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계약’이 만든 책의 도시 여정 담은 영화 4월 21일 개봉“좋은 공간이 가진 힘과 가치 알리고 싶어”_김종신·정다운 감독 2022.4

2023. 2. 18. 09:24아티클 | Article/인터뷰 | Interview

The movie featuring a city journey of the book published by ‘Great Contract’ will be released on April 21
“We want to show the power and value of a good space”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감독: 김종신&middot;정다운, 출연: 이기웅&middot;승효상&middot;김언호&middot;민현식&middot;이건복&middot;김영준&middot;이은, 기획/제작: 기린그림, 배급/투자: (주)영화사 진진, 개봉: 2022년 4월 21일.

세계 유일 책을 위한 도시이자 생태·예술이 어우러진 파주출판도시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의 의미와 가치를 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도시·건축 다큐멘터리가 4월 21일 개봉한다. 제46회 서울독립영화제, 제12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 공식 초청작이자 제12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예술공헌상을 수상한 영화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얘기다. 
이 다큐를 만든 기린그림의 김종신·정다운 감독은 앞서 <한국 현대건축의 오늘(2016)>, <한국 현대건축의 오늘: 집(2017)>과 <이타미 준의 바다(2019)>를 통해 건축과 삶, 예술혼을 영상으로 복원해 내며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바 있다. <이타미 준의 바다>는 프리 프로덕션부터 개봉까지 꼬박 8년이 걸린 작품이다.
경기 파주시 문발동 소재 국가문화산업단지인 파주출판도시는 민주화 이전 출판이 탄압받던 시절부터 출판인들이 꿈꾸던 책을 위한 도시다. 출판사들과 더불어 새로운 철학과 가치를 담은 이상적 공간, 즉 새로운 도시를 그리던 건축사들이 ‘위대한 계약’을 체결하면서 실현됐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파주의 늪지는 특색 있는 건축물과 만나 심학산과 한강의 탁월한 낙조 경관을 자랑하며 세계에서 유일한, 책을 위한 생태도시가 됐다. 편집·인쇄·유통 출판 관련 인프라를 집약한 도시는 이후 영화제작사를 비롯한 영상 관련 업체들과 IT 업체들이 입주하며 종합문화예술 도시로 탈바꿈한다. 2019년 파주출판도시 기획 30주년을 기념해 도시의 발자취를 담기 위해 시작된 영화는 과거와 현재라는 두 개의 큰 축에서 진행되며 찬란한 도시의 여정을 그린다. 그러면서 건축을 넘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생각해 보게 만든다.

김종신 &middot; 정다운 감독_ 정다운 감독과 김종신 감독은 건축 영상 전문 영화사 &lsquo;기린그림&rsquo;을 설립, 건축 다큐멘터리, 건축 전시영상, 건축 아카이브 영상 등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건축 영화 제작에 힘쓴 공로를 인정받아 제13회 서울국제건축영화제에서 건축문화공헌상을 받기도 했다


# 세상 어디에도 없던, 책을 위한 생태도시를 꿈꾼 ‘위대한 계약’
   민간인들이 주도해 만든 파주출판도시는 아직도 현재진행형
  
홍성용_먼저 간략한 영화 소개 부탁드립니다.

정다운_다큐멘터리 영화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는 파주출판도시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처음 시작부터 출판인들과 아키텍트그룹이 어떻게 뜻을 같이 하고 어떤 가치를 향해서 이 도시를 만들어냈는지의 전반적인 역사를 다룹니다. 그리고 그 역사에 그치지 않고 현재 파주출판도시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무엇을 계속 만들어나가고 있는지, 그리고 미래에 대해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까지 파주출판도시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루고 있습니다.

홍성용_감독님들께서 혹 건축이나 도시에 대해 따로 공부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김종신_따로 건축학을 공부한 것은 아니고 둘 다 영화 전공입니다. 저희 부부는 배우들이 출연하고 시나리오가 있는 극영화 현장에서 만났는데, 영국에 같이 공부하러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정다운 감독은 캠브리지대학 건축대학원에서 건축과 영상을 접목시킨 ‘건축과 영상’이라는 영화 속 건축을 분석하거나 공간을 어떻게 영상으로 담을지 연구하고 심지어는 가상의, 게임 공간 등을 공부하기도 하는 그런 코스에서 석사과정을 했고요. 저는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에서 영화연출로 석사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거죠.

