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비평] 정암빌딩_성수 2022.4

2023. 2. 18. 09:23아티클 | Article/칼럼 | Column

Architecture Criticism
Seong-su Jeong-Am Building

 

광나루로는 화양사거리를 기점으로 중랑천과 평행한 방향으로 각도가 바뀐다. 도로를 따라 시속 60킬로미터의 속도로 달리면 좌측에 하얀색 건물을 지난다. 박스형 매스의 건물이지만 가벼움이 느껴지는 표피에 뒤돌아보게 만든다. 건축사의 ‘경쾌하다’는 표현은 정암빌딩_성수의 외관과 전체 공간 구조를 이해하는 데 적절하다. 가까이 가면,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는 하얀색 금속판넬로 만들어진 루버가 커튼월 유리면과 적절한 거리를 두어, 유리면에 루버의 그림자, 반사된 빛, 투사된 내부 공간의 복합적인 시각적 효과를 드러냄을 볼 수 있다. 한 면으로 인식되는 유리 커튼월은 루버로 인해 공간의 깊이감과 다공성(porosity)을 갖게 된다. 

루버의 수직·수평 간격은, 수직 루버로 매스의 육중한 효과를 의도한 아모레퍼시픽 사옥과 비교된다. 영국건축사인 데이비드 치퍼필드는 유리 파사드 건물에 무게감을 주기 위해 루버를 썼다 한다. ‘아모레퍼시픽 사옥, SPACE 609호’ 아모레퍼시픽 사옥의 루버가 촘촘한 간격으로 반복되어 마치 거대한 회색 콘크리트 덩어리 같은 느낌을 준다면, 정암빌딩_성수의 루버는 다르게 사용되었다. 차의 속도에서는 매스가 인지되지만, 천천히 걷는 보행자에게는 루버 사이사이를 통한 내·외부 시각적 교통이 자유롭다. 육중한 매스감보다는 리듬이 인지되며, 보는 각도와 보는 자의 이동 속도, 아침, 저녁의 빛 환경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작가가 의도한 경쾌함은 이러한 하얀색 매스의 인지와, 루버 사이로 그 내·외부의 드러남의 경계에 위치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루버 간격의 또 다른 이유는 부지의 조건에서 찾을 수 있다. 부지는 광나루로 건너 중랑천을 지척에 마주하고 있다. 건물의 주된 향이 북향으로 된 이유이기도 하다. 한강에 합류하기 직전 제법 넓어진 중랑천과 성동구 도시재생 사업이 활발히 진행 중인 송정동 뚝방길, 한양대학교 캠퍼스, 멀리는 답십리까지 보인다. 한강과 중랑천으로 둘러싸여 마치 반도와 같은 성수동의 입지를 확인할 수 있다. 적정한 루버 두께와 이들의 간격은 건축이 바라보기 위한 경관뿐 아니라 바라보는 경관을 위한 프레임 역할을 한다. 수직루버는 층을 단위로 한 수평루버에 종속되는데, 이는 루버의 길이를 경제적인 단위로 나눔과 동시에 지면과 도로에서 시작된 수평리듬을 수직적으로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루버로 인한 층의 인지는 건물이 실제보다 크게 느껴지는 효과를 주기도 한다. 커튼월의 유리 분절과 루버 간격은 엇갈리게 맞물리며 자연스럽게 보이되, 시공의 합리성과 경제성을 갖는다. 외부에 부착된 루버가 갖는 주된 기능인 친환경 기능, 에너지 절약 기능 또한 잃지 않는다. 북향이지만 사무공간에서는 냉방부하가 난방부하보다 월등하게 요구되는 점을 감안할 때, 루버로 인한 그림자 효과는 여름철 냉방부하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정암빌딩_성수는 매스와 공간조직의 분절 또한 경쾌하다. 광나루로에 면한 임대공간과 후면 공용공간은 매스로 분절되고, 외피 재료 또한 투명한 유리와 육중한 느낌의 석재 마감으로 구분되었다. 내부에서 8.4미터 폭을 갖는 장방형의 임대공간과 4.6미터 폭의 편심 코어형은 작가가 의도한 루이스 칸의 ‘서비스 공간’과 ‘서비스를 받는 공간’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명확한 개념이지만, 약 485.95제곱미터(147평)의 크지 않은 건축면적에 용적률과 임대면적 최대화, 기계식 주차장, 각종 설비 공간 등의 요구 조건에서는 쉽지 않은 퍼즐게임이었음이 짐작된다. 기준층에서 시작된 명확한 공간 관계는 1층과 최상층을 제외하고 반복된다. 최상층 사무실은 중랑천 너머 한양대학교 캠퍼스를 여유 있게 바라보는 높이에 위치한다. 경관에 걸맞게 주변으로 옥상정원과 데크가 세심하게 만들어졌다. 추후 옥상카페나 스카이라운지로 되어 건물 사용자나 공공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공간(community space)으로 변모된다면, 글을 쓰면서 처음 가졌던 아쉬움이 경감될 것 같다. 

 

정암빌딩 동측면 야경 ⓒ 박건주


공공공간의 개념은 특수한 조건이 아니다. 현재 정암빌딩_성수 입면에서 보이는 몇 개의 작은 발코니는 일상에서 잠시 떠나 중랑천의 반사된 빛을 보며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공유는 공간의 소유가 아닌 ‘접근이 공유될 수 있는 조건’을 의미한다. 상업적인 목적을 갖는 민간 프로젝트에 공공성을 기대하는 것에 한계가 있지만, 그 해답을 최근 공유문화의 확산에서 찾을 수 있다. 소셜벤처, 코워킹스페이스(co-working space), 공유도서관, 성동구 책마루, 공익 공간 언더스탠드 에비뉴(Understand Avenue) 등으로 공유문화의 성지에 성수동이 빠지지 않는다. 자동차정비, 인쇄소, 가죽, 제화 공장들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기계소리가 가득했던 성수동은 이미 새로운 문화 공급자 역할로 재생되었다. 젊은 지식층의 유입은 성수동을 매력적으로 변모시킨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한편으로 홍대와 가로수길에서 경험한 극도의 상업화 우려도 존재한다. 건축 하나하나가 모여 마을과 도시를 이루는 과정이라면, 정암빌딩_성수의 섬세한 파사드와 경쾌한 내·외부 경관의 건축적 가치가 성수동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할지 질문을 해본다. 앞서 언급한 루버패턴과 발코니로 인한 파사드의 다공성(porosity)이 시각적인 효과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건축의 도시사회적 역할로 확장되어 주변과의 관계, 길과의 관계가 다공성을 갖고 열려 소통, 공유, 공존하는 건축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글. 김현준 Kim, Hyunjun 강원대학교 교수 · 영국건축사 ARB

 

김현준 교수·영국건축사 ARB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대학원, 런던 AA스쿨 디플로마 과정을 졸업하였으며, 대림산업(주), SOM London, Tony Meadows Associates, Gensler, 경영위치에서 실무를 하였다. 현 강원대학 교 건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이다. 공유와 공동체 공간을 위상학(topology)으로 접근하는 실험에 관심을 두고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작품으로는 ‘은혜공동체 협동조합주택(서울시건축상 최우수상)’, ‘성동책마루(대한민국공 공건축상)’, ‘판교 P하우스(경기도건축문화상)’ 등이 있다.    

 

hyunjunkim@kang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