보했다. 지극히 현실적이며 보편적인 접근이다.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는 선택이다.

 

커튼콜 ⓒ 최진보


차별성 있는 다가구주택을 위해 차이를 모색하는 다음 단계는 쌓기의 방식을 선별하는 것이다. 단순하게는 한 층에 한 집 또는 두 집이나 세 집이냐의 문제부터, 세대별로 공간이 다른 여러 타입의 다가구주택이냐, 한 개 타입으로 최대한 동일 주거 환경을 보장하는 집이냐… 등 정답 없는 고민들. 건축에서 쌓기의 방식이란 결국 공간 구성의 방식이고, 면적 활용의 방식이며 수익성 극대화의 방식이다. 투닷은 먼저 한층 당 최대한 많은 집(4세대)을 배치하고 2층에서 3층, 다락까지 독립적으로 3개 층을 갖는 각각의 단독주택 타입의 집이 되도록 했다. 각 세대는 같은 타입으로 임대인이 집을 고를 때 각 집마다 공간, 면적, 임대료 차이가 생기지 않는 편안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불특정 임대인을 상대로 한 공간이니 괜한 고민거리를 만들지 않으며 불호보다 호를 노리는 세팅이다. 
각 세대는 협소 개인주택으로 따로 떼어놓더라도 별 무리가 없을 만큼 독립된 주거공간으로서의 완성도 확보에 주력했고 결과적으로 평균 이상의 좋은 작품을 만들어냈다. 각 집의 임대 거주자는 층을 오가며 개인 주택의 독립적인 분위기와 일상을 체험할 수 있다. 투닷의 전작인 영종도 중정삼대, 의정부 딜쿠샤로부터 이어지는 설계 전략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유추해 보면, 도심지 소규모 공동주택에 대한 투닷의 지향점이 잠시 머무는 임대 공간이 아닌, 사는 동안 내 집으로 체험되는 독자적 ‘거주성’에 닿아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별 이견 없이 공감되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대지 주변이 이웃집으로 켜켜이 막힌 상황에서 채광, 환기, 조망의 결여는 풀리지 않는 문제였다. 더욱이 한 층에 4개 세대가 서로 벽을 공유하는 상황에서 외기에 접하는 면을 하나 더 확보하는 것은 간단치 않았을 것이다. 메인 파사드의 시그니처인 일자형 공용 계단은 2층 각 세대 출입구 앞에서 종료된다. 2층에서 각 세대로 진입하면, 이후의 수직 동선은 세대 내부에서 개별 계단으로 이루어지는 구조다. 공용 계단실을 갖추고 층별로 세대를 넣는 통상적인 다가구주택에 비해선 전용면적 비율이 약간 높아지고 공간 활용에 소소한 여유를 만들어냈을 것인데, 그 결과 각 집 내부에 각각의 계단이 필요하다는 점은 면적 활용의 손익 계산 측면에서 다소 고민거리로 남았겠다. 여하튼 대지 이격거리와 건폐율 한도까지 볼륨을 점유한 커튼콜에서 공용공간이 2층에서 끝나는 결과로 얻어진 몇 평의 여유 공간은 차이를 만들 수 있는 단초다. 이 과정에서 4세대가 공유 가능한 중앙의 작은 보이드가 생겼다. 부지의 네 면 중 한 면만 외부에 열 수 있는 상황적 한계에서, 작지만 은밀한 보이드는 외부와 접속되는 환기 통로가 되고 날씨와 기후를 느낄 수 있는 정서적 환경이 된다. 이 역시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는 지점이다.

끝으로 사소한 의문점이랄까, 질문 두 개가 남았다. 첫째는 보이드에서 서로 마주 열린 각 집의 창호와 이웃집 욕실이 들여다보이는 시선의 방향이다. 혹시 다른 대안은 고려하지 않았는지 설계 단계에서 기준한 판단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속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하지만 이왕이면 설계자의 답변보다는 현재 거주자의 반응이 좀 더 궁금하다. 건축물에 직접 살고 있는 입장에서 의외의 답변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 또 다른 관점에서 집을 바라보는 기회가 열릴 것이다.  
두 번째는 커튼콜의 도로 측 메인 파사드 창호 형태가 가로 방향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다. 세로로 주름진 커튼콜의 독특한 외형은 구현되지 못했겠지만, 대신 거주자 시선 높이에서 가로로 넓게 열리는 좋은 조망을 얻었을 것이다. 좁은 임대 주택에서 밖을 내다보는 거주자 입장에서는 더 나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의문점이 들었다. 물론 서향의 낮고 길게 들이치는 빛으로 인한 눈부심이 고민이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하나의 상품으로서 집의 외관이 독특한 이미지로 각인되길 기대했을 건축주와 설계자의 입장도 공감이 된다. 하지만 유일하게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하는 서측 조망을 세로로 잘려 분절된 바깥 풍경으로 보는 느낌이 어떨지… 마찬가지로 설계자 답변보다는 거주자 반응이 좀 더 궁금해진다. 

두서없는 생각의 꼬리 물기는 여기까지. 흥미로운 공연을 하나 감상한 느낌이다. 
막이 내리고 조명이 꺼진다. 다시 커튼콜의 시간이다. 

 

 

 

글. 최준석 Choi, Junseok 건축사사무소 나우랩·건축사

 

최준석 건축사사무소 나우랩 대표· 건축사

건국대학교에서 건축학부를 졸업하고 동건축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크고 작은 여러 건축사사무소에서 실무를 쌓았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했다. 2012년 건축사사무소 나우랩을 설립한 후 소규모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설계 작업을 이어 오고 있다. 좋은 설계는 복잡한 조건과 돈이 일치하는 적정선을 찾는 문제 해결 과정으로 보며, 그 과정의 산물로서의 집이 지난한 현실적 싸움을 넘어 고유의 정체성을 획득할 때 작품이 된다고 믿는다. 설계를 하며 글을 틈틈이 쓴다. <집의 귓속말>, <서울 건축 만담>, <건축이 건네는 말> 등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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