홍성용_이 영화를 찍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3자의 시각에서 파주출판도시가 어떻게 보이셨는지도 궁금합니다.

김종신_영국에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권유해서 뭔지도 모르고 파주로 가서 만난 분들이 출판 쪽의 이기웅 열화당 대표님과 배형민 서울시립대 건축과 교수님입니다. 2008년도에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이 있었는데, 한국관 주제가 파주출판도시였고 관련된 국내외 많은 건축인 분들의 인터뷰 촬영을 하게 된 거죠. 그 기록과정을 통해서 처음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정다운_그러던 차에, 2018년에 명필름의 이은 대표님, 그러니까 파주출판문화정보사업단지 사업협동조합(파주출판도시조합) 이사장님께서 곧 파주출판도시가 기획된 지 30주년(2019)이 되니 기념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고 제안을 주셨어요. 다큐멘터리 <이타미 준의 바다>도 만들어 봤으니, 그런 작업을 하는 줄 알고 연락을 주신 거죠. 
김종신_어떻게 보면 국가산업단지들이 있는 상황에서 출판인과 건축인들이 모여서, 그러니까 민간인들이 직접 주도해서 도시를 만들어보자는 꿈을 꾼 거죠. 파주출판도시가 생기기 전엔 꽤 이름 있는 출판사여도 공간이 협소하고 허름했던 때니까요. 난개발이 이뤄지던 시대라 과정이 더 고통스러웠죠. 그런 상황에서도 출판인들과 건축인들이 만나서 이 도시를 꿈꿨고, 그게 실제로 만들어지는 그 과정이 저희에겐 너무 놀랍더라구요. 또 그냥 끝난 게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부분이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 40여 년 전 군부독재 시절 존재하지 않았던 출판의 자유
   ‘책을 위한 공간’을 위한 상상, 1998년 현실이 되다!
   도시와 건축, 출판, 한국 현대사를 고루 담아낸 다큐멘터리

홍성용_도시를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사람들의 노력에 영화의 포커스(초점)가 맞춰져 있는지, 아니면 도시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종신_처음부터 저희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한국의 현대사와 맞물려 가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1970년대 중후반부터 1980년대에 걸쳐서 출판인들이 감시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마르크스의 자본론 같은… 이른바 금서를 만들면 구속되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그러던 출판인들의 꿈이 건축사들과의 위대한 계약을 통해 1998년에 현실로 이뤄졌고요. 한국 현대사와도 맞물려 보이는 그런 부분을 좀 전달하고 싶었어요. 한국 현대사 속에서 이런 특별한 도시를 만들었던 사람들의 노력과 결국 어떤 도시가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 속 균형을 맞추려 했습니다.   

홍성용_제작은 자체적으로 하신 건가요?

김종신_저희가 ‘기린그림’이라는 영화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번 영화는 기린그림과 파주출판도시조합 공동제작 형식으로 만들었습니다. 100분짜리 홍보영상을 만들 이유는 없기에 시작부터 조합 측에 파주출판도시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들어가야 하고 그런 균형이 잘 맞아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고, 이은 대표님께서 흔쾌히 오케이 하셨죠.

