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화해 무드와 지방 건축, 그리고 건축사 2018.06

2022. 12. 2. 19:18아티클 | Article/에디터스레터 | Editor's Letter

Inter-Korean Reconciliation Mood, Local Architecture, and Architect

 

6월은 아주 중요한 정치 이슈가 있는 달입니다. 우리 운명을 좌 우하는 미국과 북한의 회담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상처가 있 는 6월 25일도 있는 달에 평화로 이동하는 운명의 행사가 있다 는 점이 아이러니합니다. 6월호를 진행하면서, 남북한 평화시대에 건축사의 역할이나 건축의 역할을 기사화 할까 하다가 결 과를 모르기에 보류하기로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편집자 의 편지에서 한마디 정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일본 식민지 영향을 받아 건설이 중심입니다. 오히려 건설이 건축을 리드해서 계획의 가치가 평가 절하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철학을 가지고 계획하는 건축사에 대한 인식뿐만 아니 라 제도적으로 많이 미진합니다. 여전히 설계비는 건설에 연동 하는 개념으로 판단하고, 기준은 건설의 기준을 따라 합니다. 엄연히 건축과 건설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어쩌면 건축 사는 새로운 법체계와 정부조직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이에 반해서 많은 공산주의 나라에서 건축은 중요한 국가적 정책 행위입니다. 이들 국가들에서 대부분 건축사들은 공무원과 같은 신분입니다.오히려 건설보다 상위의 개념에 있습니다.

이유는 계획이 잘 되어야 결과가 좋기 때문입니다. 바로 계획은 건축사의 몫 인거죠. 중국도 그러했고, 구소련도 그랬습니다. 북한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하지만 경직된 수평구조는 사회의 복잡함을 담지 못합니다. 아무리 건설이 우위에 있는 우리나라 지만, 이들 국가에 비하면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사회 구조를 건 축이 담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도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건축의 가치가 새삼 부각되고 있는 것입니다.

건축서비스산업진흥법이나 국가건축정책위원회 등이 만들어지 면서 조금씩 개선되고 있습니다. 다행히 2018년 제5기 국가건축 정책위원회 면면을 보면 평생을 건축에 노력한 존경받는 학자와 건축사로 구성되어 희망을 가지게 합니다.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건축에 대한 기준들과 가치들이 부각되는 이야기들이 들립니다.

건축의 시대를 이야기 한지 몇 해가 되었습니다. 건축의 시대 중 심에는 건축사가 있습니다. 건축사가 중심인 시대. 이런 시대는 여러 가지 결과들이 나타납니다. 우선 가치에 대한 인정입니다. 가치에 대한 인정은 건축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인정받 는 것입니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그동안 건축의 영역에서 비 건축적 노력과 은밀한 거래가 건축을 지배한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가치가 인정받는 건축의 시대는 정체성의 시대이 기도 합니다. 정체성은 건축이 있어야 하는 장소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고, 이는 시각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회 적 관계도 담겨야 합니다.

중앙집권적 체제는 모든 것을 중앙에서 결정하고, 해결하는 만 능적 사고입니다. 하지만 가능한 일일까요? 시대가 발달하고 개인화되는 오늘날 모든 문제의 일괄된 해결은 불가능 합니다. 각각의 문제는 상황과 해결법이 다릅니다. 건축에 요구하는 이 런 필요조건들은 결코 중앙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피부로 느끼고 해결하려는 치열한 노력이 있어야 됩니다. 큰 건 축이 아니라 작은 건축에서 더더욱 이런 필요가 있고, 생활 건 축에 요구되는 것들입니다.

느닷없는 이야기 같지만 남북 평화 시대가 된다면 건축은 적극 개입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해결해 준다는 해결법이 북한의 상황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서울 같은 풍경을 평 양이나 개성에 만들어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북한에 건축하는 것은 북한의 지방성을 이해하고 실현하는 것 일 것입니다. 그것은 북한에 대한 시선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 리 스스로도 적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전국이 유사한 형식의 건 축과 형태로 비슷한 도시 경관을 만들어내는 것을 극복해야 합 니다. 그것은 온전히 건축사의 몫입니다.

멋진 지방 건축을 만들고, 멋진 우리 도시를 만드는 것이 결국 미래의 평화시대 건축사의 노력이 되겠지요.

 

글. 홍성용 • 본지 편집국장