# 세계 어디에도 없던 책을 위한 도시 프로젝트!
   책과 사람을 위한 약속, 위험한 계약이라고도 불렸던 ‘위대한 계약’…
   도시의 탄생부터 지켜오고 꿈꿨던 가치에 초점 둬 제작

홍성용_어떤 비판적 시각이 담겼는지, 두 분께서 어떤 포인트에 집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종신_돌이켜보면 건물 하나하나, 도시 자체는 굉장히 조화롭다고 평가받지만 출판인들이 원했던 공간은 아닐 수 있었던 거예요. 출판인들은 건축인분들께 모든 것을 맡긴 거죠. 그래서 제목이 ‘위대한 계약’이에요. 위험한 계약이라고도 불렸던……. 서로를 믿고 진행했던 거죠. 그 과정에서 출판인들이 원했던 공간구조 같은 부분에서 실제로 효율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었던 거죠. 이 부분에 대한 출판사 측 불만이 영화에 담겼지만 크게 비판적으로 다룬 건 아닙니다. 파주출판도시 1단계 건축코디네이터를 역임하신 민현식 건축사님께서 어떻게든 변화할 수 있는, 어떤 공간으로도 다양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셨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홍성용_당시는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공간이 있을 수 있지만, 길게 보면 사실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전화국도 1960~1970년대에 어마어마한 기계가 공간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캐비닛 하나 만큼의 공간으로 그 기능이 커버돼서 나머지 공간은 필요가 없거든요. 출판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오히려 출판인들이 1990년대에 원했던 세팅을 딱 해놨으면 지금 혹은 앞으로도 움직이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다운_맞아요. 그리고 분명히 한계라는 게 있어요. 사실 파주출판도시가 밖에서 비판받을 포인트도 명확히 있고요. 그 베이스로 들어가면, 산업단지에서 출발하기에 갖는 어쩔 수 없는 제한조건이 있었던 거죠. 맨 처음 들어갔을 때 도로 계획이 다 나와 있어서 구획을 절대 움직일 수 없는, 국가에서 지정해 준 그런 세팅이 일단 있고요. 그 다음에 산업단지가 갖는 제한지점 중에 도시로 가기 가장 어려운, 사람이 살면 안 된다는 조건. 공장이어야지 사람이 살면 안 된다는, 도시개념하고 가장 정반대에 있는 경직된 조건이요. 그 두 가지가 전혀 다른데…. 
또 역사부터 미래까지 다루고 있기에 사실 100분이라는 시간 안에서 우리가 어떤 포인트에 집중해야 할까 하는 선택의 순간이 사실 있었고요. 그렇다면 비판적인 측면을 제대로 다루기에는 여러 어려운 지점이 있으니 우리는 그들이 이 가치를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했는지, 전체적으로 한 도시에서 조화로운 공동성에 가치를 갖고 자신들이 세운 그 가치 안에서 건축 쪽으로든 혹은 전반적인 도시에 대한 개념으로든 어떤 식으로 그들이 뭉쳐서 노력했는지에 대한, 열정이라는 가치에 대해서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명확한 비판보다는 파주출판도시가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고, 만들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다른 도시들과 비교해 파주는 무엇이 달랐을까 생각했을 때, 어떻게 하면 미래세대를 위해 더 좋은 도시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는 것에 너무 감동을 받았습니다. 1980~1990년 난개발시대에 생태도시로 가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개인적 이익이 더 돌아오지 않더라도, 유수지를 메워서 땅값을 낮추기보다는 이 샛강을 살리자는 그 신념을 힘들게 초지일관 지킨 점들이요.


# 버려진 늪지와 같던 도시…사람과 자연, 문화와 산업이 어우러진 
   종합문화예술도시이자 새로운 미래를 그리는 문화허브로 자리매김

홍성용_저는 에코라는 테마가 사용하기 적합하지 않아 저렴한 땅이었기에 나온 게 아닌가 합니다. 산업단지(산단)가 되면 정부 지원도 있고요. 헤이리나 파주의 경우는 우아하고 은밀한 자본주의 비즈니스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종신_맞습니다. 전엔 버려진 늪지 같은 곳이었죠. 현재는 우리나라의 도시, 공간 같은 굉장히 여러 측면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복합적인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주거를 포함해 24시간 사람이 돌아다니고 그 곳에서 숨 쉬고 해야 도시라고 불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또 소위 배드타운이라 부르는, 외곽지역에 아파트만 쭉 있는 그런 곳을 과연 좋은 도시라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측면에서 보면 파주출판도시가 그래도 어떤 조화로움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위 신도시의 상가건물에서 쪼르륵 붙어 있는 놀라운 간판의 향연들… 그 정신없음에 익숙해졌다가 파주에 가면 15미터 고도 제한으로 건축물 사이즈가 통일돼 있어서 담이 없고 하늘도 탁 트여 있는데다가, 땅을 조금씩 양보해서 골목길을 낸 모습들을 일상적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정다운_바글바글한 도심 안에서 역동적으로 사업이 움직이는 것도 많지만, 책을 만드는 분들이 어느 공간에 있을 때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책을 위해 생각을 확장할 수 있을까 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또 다른 개념으로 이런 공간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아티스트(예술가) 그룹들도 파주에 많이 입주를 했습니다. 지금은 여전히 섬처럼 자기들만의 도시 같은 느낌이 강해서 아쉽기도 하지만요. 그래서 파주가 더 알려지고 확장되는데 영화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습니다.

홍성용_도시를 의인화해보면 너무 모범생 같은, 재미없는 느낌 아닌가요?

정다운_어떻게 보면 아직은 딱 거기까지만 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죠. 모범생이 있으면 조금 문제를 일으키는 친구들도 있고, 그런 다양성이 있어야지 더 도시다울 텐데, 그런 여러 가지 캐릭터 측면에서 부족함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것들이 너무 없어요. 그래서 2단계에서는 조금 다른, 영상이나 IT 회사들을 유치하고자 많이 노력했던 것 같고, 그렇게 확장됐어요. 

홍성용_홍대 앞에 출판사만 400여 개 정도가 있는 것 같은데, 홍대나 합정역에서도 30여 분 정도면 갈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이 있잖아요. 영화에서 이런 내용도 다뤄지고 있나요?
김종신_네, 그렇습니다. 좀 전에 언급됐던 예술가그룹과 연관된 이야기인데요. 홍대에서 합정, 망원으로 밀려난 예술가그룹이 이제는 파주로 꽤 많이들 들어가 계시고, 그게 앞으로의 3단계, 파주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다룬 부분입니다. 어떤 분들은 파주의 밤을 밝히고 있는 건 예술가그룹들밖에 없다는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단적으로, 대형 설치 작업 같은 걸 하시는 분들이 합정동이나 망원동 골목에 큰 바위라든가 목재 같은 걸 옮기기 위해 트럭으로 대는 과정이 그자체로 너무 힘들었는데, 파주로 오니까 너무 좋다고들 하십니다.

홍성용_그렇다면 10년 뒤의 내용을 또 찍으셔야겠네요(웃음). 그런 향후 프로젝트 계획도 있으세요?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스틸컷 &copy; 영화사 진진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스틸컷 &copy; 영화사 진진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 스틸컷 &copy; 영화사 진진

정다운_저희도 그게 궁금해요. 그런 과정이 어디까지 진행될 수 있는지 담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죠. 저희가 처음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을 접했던 그 시기에는 전혀 없었던 움직임이었으니까요. 그때는 파주출판도시의 2단계도 진행이 안됐고, 예술가그룹도 전혀 없었던 상황이었으니까. 아티스트들이 갖는 역동적 움직임으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그리고 결과론적일 수도 있지만, 결국 통일시대를 우리가 준비하자는, 문화전진기지가 되자는 그런 계획이 초반부터 있었어요.

김종신_만약 그렇게 된다면 파주는 서울시청에서부터 30킬로미터, 개성에서부터 30킬로미터인 거예요. 처음에 저희가 다큐를 찍으러 갔을 때는 도로 표지판에 문산으로 적혀있었는데 어느 순간 개성이라고 표시돼 있고. 남북관계가 한참 좋아졌을 때는 평양까지 몇 킬로미터라고 도로 표지판에 적혀있으니 저 혼자 가슴이 벅차고 흥분되더라고요.

<이타미 준의 바다(2019)> 포스터 &copy; 영화사 진진


# 미장센으로서의 공간성에서 시작해 
   건축·공간, 나아가 삶의 가치에 관심

홍성용_처음 영화계에서 작업을 했을 때의 시각과 중간에 건축·도시 쪽으로 방향을 트신 때, 또 지금 성과를 내고 계신 때까지 세 단계로 구분해서 진행하며 어떤 마음의 변화가 있으셨나요?

정다운_처음 영화를 시작한 초기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에 대한 생각을 전혀 못 했죠. 극영화에 관심이 있고, 극영화에서 어떻게 공간을 활용할까 하는 부분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어요. 극영화를 만들면서 미장센으로 공간성이 워낙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 미장센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잘 다룰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공간성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초기 단계에 영국에서 ‘건축과 영상’을 공부한 거였는데, 그걸 처음엔 극영화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죠.


저희가 다큐멘터리 <이타미 준의 바다>를 제작하게 된 계기가 영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남편(김종신 감독)의 고향인 제주도에 갔을 때인데, 마침 이타미 준의 수풍석박물관이 완성된 시기였어요. 아버님께서 “너희가 꼭 가서 봐야 할 공간이 있다”면서 보여주셨던 그 공간에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던 거죠.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는 공간이라는 것, 특히 저희가 너무 좋아하고 사랑하는 제주도에 그런 공간이 있다는 자체가 저희에겐 큰 감동이었거든요. 그 공간의 이야기와 더불어, 또 이타미 준이 당연히 일본사람인 줄로만 알았다가 나중에 보니 재일 한국인이셨다는 그런 여러 가지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이것을 잘 전달하고 싶다는 그런 개인적인 감동의 발로에서 시작됐죠.
이후 도시 이야기로 확장이 되면서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확장된 공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조금이라도 더 잘 알릴 수 있을까 생각했고요. 이야기와 영상이라는 것이 전달력이란 부분에서 힘이 있잖아요. 그래서 이 건축사들과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 그리고 그런 도시를 왜 만들려 했는지 같은 그 당시의 상황들이 이야기로 잘 전달되면 더 좋은 도시, 더 좋은 공간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어떻게 보면 정말 중요한 우리 삶의 가치에 대해서 사람들이 조금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다큐멘터리 영화가 갖고 있는 힘 중에 하나라는 생각을 하는 그런 단계의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2020)> 포스터 &copy; 영화사 진진


김종신_좋은 영화 한 편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그게 건축·공간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가고, 또 생각해 보니까 편한 말로 의식주라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돌이켜보면 옷이라든가 식사 등에 대한 콘텐츠는 굉장히 많은데, 공간에 대한 콘텐츠들은 특히 많지 않은 거예요. 저희는 그 부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공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젊은 분들도 그렇고 지금 다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주거 문제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관심을 가졌던 게 공공건축입니다. 공원, 도서관 같은 누구나 쉽게 갈수 있는 공간들이 좋아지면 공간이 전체적으로 좋아질 수 있지 않느냐 하는 거죠. 최근 젊은 분들이 좁은 집에 살지만 비싼 값을 치르고서라도 좋은 커피숍을 가거나, 좋은 공간에서 작업하는 모습도 볼 수 있잖아요. 예전에는 없는 이런 모습들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좌측부터 출판도시 건축코디네이터 승효상&middot;민현식 건축사, 지식산업사 김경희 대표&middot;이기웅 이 사장, 건축코디네이터 플로리안 베이겔과 필립 크리스토, 한길사 김언호 대표. &copy; 영화사 진진


# 더 좋은 공간이란 무엇인가? 
   공간에 대한 이야기 점진적 확대

홍성용_요즘은 다큐도 극영화처럼 만들잖아요. 앞으로도 인문학적인 주제를 테마로 계속 다루실 것 같은데, 목표가 어떻게 되시는지, 또 기회가 된다면 어떤 것을 하고 싶으신지요?

정다운_저희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확장해나가고 있어요. 시작이 한 건축사의 건축작품들과 삶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그 다음은 도시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고, 그리고 지금은 조경가 정영선 선생님과 작업을 하고 있거든요. 저희가 생태나 조경, 환경 쪽으로 관심이 많아서요. 그런 식으로 계속 주제를 확장하고 있어요. 공공건축에 대한 것, 종교건축, 학교, 저희가 아이들을 키우기 때문에 학교 공간의 중요성 등… 미래세대를 위해 좀 더 좋은 공간은 무엇일까 하는 저희 나름의 고민을 계속 이야기로 담으려 생각하고 있어요.

김종신_저희가 하는 작업들이 좋은 공간에 대해 생각해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만족합니다.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도 그 일환입니다. 요즘은 각자도생의 시대라는 말 많이들 하잖아요. 개개인도 그렇고 특히 젊은 세대들의 주거 문제라든지… 모든 게 다 힘든 이런 때에 파주출판도시의 발자취를 통해 일전에 뜻을 합쳐서 뭔가 더 좋을 것을 함께 만들어내고자 노력했던 얘기를 하고 싶었던 부분도 있습니다. 2020년 서울건축영화제의 일환으로 저희 둘과 김병윤 교수님(대전대 건축학과)이 함께 참석해 진행했던 한 시간 가량의 대담이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유튜브에 공개되어 있는데요. 인터뷰에서 미처 전달하지 못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위대한 계약은 그저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공간에 담긴 가치와 색다른 이야기들을 소개하는 재미있는 영화이니 많은 분들이 흥미를 가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종신·정다운 감독 Kim, Jongshin·Jung, Dawoon 기린그림 영화사 공동대표


대담 홍성용 편집국장
글 육혜민 기자 · 사진 장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